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대출이 급하게 필요해! 남편도 친정도 몰라요. 말할 곳 하나도 없는데 참 걱정이네∼"

귀에 익은 멜로디를 따라 흥얼거리는 딸아이를 나무라려다 그만 두었다. 대출이 무엇인지, 어떤 위험성이 도사라고 있는지 설명해봐야 알아듣기 힘든 일곱 살이다. 그러나 정작 이해가 안 가는 건 어른인 나도 마찬가지다. 남편도 친정도 모르는 대출, 그렇게 덜컥 받아도 괜찮다는 건가? 대출을 로또 당첨 정도로 생각하는 건 아닌지 광고 속 이야기지만 우려스럽다.

"걱정 마~ 내가 도와줄게~ 넌 여자니까!" 해결사로 등장하는 또 다른 여성은 대출을 원하는 주부에게 기타를 치며 환한 웃음으로 화답한다. 그런데 이 광고 어디에도 '남편도 친정도 모르게 받은' 대출금을 어떻게 갚을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은 보이지 않는다. 대출의 위험성을 적은 문구도 여간해서는 보기 힘들 정도로 짧은 시간에 스치듯 지나가 버린다. '과도한 빚은 당신에게 큰 불행을 안겨줄 수 있습니다.' 정작 중요한 건 이것인데 말이다.

집값을 띄워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정책에 대한 검증은 이미 끝났다.
 집값을 띄워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정책에 대한 검증은 이미 끝났다.
ⓒ sxc

관련사진보기


남편도 친정도 모르게 대출받을 수 있게 도와줄게?

정부가 내놓는 경제 대책도 대부업 광고와 별반 다를 바 없다. '돈이 절실히 필요해'라고 외치는 서민들에게 '걱정 마, 내가 도와줄게'라며 정부가 내놓는 대책도 매번 대출이었다. 등록금 대출, 사업자 대출, 전세자금 대출, 주택담보 대출 등등 정부는 서민들의 생계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될 때마다 대출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갚을 수 있는 방도는 언제나 빠진 채였다. 과도한 빚으로 불행을 맞을 수 있다는 대부업체의 경고문조차 언급된 적이 없다.

'가계대출 1천조 시대'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수입은 제자리이거나 오히려 뒷걸음질 치는 현실에서 등록금에 물가인상, 전세난 등으로 막장에 몰린 서민들에게 대출은 거부할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그 결과 수입의 절반을 대출 이자를 갚는 데 쓰는 서민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이 모든 게 저임금 구조를 고착화하고 대출로 살림살이를 꾸리게 만든 이명박 정권의 실정 탓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 또한 가계대출 규모를 풍선처럼 키우고 있는 것이다.

"새 내각이 출범하면 무엇보다 민생경제를 살리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하고 정치권과 국민들께서도 2기 내각에 힘을 실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국민들이 경제가 좀 살아난다고 체감하기 위해서는 부동산 문제가 가장 직접 와 닿는 문제이기 때문에 다른 무엇보다 이게 활기를 띠어야 경제가 살아나는구나 국민들이 느끼실 것입니다."

지난 14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박근혜 대통령은 부동산과 경제를 연관시켜 부동산이 살아야 경제가 살아난다고 말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내정 소식이 알려진 이후로 줄곧 총부채상환비율(DTI)과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완화'를 주장해왔다. 아니나 다를까. 16일 취임식 직후 연 기자간담회에서 최 장관은 "10여 년 동안 LTV·DTI를 시행하면서 불합리한 부분에 (대한)문제제기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규제 완화 방침을 분명히 했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 70% 단일화, 총부채상환비율(DTI) 60% 단일화에 이어 내년부터는 은행 자율(사실상 폐지)에 맡기는 방안까지 거론될 정도다. 이 말은 집값의 70%까지 대출이 가능하며, 채무자의 상환 능력을 대출 기준에서 축소 내지 폐지하겠다는 것이다. 부동산의 마지막 규제 장치까지 푸는 셈이다.

이명박이 실패한 경기부양책, 왜 똑같은 길 가나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는 모습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는 모습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다. 집값을 띄워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정책은 이명박 정권 5년 내내 계속 되어왔던 실패한 정책이다. 이명박 정부의 기대와 달리 집값이 오히려 떨어지면서 은행 대출로 집을 산 사람들은 하우스푸어로 전락했다. 전세난은 극심해졌고, 내수경기는 절대로 살아나지 않았다. 집값 인상으로 경제 활성화를 이루고자 한 어리석은 경제 정책의 후과였다. 집값을 띄워 경제를 살린 예는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그 반대의 예는 무수히 많다. 2008년,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금융위기로 몰아넣었던 리먼 사태를 잊었나? 정부가 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비우량담보대출(서브프라임모기지)을 적극 유도하고, 은행과 부동산업자들은 '묻지마 투자'를 부추긴 결과였다. 그러나 집값이 마냥 올라갈 수도, 은행이 언제까지 비우량담보대출을 늘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더 이상 대출이 불가능해지자 집값은 여지없이 폭락했고, 은행 빚을 갚지 못한 수십만 명이 파산했다. 도미노처럼 은행들이 파산했고, 국가 경제 전체가 휘청거렸다.

<미국이 파산하는 날>을 쓴 담비사 모요는 그의 저서에서 주택가격이 계속 올라야만 유지되고 번성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바람에 집값 안정과는 정확하게 반대되는 결과가 나왔다고 지적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 2기가 내놓은 경제정책은 담비사 모요의 경고와 일치한다.

부동산 대출을 풀면 집값이 올라가고 거래가 활발해져 내수경기가 살아날 것이라는 게 최경환 경제팀의 주장이다. 일시적으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고용 없는 성장, 저임금이 고착화된 현실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순간의 환상에 불과하다. 공짜 점심은 없다.

보수 경제학자나 경제 관료들은 우리나라의 대출이 미국의 비우량담보대출처럼 허술하지도 않을뿐더러 정부의 감시도 잘 되고 있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지난해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70%에 육박했다. 전 재산을 팔아도 빚을 갚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오히려 미국의 경제위기 직전보다 더 위험한 징조라고 할 수 있다.

믿지 못할 '박근혜의 혼신의 힘'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4일 오후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새누리당 최고대표위원을 선출하는 제 3차 전당대회에 참석해 축사를 마치고 인사를 하고 있다.
▲ 축사 마친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4일 오후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새누리당 최고대표위원을 선출하는 제 3차 전당대회에 참석해 축사를 마치고 인사를 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지난 8일 민간부문의 높은 부채를 방치할 경우 국내 은행사업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부동산 대출을 늘려 가계 대출이 1천조에서 더 늘어날 경우, 국가신용등급에 적신호가 켜질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걱정 마∼ 내가 도와줄게∼.'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경제 민주화 공약으로 서민들의 표를 얻었다. 그러나 새로 짜인 박근혜 정부의 2기 내각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서민들이 원하는 것은 '대출로 내 집 마련'이 아니다. 빚더미에서 탈출할 수 있는 활로를 만들어 주는 것이 정권의 할 일이다. 대통령은 민생경제를 살리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할 2기 내각이라고 하지만, 부동산 규제 철폐 정책을 보면 실패한 이명박 정권의 2기 내각이 아닐까라는 착각을 불러오게 한다. 서민들이 원하는 것을 대통령은 모르는 것일까, 모르는 척 하는 것일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태그:#부동산 정책, #최경환
댓글29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의 진보는 냉철한 시민의식을 필요로 합니다. 찌라시 보다 못한 언론이 훗날 역사가 되지 않으려면 모두가 스스로의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