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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이었던 2010년 6월. 이제 막 여름의 기운이 온몸을 휘감으며 땀이 나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날도 나는 여느 때처럼 수업 중간 쉬는 시간에 학교 건물 바깥 계단 쪽 한쪽에 서서 물끄러미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평일 오후 10시 그리고 토요일 오후까지 이어지던 고등학교 3학년 생활이 답답하기만 하던 내게는 그 시간, 그 공간이 유일한 낙이자 안식처였다. 그런데 갑자기 뱃속에서 꾸르륵거리는 소리가 여러 차례 들렸다. 이상했다. 그래도 일단은 배가 아프지 않으니 그저 그러려니 했다. 그리고 그날 온종일 학교에서 아무런 탈도 없었다.

오후 10시가 넘어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내 방 책상 앞에 앉았다. 잠시 후 화장실에 가고 싶어 변기에 앉았다. 확인해 보니 설사였다. 뭘 잘못 먹었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배탈이 날 만한 음식을 먹은 기억이 없었다. 그리고 배가 아프지는 않았다. 또 한 번 그러려니 넘어갔다. 그런데 잠시 후 또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역시 설사였다. 이렇게 이날 밤, 나는 두 차례에 걸쳐 설사를 했다.

문제는 다음 날부터였다. 학교에 가 앉아 있는데, 하루 종일 속이 좋지 않았다. 시간 차로 배가 살살 아파왔다. 혹시나 했지만, 이때까지도 나는 이게 정말 '탈이 났다'는 신호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하며 참고 있었다. 배의 통증 역시 참을 만한 수준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중압감이 나로 하여금 어떻게든 꾹꾹 참으며 야간자율학습시간까지 버티게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어김없이 설사를 했다. 이렇게 또 이틀이 지나갔다.

참다 참다 간 병원... 두 종류의 약을 받았다

나는 병원에서 알약과 짜 먹는 약을 받았다.
 나는 병원에서 알약과 짜 먹는 약을 받았다.
ⓒ free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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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다음 날부터 내 인내심에도 한계가 왔다. 배의 통증이 전날과는 크게 달라진 것이다. 저녁 식사시간이 되자 입이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수준이 됐다. 탈수 증세였다. 나는 교무실로 달려갔다. 담임선생님께 조퇴를 허락받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선생님은 계시지 않았다.

결국 할 수 없이 나는 가방을 싸고 혼자 학교를 빠져나와 집까지 겨우겨우 왔다. 선생님께는 집에 와서 어머니 휴대전화로 사정을 말씀드렸다. "병원에 가자"는 어머니의 성화에도 나는 "일단 참아보자"며 계속 누워 있었다.

하지만 배의 통증은 가라앉지 않았고 설사 역시 멈추지 않았다. 결국 늦은 밤, 나는 곧장 부모님과 함께 병원 응급실로 갔다. 진찰 결과, 장염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걸려본 질병이었다. 수액을 맞고 약을 처방받았다. 약은 두 종류였다. 알약과 더불어 짜 먹는 액체약이었다.

수액을 맞은 탓인지 다시 기운이 났다. 이제 약을 먹으면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은밀한 '가스 배출 작전'... 결과는 참담했다

살짝 가스만 배출하면 괜찮을 것 같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살짝 가스만 배출하면 괜찮을 것 같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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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을 먹었지만, 학교에서는 계속 배가 아팠다. 오히려 이따금 찾아오는 배의 통증은 약을 먹기 전인 전날보다 더한 듯했다. 곧 설사가 나올 듯했다. 이런 식의 통증은 밀려오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장염이라는 게 원래 이런 병인가? 약 한 번 먹어서 낫는 병이 아닌가? 이상하다 생각하면서도 또다시 참는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전날 조퇴를 했는데 오늘 또 '병원에 가겠습니다'라면서 조퇴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 바로 화장실에 앉았다. 설사의 상태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냥 '검은(!) 물'이었다. '건더기(?)'가 없었다. 이런 설사가 두세 번 반복됐다. 문득 '이런 걸 지금까지 참아왔던 내가 참 장하다'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도 나는 '약을 꾸준히 복용하면 내일은 괜찮을 거야'라며 스스로를 달랬다.

