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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핏줄과 털이 듬성듬성 나 있는 반부화 오리알.
▲ 반부화 오리알 실핏줄과 털이 듬성듬성 나 있는 반부화 오리알.
ⓒ Bing-indone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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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경남경찰청의 압수품 보관창고에서 새끼오리 20여 마리가 부화하는 일이 일어났다.

사건은, 경남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가 지난 2일 아시아 출신 외국인을 상대로 영업을 하던 김아무개씨(26)를 축산물기준규격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면서 시작됐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식품으로 부적절한 '반부화 오리알'을 판매한 혐의다. 그리고 경찰이 김씨에게 압수한 반부화 오리알 중에 20마리가 부화한 것이다. 이날 포털 사이트에는 '반부화 오리알'이 검색어 1위에 오르면서 화제가 됐다.

반부화 오리알이나 반부화 계란은 중국,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지역에서 보양식으로 널리 애용되는 음식이다. 중국에서는 마오딴(毛蛋) 혹은 마오찌단(毛鷄蛋), 필리핀에서는 발룻(Balut), 베트남은 쯩빗롱(Trung vit long), 인도네시아에서는 반숙 오리알(Telur bebek setengah matang) 등 저마다의 이름이 있는 전통음식이다. 예전 우리나라에서는 곤계란, 곤오리알로 불리던 음식이다.

오리알은 온도만 맞으면 보통 28일, 계란은 21일이면 부화하는데 동남아시아에서는 부화 직전에 의도적으로 부화를 중단 시켜 삶아 먹는다.

오랫동안 문제없이 잘 먹었는데... 식용에 부적절?

문제는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반부화 오리알을 식용에 부적절한 음식으로 분류한다는 점이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지난 2010년 12월 말 '축산물의 가공기준 및 성분규격' 고시를 개정했는데, 이에 따르면 "계란의 위생관리를 위해 원료알의 식용 부적합 알에는 '부화를 중지한 알, 부화에 실패한 알'" 등이 포함된다. 해당 고시에 따르면, 부화를 중지 시킨 오리알이나 계란은 팔아선 안 된다. 이주노동자 등을 중심으로 반부화 오리알 판매가 점차 늘어나자 경찰이 단속에 나선 것이다.

왼쪽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아시아마트 진열식품들-닭발-홍가오리-반부화 알-동남아 채소인 여주.
 왼쪽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아시아마트 진열식품들-닭발-홍가오리-반부화 알-동남아 채소인 여주.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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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식을 들은 이주노동자들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고시한 축산물 가공 기준 및 성분규격에 따라 식용에 부적합한 건 맞지만 반부화 오리알은 본인들은 오랫동안 아무 문제없이 먹어 온 음식이기 때문이다.

현재 반부화 오리알은 이주노동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아시아마트뿐 아니라 일반 재래시장에서도 흔하게 판다. 가령, 경기도 용인의 이주노동자들은 일요일에 장이 서면 반부화 오리알을 사들고 이주노동자쉼터를 찾는 경우가 많다. 아시아마트에서는 삶지 않은 걸 팔기 때문에 바로 먹기가 여의치 않은 반면, 시장에서는 삶은 후 따뜻한 온기가 있는 상태로 팔아 바로 반부화 오리알을 먹을 수 있다. 그래서 이주노동자들은 반부화 오리알을 살 때 아시아마트보다 재래시장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한국인 중에서도 즐겨 먹는 사람도 있다.

먹는 방법은 조금씩 다르다. 필리핀 사람들은 알 윗부분을 살짝 깨뜨린 후, 안에 있는 국물을 마시고 남은 껍질을 벗겨서 소금에 찍어먹는다. 베트남 사람들은 국물을 버리고, 숟가락으로 파먹는다. 중국에선 껍질을 까서 속 안 내용물을 꼬치에 꽂아 구워서 먹는다.

반부화 알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자칫 거부감이 들 수도 있는 모양새다. 껍질을 까다 보면, 부화가 진행된 정도에 따라 검붉은 실핏줄이 보이기도 하고, 가끔 젖은 털이 눌려 있는 게 보인다. 약간 무른 뼈가 오돌오돌 씹힐 때도 있다.

하지만 아시아 각국에서는 반부화 오리알과 반부화 계란이 보양식으로 통한다. 그리고 예전엔 우리도 먹었다. 우리가 먹네, 마네 요란 떨 일 아니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음식은 문화라서 어떤 것은 먹어도 되고, 어떤 것은 먹지 말아야 한다고 함부로 규정하면 안 된다. 지나친 자문화 중심주의에 빠져 타문화를 폄하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닭똥집, 홍어, 개불이 '불법식품'이 된다면...

