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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재료에서 반려견으로
 식재료에서 반려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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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신문사를 다닐 때의 일이다. 어떤 지자체장을 인터뷰 하러 갔는데, 그는 당시 행정가로 유명한 지역 인사였다. 정치적 입지도 지녀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지지를 받았던 사람이었다. 이 사람이 인터뷰 장소로 지정한 곳은 어느 보신탕집이었다. 그는 '여기 보신탕이 아주 맛있다'며, 자연스럽게 권했다. 딴에는 '개고기' 대접이 신문기자에 대한 예우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난 개고기를 먹고 싶지도 않았고, 문화적으로도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쨌든 자리는 마련됐고, 개고기가 나왔다. 생각보다 깨끗했다. 큰 솥단지 안에 개고기 사체가 둥둥 떠다니는 시대착오(?)적 이미지를 상상한 내겐 색다른 문화적 충격이었다. 마치 잘 손질된 샤브샤브를 보는 듯했다.

동물애호가인 내가 개고기를 먹는 것은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이라는 생각에 '먹으면 안 된다'라는 생각을 하긴 했다. 고백하자면 호기심에 딱 한 점 먹어 봤다. 맛은 있었다. 그런데 그 정도의 맛은 웬만한 고기 음식에서도 맛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맛있다'는 근거로 개고기를 먹어야만 하는 당위를 부여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보신탕, 꼭 먹어야 할까

​경기도 안양엔 제법 큰 시민공원이 있다. 최근 근처로 이사를 왔는데,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면 경치가 그만이다. 도심의 휴양지로도 나름 인기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공원 안쪽으로 조금만 더 들어가면 가든 식당이 늘어서 있다. 며칠 전 산책을 나갔을 때 식당 간판 위로  '보신탕' 메뉴가 내걸린 것을 봤다. 보신탕이 가든 식당가의 주 메뉴인 것 같았다. 그런데 이 날 겪지 않아야 할 경험을 했다.

조금 편치 않은 기분으로 보신탕 간판을 뒤로 풍광을 감상하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찢어지는 개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일반적으로 들을 수 있는 개의 비명소리가 아니었다. 10년 넘게 개를 키우고 있는 나도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죽음을 예감한 개의 울부짖음'이었다. 흠칫 공포가 엄습했다.

"여긴 뭐지?"

그때서야 식당 간판에 적힌 글을 자세히 읽었다.

'즉석 요리'

이곳은 개를 사육하면서, 즉석에서 도살해 요리를 하는 것으로 명성을 얻은 곳이었다. ​도살당하는 개의 비명소리를 듣고 나서 먹는 개고기 맛은 유달리 맛이 더 있기 때문일까? 모르겠다. 그런 처참한 소리를 듣고 고기가 목구멍으로 ​들어올까? 보신탕이라는 말만 들어도 구역질을 하는 내 어머니가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머리라도 싸매실 터다. 어머니에게는 이 날의 경험에 대해선 눈에 흙이 들어올 때까지 비밀로 하기로 했다.

가든 식당가에 있는 보신탕 집. 이 가게 말고 다른 가게에 '즉석 요리'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며칠 후에 가보니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문구는 사라져 있었다.
 가든 식당가에 있는 보신탕 집. 이 가게 말고 다른 가게에 '즉석 요리'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며칠 후에 가보니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문구는 사라져 있었다.
ⓒ 김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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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난 일상의 편안함이 묻어나는 동네에서 무방비 상태로 있다가 예상치 못한 정서적 습격을 받은 셈이다. 무척이나 혐오스러웠다. ​예전보다는 못하지만, 여전히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한 통계에 의하면 주로 고령자들이 많이 섭취한다고 한다. 보신탕을 먹는 이유는 이미 알려졌다시피 먹을 것이 부족하던 그 옛날의 이야기다.

하루 권장 지방 섭취량 훌쩍 넘는 과잉 영양식

과거 개고기는 단백질 보충용으로 최고의 음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이야 어디 그런가. 2010년 한국영양학회가 밝힌 한국인 영양섭취 기준을 보자. 19세 이상 성인 하루권장 지방 섭취량은 전체 섭취 에너지의 15%에서 25% 정도다. 하지만 보신탕은 1인분 당 60%를 웃돈다. 열량도 731칼로리로 무척 높은 편이다. 보신탕은 이제 고단백 영양식품이 아니다. 의사나 영양사들 사이에서 '보양식은 비만식이다', '안 먹는 게 보양이다'라는 말이 나온 지는 꽤 오래됐다.

​고기를 섭취할 기회가 거의 없던  과거의 절대 빈곤 시대에는 보신탕이 동물성 단백질과 지방을 섭취할 수 있는 최고(서민층에서는 거의 유일한)의 보양식이었지만, 요즘처럼 영양 과잉시대엔 열량 많은 육류에 불과하다. 오히려 지금은 과채류나 해산물 등이 최고의 보양식으로 각광받는다.

​고령자들을 중심으로 보신탕을 찾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 이유는 딱히 보신탕이 맛있어서라기 보단 하나의 문화적 습관 같다. 아련한 옛날 보양식으로 각인된 보신탕은 그들에게  추억의 음식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음식은 문화다. 문화란 시대 상황에 따라 항상 변화한다.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상대적 기준으로 봐야 한다. '보신탕을 먹는 것도 우리 전통 음식 문화의 하나였으니 뭐가 잘못 됐냐'고 억울해 할 수 있다. 하지만 시대에 맞지 않는 문화를 고집해선 안 된다.

시대에 맞지 않는 식문화, 이젠 변화해야할 때

​옛날에는 영양 보충을 위한 비상식량으로 개를 키우기도 했다지만, 지금 개를 바라보는 문화적 시각은 개를 거의 사람과 동등하게 여길 정도다. 어떤 이들에겐 사람 이상이다. 나는 밍키(나의 반려견)의 눈을 바라볼 때마다 뭔가 말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개를 먹는 시대에서 이제는 반려견과 한 가족이 된 시대로 바뀌고 있다.

시대가 변하면 그 시대에 맞게 문화도 바뀔 건 바뀌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의 친구인 개를 굳이 먹겠다고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혐오하는 문화를 고집하는 건 전통 계승이 아니라, 타인을 향한 폭력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


태그:#동물학대, #보신탕, #개고기, #보양식, #복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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