그러나 '사태'는 진정되지 않았다. 다음 날에도 나는 혹심한 배의 통증에 시달렸다. 약을 먹었는데도 이러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점심시간이 막 끝나가고 오후 수업이 시작되려던 찰나, 아직 아이들은 여기저기 모여 떠들며 놀고 있었다. 당시 나는 3분단 맨 마지막 줄 자리에 혼자 앉아 있었는데, 이런 틈을 타 '가스'라도 한 번 배출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의자에 앉은 채로 엉덩이를 비스듬히 바닥을 향하게 하고 힘 조절을 잘하면 별 무리 없이 가스를 배출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나는 가스 배출 시도를 감행했다.

그런데… 아뿔싸. 가스가 아닌 액체가, 설사가 찔끔 나오고야 말았다. 문제는 '냄새'였다. 냄새가 얼마나 지독한지 하수구보다 더한 역겨운 냄새가 났다. 장염 5일째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냄새는 곧 교실 전체로 번져 나갔다. 교실의 아이들은 "누구냐" "쌌냐?" 소리를 연발하며 괴로워했다. 그런데 냄새가 워낙 삽시간에 교실 전체로 번져나간 탓에 범인이 나라는 사실을 다들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그리고 곧 5교시 시작종이 울렸고, 수학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선생님 역시 "이게 무슨 냄새냐"라고 하며 교실의 창문을 전부 열게 했다.

특명! '내가 쌌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게 하라'

아이들에게 '더러운 사실'이 알려지면 안 된다. 나는 치밀하게 움직였다.
 아이들에게 '더러운 사실'이 알려지면 안 된다. 나는 치밀하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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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나 자신이었다. 바지에 설사를 묻힌 것을 들키지 않아야 하는데, 그렇다고 교복 바지를 갈아입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걸 어찌해야 하나. 참으로 민망하고 답답했다. 오만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쉬는 시간이 되면 어떻게든 이 교실에서 탈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탈출은 쉬운 것이었다. 바지에 묻은 설사 자국은 어떻게 처리하나. 고민을 이어가던 중 퍼뜩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5교시 수업이 막바지에 이르던 중, 다른 학생들이 앞에 나가 칠판에 수학 문제를 풀고 선생님이 그것을 지도하고 있는 틈을 타 나는 몰래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물함에서 책을 가져오는 척하면서 체육복 윗옷을 꺼내 가져왔다. 그리고 그 윗옷을 허리에 감았다. 일단 작전 성공. 이로써 바지를 가릴 수 있었다.

이어 5교시 수업이 끝나자마자 나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교실에서 신던 슬리퍼를 신은 채로 교실을 빠져나왔다. 아픈 배, '검은 물'을 쏟아낼 것만 같은 배를 움켜쥐고 겨우겨우 집에 도착했다. 집에 들어선 나는 옷을 벗을 여유도 없이 그냥 화장실로 달려가 '일'을 치렀다. 변기 안은 '검은 물'로 가득했다.

다시 병원에 가보니, 상태가 이렇게까지 악화된 데는 이유가 있었단다. 약 복용법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응급실에서 처방받은 약은 두 가지 종류였는데, 두 약을 한꺼번에 동시에 먹으면 우리 몸에 흡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알약을 먼저 먹고 20~30분이 지난 뒤 액체로 된 약을 복용해야 했다. 약 복용법을 제대로 듣지 못한 나는 두 약을 동시에 먹었고, 결국 장염은 낫지도 않은 채 악화일로를 거듭했던 것이다.

병원에서 가르쳐 준대로 다시 약을 복용하자 장염은 하루 만에 거의 다 나았다. 나는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생애 첫 장염의 기억은 이렇게 내 기억 속에 '아찔하게' 남게 됐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더러운 이야기' 공모 응모글입니다.



태그:#장염, #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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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시민. 사실에 충실하되, 반역적인 글쓰기. 불여세합(不與世合)을 두려워하지 않기. 부단히 읽고 쓰고 생각하기. 내 삶 속에 있는 우리 시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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