홍어삼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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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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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왜 불법이죠?"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인의 잣대로 자신들이 즐겨먹는 음식이 한순간에 불법이 되었다는 사실에 다들 의아해 했다. 맛도 좋고 건강식품인데 왜 불법이냐는 반응이다.

이런 반응은 어쩌면 당연하다. 호불호가 분명한 보신탕은 둘째치더라도 일반인이 즐겨먹는 산낙지, 번데기, 닭똥집, 곱창, 청국장, 홍어, 간장게장, 닭발, 개불, 순대 등이 불법이라고 생각해 보자.

직장인이 식사나 회식을 할 때 선택할 수 있는 음식의 폭이 얼마나 줄겠는가?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음식들은 모두 외국인이 혐오하는 한국음식으로 손꼽히는 메뉴들이다. 꼬물꼬물 움직이는 산낙지나 모양새가 예쁘다고 할 수 없는 닭발과 번데기 등은 외국인을 기겁하게 만든다. 홍어나 청국장을 접한 외국인은 냄새 때문에 코를 틀어막는다.

만약 외국에서 한국의 전통음식을 불법으로 규정했다고 상상해 보자. 난리가 날 것이다. "먹는 거 가지고 왜 뭐라 그러느냐"며 상대 국가를 향한 민족 감정이 들끓을지도 모른다. 그 다음 순서는 "니들은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지 않느냐"라며 타박이 이어질 거다. 유치한 싸움이 이어질 수도 있다.

식약처가 부화를 중지한 알과 부화에 실패한 알을 식용 부적합 음식으로 정한 이유는 위생 때문이다. 부화를 멈춘 알은 쉽게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조건 유통을 금지한다고 해서 이주노동자나 이주민의 식욕까지 막을 수는 없다. 반부화 오리알 유통을 무조건 단속하면 오히려 비위생적인 알이 유통될 여지도 있다.

음식에 불법과 합법이 있을까?

베트남인들이 즐겨먹는 오리피와 오리고기가 야채와 함께 차려져 있다.
▲ 접시에 담긴 오리피 베트남인들이 즐겨먹는 오리피와 오리고기가 야채와 함께 차려져 있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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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외국 전통음식에 대한 규제는 통제가 가능한 선에서 풀어줄 필요가 있다. 명확한 유통기한을 정하고 위생을 정기적으로 점검한다는 조건 아래 유통을 합법화하도록 식약처의 고시를 개정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인들도 이주민의 음식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두리안은 동남아시아에서 과일의 왕이라고 높이 평가받지만, 지독한 냄새 때문에 공항이나 호텔 등 공공장소에 반입이 금지되기도 한다. 또 많은 한국인들이 싫어하는 과일 중 하나다.

두리(Duri)는 인도네시아어로 '가시'라는 뜻이고, 두리안(Durian)은 '가시로 싸인 과일'이라는 뜻이다. 두리안은 딱딱한 가시로 뒤덮여 있지만, 속살은 고당도, 고열량의 부드러운 과육이 씨를 감싸고 있다. '지옥 같은 향기, 천국 같은 맛'은 두리안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다. 비위가 약한 사람은 살짝 냄새만 맡고도 구토할 정도지만, 한 번 맛을 보면 냄새만 맡아도 군침이 돈다고 말하기도 한다.

동남아시아 쌀은 밥을 지으면 풀풀 흩어지는 데다 찰기가 없어 금세 배가 꺼진다며 한국에서는 후한 평가를 받지 못한다. 그래서 동남아산 안남미는 품종이나 품질이 좋지 않은 쌀로 분류된다. 그런데 우리가 안남미라고 부르는 품종인 인디카는 전 세계 쌀 생산량과 무역량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쌀에 대한 선호도가 다를 뿐 절대적인 품질 기준은 없다는 얘기다. 역으로 동남아인들은 우리나라 쌀처럼 찰기가 있는 자포니카 품종을 좋아하지 않는다.

음식은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고약하고 별 볼일 없다가도, 없어서 못 먹는 것이 되기도 한다. 이주노동자들이 즐기는 음식에 편견을 가지기보다 그들 고유의 음식 문화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 글로벌 시대를 사는 지혜가 아닐까.


태그:#이주노동자, #전통음식, #반부화 오리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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