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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고령 핵발전소 고리 1호기는 1978년 4월 29일부터 가동했다. 설계수명 30년을 훌쩍 넘겼지만, 2017년까지 10년 연장 운영하고 있다. 핵발전소는 복잡하고 거대한 기계설비라 오래 쓰다 보면 낡아 고장이 잦을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 일어난 핵발전소 불시정지 사고 총 441건 중 108건이 고리1호기에서 발생했다(2012년 기준). 잦은 고장에 뇌물수수, 부품납품 담합, 중대사고 은폐까지 고리1호기가 불안하다.

세월호 사건 이후 고리1호기 폐쇄를 위한 여론이 뜨거워지고 있지만, 산업통상자원부는 10년 더 연장하는 것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단 한 번의 사고로 대한민국 전체가 무너질 수 있는 것이 핵발전소 사고다. 고리1호기 2027년까지 가동해도 될까? 2012년까지 전 세계에서 143기의 원전이 폐쇄됐는데 평균 가동연수가 23년에 불과했다. 그런데 고리1호기는 50년을 가동하려고 한다.

고리1호기 원자로가 심상치 않다

녹색당 탈핵특별위원회(아래 탈핵특위)와 부산 녹색당은 지난 6일(일), 해운대 바닷가에서 '불안한 고리 1호기 폐쇄! 신고리 3, 4호기 건설 중단!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 절대위험 고리1호기 즉각 폐쇄하라 녹색당 탈핵특별위원회(아래 탈핵특위)와 부산 녹색당은 지난 6일(일), 해운대 바닷가에서 '불안한 고리 1호기 폐쇄! 신고리 3, 4호기 건설 중단!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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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력원자력(아래 한수원)은 고리 1호기 주요 부품을 최신 설비로 교체했기 때문에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핵발전소에서 가장 중요한 설비는 원자로다. 고온·고압 상태의 원자로가 균열이 생기거나 깨지면 중대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원자로가 그대로인 이상 다른 부품을 아무리 바꾼다 한들 헌 것이 새것이 될 수 없다.

고리1호기의 원자로는 20cm가 넘는 강철 재질인데 고온·고압 상태에서 방사선을 오래 쏘이면 강철의 성질 자체가 변해 버린다. 무쇠 가마솥에 물이 들어있는 줄 알고 불을 때다가 솥이 벌겋게 달아올랐을 때 당황해 찬물을 부으면 가마솥이 '쩡!' 소리를 내면서 반 토막이 난다. 쇠가 유연한 성질을 잃고 경화되었을 때 발생하는 현상이다. 원자로도 운전 과정에서 수십 년간 고온과 고압, 방사선에 노출되면 철강이 유연성을 잃고 딱딱해지는데 이를 '취성화'라고 한다.

취성화가 심해지면 뜨겁게 달궈진 압력용기에 찬물을 부었을 때 충격이 커진다. 유연성을 잃고 경화되는 온도를 취성천이온도라고 하는데, 천이온도가 올라가면 찬물이 아니라 온수만 부어도 원자로 압력용기에 손상이 갈 수 있다는 얘기다. 1999년 고리1호기에 대한 측정 결과 취성천이온도는 142도로 높아졌다. 10년 연장운전을 앞둔 2005년 정밀평가에서도 126도를 기록했다. 원자로가 경화되어 비상시에 100도의 끓는 물을 부어도 위험한 수준이다.

중대사고 은폐한 한수원 간부 무죄 선고

2012년 2월 9일, 고리 1호기에 전원공급 상실 사건이 발생했다. 주 전력이 끊긴 뒤 10초 이내에 작동해야 하는 비상디젤발전기도 가동되지 않았다. 오후 8시 34분부터 12분 동안 전력공급이 끊기면서 원자로 냉각수와 사용 후 핵연료 온도가 상승했다. 만일 전원 공급이 장시간 끊겼더라면 후쿠시마 원전사고처럼 원자로 온도가 상승해 노심이 녹아내리는 현상까지 발생할 수 있었다.

