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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바다에 놓인 공주섬
 통영 바다에 놓인 공주섬
ⓒ 김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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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섬 움직이는 거 같은데?'

어선을 따라붙는 갈매기들의 아우성이 집까지 들려오는 통영 바닷가에서 20년을 살아왔다. 그런 나에게, 통영 경계 너머에 바로 서울이 있는 줄 알던 어린 시절부터 최고의 구경거리는 항구였다.

푸른 날개를 양쪽 물 아래로 펴고 바다 위에 약간 뜬 채 동화같은 물보라를 일구며 항구를 오가던 추억의 여객선, 엔젤호(요즘의 엔젤호와는 모양이 다르다). 엔젤호가 닿는 터미널을 지나면, 바다를 휘감아 포구에 들어온 두 어선 사이의 그물 안에서 생을 위해 맹렬하게 파닥거리는 멸치떼를 숨 차오는 박자를 내뱉으며 생을 위해 끌어올리는 소금기 절은 선원들이 있는 어판장이 나왔었다.

동쪽의 호수 같은 바다라 해서 '동호'라고 불리는 통영 앞바다엔 느긋한 박자로 파도가 일었다. 그리고 하늘빛을 너그러이 받아들인 그 바다 한 켠에 작은 섬이 있다.

공주섬.

엔젤터미널과 어판장은 이제 다른 곳으로 변했지만 공주섬은 1980, 1990년대 그때나 지금이나 통영항의 문패같은 섬이다. 바다에 숟가락을 대고 사는 갯사람들의 망망한 시선이 잠시 머물 수 있는 지척에 섬은 떠 있다. 바다 가운데 홀연히 선 교실 크기의 땅에 초록 나무덤불을 가득 꽂아 올리고서 말이다.

공주섬은 아쉽게도 왕자와는 상관없다.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용(순우리말 미르)의 형상을 닮았다는 미륵산의 바로 앞에 놓인 여의주 같은 섬이라 하여 공주섬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 섬이 한 자리에 있지 않고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는 불경스런 생각은 부끄러운 망상같아 어린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어머니 팔을 벗어나 또래 아이들과 폐장 없는 놀이터인 바닷가를 들쑤시던 날들을 보내는 동안 계절과 계절 사이에 아니 달마다 때론 날마다 공주섬은 다르게 보였다.

이 변동의 의혹을 품은 채 갯바위 틈의 물고기들을 쫓던 어느 날, 키가 제일 큰 한 친구가 먼저 말을 열었다.

"저 공주섬 조금씩 움직이는 거 같지 않나?"

그제야 아이들은 반가웠다는 듯 자기도 그리 생각했었다며 나름의 생각들을 말했다. 섬 밑에 잠수함이 있을 거라거나, 우주선이 몰래 감추어져 있을 거라거나 하는 식이었다.

아이들은 섬과 함께 자란다

바다가 보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 나는 비로소 공주섬의 움직임이 우리만의 비밀이 아님을 배웠다. 선생님은 빨래하던 아낙이 바다에 웬 섬 하나 둥둥 떠오는 걸 보고 '저기 섬이 하나 밀리온다(밀려온다)'고 놀라 외치자 그 자리에 공주섬이 딱 섰다는 통영 사람들 입에 전하는 옛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섬이 육지 쪽으로 더 붙었더라면 이 고장이 부자동네가 됐을텐데 방정맞은 아낙 때문에 섬이 멈춰 원망스러워했다는 어른들의 말을 덧붙였다.

어른들의 섬은 거기서 멈추었지만 아이들의 공주섬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어깨에 그물을 메고 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커져가는 발바닥만큼 통영의 여기저기에 흘러 서투른 처음들을 만들어갔다.

그러는 동안 공주섬은 다양한 각도에서 우리와 만났다. 어떤 아이는 생에 처음 숙제 아닌 그림을 그리러 남망산 공원에 올라 성큼 자란 공주섬을 보았다. 어떤 아이는 아쉬운 뱃고동을 흘리며 귀항하는 아비의 목선을 묵묵히 다독이는 공주섬을 보았다. 어떤 아이는 석양을 등대고 처연하게 충무교에 올라 여인같은 새초롬한 공주섬을 보았다.

공주섬은 바다가 삶이 되는 동안 저마다의 위치에 자리하기 시작했다. 시간을 지나오며 우리의 키높이가 달라진 만큼, 삶의 궤적이 변한 만큼 그리고 생의 감각이 자란 만큼 공주섬은 움직여왔던 것인가 보다.

통영항의 문패, 공주섬
 통영항의 문패, 공주섬
ⓒ 김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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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가 되어 사람들을 위로하는 섬

섬은 항구 가까이에서 사람과 어울렸다. 때론 죽음까지도 함께 슬퍼했다. 어떤 이들은 공주섬이 상여를 닮았다고 했다. 바다에서 생을 끝낸 애처로운 영혼들을 위해 거기 그렇게 떠 있는거라고.

통영 해안을 거닐다 보면 물가에 단출한 제사 음식이 놓여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다시 오지 못하고 물결이 된 목숨들을 위한 짠 밥상이다. 밥상 주인을 위해 둥둥둥 징을 울리면 바다의 상여는 만나지 못할 그들 가까이에서 물결을 보듬어준다. 그렇게 눈물마저 나누어 가진 벗이 공주섬이다.

벗은 인간사를 응시하며 사람 가까이 눈길 입질 닿는 곳에 떠 있다. 어떤 날은 열정의 유통기한이 다 된 듯 게으른 눈으로 해안가를 기웃거리면 공주섬은 불쑥 망자의 물결을 파도쳐 보내며 터벅대는 나의 생활에 물음을 던지기도 한다. 지금 당신은 살아 있느냐고.

꿈틀거린 삶의 각도만큼 섬이 움직여왔듯 우리에게 움트는 바람이 있다면 바다의 상여는 바람을 따라 운동할 것이다. 그래서 서글픈 이별의 물자리 있는 곳이라면 징소리를 따라 어느 바다든 둥둥 떠 가 마지막 고달픈 길을 함께 울어 줄 것이다.

날이 어둑하다. 2014년 봄이 없는 시간들, 바다 상여를 서해 진도 앞바다로 보내고 싶다. 거기서 섬은 또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질까. 둥둥둥 가는 길에 바람 하나 글로 보탠다.

꽃잎이 떨어져야 봄이 지났음을 알 수 있나요?
눈앞이 아득해야 밤이 되었음을 알 수 있나요?

우리는 또 얼마나 아파야만 병들어 있음을 느낄까요?
우리는 또 얼마나 흘려야만 눈물의 바다가 보일까요?

봄은 다시 오고
밤은 새벽을 부르지만
우리의 탄식은
깨고 나면 다시
침묵을 섬기진 않나요?

분노마저 거부당한 우리들

소리쳐요.
여긴 너무 미친 곳이라고
우린 미치지 않고 싶다고


태그:#통영, #공주섬,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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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혁'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며 노래 만들고 글을 쓰고 지구를 살리는 중 입니다. 통영에서 나고 서울에서 허둥지둥하다가 얼마 전부터 제주도에서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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