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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핑궈러바오(빈果日報)> 1면. 톱기사 제목은 '한국여행하다 조산, 생활은 사치스럽지만 궁핍한 척하다, 탐욕스러운 부부가 이영애의 선한 마음을 속이다'.
 지난 12일 <핑궈러바오(빈果日報)> 1면. 톱기사 제목은 '한국여행하다 조산, 생활은 사치스럽지만 궁핍한 척하다, 탐욕스러운 부부가 이영애의 선한 마음을 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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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스러운 부부가 이영애의 선한 마음을 속이다."

지난 12일 타이완 타이베이시의 한 편의점에 진열된 타이완 유명일간지 <핑궈러바오>(蘋果日報) 1면 톱기사의 제목이다. 제목뿐만 아니라 신문 1면에 실린 모든 기사가 이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신문을 사 들고 숙소로 돌아와 본 첫 구절이 눈에 확 들어왔다.

"한국 스타 이영애의 '사랑의 마음'은 헛된 것이었을까?"(韓星李英愛的愛心白費了嗎?)

이 기사에 등장한 '탐욕스러운 부부'는 지난 6월 30일 이영애씨의 도움으로 아기를 데리고 타이완으로 무사히 돌아간 멍씨 부부를 가리킨다.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현재 타이완 사회에서는 이들 부부를 사실상 '사기꾼'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다. 이번 사건을 국내 언론에 소개되지 않은 보도까지 포함해 정리하면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멍씨 부부를 둘러싼 의혹들

지난 2월 말, 타이완 기륭시에 사는 남성 멍씨(孟氏, 36)는 임신 7개월 된 부인 차이씨(蔡氏, 28)와 함께 한국으로 여행을 왔다. 그런데 부인이 서울의 한 호텔 욕실에서 미끄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결국 아이를 조산할 수밖에 없었고, 아이는 조산 후유증으로 병원을 세 번이나 옮겨가며 두 차례 큰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이 부부는 타이완 달러 400만 위안(한화 약 1억4000만 원)에 달하는 병원비를 감당할 여력이 없었다. 이들 부부는 주한타이완대표부에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 당했다.

주한타이완대표부는 이들을 타이완 불교단체인 자제(慈濟) 기금회에 연결해 줬고, 자제기금회 서울지회는 약 100만 위안(약 3500만 원)을 모금해 기증했다. 나머지 300만 위안(약 1억 원)은 탤런트 이영애씨가 비밀리에 도와줬다. 이영애씨의 이 같은 선행은 7월 초에 뒤늦게 알려져 국내외적으로 화제를 모았다. 당연히 타이완에서도 대서특필됐다.

그런데 이 보도가 나간 지 며칠 뒤인 지난 10일. 한 타이완 누리꾼이 SNS를 통해 멍씨 부부의 사생활을 추적했다. 이 누리꾼은 이들 부부를 두고 "실질적으로는 부유한데 거짓으로 생활이 궁한 것처럼 위장했다"라고 주장했고, 타이완 언론은 이를 크게 보도했다. 타이완의 한 누리꾼이 제시한 증거는 다음과 같다.

▲ 멍씨는 좋은 직장에서 다니고, 한 달 약 10만 위안(한화 약 350만 원)의 수입이 있다.
▲ 멍씨의 부인은 직업이 두 개(백화점 안내데스크 근무, 인터넷 쇼핑몰을 통한 한국 의류 판매)인데, 수입이 많다. 
▲ 이들은 고급 이어폰(약 1만5740위안, 한화 55만 원 상당), 아이폰5(32G), 아이패드 에어, 맥북 에어, 아이맥, HTC One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BMW를 몰고 다니며(BMW 차량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근거로 제시) 높은 비용을 지불하면서 레이디 가가 콘서트를 관람하는 등 사치스러운 생활을 해왔다.

지난 12일 <중국시보> A12면. '한국에 머무르던 조산부부 이영애를 속이다'라는 제목으로 이번 사건을 다뤘다. 우측 상단에는 멍씨의 차라는 주장이 나온 BMW 사진.
 지난 12일 <중국시보> A12면. '한국에 머무르던 조산부부 이영애를 속이다'라는 제목으로 이번 사건을 다뤘다. 우측 상단에는 멍씨의 차라는 주장이 나온 BMW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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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주장에 대해 멍씨 부부는 BMW는 자신들의 차가 아니라 친구의 차라고 해명했다. 멍씨는 지난 11일 대만언론 <동선신원윈>(東森新聞雲)과의 인터뷰에서 "60만 위안(한화 2100만 원)으로 구입한 미국산 포드 소형자동차(fiesta)를 소유하고 있다"라면서 "의혹을 제기한 누리꾼이 의도적으로 이 사실을 누락했다"라고 주장했다.

멍씨의 월급도 논란이 됐다. 멍씨는 '타이완런번'(臺灣仁本)이라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이 회사는 한국으로 치면 상조회사다. 멍씨는 이 회사의 기륭시 사업처장을 맡고 있다.

의혹을 제기한 누리꾼은 멍씨가 매달 10만 위안(한화 350만 원) 상당의 월급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멍씨와 멍씨 주변 사람들은 '한 달에 본봉 2만 위안(한화 70만 원)에 능력급을 받는데 업적이 가장 좋을 때는 월 8만 위안(한화 280만 원)을 받고 있다'고 해명했다. 지난 12일 <핑궈러바오>에 따르면 멍씨는 "부인은 백화점에서 월 3만 위안(약 100만 원)을 받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수입이 미미하다"라고 주장했다.