더 큰 문제는 고리1호기 발전소장 문아무개(57)씨와 한수원 간부 5명이 일지까지 조작해 사건을 은폐한 것이다. 이 사건은 식당에서 밥을 먹던 시의원이 옆 테이블에서 고리1호기 직원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파헤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시의원이 그 시간 그 식당에 가지 않았더라면 고리1호기에 발생한 엄청난 사건을 대다수 국민이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지난해 2월, 부산지법 형사항소2부(한영표 부장판사)는 고리원전 1호기 정전사고를 은폐한 간부에 무죄를 선고했다. 원전사고를 원자력안전위원회 등에 보고할 의무가 한수원에 있기 때문에 이를 은폐한 직원들은 처벌할 수 없고, 직원의 은폐로 사고 자체를 알 수 없는 한수원도 보고의무를 위반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아무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이다.

재판부의 무죄판결은 앞으로 핵발전소에서 중대사고가 발생해 한수원 직원들이 은폐해도 형사 처분을 받지 않는다는 선례를 남겼다. 사고가 나면 한반도 전체를 방사능으로 오염시킬 수 있는 핵발전 사고를 은폐해도 무죄다. 재판부 자체가 핵발전 위험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의 안전은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핵없는사회를위한공동행동'에서 진행하는 수명 다한 원전 가동 금지 청원 서명운동은 참여하면 국회의원(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 소속)과 국회의장, 원자력안전위원장에게 메시지가 바로 전달된다. 수명 다한 원전 가동 금지 청원 서명 운동 http://byebyenuke.net/node
 '핵없는사회를위한공동행동'에서 진행하는 수명 다한 원전 가동 금지 청원 서명운동은 참여하면 국회의원(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 소속)과 국회의장, 원자력안전위원장에게 메시지가 바로 전달된다. 수명 다한 원전 가동 금지 청원 서명 운동 http://byebyenuke.net/node
ⓒ 바이바이뉴크(byebyen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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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침몰하던 날 고리1호기 재가동 승인

지난해 11월, 고리1호기는 6개월간 정비를 마치고 50일도 안 돼 고장이 났다. 수리비로 1930억 원을 지출했다. 올해 2월 25일부터는 정기검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원자력안전위원회는 4월 16일 고리1호기 재가동을 승인했다. 바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날이다. 부산시민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고리1호기가 위치한 기장군은 해운대에서 직선거리 20km 반경에 위치해 있다. 고리1호기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반경 30km 안에 부산, 울산 등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지역의 인구만 320만 명이다. 부산시 기장군에는 고리1, 2, 3, 4호기, 신고리 1, 2호기 이렇게 한곳에 6기가 가동 중이다. 앞으로 신고리 7, 8호기까지 지어지면 총 12기의 핵발전 단지가 완성된다. 한 지역에 핵발전소가 12기나 들어서는 것은 전 세계에 유례가 없다.

지난 3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업무보고에서 한진현 제2차관은 고리1호기 폐쇄 여부에 대해 "원자력안전위원회(아래 원안위)에서 안전성 검사를 거치고 실질적으로 경제성이나 수용성 자체를 감안해서 결정하는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이는 정부와 한수원이 고리1호기 수명연장을 신청해 원안위의 안전성 검사를 받겠다는 말이다.

9일, 국무총리실은 연말까지 수립 예정인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에 고리원전 1호기와 월성원전 1호기의 폐지와 수명연장 여부를 포함하도록 산업통상자원부에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국무총리실 입장대로라면 2014년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말이다.

핵발전 정책도 박정희를 닮은 박근혜 정부

고리1호기는 우리나라 전력생산의 1%도 안 된다. 이미 막대한 정비 비용이 들었고, 잦은 고장으로 발전 효율도 떨어졌다. 한수원과 정부가 수명을 다한 고리1호기를 포기 못 하는 이유는 핵발전의 불편한 진실 때문이다. 우리는 핵발전소를 짓고 운영만 해봤지 폐로하고 사용 후 핵연료를 처리해본 경험이 없다. 핵발전 폐쇄와 동시에 핵발전의 숨겨진 비용이 드러난다.

