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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집단자위권 결정 이후 동아시아 정세가 격랑에 휩싸일 전망이다. 일본의 군사대국화 배경이 어디에 있으며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 진단하고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모색해본다. [편집자말]
일본의 아베 정권은 2014년 상반기 '집단자위권'을 시발로 해서 평화헌법 개정의 수순을 밟아나가고 있다. 그 목적은 매우 뚜렷하다. 전쟁을 할 수 있는 '정상국가(일본의 경제력에 걸맞은 정치적, 군사적, 외교적 능력을 갖추는 정상적인 국가란 의미)'로의 복귀다. 논리와 명분으로 따지자면, 문제를 삼기 어렵다. 그 어떤 나라도 자신의 국가적 안위를 스스로 지켜낼 수 없다면 국가로서의 존재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타국의 공격을 받게 될 경우 이에 대한 물리적 방어능력이 없다면 국가는 존망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런 까닭에 이른바 '정상국가론'은 일본인들에게 호소력을 갖게 된다. 그것은 단지 우파만의 논리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전쟁은 침략만이 아니라 방어라는 차원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쟁능력을 공식화하고 제도적으로 확보하는 것은 어떤 국가에게도 주권적 사안이지 다른 나라가 간섭하고 개입할 문제가 아니다. 

일본의 집단적자위권, 우리가 긴장하는 이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5월 15일 오후 도쿄의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집단 자위권 행사 용인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5월 15일 오후 도쿄의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집단 자위권 행사 용인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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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정권을 비롯해 집단자위권 확정에 대해 일본사회가 (일부 비판과 반대가 있긴 하지만) 대대적으로 반발하지 않는 것도 이러한 흐름과 맞닿아 있다. 더군다나 중국의 위협적 성장과 군사적 팽창에 대비하지 않는다면,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가질 수 있는 국제적 발언권의 크기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어디 그뿐인가? 일본 경제는 지난 20년간 제대로 된 성장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특히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로 일본 사회가 겪고 있는 좌절감과 암울한 미래인식은 '이대로 계속 추락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확산시키고 있는 중이다. 무언가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한때 1류 국가에서 2류 국가로 전락할 수 있다는 두려움과 초조함은, 1차 대전 이후 허물어져가던 독일 국민들의 사회 심리적 상태와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유사한 면이 있다. 강력한 국가체제에 대한 갈망은 파시즘적 권위를 중심으로 집결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일본의 우경화 또는 군사주의체제 강화는 국제적 상황만이 아니라, 내적 동기도 만만치 않게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깊숙이 들여다봐야 한다. 더군다나 명분상으로는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를 내세우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 일본은 자신을 제대로 지켜낼 수 있는 군사력을 공식화하는 것을 토대로 '평화를 수호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편다. 이것은 어디서나 전개되는 안보론의 기본 골격이다. 강력한 무력을 갖추고 있을 때 평화는 유지된다는 말은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하다. 그런 점에서 평화논리를 기반으로 한 아베 정권의 집단자위권 확정은 논리상 모순이 없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아베정권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긴장하고 위험한 것인양 바라보고 있을까? 일본은 이미 군대를 보유한 나라이다. 자위대라는 이름의 군은 일본의 기본 방위역량이다. 따라서 일본의 군사주의체제는 이미 성립되어 있고, 그것은 일본방위에 충분한 기능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인가?

일본의 '전략적 유연성'이 갖는 위험

여기서 던져야 할 질문은 자위대 체제의 일본과 집단적자위권을 가진 일본이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 격차는 대단히 명백하다. 일본은 집단적자위권을 확정함으로써 외부에서 공격을 당했을 때 일본 본토에서 대응하는 수준을 넘어, 예비방어라는 명목으로 공격적 전선확대를 할 수 있다. 이른바 '출병'이 가능해진 것이다. 달리 말해서 자위대, 곧 '일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가능한 법적, 제도적 기반을 갖추게 된 것이다.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은 자위대의 행동반경이 일본 본토 내부로 한정되지 않는 동시에, 제3지역의 분쟁이 자국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면 선제공격(pre-emptive strike)이 가능하도록 한다. 해외파병과 전선확대라는 방식의 개입전략을 강화할 수 있다.

물론 이는 사태가 발생하면 이뤄지는 것이긴 하지만, 그런 상황을 만들고 싶은 유혹에도 빠질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위험하다. 일본의 이른바 '해외출병'이 이루어지면서 벌어진 게 바로 1894년 청일전쟁이었고, 그 이후의 역사전개는 재론하지 않아도 너무나 잘 알려진 대로다.

