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바바라 메인 포스터

▲ 산타바바라 메인 포스터 ⓒ 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주)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와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이 태풍처럼 휩쓸고 있는 한국 극장가에 작은 멜로영화가 한 편  상륙했다.

<멋진하루>, <영화는 영화다>의 제작자이자 2010년작 <맛있는 인생>을 통해 감독으로도 데뷔한 조성규 감독의 네 번째 연출작인 영화 <산타 바바라>는 산타바바라의 이국적인 풍경과 이상윤·윤진서라는 검증된 배우를 내세워 헐리웃 블록버스터에 지친 관객들의 마음 공략에 나선다.

영화의 제목인 산타바바라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남서부에 위치한 관광도시다. 미국의 와인산지로 유명 와이너리들이 위치하기도 해 제62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뮤지컬 부문 최우수작품상과 각본상을 수상한 와인영화의 명작 <사이드웨이>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영화 <산타바바라>는 <사이드웨이>에 그려진 낭만적인 공간 산타바바라를 꿈꾸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일상적이면서 코믹한 감성으로 그려내고 있다. 99분에 이르는 런닝타임 중 마지막 20여 분 정도가 바로 여기 산타바바라를 배경으로 전개되는데 이 부분이야말로 영화의 백미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음에도 감정을 확인하지 못한 두 남녀가 산타바바라를 찾아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는 이야기. 영화의 줄거리는 한 줄로 설명이 가능할 만큼 간단하고 명료하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영화가 그리 평범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곧 깨달을 수 있다. 우선 영화는 정통 멜로물이 아니다. 차근차근 주인공의 캐릭터를 설정하고 그들의 심리상태와 관계의 진전을 그려내는 정통 멜로물과 달리 이 영화는 줄거리가 적힌 스케치북을 다짜고짜 훑듯이 넘기는 코미디적인 로드무비에 가깝다.

허술하게 그려진 풍경화 같은

산타바바라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정우(이상윤)와 수경(윤진서)

▲ 산타바바라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정우(이상윤)와 수경(윤진서) ⓒ 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주)


주연을 맡은 이상윤과 윤진서는 관객들이 극중 인물에 몰입하도록 한다기보다는 철저히 스스로를 객체화시키는 어색한 연기를 펼친다. 그리고 이는 관객들로 하여금 마치 멀리 떨어져 마당극을 보는 듯한 효과를 만든다. 보통의 멜로물은 극중 인물에 몰입하도록 만들기 위해 여러 장치를 설정하게 마련인데 풍경화를 보듯 멀찍이 떨어져 관조하게 되는 이 영화에서 관객들은 영화를 따라갈 뿐 몰입하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설정된 듯한 이런 영화의 형식이 낯설게 느껴질 무렵 무대는 갑작스레 산타바바라로 옮겨진다. 그리고 여기서 영화의 진면목이 등장한다. 이색적인 장소의 멋진 풍광과 낯선 상황이 만들어낸 낯선 감정들. 영화는 바로 이곳 산타바바라에서 서울에서 확인하지 못했던 두 남녀가 서로의 진심을 내보이는 순간을 연출한다. 바로 여기가 이 영화가 승부하고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부족하다. 사랑보다 일이 중요한 여자와 일보다 사랑이 먼저인 남자의 로맨스를 다룬 영화는 이 작품 이전에도 어림잡아 수십 편은 만들어졌을 것이다. 기본적인 설정부터 등장하는 여러 에피소드와 사소한 디테일에 이르기까지 다른 영화들에서 여러차례 보았을 법한 클리셰들이 많은 것은 이 영화가 가진 치명적인 약점이다.

포스터나 카피 등을 통해 예상할 수 있는 것과 전혀 다른 분위기의 영화인 것도 아쉬운 점이다. 낭만적이고 아름다울 것 같아 찾은 영화가 허술하고 가볍기 짝이 없을 때 관객들은 실망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이쯤되면 하나의 의문이 떠오른다. 어쩌면 산타바바라에 가고 싶었던 건 영화 속 정우와 수경이 아니라 감독이 아니었을까 하는.

산타바바라 조성규 이상윤 윤진서 이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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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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