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최고의 선수도 팀을 최정상으로 이끌지는 못 했다. 리오넬 메시(27, 아르헨티나)가 대회 최우수선수인 골든볼을 수상하고도 조국 아르헨티나가 우승에 실패하며 웃지 못했다.

아르헨티나는 14일(이하 한국시간) 리우 데 자네이루의 마라카낭 경기장에서 열린 독일과의 2014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에서 연장 후반 괴체에게 뼈아픈 결승골을 허용하며 0-1로 패했다. 아르헨티나는 1986년 멕시코 대회 이후 28년 만에 첫 월드컵 우승을 노렸지만 천적 독일의 벽을 넘지못했다. 독일은 24년전인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결승을 시작으로 지난 2006년 독일, 2010 남아공대회 8강전과 이번 대회 결승전까지 4번이나 연속으로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꿈을 좌절시킨 악연을 이어갔다.

'메시 원맨팀'의 한계를 넘지못한 아르헨티나

이번 대회의 아르헨티나는 그야말로 메시에 의한, 메시를 위한 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르헨티나가 결승까지 올라오는데 있어서 메시의 영향력은 그야말로 절대적이었다. 지난 두 번의 월드컵에서 단 1골에 그쳤던 메시는 이번 대회에서만 무려 4골 1도움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조별리그부터 16강전까지는 무려 4경기연속 맨 오브더 매치(MOM)을 독식하는 원맨쇼를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메시의 활약은 8강전 이후로는 자취를 감췄다. 엄밀하게 따지면 16강전도 연장전 앙헬 디 마리아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하기는 했으나 경기 전반적으로는 스위스의 견고한 수비에 꽁꽁 묶이며 활약이 저조했던 경기였다. 토너먼트에 접어들며 각 팀들은 이제 어느 정도 메시 봉쇄법에 대한 대비를 마친 상태였다. 중앙에 두터운 수비블록을 형성하고 메시에게 패스가 연결되기 전에 미리 차단하거나 2~3명이 순식간에 압박을 들어가서 공을 빼앗기 일쑤였다.

메시의 침체는 동료들의 부진 탓도 크다. 곤살로 이과인, 에세키엘 라베치, 세르히오 아게로, 디 마리아 등으로 이어지는 아르헨티나의 공격진은 역대 최강이라는 찬사를 들었으나 정작 뚜껑을 열자 디 마리아 정도외에는 자기몫을 해준 선수가 거의 없었다.

대회 내내 주전 공격수로 활약했던 이과인은 벨기에와의 8강전 결승골로 유일하게 체면치레한 것외에는 시종일관 민폐 수준이었고, 독일과의 결승전에서 여러번 결정적인 찬스를 허공에 날리며 패배의 원흉이 되었다. 교체 멤버로 주로 활약한 아게로 역시 몸상태가 최악이었다. 디 마리아마저 8강전에서 당한 허벅지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한 뒤로 아르헨티나의 측면 공격은 완전히 빛을 잃었다. 카를로스 테베즈 등 지난 시즌 유럽리그에서 맹활약하며 메시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조커'들을 기용하지 않은 사베야 감독의 판단이 아쉬운 대목이다.

사베야 감독은 역대 아르헨티나 감독 중에서는 그나마 메시의 능력을 가장 잘뽑아낸 사령탑으로 꼽힌다. 사베야 감독의 구상은 메시를 중앙에서 플레이메이커에 가깝게 기용하며 안정된 수비에 의한 역습으로 승부를 노리는 패턴을 구사했다. 메시의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아르헨티나 대표팀 자체를 메시의 소속팀인 바르셀로나 스타일에 가깝게 구성했던 것이다.

차이점은 메시를 받쳐줘야 할 동료들의 활용도였다. 이번 대회의 아르헨티나는 역대 어느 대표팀보다도 수비진의 공격가담이 제한적이었다. 물론 덕분에 수비는 상당히 안정적이었다. 7경기에서 4골밖에 내주지 않았고 16강전부터 준결승까지는 3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다. 결승에서의 독일을 상대로도 전후반 90분간 실점을 허용하지않으며 잘 버텼다. 수비형 미드필더 마스체라노와 골키퍼 세르히로 로메로의 선방이 특히 빛났다.

반면 그만큼 공격은 역대 최악의 수준으로 답답했다. 공격진이 수적 열세속에 고립되는 경우가 잦다보니 원할한 패스플레이가 이루어지지않았다. 아르헨티나는 7경기에서 8골을 넣는데 그쳤고 대부분의 골이 메시의 개인능력으로 만들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만큼 경기조율과 마무리 능력까지 갖춘 메시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이란이나 스위스등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노골적인 잠그기에 돌입한 팀들을 상대로 지지부진한 공격의 한계가 드러나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8강전까지 모든 경기가 한골차 승부였고 대부분 고전하다가 경기 종반에야 간신히 이겼을만큼 아슬아슬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최전방 공격수들의 동반 부진속에 메시마저 철저히 고립된 정작 4강전과 결승전에서는 단 한 골도 뽑아내지 못했다. 점유율과 효율성 면에서도 상대팀들에게 사실상 밀린 경기들이었다. 설령 결승전까지 또다시 승부차기로 몰아간 끝에 승리를 거뒀다고 해도 아르헨티나는 상당히 인기없는 챔피언이 되었을 것이다.

메시가 이번 대회 아르헨티나 최고의 선수였다는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8강전 이후의 활약만 놓고봤을때 메시가 이번 월드컵 최고의 선수였는가 하는 점은 의문부호가 붙을 수밖에 없다. 메시의 기량은 여전히 출중했지만 그의 활약은 16강전까지에 치우쳐 있었고, 정작 중요한 토너먼트에서 상대의 집중수비에 막혀 인상적인 모습을 거의 보여주지못했다. 골든볼 수상이 확정되고도 메시가 겸연쩍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팀이 우승에 실패한 탓도 있겠지만 스스로도 골든볼을 받기에 민망한 활약을 보여줬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미 클럽축구에서 정점을 찍으며 '마라도나의 후계자'로 꼽혔던 메시는 이제 유일한 화룡점정으로 남았던 월드컵 재패의 꿈을 목전에서 놓쳤다. 물론 아직 27세에 불과한 메시는 4년 뒤 러시아월드컵을 충분히 기약할수 있다. 하지만 2000년대 초중반부터 메시와 함께 아르헨티나의 주축으로 활약하며 청소년과 올림픽 대회를 연이어 제패했던 황금세대가 전성기의 정점을 맞이하는 이번 대회에서 홈이나 다름없는 남미에서의 우승컵을 놓친 것은 메시와 아르헨티나 축구사에 두고두고 회한으로 남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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