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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3일 오후 3시 5분]

11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받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한 마을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11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받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한 마을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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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이에 담긴 눈물."

미국의 만화 저널리스트 조 사코의 작품 <팔레스타인> 중 한 대목이다. 사코는 팔레스타인 자치구역의 곳곳을 찾아다니며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어떤 집은 아들이 재판도 받지 못한 채 감옥에 있고, 어떤 집은 난데없이 밤에 돌팔매질을 당하기도 했으며, 어떤 집은 아무 잘못도 없는 동생과 조카가 총탄에 희생당했다. 하지만 이 비극은 팔레스타인이라는 거대한 양동이에 담긴 눈물 중 한 방울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으로 7월 20일 현재 이번 달에 희생당한 사람만 400명을 넘어섰다. 또 다시 '양동이에 눈물 한 방울'이다. 위에서 언급한 조 사코의 만화는 1991~1992년의 상황을 다룬 것이며, 이스라엘의 점령 정책이 시작된 것은 19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만큼 긴 핍박의 역사 중에서 우리는 무엇을 잘못 알고 있으며, 또 이 문제의 해결책은 무엇일까. 지난 18일 서울 합정동에서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 냐옹(여)·새라(여)·기린(남, 모두 활동명)씨를 만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해 물어보았다.

이스라엘은 왜 하필 팔레스타인 땅을 차지해야 했던 걸까? 많은 사람들은 '예루살렘'이라는 성지에 대한 유대교의 종교적 믿음 때문이었다고 해석한다. 이스라엘 건국 배경에는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시오니즘'이라는 유대국가 건국운동이 있었다. 이 믿음에 기초해, 양차세계대전이 일어나는 동안 핍박을 받아 살던 곳에 제대로 정착할 수 없었던 동유럽 등지의 유대인들이 아랍 땅으로 이동했다. 전쟁이 끝난 뒤 미국과 영국 등 강대국에 정착한 유대인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1948년 만들어진 것이 이스라엘이다.

수천 년 동안 떠나 있었던 팔레스타인 땅을 차지하는 데 가장 큰 '명분'이 되었던 것은 '그곳이 유대인에게 약속된 땅'이라는 종교적 믿음이었다. 새라씨는 "종교문제라고 해도 사람들이 공존할 수 없는 건 아니다"라며 "종교가 문제가 아니라 점령이 문제인 것 같다"고 했다.

기린씨도 "(유대인들의) 지지를 받으려면 종교적인 것을 이용해서 맹목적으로 따르게 하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며 "'이스라엘은 절대 빼앗길 수 없는 성지'라는 믿음은 일종의 선전·선동"이라고 말했다.

"휴전협약 먼저 깬 건 이스라엘... 하마스가 또 도장 찍을 이유 없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영토(노란색). 서쪽이 현재 공습이 벌어지는 가자지구로, 이스라엘에 의해 봉쇄된 상태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영토(노란색). 서쪽이 현재 공습이 벌어지는 가자지구로, 이스라엘에 의해 봉쇄된 상태다.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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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으로 현재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통치를 받고 있으며, 국제법상으로는 이스라엘의 영토가 아니다. 하지만 서안지구는 실질적으로 이스라엘군의 통제를 받고 있고, 불법적인 유대 정착촌이 지금도 계속 생기고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거주지에 들어가 쫓아내고 그곳에 정착촌을 세우는 식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거주지는 갈기갈기 찢어지는 상황이다. 기린씨는 "우리의 일본 식민지 시절을 대입하면 이해가 될 것"이라며 "우리나라 사람들이 당했던 걸 팔레스타인은 지금까지 계속 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지역은 이스라엘 서부의 가자지구로, 2006년 선거에서 승리한 팔레스타인 하마스가 이 지역의 집권당이다. 이스라엘은 2005년 이곳의 이스라엘 정착촌을 모두 철수시켰으며, 가자지구를 봉쇄한 상태다. 해안도 이스라엘 해군에 의해 봉쇄되어 있다.

"이스라엘이 휴전협정을 제안했는데도 하마스가 받아들이지 않아서 지금 사람들이 죽어나간다고 보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본질적인 문제를 보지 못한 것입니다. 2012년에도 하마스는 이집트의 중재로 이스라엘의 휴전안에 도장을 찍었는데, 그 조약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었습니다. 민간인 학살도 계속되었고요. 중재자인 이집트 또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유일한 통로인 지하 터널을 다 폭파해버렸습니다.

협약을 먼저 깬 건 이스라엘 쪽인데 여기서 하마스가 또 다시 도장을 찍을 이유는 없는 거지요. 어떤 팔레스타인 사람이 트위터에 '우리는 200명 희생자의 피를 헛되이 낭비하고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오늘 죽으나 서서히 죽어가나 똑같다'고 쓴 것을 봤습니다.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점령 때문에 팔레스타인도 협정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겁니다." (냐옹)

'가해자'가 되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이 상황이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가 아닐까? 어떤 이유 때문에 점령과 박해를 계속하고 있는 것일까? 활동가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우경화가 심화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냐옹씨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랍인은 다 테러리스트'라는 식으로 많이 배워왔기 때문에 그렇게 많이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물론 이스라엘 사람들 중 평화를 주장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는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정부나 극단적인 사람들에 의해 낙인이 찍히고 살해 위협을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이 일방적으로 점령당하는 상황"

울산대학교의 무슬림 출신 재학생과 교환학생들이 16일 울산시 남구 이 대학 내 상징탑 앞에서 가자지구의 평화를 바라는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울산대학교의 무슬림 출신 재학생과 교환학생들이 16일 울산시 남구 이 대학 내 상징탑 앞에서 가자지구의 평화를 바라는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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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라씨도 "이스라엘에서는 쇼핑몰 같은 곳에서도 일상적으로 보안 검색을 하고, 위협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계속 각인시킨다"며 "그런 식으로 계속 자국민들에게 교육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의 아이들도 이 '증오'를 자연스럽게 답습하고 있다. 기린씨는 "어린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상대방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 자체가 잔인하고 끔찍하다"고 말했다.

