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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청소년 특별면 '너아니'에 실렸습니다. '너아니'는 청소년의 글을 가감없이 싣습니다. [편집자말]
한 중학교 3학년 때부터였을 거야. 언젠가부터 우리 또래의 학생들 사이에서 '장애인'이라는 단어가 일종의 욕설로서, 혹은 상대방을 놀리기 위해 쓰이기 시작했어. 우리 학년에서도, 학교에서도 그리고 동네 PC방에서도.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 처음에는 나도 아무 생각이 없었지. 그렇게 널리 쓰이지도 않았고. 근데 작년 한 번 생각을 해봤어. 과연 이게 그냥 넘어가도 될 상황일까 하고.

나는 욕설 사용 그 자체에 대해 매우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솔직히 욕을 하는 애들을 잘 이해하지 못해. 하지만 욕은 이미 학생들의 일상 언어와 뗄레야 뗄 수 없을 만큼 많이 쓰이고 있잖아? 그리고 욕의 긍정적인 측면도 분명히 있고(예를 들어 개그가 더 웃겨지고, 친근함을 표현할 수 있고, 감정을 시원하게 표출할 수 있고, 뭔가를 강하게 어필할 수 있고 등등). 근데 지금 욕만큼 우리 학생들 사이에서 많이 쓰이고 있는 '장애인'이란 단어는 좀 다른 것 같아.

보통 우리는 욕을 할 때 뭔가에 빗대서 부르잖아? 굳이 예를 들지 않아도, 지금 네가 알고 있는 욕들을 생각해봐 ― 다 " 이 XXX야!"하는 형식(?)이지. 그런데 그 욕들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겠니? 바로 '평소에 우리가 경멸하거나 낮춰보는(깔보는) 대상'이라는 거야. 상대방을 그 대상에 비유함으로서 그를 깔보는 거지.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무엇이냐면 그 욕설로, 즉 '경멸하거나 낮춰보는 대상'으로 우리가 '장애인'을 사용하고 있다는 거야! 즉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장애인들을 뭔가 우리와 다른, 어쩌면 열등한, 혹은 우스꽝스러운 존재로서 생각하고 있다는 거지.

장애인의 날 공익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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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채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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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읽었다면 분명히 "이건 좀 오버하는 거 아냐? 너무 의미부여가 심하잖아. 그냥 장난일 뿐인데. 진짜 비하를 목적으로 쓰는 것도 아니고!" 라고 생각하는 친구가 있을 거야. 그리고 나도 청소년들 중에 그 누구도 '장애인의 인권은 보호받아야한다' '단순히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사람을 차별해선 안 된다'는 명제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 그런데 누구나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면서, 왜 놀릴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장애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걸까? 왜 우리는 말과 행동을 다르게 하는 거지?

여기서 좀 솔직해질 필요가 있어.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장애인'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우리 머릿속에 생각나는 이미지가 뭘까? 휠체어, 도움이 필요한 사람, 뭐 이런 측면도 있지만... 겉보기에 좀 괴기한 사람, 비정상적으로 생긴 사람, 말투가 이상하거나 몸을 특이하게 움직여가며 매우 힘들게 말하는 사람, 정신연령이 낮아서 주위에 피해를 끼치는 사람이 떠오르지는 않았을까? 절대 그렇게 떠오르지 않는다고?

예를 들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할 때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지체장애인 꽃이 피었습니다." 를 생각해봐. 일단 빨리 어떤 모션을 만들어야 하는 게임 특성상, 우리는 그 단어를 듣자마자 바로 떠오르는 이미지를 취하겠지. 그러면 십중팔구 대부분 이상하고 우스꽝스럽고 바보 같은 표정에 얼굴을 쥐어뜯거나 팔을 흔들면서 "워어어어어~"거린다는 말이지. 그 모습이 바로 우리가 '장애인'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딱 떠오르는 이미지를 반증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분명히 장애는 정도의 차이가 있고, 종류가 다양한데도 그렇게 특정한 장애의 겉모습, 그것도 아주 좁은 한 가지 면만 보고서 판단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해. 그런 우스꽝스러운 이미지가 떠오르니 당연히 놀릴 때 "아 장애인같애~"라는 말이 나와도 그냥 넘어가는 거지. 나도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아무 생각 없이 막 웃고 그랬는데, 이제는 제지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껴.

욕은 친한 친구에게 친근함을 표시할 때 주로 쓰잖아? 그래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거리감이 거의 없는 몇몇 선진국에서는 종종 장애가 농담의 소재로 등장하기도 한대. 근데 우리나라는 아직 그 거리감이 먼 거 같아.

그러니까 아까처럼 "'장애인'이라는 말을 이렇게 쓰는 거에 너무 의미부여하는 거 아냐?"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곧 어색한 사람한테 친한 친구한테 하듯 막 욕을 뱉어놓고, 그 사람이 따지면 "친구끼리 욕하는 거 갖고 왜 그래?"하는 거랑 똑같은 주장을 하는 거라고 생각해. 물론 '장애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렇게 만든 우리나라의 교육 방식이나 사회적 분위기도 문제가 있어. 전 국민의 5% 이상이 장애를 가지고 있는데도 비장애인들은 그들을 익숙하게 생각하지 않지. 교육도 다양한 사람들을 포용하는 능력을 전혀 길러주지 못하고 있고(철저히 남을 누르는 입시 위주의 교육일 뿐...).

방금도 말했지만, 우리 주변에 있는 100명의 사람 중 다섯 명은 장애를 가진 사람이야. 그리고 그 가족까지 합치면, "장애인 같은 XX!"라는 장난스런 욕을 상처로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 수없이 많은 거야. 하지만 우리는 주변에 당사자가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아. 그래서 나는 지금 이 글을 읽는 너희들이 최소한 이 글을 읽고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 물론 이 글에 반대하거나 생각이 조금 다른 친구들이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애들을 놀리거나 할 때 욕 대신 '장애인'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어. 그리고 그런 상황을 방관했던 우리의 일상을 되돌아봤으면 해.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니?


태그:#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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