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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내부
 석굴암 내부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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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주, 서울 온곡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입니다. 만난 적은 없습니다. <에밀레종의 비밀>(성낙주 지음, 푸른역사)을 읽다 궁금한 게 있어 딱 한 번 통화를 한 적은 있습니다. 혼자만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책을 통해서 그려보는 성낙주는 깐깐하면서도 거침이 없는 사람일거라 생각됩니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정의, 권력에 굴복하지 않는 기개가 연상됩니다. 언뜻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싸움꾼 학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목에 칼이 들어와도 뜻을 굽히지 않고, 할 말은 다하는 꼿꼿한 선비의 모습으로 귀결됩니다.

성낙주가 쓴 글들을 보면 참 논리적입니다. 막연하게 '이럴 것 같다'는 추측, '내 생각에는 이렇다'는 일방적 주장이 아니라 '왜' 그렇고, '어째서' 그런 것인지를 조곤조곤 논증하고 있어 수긍할 수밖에 없는 설명입니다. 

국민재판에 부치는 <석굴암 법정에 서다>

<석굴암 법정에 서다>(지은이 성낙주 / 불광출판사/2014. 6. 24/2만 3000원)
 <석굴암 법정에 서다>(지은이 성낙주 / 불광출판사/2014. 6. 24/2만 3000원)
ⓒ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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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법정에 서다>는 그동안 석굴암의 원형에 대해 제기된 여러 쟁점을 가상의 법정에 세우는 형식으로 제기됩니다.

그동안 제기되었던 여러 주장에 대한 시비와 타당성을 가리고자 성낙주가 펼쳐나가는 변론입니다. 학계의 굴절된 권력지형에 노출돼 위험에 처한 문화재(석굴암)를 온전히 지키고자 국민심판에 부치는 사회적 논쟁이며 문화적 고발입니다.

저자 성낙주가 가상법정에 세우는 피고는 내로라하는 학계 권력자들이 학술적 고민 없이 석굴암을 상대로 무책임하게 주장하는 일방적 논리, 학자적 사명감 없이 무비판적으로 그들의 주장을 인용해 재확산시키는 무소신한 동조들입니다.

<석굴암, 법정에 서다>는 20세기 중후반부터 펼쳐진 석굴암 원형논쟁의 실상을 살펴보는 책으로, 비유하자면 불편한 진실을 찾아 나선 긴 여정이라 할 수 있다.

우리를 감격시킨 동해 아침 햇살 이야기도, 법당 밑으로 샘물을 흐르도록 했다는 위대한 신라 과학의 이야기도 사실이 아니라는 것. 또한 개방구조는 석굴암을 망실의 위기로 몰아넣으리라는 것 등 모두가 실사구시와는 동떨어진 공리공론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진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이야기들이 진실이 아니라는 상황 앞에서 혼란과 당혹을 금할 수 없었다.

대관절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 미지의 섬처럼 우리 앞에 던져진 석굴암이라는 심미적 텍스트. 우리는 그것을 읽어내는 일만으로도 힘에 부친다. 부질없는 생각에 사로잡혀 시간과 열정을 소모할 겨를이 없다. 겸허한 응시, 이것이 오늘 우리가 '미의 천체도' 석굴암 앞에서 가다듬어야 할 첫 번째 목록일 것이다.  -'거두는 글' 중에서-

책 말미에 정리돼 있는 '거두는 글'을 다시 정리해 책 뒤표지에 넣은 글입니다. 저자가 <석굴암, 법정에서다>를 내게 된 동기, 책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뜻이 간결하지만 간곡하게 함축 돼 있습니다.

엉터리 주장에는 거침없는 하이킥

책에서는 석굴암에 있어 우리가 진실이라고 알고 있거나 진실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이며, 그것들을 진실이라고 생각하게 된 동기나 계기가 무엇인지를 하나하나 제시합니다. 그리고 가장되거나 왜곡 된 진실 속에 가려진 허위들을 하나하나 파헤치며 지적합니다.

원형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석굴암 전실
 원형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석굴암 전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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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 왜곡되는 과정에는 일본강점기를 겪어야 했던 역사적 아픔에서 투영된 인위적 오도나 왜곡도 반영돼 있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소위 말발이 먹혀 들어가는 학계의 권력자들이 역사적 검증이나 문화적 고찰을 간과한 채 사회적 이목 등을 의식하며 제시하는 단시안적 주장들이 그럴듯한 학설(?)로 받아들여지며 그 공고함을 더해왔음에 있습니다.

