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 군단' 독일이 역대 네 번째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다. 이로써 브라질(5회 우승)에 이어 두 번째이자 유럽에서는 이탈리아와 함께 가장 많은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나라가 됐다.

독일은 브라질 월드컵 전까지 세 차례(1954, 1974, 1990) 우승을 경험했으나 모두 통일되기 전 서독이라는 이름으로 남긴 역사였다. 특히,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의 기쁨은 그해 10월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통일의 감격으로 이어졌다.

이후 이미 세계 최강의 반열에 오른 서독과 그에 못지않은 저력을 갖춘 동독까지 가세하면서 '통일 독일'은 브라질이 부럽지 않은 더욱 막강한 축구 강호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쏟아졌다.

위르겐 클린스만, 크리스티안 지게 등의 화려한 멤버에 동독 출신의 '전설적인 리베로' 마티아스 잠머가 가세한 독일은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8강에서 탈락하며 과도기를 겪는 듯하더니 유로 1996에서 체코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화려한 전성기를 예고했다.

하지만 월드컵은 좀처럼 독일에게 우승을 허락하지 않았다. 유럽에서 열려 더욱 기대를 했던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8강에서 탈락했고, 지네딘 지단을 앞세운 '대륙의 라이벌' 개최국 프랑스가 우승을 차지하며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는 것을 질투 어린 눈길로 바라봐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독일 축구의 젖줄이라 할 수 있는 프로축구 분데스리가마저 영국 프리미어리그,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이탈리아 세리에 등에 밀려 침체기를 겪으면서 독일은 '녹슨 전차'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세계 최강 독일 축구의 젖줄 '분데스리가'

독일은 과감히 개혁에 나섰다. 뼈를 깎을 정도로 각 구단의 재정 시스템을 바꿔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토록 했고, 분데스리가의 1, 2부 리그 구단들이 모두 필수적으로 유소년 아카데미를 갖추고 시설 확충과 지도자 교육에 막대한 투자를 하면서 밑바닥부터 새롭게 다졌다.

또한 보수적인 '순혈주의'도 폐기했다. 가나 태생인 제랄드 아사모아가 흑인 최초의 대표로 발탁될 때만 해도 논란이 많았던 독일은 메수트 외질(터키), 사미 케디라(튀니지), 제롬 보아텡(가나) 등 뛰어난 실력만 갖췄다면 인종과 출신을 가리지 않고 더욱 다양하고 많은 이민자 선수들에게 대표팀의 문을 열었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독일은 미하엘 발락, 미로슬라프 클로제, 올리버 칸 등의 활약에 힘입어 준우승을 차지하며 다시 살아나는 듯했지만 유로 2004에서 충격적인 조별리그 탈락을 당하면서 또 좌절했다.

하지만 독일의 끈질긴 노력으로 인해 젊은 유망주 선수들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자국에서 열린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을 앞세워 본격적인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페어 메르데자커, 루카스 포돌스키, 필립 람 등 새로운 '황금세대'가 나타나면서 독일은 비록 우승은 놓쳤지만 3위라는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두며 성공적인 월드컵을 개최했다.

가능성을 확인한 독일은 더욱 가속 페달을 밟았고, 요하임 뢰브 감독이 지휘봉을 넘겨받은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발락, 칸 등 기존의 스타들이 완전히 물러나고 토마스 뮐러, 토니 크루스, 외질, 케디라 등 훨씬 더 젊은 선수들까지 가세하면서 독일 축구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체격 조건과 힘을 앞세워 투박하고 단조로운 축구를 하던 독일은 기술과 조직력을 겸비한 축구로 탈바꿈했다. 후방에서 올라오는 긴 패스가 아닌 중원에서의 짧고 간결한 패스로 '독일식 티키타카'를 완성했고, 남아공에서도 20대 중반의 선수들로 3위라는 성과를 거뒀다.

통일 독일, 24년 만의 결실... 이제 시작이다

2014 브라질 월드컵은 독일 축구가 추구하는 세대교체의 '화룡점정'이었다. 한 시즌이 멀다 하고 분데스리가에서는 젊은 유망주가 쏟아졌고, 이번 대회에서도 마리오 괴체, 마츠 후멜스 등 더 새로운 얼굴까지 가세했다.

20대 중반의 평균 연령, 그러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경험과 완벽한 조직력을 갖춘 독일은 알제리와의 16강전을 제외하고는 큰 무리 없이 결승까지 올랐다. 개최국 브라질과의 준결승에서는 무려 7골을 몰아치며 월드컵 역사에 남을 7-1 대승을 거두기도 했다.

그럼에도 독일은 다음 세대를 위한 준비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비록 출전 시간이 적었거나 아예 기회가 없기도 했지만 크리스토프 크라머, 마티아스 긴터, 에릭 두름, 율리안 드락슬러 20대 초반의 더 젊은 선수들에게 월드컵 무대를 경험하게 해주면서 벌써 4년 뒤 모스크바 대회를 바라보고 있다.

프리미어리그라는 최고의 리그를 갖고 있지만 자국 선수를 키우지 못한 잉글랜드, 4년 전 우승의 기쁨에 취해 세대교체를 미룬 스페인 등이 이번 대회에서 처참한 실패를 겪은 것과 비교하면 독일의 우승은 더욱 값져 보인다.

이번 월드컵 우승은 '통일 독일' 그 자체를 보여주고 있다. 스스로 장벽을 무너뜨렸고, 개혁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차별도 버렸다. 통일 후 24년 만에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룬 독일 축구의 새로운 황금기는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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