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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 다음 주에 휴가 가야 된다며 이번 주까지 문서를 보내달라거나 일을 처리해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졌다. 드디어 손꼽아 기다리던 여름휴가철이 왔구나 실감이 난다. 휴가 안 가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진정한 휴가는 남들 안 가는 한갓진 비수기 때 가는 것'이라며 호기롭게 외친 터라 휴가는 아직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그런 신념(?)이 조금 후회되는 것은 30도를 쉬이 웃도는 요즘의 불볕더위 때문이다. 그와 함께 불쾌지수는 비례해 올라가고, 휴가는 아직 한참 남았고…. 하루하루 지쳐가는 나날, 무더위에 지친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굵고 짧은 여행이 절실해진다. 그것도 시원한 바다나 강이 있는 곳으로.

무려 2500만 명이 산다는 수도권 지역은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바닷가, 강가로 여행을 다녀올 수 있어 좋다. 게다가 1시간 정도 거리의 반나절 여행이라면, 어디가 좋을지 가서 뭘 할지 그리고 비용은 얼마나 들지 덜 고민할 수 있어서 좋다. 이런저런 생각 다 내려놓고 그냥 떠나면 된다.

느긋한 드라이브, 혹은 산책을 즐길 수 있는 바다, 강가, 야경이 좋은 곳 가운데 비교적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숨은 여행지'가 있다. '1시간이면 가는 여행지라니, 가봤자 별거 있겠어?'라는 편견을 무색하게 할 좋은 곳들이다.

[서쪽으로!] 귀갓길 붙잡는 한갓진 바다여행... 인천 강화 동검도

물이 빠지는 썰물때가 되면 바다위를 걷거나 낚시를 할 수 있다.
 물이 빠지는 썰물때가 되면 바다위를 걷거나 낚시를 할 수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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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어선들이 오가는 아담한 포구와 섬이 잘 어울린다.
 작은 어선들이 오가는 아담한 포구와 섬이 잘 어울린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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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는 수도권의 보물섬 같은 존재다. 문화유적이 밀집해 있는데다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거리도 가까워 매력적인 휴식처로 인기가 높다. 강화도가 동남쪽에 감추어둔 아담하고 한적한 새끼 섬이 있는데 바로 동검도(인천시 강화군 길상면)다.

초지대교를 넘어 강화도 해안도로를 빨리 달리다 자칫 못 보고 지나칠 수 있는 섬으로, 나도 자전거 여행을 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섬이다. 강화도 주변의 석모도나 영종도 등에 비해 그리 유명하지 않은, 1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이 작은 섬은 강화도와 제방도로로 이어져 있다. 

좁은 제방도로를 지나 섬에 들어서면 민가가 있는 '큰말'과 포구가 있는 '서두물'이라는 이채로운 이름의 지역으로 가는 두 길이 나온다. 왼편의 서두물 포구 방향으로 가면 곧 바다길이 이어진다. 차 한 대가 지나갈 정도의 좁은 해안도로를 따라 작은 무인도들이 떠 있는 바다도 구경하고 어촌 마을도 구경하며 천천히 달리다 보면, 길 끝에 언제나 한갓진 서두물 포구가 멀뚱한 표정으로 나타난다.

여느 포구처럼 북적이는 횟집도 부드러운 모래가 펼쳐져 있는 멋진 해변도 없지만, 지구와 달의 '밀당'으로 바닷물이 물러서는 썰물 때가 되면 수심이 얕아진 바다 위를 멀리까지 걸어갈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물을 촘촘히 정리하는 어민들 모습, 갯벌 위에 철퍼덕 눌러 앉아 물때를 기다리고 있는 어선 몇 척, 수심이 얕아진 바다 위로 첨벙첨벙 걸어 들어가 힘차게 그물질을 하는 주민들의 모습은 무더운 여름을 잊게 하는 진풍경들이다. 시시때때로 다른 얼굴을 지닌 서해 섬마을의 소박하고 정겨운 매력이 입소문이 났는지 얼마 전 사설 오토 캠핑장도 생겨났다.

식구들과 여유롭게 바닷바람 쐬러 갈 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얕아진 바다 위를 맨발로 걷고 싶을 때, 고독을 친구 삼아 혼자만의 낚시여행 혹은 사진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 등 모두 어울리는 포근한 섬이기도 하다.

이제는 슬슬 돌아갈까 생각하는 사이, 해질 무렵이 되면 포구에 정박한 자그마한 고기잡이배와 갈매기, 그리고 동검도 최측근의 무인도 '동그랑섬'이 어우러져 마치 그림엽서의 한 장면 같은 낙조를 보여주는 바람에 자꾸만 귀갓길이 늦어지게 되는 섬이다.

[동쪽으로!] '서정' 속을 걷는다... 경기 광주 경안천습지생태공원  

비 내리는 날, 비 개인 날 가면 더욱 좋은 경안천 습지공원.
 비 내리는 날, 비 개인 날 가면 더욱 좋은 경안천 습지공원.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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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와 산자락을 휘감은 물안개가 몽환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습지와 산자락을 휘감은 물안개가 몽환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 햇살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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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 너머 끝 산자락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속에서 물가를 끼고 걷다보면, 반갑게 들려오는 매미 소리, 개구리 울음소리가 줄곧 따라온다. 자맥질을 하는 귀여운 물오리들, 물가에 사는 신비로운 왕버들 나무, 풀벌레들의 합창소리…. 습지와 숲과 강물이 한데 어우러졌다.

