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활동 첫째날인 2일 오후 전남 진도체육관을 방문한 야당 조사위원들이 실종자 가족들과 면담을 마친 뒤 팽목항으로 이동하고 있다.
▲ 진도체육관 방문한 '세월호참사 국조특위' 야당 의원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활동 첫째날인 2일 오후 전남 진도체육관을 방문한 야당 조사위원들이 실종자 가족들과 면담을 마친 뒤 팽목항으로 이동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제가 일하는 사무실 앞에는 세월호 사고 희생자 진도군 합동분향소가 있었습니다. 지난 6월 30일 분향소가 문을 닫을 때까지 1만5000명의 분향객이 다녀갔습니다. 또한 깨알같은 글씨로 절절한 심정을 담은 노란 리본 메시지 2만여 개가 벽을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문 밖에서는 메시지를 하나도 남김없이 소중히 분류해 박스에 담는 작업이 며칠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담긴 소중한 뜻들은 진도군청이 보관하고 있다가 기념관이 생기면 그곳으로 갈 계획이랍니다.

벽에 붙은 간절한 사연들을 읽어봅니다. 사연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내용이 다릅니다. 세월호 참사 발생 초기에는 '저희는 돈, 명예 다 필요없습니다' '그저 당신들이 돌아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부모님 곁으로 달려와서 다녀왔습니다라는 말 한마디면 됩니다' 등 희생자들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비는 글귀가 많습니다. 또 '수학여행이 끝났어요. 빨리 집에 가야죠'라는 글도 보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다음 생에서는 소중한 분들 곁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기를 바라요'라는 내용으로 바뀝니다. 글들을 다시 읽으니 또 가슴이 미어집니다. 이 많은 마음들이 이제는 상자에 담겨져 역사의 한 장으로 남게됩니다.

많은 분들이 진도 합동분향소에 다녀가셨겠지만, 우리 고장 진도는 아주 조용한 동네입니다. 바다에서는 고기를 잡고, 해초를 기릅니다. 섬 내륙에서는 간척지 쌀이 많이 생산되며 대파·울금 등이 유명한 고장입니다. 오염원이 하나도 없어서 맑은 물과 깨끗한 바람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진도는 여전합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뒤 우리 고장 사람들은 지금까지 숨 죽이며 조심스럽게 살아갑니다. 이익에 밝은 사람들이라면 벌써 피해보상을 해달라고 머리띠 둘러매고 거리에 나섰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좀 지치는 듯합니다. 해산물은 팔리지 않고 반품돼 돌아옵니다. 바다가 고여있는 손바닥만한 저수지쯤인 줄 착각하는 모양이지요. 이곳의 고통을 안다면 진도농수산물 팔아주기 운동을 벌일 법도 한데 그런 소식은 아직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좀 도와주십시오. 그렇다고 우리가 이대로 주저앉아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청정 진도의 명예를 회복하고 싶습니다. 그 첫 사업을 팽목에서 시작하고 싶습니다. 팽목은 이제 진도의 상징이 됐기 때문입니다.

팽목이라는 이쁜 이름의 마을, 아시다시피 갯가에 위치한 마을은 뒤편에 작은 동산이 있고 오래된 팽나무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이 조그만 마을의 어귀에서 일어난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인하여 일약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어지러진 마을길을 손 보고 팽나무 근처도 단장하겠습니다. 유휴지가 있으면 화단도 만들겠습니다. 담장도 밝은 색으로 단장하겠습니다. 지나가는 길손들이 감탄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세월호 참사 48일째인 지난 6월 2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에 실종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기원하는 종이 매달려 있다.
▲ '바람으로 오소서' 세월호 참사 48일째인 지난 6월 2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에 실종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기원하는 종이 매달려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다행히 우리 진도는 민속문화가 고스란히 살아있는 곳입니다. 국가지정 4개의 무형문화재, 도지정 5개의 무형문화재 등을 총동원하겠습니다. 진도문화예술의 모든 역량을 한데 모으겠습니다.

