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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스마트폰 안 쓰냐."
"불편하지 않아요?"

그렇다. 나는 대학생인데도 아직 피처폰(Feature Phone)을 쓴다. 피처폰은 전화와 문자 메시지 전송 정도만 가능한 저성능 휴대전화다. 이동통신사에 요금을 내기 시작한 지 8년이 넘었지만, 스마트폰은 가져본 적 없다.

내가 쓰다 바꾼 슬라이드형 '레인폰'
 내가 쓰다 바꾼 슬라이드형 '레인폰'
ⓒ 오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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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쓰고 있는 전화는 지난해 8월에 샀다. 수험생활과 대학 신입생 시절을 함께 보낸 휴대전화를 바꾼 이유는 단순했다. 대학 입학 후 첫 미팅 자리에서 상대방의 번호를 물으며 휴대전화를 꺼내려는데 부끄러움이 뻗쳤다. 액정이 깨진 슬라이드 휴대전화를 내보이기 싫었다. 난생처음 느껴본 감정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괜히 나 혼자만 부끄러웠던 건 아닐까 싶지만, 당시에는 그 기분 때문에 이틀을 고민했다. 주변에서는 '잘됐다'며 스마트폰으로 바꾸라고 권유했다. 아버지는 "사준다"며 가장 적극적이셨다. 약정은 오래 전에 끝났으니 번호 이동이나 보조금 등등 바꾸는 쪽의 떡고물이 더 커 보였다.

지하철에서 야구중계 보고 싶지만...

하지만 내 선택은 다시 피처폰이었다. 인터넷에서 중고거래 카페를 뒤져가며 '폴더폰'을 사버렸다. 전 사용자가 얼마 쓰지 않고 옷장에 처박아 둔 전화였다. 슬라이드보다 더 뒤로 돌아간 셈이었다. 포털에 내가 쓰고 있는 휴대전화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효도폰' '수험생폰'이 뜬다. 산 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잘 쓰고 있어 만족스럽다. 친구들은 "또?"라며 질렸다는 반응을 보이지만.

2013년 8월에 바꾼 '매직홀'
지하철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쓰시는 장면을 자주 본다.
 2013년 8월에 바꾼 '매직홀' 지하철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쓰시는 장면을 자주 본다.
ⓒ 오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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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스마트폰 보급률 세계 1, 2위를 다툰다. 국민 4명 중 3명은 스마트폰을 사용한다는 언론 보도도 있다. 반대로 국민 4명 중 1명은 스마트폰이 아닌 다른 기기를 쓴다는 뜻이지만 사회는 우리를 배려해 주지 않는다. 이벤트 응모도 스마트폰으로만 해야 하는 등 모든 게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바뀌면서 부러움과 불편함도 동시에 생겼다.

SNS는 내가 스마트폰으로 바꾸는 걸 고민하게 한 가장 큰 요소였다. 지하철과 버스, 여행지에서 페이스북에 접속하는 또래들을 볼 때마다 고민에 빠진다. 실시간으로 인터넷을 할 수 없으니 정보를 늦게 접한다. SNS에 사진과 글을 그때그때 올릴 수 없는 점도 아쉽다. 그럴 때는 '남들에게 보여주는 게 뭐가 중요해'라고 자신을 달랜다. 퇴근길에 스마트폰으로 프로야구를 보는 사람들을 볼 때도 소소한 부러움이 올라온다.

소위 국민 메신저라 불리는 '카카오톡' 마저 외면할 순 없었다. 기업 임원부터 동아리까지, 요즘은 카카오톡이 없으면 소통할 수가 없다. 피처폰으로 뻐기면 나만 손해다. 임시방편으로 아이팟터치를 샀다. 덕분에 카카오톡을 쓸 수 있게 됐지만 무료로 무선인터넷을 제공하는 장소를 찾기가 쉽지 않다. 중요한 연락이 와도 답장이 늦어지기 일쑤였다.

한 번은 학보사 기자로 영화 '배리어 프리(장벽 제한)'를 취재했는데, 스크린을 찍은 사진을 기사에 넣은 게 문제가 됐다. 이를 안 취재원이 카톡으로 사진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나는 그 '긴박한' 요청을 한 시간이나 지나서 알게 됐다. 그제야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연락이 늦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흔히 피처폰을 '2G폰'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대부분의 피처폰은 3G망을 이용한다. 그럼에도 언론에서 버젓이 '2G폰'으로 명시되는 경우가 있다. 아마도 카카오톡과 무선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으면 '2G폰'으로 분류해 버리는 선입견 때문일 거다. '스마트폰이 아닌 휴대전화', 이것이 피처폰에 가장 가까운 개념이다.

한 달 통신비 2만5000원... 생각보다 장점 많아

"대학생이란 놈이 아직도 그런 구닥다리를 쓰냐?"

술자리에서 만난 한 어르신이 나를 얕잡아 본 일도 있었다. 부모님도 "앞으로 사회생활하려면 스마트폰은 꼭 있어야 한다"며 언제든 바꿔주겠다고 걱정하신다.

피처폰을 고집하는 이유는 내 소소한 취향에 불과하다. 슬라이드폰을 쓴 이유는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라 가지고 다니기 좋아서였다. 나에겐 바지 뒷주머니에 삐죽 튀어나온 스마트폰을 볼 때만큼 어색한 장면도 없다.

지금 쓰는 폴더폰은 소리가 좋다. '딱딱' 소리를 내며 전화를 끊을 때마다 쾌감을 느낀다. 통화를 마치고, '딱' 소리를 내며 폴더를 닫는 행위는 내게 '전화가 끝났다'는 신호이자 '형식'이다.

솔직히 튀어 보이려고 고집한 부분도 있다. 인정한다. 나를 '아, 그 폴더 폰 쓰던 친구'라고 기억하는 사람도 있었다. 저렴한 통신 요금도 피처폰을 쓰는 이유 중 하나다. 친구들은 기곗값을 포함해서 한 달 평균 5만~8만 원을 낸다고 한다. 내 통신비는 2만5000원을 넘지 않는다.

스마트폰 없이 살아가는 일이 생각 이상으로 불편하거나 어렵진 않다. 인터넷을 통해 기사를 읽거나 동영상을 보는 대신 책을 읽는다. SNS는 집에서 컴퓨터로 해도 별문제 없다. SNS에 실시간으로 올릴 수 없으니 인증사진을 찍는 건 의미가 없다. 어디서든 온전히 '나'를 위해 집중할 수 있다.

내가 피처폰을 선호하는 이유는 스마트폰에 대한 '공포'에 가깝다. 폴란드 출신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그의 책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에서 "현대인은 매체의 발달 속에서 고독의 시간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한다.

휴대전화가 보급되면서 개인은 언제나 '온라인'인 상태가 됐고, 이 현상은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더 급격히, 깊숙이 진행됐다. 온라인으로부터 단절될 수 없다는 공포. 거창하게 말하자면 그 공포에 대한 개인으로서의 소소한 저항에 가깝다.

당분간은 스마트폰이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지금 쓰고 있는 전화가 고장 나지 않는 이상 계속해서 피처폰을 쓸 계획이다. 퇴근길에 궁금한 야구 스코어는 옆 사람의 스마트폰을 힐끔 들여다보면 될 일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은 되도록 문자로 달라'고 요청할 거다. 그렇게 스마트폰을 탐내면서 동시에 스마트폰을 경계하고 싶다. 


태그:#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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