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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녘에서는 태풍 소식도 들리는데 강화도는 아무 낌새도 보이지 않는다. 어쩌다 한 줄기 소나기가 찔끔 지나갈 뿐 기다리는 비 소식은 없다. 그래도 오늘은 비가 내릴 기미가 보인다. 서북쪽 하늘에 검은 구름이 낮게 깔려있는 것을 보니 조만간에 소나기가 한 차례 퍼부을 것도 같다.

북산을 넘어 길을 걷는다. 산 아래에는 군데군데 동네가 있고, 마을 앞으로는 시원하게 들이 펼쳐져 있다. 이즈음의 논은 온통 초록 일색이다. 밭작물들이 비를 기다리는 것과 달리 논의 벼들은 한참 기세를 돋우고 있다. 

비는 언제 오나?

강화읍 대산리를 향해 가는 길이다. 대산리는 행정상으로는 강화읍에 속하지만 북산 뒤에 있어서 읍내의 번잡함과는 거리를 둔, 조용하고 한가로운 동네다. 차를 타고 갈 수도 있지만 산을 넘어서 가보기로 했다. 그가 걸었던 길을 따라서 가보는 셈이다.

 서북쪽 하늘에 비구름이 몰려 있습니다.
 서북쪽 하늘에 비구름이 몰려 있습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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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매일 걸어서 이 길을 오갔다. 도시락 두 개를 담은 가방을 메고 아침이면 총총히 작업실로 갔다. 어떤 날은 부옇게 밝아오는 신새벽에 이슬을 헤치며 산길을 걸었던 적도 있었다. 마치 뭣에 홀리기라도 한 양 그는 낮밤을 가리지 않고 대산리로 향했다.  

그는 걸으면서 자기 안에 맴돌고 있는 것을 달래기도 하고 어루만지기도 하였다. '내 속에 또 다른 것이 들어 있어서' 그것이 그를 대산리로 이끌었다. 부름을 받으면 지체 없이 달려가 붓을 들었다. 신들린 것처럼 붓질을 하다가 보면 하루 해가 꼴딱 넘어가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들은 그가 그렸지만 그 아닌 또 다른 존재가 그린 것이기도 하다고 그이는 말한다. 

신들린 사람, 그는 박진화 화백이다. 20여 년 전인 1991년에 강화로 온 그는 민통선의 철책을 마주보고 앉았다. 철책에 걸려서 허우적대는 분단된 조국과 민족의 아픔이 그의 눈에 보였던 것이다. 그는 그만 그것에 들려 버렸다. 20년 이상 대면하고 있지만 그것은 아직도 박 화백을 놓아주지 않는다. 

박진화 미술관을 찾아가는 길

우리나라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화가의 이름을 따서 지은 미술관이 꽤 많다고 한다. 대부분 지역 출신 화가를 기려서 지은 미술관들이지만 그 중에는 그 지역 출신은 아니지만 그곳과 어떤 연관이 있는 화가를 기리는 미술관들도 많다. 

 박진화 미술관은 시골 동네 안에 있습니다.
 박진화 미술관은 시골 동네 안에 있습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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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에도 여러 개의 미술관이 있다. 그중 대산리에 있는 박진화 미술관은 여타의 것들과는 조금 다른 성격을 보여주는 곳이다. 그의 그림을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 만든 미술관이라는 점도 남다르지만 그보다는 농촌 속으로 들어간 점이 더 특별하다.

또 박진화 화백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작가들의 현재와 미래를 점쳐볼 수 있는 기획전시회가 연중 열린다. 말하자면 박진화 미술관은 이름 그대로 진짜 그림(眞畵)만 그리는 사람들의 전시 공간으로 활용이 되고 있다.

강화나들길 1코스인 '심도역사문화길'을 따라 걷노라면 박진화 미술관을 만날 수 있다. 차가 한 대 다닐 수 있을 정도의 골목길을 따라 한참을 가다보면 동네 들머리에 하얀색 집이 보인다. 원래는 농가였을 이 집은 이제는 예술을 담는 공간으로 변신을 했다. 

미술과는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농촌 마을에 미술관이 있다. 세련된 외양의 거창한 집도 아니다. 미술관 앞의 논에는 벼가 자라고 있고 그 옆은 참깨며 고구마 등을 심은 밭이다. 골을 따라 자라고 있는 밭작물들은 농부의 손길이 얼마나 갔는지 어느 하나 허투루 자란 게 없다. 마치 거대한 캔버스에 그린 작품인 양 논과 밭이 아름답다.

분단과 통일을 그리는 화가 

미술은 본래 사람의 생활 속에서 나왔다고 한다. 갈망하고 그리워하던 것을 승화한 게 미술이고 예술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미술은 대중들과 유리된 감이 있다. 사람들은 미술을 낯설어하고 어렵게 여긴다. 전시장에 가서 작품을 봐도 무엇을 말하는지 모호하기만 하다.  

 '그림은 그리움'이라고 말하는 박진화 화백. 그는 오늘도 그리운 것을 찾아 길을 나섭니다.
 '그림은 그리움'이라고 말하는 박진화 화백. 그는 오늘도 그리운 것을 찾아 길을 나섭니다.
ⓒ 김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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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화 화백의 그림도 역시 쉽게 읽혀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뭔가 모르게 가슴에 확 다가오는 것이 있다. 그것은 때로는 불도장처럼 뜨겁게 느껴지기도 하고 또 때로는 처연하게 그려지기도 한다. 