멍씨는 정말 이영애를 속인 걸까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멍씨 부부가 실제로 이영애씨를 속였다고 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멍씨 부부가 이영애씨를 속였다'라고 말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이들 부부가 이영애씨에게 직접 도움을 요청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 부부는 주한타이완대표부에 도움을 요청했고, 주한타이완대표부는 자국 불교단체인 '자제기금회'에 바통을 넘겼다. 이후 멍씨 부부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영애씨와 연결됐다.

설사 의혹을 제기한 누리꾼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 누리꾼이 제시한 표면적인 근거만으로 멍씨 부부가 1억 원이 넘는 거액을 고의로 갚지 않았다고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고급전자제품을 사용한다고 해서 거액의 돈을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멍씨는 "(논란이 된) 전자제품을 사용한 것은 맞으나, 경제적 여건이 비교적 좋았을 때 구입한 것이며, 이전에는 총 수입의 80~90%를 소비했다"라고 고백했다. 멍씨 부부는 이번 사건에서 많은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멍씨는 "현재 부동산이 없고, 거주하고 있는 집도 1만 위안짜리 월세"라고 해명했다. 실제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지 않음이 확실하다면 이들 부부의 해명은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7월 11일 <동선신원윈>, 7월 12일 <핑궈러바오> 보도 내용).

지난 12일 <핑궈러바오> 보도내용. 이 매체는 멍씨가 4개월 동안 한국에 한 차례밖에 다녀가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지난 12일 <핑궈러바오> 보도내용. 이 매체는 멍씨가 4개월 동안 한국에 한 차례밖에 다녀가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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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논란과는 별도로 멍씨 부부는 '비정한 부모'라는 또다른 비난에 직면했다.

예정보다 일찍인 2월에 태어난 아기가 올해 6월 말까지 4개월 동안 한국에 입원해 있는 동안, 멍씨 부부는 단 한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멍씨 부부는 지난 12일 <핑궈러바오>를 통해 "아이를 데리고 오기 위해 부족한 돈을 준비하다 보니 자주 방문할 여건이 될 수 없었다"라고 해명했다. 이들 부부가 타이완으로 병원비를 구하러 되돌아 갔을 때는 자제기금회 소속의 한 부부가 아기를 보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멍씨 부부 주위 사람들은 현지 언론을 통해 이들 부부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의 타이완 언론들은 사실상 사치스러운 생활로 사람들을 속였다는 부분에 더 초점을 맞추고 확대 보도하는 실정이다.

지난 13일 타이완 <동선뉴스>와 <니엔따이뉴스> 등 상당수 방송 매체는 멍씨 부부가 이영애씨를 속였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면서 이영애씨 측의 반응을 앞다퉈 보도했다. 이들은 이영애씨 측이 "이 부부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 그 돈은 (갚지 않아도 되니) 다른 곳에 기증하기 바란다"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산리신원왕>은 "멍씨 부부가 '매달 저축을 통해서 장차 이영애씨 측에 돈을 갚거나 혹은 도움을 준 단체에 돌려줄 생각이 있다'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타이완 <중앙통신>에 따르면 멍씨가 병원비를 모두 내는 대로 한국이나 타이완의 자선단체를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영애 기부' 논란 뒤에 숨겨진 사실

지난 13일 니엔따이 뉴스 방송화면. 이 언론은 "조산부부가 빈곤을 가장해 이영애의 마음을 속이다... 이영애는 '추궁하지 않겠다'"라고 보도했다.
 지난 13일 니엔따이 뉴스 방송화면. 이 언론은 "조산부부가 빈곤을 가장해 이영애의 마음을 속이다... 이영애는 '추궁하지 않겠다'"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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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 사건의 이면에는 한국인들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타이완 외교부와 타이완 국민들 사이에서 일어난 논쟁이다.

사건이 처음 발생한 지난 2월 말, 멍씨 부부는 서울에 있는 타이완대표부에 의료비 도움을 요청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주한타이완대표부는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요구를 거절했고, 심지어 병원의 입원보증금을 대신 지불하는 것도 거부했다고 한다. 이에 화가 난 멍씨는 언론에 이 사실을 알리면서 타이완외교부의 비인도성을 질타했다. 이에 따라 타이완 사회에서는 주한타이완외교부를 두고 '무정하다' '냉혈하다'라는 비판이 일었다(2월 28일 <핑궈러바오>, 7월 2일 <민보> 보도내용). 

이번 일로 주한타이완외교부는 되레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하게 됐다.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외국인에게 자국민의 생명을 맡겼다'는 비판을 면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번 논쟁은 타이완내 혐한 정서를 가진 일부 네티즌들의 정서가 투영되면서 증폭된 측면이 있다.

'이영애는 스스로가 도울 능력이 있으면, 손을 내밀어 도와준다. 아기부모의 경제적인 능력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7월14일 동팡러바오 다위엔통신)

이와 같은 논평은 이영애의 도움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일부 타이완인들의 불편한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 한류의 재유행에도 불구하고 이번 논쟁은 결과론적으로 이영애씨의 선의를 크게 폄훼하거나 반감시키고 있다. 타이완대학 사회공학과 린완이 교수는 <핑궈러바오> 논평을 통해 "잘 만든 하나의 요리가 왜 뒤엎어졌는지, 이영애가 알면 슬퍼할 것"이라고 짚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영환님은 동국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현 타이완대학 객좌연구원)입니다.



태그:#이영애, #멍씨 부부, #기부,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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