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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저는 서울에서 순창으로 시집와 25년을 농사꾼으로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지난번 오마이뉴스에 보낸 글을  전라도 사투리로 썼더니 순창에서 태어나고 자란 순창댁인줄 아실터인디 천만의 말씀! 서울 쌍문동과 방학동을 싸돌아 다니던 서울댁입니다.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죽치고 '갈매기의 꿈'을 읽던 소녀 철학자였습니다. 공책 가득 자작시와 그림을 그려 넣던, 겁나게 치기어린 문학소녀였더랬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한 지 30년이 되어가는 시방은 철학과 예술을 동시에 하는 농사꾼이 됐습니다. 제가 딸이 넷인디요. 울 딸들마다 커감서 꼭 한번씩 질문 허는 것이 "엄마는 서울서 대학교 까지 다녔담서 뭣하러 순창까지 내려와서 힘들게 농사 짓는가?"입니다. 울집에 십오년 넘게 일해주시러 오시는 어메들이 밭 매심서 허는 말쌈도 "긍께 뭣허러 요런 촌 구석에 내려와서 요지랄로 고상만 혀 싸, 나오는 것도 없는디. 아이고메 보는 울덜이 복창 터지네 잉"하시지라.

그때마다 할 말들이 수두룩 했지요.

"돈만 많으믄 뭣한다요. 요렇게 어울렁더울렁 살아가는 재미가 있어야제요 안급뎌. 잉! 엄니 그렇제라 잉"

허고 해살을 떨어 쌓았었는디요.

농사짓는 아지매들
 농사짓는 아지매들
ⓒ 황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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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란 땅맛을 알기 위해 몸살을 앓는 사람

"처음 순창에 온 몇 해 동안 모판을 떼면서 펑펑 울었던 적이 있어요. 튼실한 벼로 자라기 위해 원래 키워지던 자리에서 뿌리가 댕강 뜯기워지는 모들이 꼭 제 모습 같았거든요. 그렇게 뜯겨져 다시 본답으로 옮겨지기 위해 우악스런 모쟁이의 손길을 몇 번 거쳐야 했고, 친구들과 각각 찢겨진 채 새로운 땅과 물 속에서 혼자 힘으로 버텨내야 한다는 외로움에 펑펑 울었었지요. 농사꾼들은 땅맛을 알기 위해 몸살을 앓는 거라고 하시더라구요. 여름 그 모진 비바람과 벌레들을 이겨내고 당당히 머리 꼿꼿이 세울 때는 잠시 황금빛으로 고개 숙여야 하는 인생의 이치도 배우고요."

제가 지역신문 첫 연재 때 썼던 글이에요. 요로코롬 지는 농사란 철학이요 예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고런 서울댁이 요새 일할 맛이 뚜욱 뚝 바람에 꽃잎 지드끼 없어져 버리네요. 복장 터지고 기가 막혀서 아무것도 안하고 싶어지네요. 농사일이란 게 들썩들썩 신명이 남서 팔 걷어 부치고 노랫가락 한 자락씩 험시롱 막걸리도 한 잔 허고 해야 허는 것인디요. 여기저기 둘러봐도 일투성인디 쥑인다 캐도 하기가 싫어져부네요.

지는 원래 농사짓는 걸 참말로 좋아해서 꽃 중에서도 가지꽃, 참깨꽃, 콩꽃, 팥꽃, 메밀꽃을 좋아하지요. "촌스럽다"라는 말도 겁나게 좋아하고 '푸지다, 푸근하다, 황홀하다, 탐스럽다, 맛깔나다' 등등의 단어들도 좋아하제요. 근디도 요새는 '사면초가다', '울고 싶다'라는 단어들만 머릿속에 오일장 서듯 시끌벅적합니다.