'그림은 목숨과 맞바꿔야 되는 것'이라고, 중학교 때 미술 선생님께 들은 말을 박진화 화백은 아직도 잊지 않고 되새긴다. 그림이 안 돼 죽을 만큼 힘들면 '어려우니까 그림이지 쉬우면 그림이겠나'하며 마음의 칼을 다시 한 번 벼린다. 그리고 또 도전한다. '그래, 너는 뭔데?'하면서 그림에게 종주먹을 들이대며 부딪힌다. 

박진화 화백은 약관의 나이인 30대 초반에 강화도로 왔다. 그리고 철책이 마주 보이는 대산리의 작업실에서 붓을 들고 씨름을 했다. 어느 때는 그가 승리를 거두기도 했지만 대개의 경우 승산이 없는 겨룸에서 진을 다 뺐다.

그럴 때마다 그는 마니산을 올랐다. 그림이 떠오르지 않을 때나 또는 그림과의 한 판 씨름에서 버겁게 버팅기다가 마니산에 가서 기운을 얻어오곤 했다. 그렇게 오른 것이 천 번도 더 넘는다고 하니 그의 그림들은 어쩌면 그가 그린 게 아니라 마니산이 그린 것인지도 모른다.

한밤중에도 마니산을 찾았다. 마치 신내림을 받듯 그는 참성단에 올라 하늘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오르던 어느 날 그는 어떤 기운과 대면했다. 부옇게 형체도 없이 둥둥 떠다니던 그것을 신들린 듯 캔버스에 옮겼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대산리의 작업실에서 만난 미완성 작품. 민족의 화합과 통일의 바램이 꽃으로 피어났습니다.
 대산리의 작업실에서 만난 미완성 작품. 민족의 화합과 통일의 바램이 꽃으로 피어났습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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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태어난 '밤에 참성단에서'라는 그림에는 뭔가 모를 신령스러운 기운이 감돈다. 참성단을 떠다니던 그것은 박진화 화백을 통해 캔버스로 옮겨왔다.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어떤 기운이 그의 붓을 통해 터져 나왔다.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를 대신해서 울어주는(代哭者) 화가의 울음이 보이는 듯도 하다.

그는 전업화가다. 자본의 자장(磁場)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궁벽한 섬에서 그림 하나만 보고 길을 걸었다. 시장에서 인기가 있을 그림을 그리지도 않는다. 그가 택한 주제는 분단과 민중이었기 때문이다. 

민통선 안의 대산리에서 철책을 마주하고 앉아 그림을 그리는 그에게 분단은 어쩌면 그를 옭아매는 철조망일지도 모른다. 그는 그 철책에 걸려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는 바람이다. 그가 그린 그림 속의 도깨비(철책에 걸린 도깨비) 역시 역사의 올가미에 걸려 허우적댄다.

메마른 땅을 적셔주는 비

그를 찾아 나들길을 걸었던 날은 먹장구름이 하늘 한 쪽에 낮게 포진하고 있었다. 북산을 넘어 대산리로 접어들자 시원스레 펼쳐진 들판 저 너머로 북한의 산이 보였다. 산과 들 사이에는 좁은 바다가 있고 바닷가 둑에는 촘촘히 가시를 달고 있는 철책이 끝없이 펼쳐진다. 그냥 그림으로 보면 평화롭기 그지없는 풍경이다. 산과 들, 그리고 철책까지도 한가로운 전원 풍경 속의 소도구처럼 보인다.
 옥수수며 고구마에 참깨 등이 박진화 미술관과 함께 자랍니다.
 옥수수며 고구마에 참깨 등이 박진화 미술관과 함께 자랍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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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비가 오지 않아 미술관 마당의 잔디들이 배배 몸을 비틀며 말라가고 있었다. 마치 두 동강이 나서 꼬여있는 우리나라의 처지같이 보였다. 한 줄기 비가 내리면 잔디는 다시 새파랗게 살아날 것이다. 분단된 우리나라를 흔쾌히 적셔줄 비가 그리웠다. 언제쯤이면 비가 올까. 미술관 뜰을 서성이며 들 저 너머에 있는 북쪽의 산과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난데없는 시원한 바람이 들판을 훑고 지나갔다. 참나무 숲에서 청개구리들이 와글대며 울었다. 밭둑을 따라 서있는 옥수수 잎들도 바짝 날을 벼렸다. 후두둑 풀썩, 뜨거운 먼지가 튀어 올랐다. 그리고 이내 콩 볶듯이 소나기가 몰아쳤다.

막잠 자고 난 누에가 뽕잎을 먹는 소리처럼 버석거리며 소나기가 뽀얗게 묻어 든다. 피처 피해볼 새도 없이 천지간이 흠신 젖어든다. 비다. 소나기다. 비는 온 들판을 유린하듯 몰아친다. 금새 땅이 젖었다. 발갛게 타들어가던 잔디밭에도 물이 흥건하게 고였다.

비는 아마 한동안 올 모양이다. 덕분에 마른장마는 저만치 물러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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