1971년 3월 19일 고리1호기 기공식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원전은 처음에는 돈이 들지만, 세워지면 수력이나 화력보다 경제적"이라며 "20세기에서 가장 발전된 이 발전소를 갖게 된 것을 크게 자부한다"고 말했다. 40년 전의 이 발언은 21세기에서는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 더구나 후쿠시마사고까지 발생한 상황에서는 말이다.

현행 원자력안전법에 따르면, 핵발전소 수명연장을 위해서는 한수원은 수명기간 만료일 2년 전까지 수명연장을 신청하면서 안전성 등에 대한 각종 평가보고서를 제출하게 되어 있다. 고리1호기 수명만료일은 2017년 6월 18일이기 때문에 한수원은 2015년 6월 18일까지 신청서를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그렇다고 한수원이 고리1호기 폐쇄를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력정책을 총괄하는 산업통상자원부, 청와대, 대통령의 판단이 중요하다. 2차 에너지 기본 계획에 신규핵발전 11기 건설을 확정하고, 해외순방 때마다 핵발전소 수출에 열 올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은 어디에 있을까. 세월호 사고 사과 이후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이 아랍에미리트 원자로 설치행사였다. 박근혜 정부는 놀라울 정도로 박정희 정부와 닮아 있다.

고리1호기 폐쇄를 위해 행동하자

지난 1일 녹색당 당원 윤영배씨가 제주 서귀포시 한전지사 앞에서 핵발전정책 확대에 반대하는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 1일 녹색당 당원 윤영배씨가 제주 서귀포시 한전지사 앞에서 핵발전정책 확대에 반대하는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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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수 부산시장은 고리원전 1호기 수명연장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문제는 지자체가 고리1호기 폐쇄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고리1호기에 문제가 생기면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부산 시민들인데 부산시가 폐쇄에 대한 권한이 없다는 것은 큰 문제이다.

이에 정의당 김제남 의원은 지난 6월 30일 신규원전을 건설하거나 수명연장을 신청할 경우 지방자치단체장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원자력안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장하나 의원은 아예 원자력발전소 수명연장 금지법안을 발의했다. 박영선 원내대표, 문재인 대선후보, 우원식 최고위원 등 33명의 의원이 공동발의에 동참했다.

녹색당도 7월 1일, 고리1호기 폐쇄와 밀양송전탑 백지화를 위해 전국 20여 개 지역에서 동시다발 1인 시위와 정당연설회를 열었다. 천안녹색당은 한전 앞에서 정당연설회를 꾸준히 벌이고 있다. 핵 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의 '수명 다한 원전 가동 금지 청원 서명'에 참여자가 1만 2천여 명을 넘겼다. 에너지정의행동의 '낡고 위험한 고리1호기 문닫기'에도 2만 명이 서명했다.

세월호 침몰을 막기 전에 몇 번의 기회가 있었다. 전직 직원이 세월호 노후 문제를 청와대에 제보하기도 했고, 내부 문제 제기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후쿠시마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고리1호기에서 나타나는 고장과 비리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는 이유다.

한국의 핵발전소 건설을 시작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다. 그가 만든 고리1호기, 박근혜 대통령이 마무리해야 한다. 독재도, 핵발전소도 지금 여기에서 끝내야 한다. 낡은 정치시스템, 낡은 에너지시스템을 고집하면서 더이상 국민들을 불행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고리1호기 폐쇄는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고리1호기 폐쇄가 정답이다.

덧붙이는 글 | 이유진 기자는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핵없는사회를위한공동행동"에서 진행하는 수명 다한 원전 가동 금지 청원 서명운동에 참여해 주세요. http://byebyenuke.net/node/73/



태그:#녹색당, #고리1호기, #핵없는사회를 위한 공동행동, #원전비리, #후쿠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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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 기후위기 대응과 지역에너지전환을 중심으로 연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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