남천우는 첫 논고인 <석굴암 원형보존의 위기>에서 구한말의 석굴암을 원형의 기준으로 제시한다. 1960년대 공사가 그 권형에서 벗어났으므로 잘못이라는 것이며, 어떠한 이유에서도 원형에 손을 대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이후 많은 이들이 그의 관점을 받아들이는데, 그러나 구한말의 석굴암은 붕괴를 걱정할 만큼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였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같은 석굴암이 원형이라는 것은 마치 불의의 사고로 신체의 일부를 잃고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당신의 몸은 지극이 정상이야. 그게 원래 당신의 몸이야."라고 말하는 식의 억지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석굴암의 원형이 있다면 그것은 창건 시점의 석굴암뿐이다. 구한말의 석굴암은 원형을 찾아가는 디딤돌일 뿐이며, 오늘의 우리에게는 그 때의 석굴암을 통해 신라인의 미학과 세계관을 추적하는 숭고한 과제가 주어져 있을 뿐이다. -<석굴암 법정에 서다>178쪽-

석굴암 외형
 석굴암 외형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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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아주 조금만 생각해 봐도 서울대 교수인 남천우가 제시하는 구한말 석굴암이 '석굴암 원형'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남천우의 주장은 50살쯤은 된 중년 모습을 가리키며 '이게 네가 태어날 때의 모습'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구한말이면 어림잡아도 석굴암이 만들어 진 이후 1000년이 넘게 흐른 세월이기 때문입니다.

강산이 100번은 변하고도 남을 장고한 세월이 지난 석굴암을 원형으로 기준 삼는 비상식적인 주장이지만 학계에 기득권처럼 형성돼 있는 그의 입지에 따라 남천우의 주장은 적잖은 위력을 발휘합니다. 엉터리 주장에 대한 거침없는 하이킥입니다.

석굴암이 선 가상법정에 국민심판이 돼 보십시오

이 외에도 서울대학교 화학교육과 교수였던 이태녕 등의 주장도 진실을 호도하거나 왜곡시키는 데 한 몫 합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시나브로 한국 문화유산계의 최대 권력이 된 유홍준 등이 별다른 검증 없이 그들의 주장을 인용하거나 동조함면서 그들이 주장한 사실(?)들은 진실을 가장한 굳은살이 돼 자리를 잡아갑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벗겨지거나 떨어져 나가야하는 게 굳은살입니다.

성낙주가 '미의 천체도'로 정의하고 있는 석굴암 내부
 성낙주가 '미의 천체도'로 정의하고 있는 석굴암 내부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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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공계 학자들도 지혜롭겠지만, 공사 책임자들도 최소한 그만큼은 지헤롭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진짜 '재미있고, 중요하고, 무서운 사실'은 과학 전공자들에게 신기한(!) 주장이 나오면 앞뒤 가리지 않고 뒤를 쫓아가는 미술사 전공자들의 누추한 모습이다. -<석굴암 법정에 서다> 251쪽-

성낙주가 가상법정을 열어 국민심판에 부치고자 하는 건 석굴암에 대한 진실 찾기로 국한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걸음만 더 들어가 <석굴암 법정에 서다>에 서려진 밑그림을 살펴보면 그가 그리고자 하는 그림은 석굴암을 통한 역사 바로 세우기이며 왜곡된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려는 꼿꼿한 선비정신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학자답지 못한 학자, 부화뇌동하는 문화 권력자들에 대한 엄숙한 경고일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학계에 형성돼 있는 권력지형에 의해 기득권처럼 굳어져 가고 있는 잘못된 인식과 오류를 바로 잡기 위한 도전적 고발, 그들의 허상을 무너뜨리기 위해 중학교 국어 교사인 성낙주가 송곳 같은 논리로 변론을 펼쳐나가고 있는 가상법정 <석굴암 법정에 서다>에 기꺼이 국민심판으로 참석해 보실 것을 진심으로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판단을 내리건 그건 온전히 님의 몫이며 양심이며 지식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 <석굴암 법정에 서다>(지은이 성낙주 / 불광출판사/2014. 6. 24/2만 3000원)



석굴암, 법정에 서다 - 신화와 환상에 가려진 석굴암의 맨얼굴을 찾아서

성낙주 지음, 불광출판사(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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