디지게 농사를 지어도 앞으로 남고 뒤로 밑져 불지요. 남는 게 없어라. 허구한 날 쌔빠지게 요것조것 농사지어도 남는 게 빚 뿐잉게 허고자픈 맴(마음)이 싹 없어져 불었당께요. 이틀 전엔가 봉께 미국 구인·구직 정보업체 '커리어캐스트'가 예측한 '10대 몰락 직종'을 발표했는디라. 2012년부터 10년 사이 고용 하락률을 예측해봉께 우체부가 모든 직종 가운데 1위로 없어질 가망이 높고 그 뒤가 농부고 신문사 직원이라네요. 아메도 한국에서는 농사꾼이 가장 천대받으면서 없어질 것 같네요.

가격 내려가는 농산물 가격, 농부들 어떻게 살라고...
 가격 내려가는 농산물 가격, 농부들 어떻게 살라고...
ⓒ 황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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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가격 보장지원조례 실현이 시급하다
 최저가격 보장지원조례 실현이 시급하다
ⓒ 황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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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국밥 값만도 못한 배추값...농산물가격 최저보장 도입 필요
 순대국밥 값만도 못한 배추값...농산물가격 최저보장 도입 필요
ⓒ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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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사를 봉께 5000원 매실 이야그도 나오던데 지는 고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어서 기가 차네요. (관련기사 : 매실 10kg에 5000원... 이럴 수는 없습니다)

한번은 여름 배추 농사를 지었어요. 농사꾼 정성과 애정을 다 쏟아서 튼실히 키워다가 윗마을 젊은 부부랑 광주 공판장에 출하하기로 했지요. 두 부부의 1톤 트럭 두 대에다가 한 사람은 배추 베어내고 한 사람은 가져가기 좋게 모투고 또 한 사람은 받아서 차로 던지면 나머지 한 사람이 차곡차곡 싣는 일이었지라.

저녁밥도 못 먹고 광주 공판장에 가져 갔제요. 두 차에 가득 찬 배추를 하차하고 영수증 받아 가지고 오는데 밤 10시가 넘어서 순댓국을 먹기로 했지요. 꽤 힘든 일이거든요. 순댓국이랑 내장국 시켜서 먹고 밤에 와서 쓰러져 잤습니다.

다음날 입금된걸 봉께 하차비랑 수수료떼고 보니 순대국밥 먹고 낸 돈도 안 나왔더라구요. 세상에... 열심히 심고 물 주고 뽑고 했는디 순댓국도 못 먹을 정도로 나오다니, 월매나 기가 막혔는지 미쳐버리는 줄 알았어요. 거짓뿌렁 하나도 안 보태고 실화입니다. 이란디 농민이 살아 남겄어요.

미국은 우체부, 한국은 농부..."이래서야 농민 살아남겠나"

흉년들면 수입허고 풍년들면 폭락해서 트랙터로 갈아 엎어불게 되면 무조건 농민들이 수급조절 안해서 그런다고 합디다. 새까맣게 애간장이 탄다고 허는 말은 요럴때 쓰는 겁니다. 여러분은 농사꾼들의 철학과 인내심을 존경해 주셔야 합니다.

어제지요. 17일날 전라북도 여성 농민들이 다 한자리에 모였어요.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 반갑게 맞이 험서 8시 반에 마을 앞에서 출발했답니다. 동계에서 오신 어메들과 구림 남정, 화암리에서 오신 분들 다같이 꺄악 웃음시롱 껴안다 보니 웃음꽃이 활짝 펴부렀네요.

정읍에서 열리는 제 16회 여성농민 한마당에 가려고 순창에선 관광 버스 두 대를 빌렸지요. 나머지 한 차는 섬진강이 있는 유등, 풍산, 순창의 엄니들과 항꾸네 온다길래 기다렸다가  복흥에 있는 산림박물관에 가서 해설도 듣고, 나비와 매화꽃 앞에서 사진도 찍었제요. 체육관에는 여성농민들의 감성이 살아 숨쉬는 구호들이 준비돼 있더라구요.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 지원 조례로 여성농민이 걱정 없는 세상으로!'
'우리는 갑오 농민군의 후예! 쌀 시장 전면 개방 막아내자'
'밭 직불제 전면 확대, 여성농민이 살맛나는 세상으로'
'고추 마늘 양파등 가격 폭락. 한 중 FTA는 농민에게 쥐약이다'