"우리도 하마스의 일부 잘못된 정책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은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이 왜 그렇게 하게 되었는지 그 본질을 보아야 합니다. 이 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건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갈수록 공격적으로 변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괴물을 만들어가는 본질의 괴물은 이스라엘의 잘못된 점령 정책이죠." (냐옹)

미국의 정치학자 노르만 핀켈슈타인 교수는 홀로코스트 피해자의 후손임에도 극렬 유대인 단체의 압박을 가장 많이 받는 학자 중 한 사람이다. 그 때문에 뉴욕의 한 대학교에서 직장을 잃기도 했다.

그가 쓴 책 <홀로코스트 산업>은 '홀로코스트'라는 역사적 사건이 미국 등지의 부유한 유대인에 의해 이용되고 있다는 내용이다. 진짜 희생자들에게는 보상이 거의 가지 않았지만, 부유한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를 이용한 대중문화와 언론 보도로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을 둘러싼 서방 언론의 보도도 마찬가지 문제를 보인다. 언론에서 팔레스타인을 '테러리스트'의 이미지로 묘사해 교묘하게 이스라엘의 침략을 정당화시킨다는 주장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한국 언론 또한, 국제 뉴스에서 서구 언론을 많이 참고하기 때문에 비슷한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는 반성도 나오고 있다. 냐옹씨는 "미디어에서 항상 이 문제를 양비론적으로 다루는 것 같다"고 했다.

"교전이라는 표현이 대표적이죠. 사실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동등한 위치로 싸우는 것이 아니고, 팔레스타인이 일방적으로 점령당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언론은 둘이 '교전'하는 것처럼, 양쪽 다 잘못하고 있는 것처럼 양비론적인 시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활동가들은 또 다른 문제로 하마스에 대한 설명을 지적했다. 냐옹씨는 "하마스는 민중들이 투표로 뽑은 정당일 뿐 무장테러단체가 아닌데, 항상 '무장테러단체 하마스'와 같은 식으로 표현된다"고 지적했다.

새라씨도 "사람들이 하마스나 팔레스타인을 테러리스트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도록 서방 언론이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라며 "직접 현지에 다녀오신 분 이야기를 들으면, 하마스는 그냥 정부이며 (그곳에 소속된 사람들은) 공무원들일 뿐"이라고 했다. 활동가들은 "하마스나 팔레스타인에 대한 표현의 교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도 이스라엘 파견 대사 소환할 필요 있다"

17일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열린 ‘이스라엘 학살 반대, 팔레스타인 평화!’ 기자회견에 참가한 팔레스타인인들.
 17일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열린 ‘이스라엘 학살 반대, 팔레스타인 평화!’ 기자회견에 참가한 팔레스타인인들.
ⓒ 강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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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들은 "해결방법은 국제연대"라고 말했다. 냐옹씨는 "1948년부터 지금까지 긴 점령과 투쟁의 역사가 있었고,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비폭력 투쟁부터 자살 테러까지 온갖 걸 다 해보았다"며 "그런데도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서방권 국가들이 너무나 강력해 어떤 것도 성공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런 강한 움직임에 맞서기 위해서는 팔레스타인을 향한 국제적인 도움의 손길이 답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이랑 관계를 끊으라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이스라엘 파견 대사를 소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령을 끝내기 위해서는 팔레스타인 내부의 움직임이 필요하지만 외부에서도 강한 압력을 줘야 합니다."

하지만 각국 정부 차원의 팔레스타인 지원이나 이스라엘과의 교류 차단은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최근 프랑스에서도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가 열렸지만, 정부 차원에서 이 시위를 금지했다. 이웃 아랍 국가들도 이스라엘 규탄 선언을 내놓고 있지만, 실제로 이스라엘과 교류를 끊는 등의 움직임은 거의 없다. 지금도 팔레스타인 땅의 양동이에 눈물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지금 가자침공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런데 이게 끝나고 평온이 찾아와도 점령은 계속되는 겁니다. 침공 이후에도 엄청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요. 집도 다 잃고, 전기나 물도 공급도 안 되고, 가족들 잃은 것도 당연히 슬픈 거고. 그것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이스라엘을 열심히 압박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냐옹)

"저희가 17일 공습 중단 촉구 시위를 했어요. 이 시위 후 집에 와서 샤워하려고 물을 트는데, 그 순간 갑자기 가자가 생각났어요. 그곳은 정화 시스템이 잘 안 되어 있기 때문에 물에 염분이 섞여 있어서 냄새도 나고 질도 너무 안 좋습니다. 그마저도 제대로 공급이 안 되고요. 그처럼, 이번 공습이나 학살이 중단되더라도 여전히 점령과 그에 따른 문제는 남아 있는 것이죠. 이에 대해 저희가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야합니다." (새라)

"이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주변에 이야기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제일 중요한 건 관심이고, 아는 거니까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의 나라 이름도 잘 모르고 그랬는데 지금은 많이 아시잖아요. 먼저 알리는 것부터 시작하고 싶습니다. 알면 관심이 갈 거고요." (기린)


태그:#팔레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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