우리의 우려는 아베정권의 조처로 볼 때 일본이 19세기말과 20세기 초의 역사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에 있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가능성을 낮추려면, 일본은 자신들의 역사에 대한 철저한 비판과 반성이 이뤄져야 한다. 그걸 토대로 한 정치와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입증되어야 한다. 이것이 일본의 군사적 팽창정책에 강력한 제동장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우리가 보는 것은 그와 정반대라는 것을 일본이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일본의 정치와 교육은 일본의 동아시아 침략사(侵略史)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비판적 각성은 자기를 학대하는 자학사관(自虐史觀)으로 매도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아베정권은 패전의 억울함을 새롭게 분출할 수 있는 에너지를 집단자위권 확정 등을 통해 관철해나가고 있는 셈인 것이다. 달리 말하면, 기회와 여건만 있으면 언제든 일본의 침략적 군사주의의 발동이 이뤄질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 긴장의 주역 미국과 우리는 왜 침묵하는가

그런데 더 큰 문제의 원천은 따로 있다. 바로 일본의 군사력 팽창과 개입전략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 미국이다. 미국이 중국 포위 전략을 취함에 있어 일본을 '보조부대(auxiliary forces)'화 하려는 전략은 오래 전부터 전개되어 왔다.

문제는 이러한 의도가 보다 노골적으로 이뤄져 동아시아의 평화보다는 군사적 긴장을 증폭시키는 주역이 되고 있어 우려를 사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2차 대전 이후 전쟁능력강화를 공식화할 수 없었던 일본의 제약을 완전히 풀어주는 동시에, 중국과의 군사적 대치에 일본을 대리 세력으로 내세울 수 있는 전략적 결정이다.

그런데 한국정부는 이러한 미국의 조처에 대해 단 한 마디 말이 없다. 불만은커녕 반발조차 하지 않고 있어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한미동맹의 틀에 일본을 묶어 대중국 포위전략을 완성하려는 미국의 의지에 비판과 저항을 하는 것이 힘의 역학상 어려운 게 현실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러한 일본의 움직임이 동아시아의 평화에 저해가 된다는 점에서, 용납할 수 없는 사태라는 입장은 당연히 밝혀야 한다. 그래야 미국도 일본의 군사주의정책 지원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국인들의 반발을 무시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국제적 패권구도의 재편 과정에서 딜레마에 처한 것은 분명하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일본을 비난하지만 일본의 후견자 미국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꺼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은 우리의 행동 반경을 더욱 제약할 게 뻔하다. 

이러다가 일본과 사실상의 군사동맹이라는 위태롭기 짝이 없는 선택으로 몰리게 되면 일본의 군사대국화에 우리가 보조역할을 맡게 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보다는 일본의 적극적 개입전략에 휘둘려, 분단체제의 적대적 긴장 강도가 엄청나게 높아질 수도 있게 된다는 말이다.

유일한 돌파구는 남북관계의 평화적 진화

이 모든 것을 돌파할 수 있는 출구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딱 하나밖에 없다. 남북관계의 발전적 변화다. 한국정부는 중국을 통해 북의 핵전략 통제를 기대하고 있지만 중국은 한반도 전체의 핵전략 통제를 구상하고 있다. 북의 핵문제는 북과 미국의 관계 정상화로 풀리는 문제라는 점에서, 그러한 대중국 외교는 출발부터 한계가 있는 접근이다. 한미군사동맹의 틀 때문에 일본에 강력하게 규탄하고 제동을 거는 게 힘든 것도 남북관계의 비정상적 상태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국제적 제약과 역사적 사슬을 해체시키는 것은 남과 북의 평화체제를 마련하는 것과 동시에 통일을 향한 동아시아 전체의 기류 형성에 달려 있다. 강대국 중심의 패권체제의 변방이라는 의식에서 벗어나, 우리가 주도하고 돌파할 수 있는 공간이 여전히 있다는 사실에 눈을 뜨고 남북관계의 평화적 진화에 전력을 쏟아야 한다. 신뢰 구축을 위한 접촉과 대화를 비롯해서 군축회의를 기반으로 하는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실천 그리고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우리가 선도적으로 이행해나갈 수 있는 일들은 산적해 있다. 

일본의 군사대국화 움직임을 비난하는 것만으로 동아시아 평화는 오지 않는다.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실질적 조처를 관철해나가는 노력과 운동 그리고 결정으로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때를 놓치면, 뚫고 나가기 어렵게 된다. 역사는 기회를 우리에게 준다. 그리고 그 기회를 포착해서 새로운 미래를 향한 동력을 창출하는 쪽에 기선을 잡도록 돕는다. 

평화는 내일로 미룰 일이 결코 아니다. 지금 당장 해나가야 하는 현재적 과제다. 우리가 이를 미루는 사이에, 전쟁악마가 내일의 먹구름을 몰고 올 것이다. 그런 다음 비탄에 빠져봐야 우리가 치르는 것은 희생뿐이다. 어떻게 해야겠는가? 마땅히 답이 나오지 않는가.

※ (사)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는 일본의 역사왜곡과 재무장에 반대하는 100만 시민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온라인 서명 페이지페이스북 페이지.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서울 겨레하나 대표이자 성공회대 교수입니다.



태그:#아베, #집단자위권, #전략적 유연성 , #남북관계, #군사대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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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교류협력 전문단체, 평화와 통일을 위한 시민단체 겨레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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