등등의 구호들이 농민 심정 대변해 주더라구요. 여그 저그 반가워서 어깨 감싸는 사람들도 많고 엉덩이 한번씩 일부러 부딪혀 보기도 헝게 힘들고 힘들었던 일들도 싸악 없어지더라구요. 그래서 만나나 봐요. 사람의 온기를 맛볼려구. 지가 여러 단체들 단합 대회에 가보는디 역시 여성농민들이 힘이 없나, 그 많던 축사허는 고위급 양반들은 코빼기도 안 보이고 못나서 서럽지만 가슴 가득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순댓국 네 그릇 값도 안 나오는 배추 농사

서로 힘이되는 농민 이웃들
 서로 힘이되는 농민 이웃들
ⓒ 황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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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냥 서서 농사꾼 아지메들 사진 찍었더니  두 엄니는 "울 덜 사진 꼭 빼서 줘 잉!" 하심서 환하게 웃으시더라구요. 동계의 삼총사 엄니들은 느티나무같이 한결같아서 지만 보면 자랑스럽다고 허싱게 몸둘바를 모르지요. 화암리에서 오신 할아버지 두 분은 갑자기 이끌려 버스 타셨다고 수줍어 하십니다. 복흥의 억척스럽게 일하는 젊은 아낙들도 탔구요. 당당하게 저를 보시며 씨익 웃기까지 허시는 걸 봉께 사진 많이 찍혀 보신것 같아라. 이런 분들이 있어 사람 살맛 나는 세상이 만들어 지는건데요.

이어진 농사꾼 아지메들의 체육대회에선 단체줄넘기, 공굴리기, 신발 멀리 던지기 등을 했는디 우리 순창은 다 등수 안에 못 들어도 꺄르르 웃음시롱 소녀처럼 좋아했습니다. 힘들었던 농사일을 멀리하고 오랜만에 웃어 봤습니다. 다행히 귀농한 지 5년된 젊은 아지매가 신발 멀리 던지기에서 2등을 혀갖고 선물을 타긴 했네요. 큭큭큭. 마지막에는 모두들 힘을 모아 박 터트리기 했는디 '우리는 변화의 씨앗', '전북 여성 농민 만만세' 플래카드가 나왔습니다. 멋지제요? 등수에 못 든 군도 수박 한 통씩 받았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사회자가 긴급 속보를 알렸습니다. 내일(18일) 9시 반에 정부가 쌀 전면개방 을 발표한다구요. 고것도 기습적으로 선포했다네요. 그래서 지금 속속 농민 활동가들이 모이고 전국 여성농민회도 내일 아침 성명을 발표한다고 다들 참석해 주시랍니다.

다들 기가 막혀합니다. 어떤 할매는 "우리가 원제 부텀 반대하고 농성하고 삭발하고, 별의별 반대집회하고 했는데 이런 법이 워딨당가! 미친 놈들 아녀"라며 분통을 터뜨렸지요. 울화통이 터집니다. 농민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쓰러지고 감옥에 갔는디 호랑이가 물어가게 환장할 노릇입니다.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농민값 보장해줘야

쌀값은 농민값이라고 했습니다. 공기밥 다섯 그릇 값보다 비싼 게 커피 값이건만... 앞으로 식량 주권 내팽개치고 어디로 가려는지 암담합니다. 구호에 있는 것처럼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 지원과 식량자급률을 높이는 법안을 전 국민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내년을 기약하며 돌아오는 길, 서로가 서로를 보듬으며 "힘내라, 잘 살아라" 웃어줍니다. 주름진 얼굴과 투박한 몸짓으로 하는 인사만이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줍니다. 황홀한 그 웃음들 아시려나요. 농사꾼 아지매들 최곱니다. 오늘 밤, 벼락 천둥이 치고 굵은 비가 내립니다. 마치 농사꾼들 맴(마음) 같습니다.


태그:#식량자급률, #농산물값 폭락, #순창군, #농사꾼, #전북여성농민 한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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