근래 우리나라의 여름 날씨는 마치 아열대지역처럼 장맛비 외에 국지성 호우, 장대비, 여우비 등으로 불리는 온갖 비가 오락가락 쏟아져내린다. 시시때때로 내리는 비를 맞으며 우중(雨中)여행을 하는 날이거나 비가 막 갠 날, 경안천습지생태공원(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정지리)에 가면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경안천은 경기 용인시에서 발원해 광주시를 거쳐 팔당호로 들어오는 43.9㎞의 하천으로, 경안천습지생태공원은 수도권의 젖줄 팔당호의 수질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조성했다. 전체 넓이 16만2천㎡의 큰 습지로, 시선의 끝은 저 멀리 산 밑에 가서야 고정된다. 공원 입구부터 연꽃의 향연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산책로는 나무 목책길, 흙길, 둑방길 등 약 2km에 달하며, 드넓은 습지 위를 거닐 수 있는 길이 물 위에 이어져 있다.

순백의 꽃을 피운 연밭, 소나무와 벚나무, 버드나무가 우거진 습지에 자연스러운 정취가 가득하다.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날, 넓적한 연잎에 맺힌 물방울들이 도르르 구르는 모습엔 운치가 절로 넘친다. 습지와 산자락까지 물안개에 휘감긴 몽환적인 모습은 아름다운 경치에다 서정까지 더해 잊기 힘든 추억의 풍경으로 남게 된다. 도시 속에서 자연스러운 강변 서정을 느낄 수 있는 공원으로, 물빛 좋은 습지에서 걷는 것만으로 휴식이 된다.

내가 만난 천변 습지 가운데 수도권 가까이는 물론 전국적으로도 이렇듯 빼어난 풍경을 지닌 곳은 몇 안 될 듯싶다. 공원 주차비도 무료이니 고맙기까지 한 곳이다.

경안천생태습지공원에 가는 길은 여정도 좋다. 팔당호가 펼쳐진 왕복 2차선의 호반도로와 경안천의 수변도로는 강 풍경이 좋은 드라이브 코스로 빨리 달릴수록 손해 보는 길이다. 특히 퇴촌면은 매년 토마토 축제를 하는 동네이다 보니 도로변 노점에서 여러 빛깔과 모양의 토마토를 사먹는 즐거움도 크다. 

[남쪽으로!] 늦잠 자고 일어나 가도 좋은 곳... 경기 안산 구봉도

낙조 전망대가 있는 구봉도 끝의 무인도 꼬깔섬으로 가는 개미허리 아치교.
 낙조 전망대가 있는 구봉도 끝의 무인도 꼬깔섬으로 가는 개미허리 아치교.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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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도 낙조 전망대에서... '대부도 해솔길'의 자랑인 이유가 있었다.
 구봉도 낙조 전망대에서... '대부도 해솔길'의 자랑인 이유가 있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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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의 큰 섬 대부도 북쪽에는 구봉도(경기도 안산시 대부북동)라는 정다운 이름의 섬 아닌 섬이 있다. 봉우리가 아홉 개 있다고 구봉도라 이름 붙여졌다 하는데, 원래는 진짜 섬이었지만 구봉 염전이 생기면서 대부도와 이어졌다 한다. 대부도는 또 시화방조제를 통해 육지와 이어져 있으니, 해안도로를 따라 구봉도까지 육로로 갈 수 있다.

수많은 바지락칼국수 집과 빨간 등대가 랜드마크가 된 오이도를 지나, 한쪽은 바다, 다른 쪽은 호수로 만든 12km 직선의 도로 시화방조제를 달려 지나가는 길은 구봉도 가는 색다른 여정이다. 대부도가 꼭꼭 숨겨놓은 구봉도에는 해저물녘 서해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석양이 참 좋다. 그래서 산책로를 통해 갈 수 있는 섬의 끝에 낙조 전망대까지 만들어 놓았다. 낙조가 아름다운 구봉도는 그래서 늦잠 자고 일어나서 여유롭게 찾아가도 좋은 곳이다.

주차는 구봉도 종현어촌체험마을 공용주차장에 하는 것이 좋으며 주차료는 없다. 주차장에서 전망대가 있는 구봉도 맨 끝 무인도 꼬깔섬까지 왕복 약 4km의 여행을 즐기는 길은 재미있게도 두 길이다. 야트막한 산 속 숲길로 가도 좋고, 바다를 바라보며 해안길로 가도 좋겠다.

이렇게 꼬깔섬 전망대까지 조화롭게 나 있는 해안길과 산길은 구봉도의 또 다른 매력이다. 산길에는 물 맛 좋은 구봉이약수터가 있는가 하면, 해안가엔 구봉이선돌이라 하여 '할매바위'와 '할아배바위'가 서 있다. 이 바위에서도 멋진 해넘이 풍경이 펼쳐진다.

보통은 숲길을 걸어 낙조 전망대까지 갔다가 바다 석양을 감상하고 해안길을 통해 돌아오는 코스를 밟는다. 시원한 바닷바람과 붉게 타오르는 노을을 감상하고 돌아오는 길, 낙조 전망대에 가기 위해 건넜던 개미허리 아치교 아래로 출렁이던 바닷물이 빠지고 해안길이 열려 있다. 불과 몇 시간 만에 다른 풍경을 자아내는, '같은 곳 다른 느낌'의 섬이다. 

일상에서 멀리 벗어난 여행지가 아니라도 가까운 곳을 어슬렁거리며 이런저런 상념의 시간을 갖는 것도 충분히 여유로운 여행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때로 소설보다 수필이 좋아질 때처럼, 한 편의 에세이 같은 반나절 여행은 부담 없이 갔다가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어 좋다.


태그:#여름 휴가, #반나절 여행 , #동검도, #경안천 생태습지, #구봉도 , #서울 근교 하루치기 드라이브, #서울 근교 하루치기 드라이브, #서울 근교 하루치기 드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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