먼저 하늘로 오른 우리 사랑하는 학생들과 착한 사람들의 영혼에게 우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하여 참사 1주기 행사도 계획했습니다. 진도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전 세계에 전파되어 정말 모든 인류가 평화롭게 잘 살 수 있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하는 간절함을 담았습니다.

아직도 11명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유족들은 진도와 국회 앞에서 몸과 마음을 소진 시켜갑니다. 기다리다 지친 수송용 헬기도 모두 떠나고 없습니다. 구호물품도 나날이 줄어들어 야적된 물품은 모두 소모하고 창고에 적재된 물품들만 드나듭니다. 다행히 태풍 너구리가 피해가서 철거되었던 천막들이 다시 세워지고 정상적인 구호활동이 이뤄집니다.

세월호참사 유가족 150여명이 13일 오전 여의도 국회 본청앞에서 특별법 제정관련 여·야·가족 3자협의체 구성을 촉구하며 밤샘 농성 벌이던 새벽, 한 단원고 학부모가 잠들지 못하고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 '이 상황에 잠이 오겠습니까?' 세월호참사 유가족 150여명이 13일 오전 여의도 국회 본청앞에서 특별법 제정관련 여·야·가족 3자협의체 구성을 촉구하며 밤샘 농성 벌이던 새벽, 한 단원고 학부모가 잠들지 못하고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주말에는 부산에서부터 도보로 행군한 팀들을 맞아 재우고, 토요일에는 버스 두 대로 진도에서 합류하여 팽목까지 도보행군에 합세한 전교조를 비롯한 인권활동가들을 찾아 홍주 한 잔씩을 대접했습니다. 그들은 밤을 새워 다시 돌아갔습니다. 모두들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것과 잊지 않는다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남아있는 사람들의 몫을 해야지요.

세월호 진상 밝히기, 여전히 아득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아득합니다. 국회를 보면 그들이 진정으로 유가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을 위해 진상을 밝혀 다시는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기본부터 탄탄한 대책을 세울 수 있는 사람들인가 의문이 듭니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울까요. 진실은 하나입니다. 그 진실을 찾아 한 걸음씩 나가는 것이 그렇게 두려운 일입니까? 비겁한 자들은 두려움이 많습니다. 국민들을 위한다는 그동안의 수사들이 헛된 구호가 되지 않도록 진실을 가리지 마세요.

거짓을 벗겨내서 잘못한 자들에게는 벌을 주고 잘한 자들에게는 상을 주세요. 이것이 사회의 정의입니다. 적어도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참된 대책이 수립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사태를 겪으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언론들이 침묵하고 그 침묵에 묻혀 나라를 경영하는 많은 분들이 불의를 저질러도 나라는 그런대로 돌아갑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이 사회의 어떤 동력이 시대를 이끌어가는가 하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적어도 이 사회가 전복되지 않고 나아가고 있는 것은 민중들의 힘이었습니다. 쓰레기를 줍는 노인들부터 걸레를 들고 실내체육관을 청소하시는 분들, 빨래를 해서 널어말리는 분들, 의료진들, 부식을 담당하시는 분들, 각종 봉사활동 단체들, 진도의 공무원들... 셀 수 없이 많은 분들이 아픔을 같이 했으며 지금도 진행중입니다. 이들이 사회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사회가 이만큼이라도 지탱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 진도군민들은 잊고 싶어도 잊지 못합니다. 아니 잊지 않을 것입니다. 저 맹골바다에서 진 수많은 별들을 모두 가슴에 띄우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유족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에 앞장을 설 것이며 슬픔을 나누는 일에도 앞장을 서겠습니다. 여객선들도 그 바다를 지날 때면 반드시 뱃고동을 울려 영혼들에게 잊지 않았다고 인사를 해야합니다. 그날의 참사를 기억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다짐을 바랍니다. 그것이 남은 자들의 최소한 예의입니다.


태그:#세월호
댓글13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