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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물 그룹홈에선 손자 같은 막둥이들도 심유양 원장을 삼촌, 그의 아내를 이모라 부른다. 아이들이 한 눈에 봐도 밝고 명랑해 보인다.
▲ 심유양 원장과 조카들 맑은물 그룹홈에선 손자 같은 막둥이들도 심유양 원장을 삼촌, 그의 아내를 이모라 부른다. 아이들이 한 눈에 봐도 밝고 명랑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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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대림동산의 한 아파트에 조카 여섯 명과 7년을 같이 살아온 부부가 있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가정집인데, 조카들은 유치원생부터 대학생까지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기에 그럴까. 지난 11일, 그들의 집을 찾았다.

"우리 삼촌은 할아버지 같아요"

이집에 들어서면 당장 느낄 수 있다. 조카들이 아주 밝고 활발해서 수다스럽기까지 하다는 것을. 막 학교에 갔다 온 한 조카가 "삼촌, 학교 갔다 왔습니다"라고 인사하기가 무섭게 "삼촌, 밥 주세요"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평소 조카들이 눈칫밥은 먹지 않는다는 증거인 듯하다.

또 다른 조카가 "이모, 이거 어떻게 해요"란다. 헉! 분명 이집주인들은 부부인 거 같은데, 웬 이모? 그 이모는 마치 엄마처럼 조카의 질문에 대답하고, 무엇인가 챙겨준다. 분위기는 일반 가정집에서 엄마가 자녀를 챙겨주는 모습이다.

그 집 조카 중에 유치원생과 초등학교 1학년생은 삼촌에게 "삼촌은 할아버지 같아요"라고 말하곤 한단다. 왜? 삼촌의 손이 쭈글쭈글하고, 이마에 주름살이 있으니까. 그럴 때면 사연을 잘 아는 큰 조카들은 그저 웃기만 한단다.

대학 진학한 조카는 이집의 자랑

이들이 처음 같이 살기로 한 건 2007년 3월이었다. 초창기 3명에서 점차 다른 조카들이 들어왔다. 지금 현재는 6명의 조카가 이 부부와 함께 살고 있다.

이 집의 삼촌은 심유양(62)씨다. 그에게도 아내와 올해 27세가 된 아들이 있다. 실내 2층에는 그의 가족이 살고, 실내 1층에는 조카들이 산다. 이들은 부엌을 공유하며 같이 살고 있다. 그렇다. 말 그대로 한 식구(한 집에서 같이 먹는 사이)다.

올해 좋은 일이 있었다. 김영혁(가명)군이 대학교에 진학했다. 그것도 취업이 잘 된다는 간호학과로 입학했다. 조카들은 영혁군을 향해 말했다. "형은 우리 집의 자랑이야"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영혁군의 모범이 동생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될까 싶다.

영혁군은 사실 이집의 자랑이자 삼촌의 보람이기도 했다. 처음 이 집에 올 때, 중학생이었던 조카가 이제 대학에 진학했다. 그것도 장학금을 받고 대학을 다닌다. "내가 이 맛에 조카들을 키운다"라는 그의 얼굴이 흐뭇한 '아빠 미소'로 빛났다.

"그동안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살았어요"

사실 이곳은 청소년그룹홈(공동생활가정)이다. 보육원과 같은 대규모 시설에서의 약점(아이들 각자에게 맞춤형 사랑과 관심을 주기 어려움)을 보완해 공동가정에서 함께 살라고 정부에서 지원하는 가정이다. 말하자면 '대안가정'인 셈이다.

아이들이 삼촌이라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심 원장은 "아이들이 친부모와 우리를 혼동하지 않기를 바랐고, 우리는 그들의 친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를 회복시켜주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아이들을 배려했다"라고 말했다. 덕분에 6세 꼬맹이가 입소해도 여전히 '삼촌과 이모'는 유효해진 셈이다.

심 원장에게 요즘 고민이 생겼다. 초창기 때부터 같이 살았던 김영민(가명, 중3) 군이 한참 사춘기를 앓고 있어서다. 전문상담도 받게 하지만, 좀처럼 영민군이 사춘기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자신이 어떻게 해 줄 수가 없어 한계를 느낀다고 했다.

"막둥이 가람군(가명, 6세)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자신의 친엄마와 헤어졌고, 간혹 '우리 엄마는 나를 언제 데리러 와요'란 말을 들으면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프다."(심 원장)

또한 이집은 늘 이웃과의 관계가 무척 조심스럽다. 아이들 때문에 이웃과 함부로 말다툼하기도 어려웠다. 혹시나 아래층 사람들이 이사를 가면 이 부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혹시 우리 집 때문에 이사 가나. 또 어떤 사람들이 이사 와서 우리 집과 잘 지낼까." 이런 말을 하는 심유양씨는 "그동안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살아왔다"며 지난날을 털어놨다.

"아이들은 무엇보다 자립이 중요해"

2007년 3월부터 조카들을 받아 자신의 집에서 현재 6명의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다. 아이들은 그에게 삼촌, 그의 부인에겐 이모라 부르며,  친부모처럼 따르고 있다.  아이들을 단순히 양육하는 걸 넘어서 자립하게  하는 것이 최대의 숙제라고 그는 말했다.
▲ 심유양원장 2007년 3월부터 조카들을 받아 자신의 집에서 현재 6명의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다. 아이들은 그에게 삼촌, 그의 부인에겐 이모라 부르며, 친부모처럼 따르고 있다. 아이들을 단순히 양육하는 걸 넘어서 자립하게 하는 것이 최대의 숙제라고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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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62세인 심원장은 4년 후면 정년퇴임한다. 조카들은 아직 어리고, 해줘야 할 게 많은데, 4년 후면 자신이 퇴임을 한다. 턱없이 적은 급여 (사회복지사 1호봉도 안 되는)로 인해 자신의 노후대책도 불안하고, 원장이 교체가 되면 아이들의 미래도 불투명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이집 이름은 '맑은물 그룹홈'이다. 이유가 뭘까. "아이들이 샘솟는 맑은 물처럼 잘 자라나서, 때가 되면 바다로 흘러가는 자립적인 아이들이 되라"라는 뜻이라고 했다. 이름처럼 심 원장은 아이들을 단순히 양육하는 것을 넘어서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랬다. 삼촌과 이모는 단순히 아이들을 양육만 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의 과거의 상처를 치유해주고, 미래를 찾아주는 사람들이었다. 오늘도 이집은 6명의 조카와 삼촌(이모)이 지지고 볶으며 재밌게 살아가고 있다.


태그:#그룹홈, #맑은물그룹홈, #청소년, #공동생활가정,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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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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