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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때 청소년운동부터 최근 알바연대 등 사회단체 활동을 활발히 해 온 박정훈씨(27세)가 군입대일인 2013년 10월 8일 오전 서울 대한문앞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선언하는 모습.
▲ 병역거부 선언 "노동과 민주주의가 없는 국가의 군인이 될 수 없습니다" 10대때 청소년운동부터 최근 알바연대 등 사회단체 활동을 활발히 해 온 박정훈씨(27세)가 군입대일인 2013년 10월 8일 오전 서울 대한문앞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선언하는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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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서 유죄 판결을 내렸다. 누구나 예상했던 일이다. 한국에서만 한 해 병역을 거부한 600여 명의 징집 대상자가 예외 없이 실형을 선고받고 구치소나 교도소에 갇히기 때문이다. 이 중 절대다수가 '여호와의 증인' 신도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종교적 신념에 따른 입영 거부행위가 병역법의 처벌 예외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한 바 있다"고 했다. 또한 "유엔자유권규약위원회가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하라는 권고안을 제시했다고 해도 이것이 법적 구속력을 갖는 건 아니다"라고 밝혔다.

사실 병역거부에 관한 이야기는 10년 넘게 반복되고 있다. 그동안 몇몇 판사들은 하급심에서나마 무죄 판결을 내리기도 했고, 헌법재판소는 2004년에 "우리 사회가 이제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하여 이해와 관용을 보일 정도로 성숙한 사회가 되었는지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것"(2004. 8. 26. 2002헌가1)이라며 국회에서 대체입법을 논의하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2007년 9월에는 국방부가 "전과자를 양산하는 현재의 제도는 어떤 방식으로라도 해결"해야 한다며 "병역거부자에게 대체복무제를 허용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19일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8%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대체복무제를 허용하는 것에 대해 찬성을 표했다.

내가 병역을 거부한 이유

나는 재작년에 병역을 거부했다. 내 나이 서른 살이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이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두렵기보다 후련했다. 10년 묵은 고민이 이제 해결된다는 안도감이었다.

주변 친구들이 빨리 입대해서 인생의 숙제를 해결해 버리고 싶은 마음처럼 나도 병역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10년 안에는 어떤 형태로든 군사훈련이 없는 대체복무가 생길 거라고 믿었다. 때마다 날아오는 입영통지서에 가슴이 두근거리면서도 10년을 견딘 이유였다.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던 내가 군생활을 잘 견뎌낼지 자주 걱정하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체력훈련을 하는 셈 치고 다녀오겠다고 답했다. 이왕이면 더 멋있어 보이는 사관학교 진학도 고려했고,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ROTC도 괜찮아 보였다. 고등학교 때는 공수부대와 해병대를 동경하기도 했다. 나는 주먹이 세고 싸움을 잘하는 '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군대가 그렇게 만들어 주리라 믿었다.

아마도 서울에 올라오지 않았다면, 그래서 병역거부 운동을 만나지 못했다면, 집회에 나가 전의경이 시민을 어떻게 진압하는지 못 봤다면(이건 개별 전의경이 문제가 아니라 그 상급자의 문제이지만), 이라크에 전쟁에 한국군이 파병되지 않았다면, 평택 미군기지 확장을 위해 마을 주민에게 '작전'을 펼치지 않았다면, 공장과 철거촌에서 경찰이 진압봉을 휘두르지 않았다면, 나는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가 겪은 군대와 공권력은 시민을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 아니었다.

나의 바람은 특이한 것이 아니다. 우리 국민 모두는 침략이 아니라 평화를 수호하는 군대가 되기를 바란다. 시민의 생명과 인권을 군이 지켜주기를 희망한다. 그런데 현실 속 군대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 친구의 말대로 일단 군대를 제대한 후에 이 사회의 '권력'을 얻어내 군대를 바꾸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은 불가능에 가깝다. 가장 손쉬운 방법이 바로 병역 거부다.

여기까지가 내가 병역거부를 한 사연이다. 하지만 모든 병역거부자가 같은 생각인 건 아니다. 제각각이다. 또 내가 10년 동안 대체복무제를 기다린 건 전과자가 되기 싫어서였다. 감옥이 좋은 선택지가 아니었을 뿐더러 전과자가 되어 부모님 마음에 멍에를 지게 만드는 일도 가혹했다.

얼마 전 지인 한 명이 병역거부로 수감됐다. 자연스럽게 내가 수감된 날이 떠올랐다. 2012년 2월 우리 방의 수감자들은 '군기'가 바짝 들어 있었고, '봉사원'이라는 직책을 맡은 방장이 자신의 편의대로 우리를 부렸다. 다리를 펴서 앉아도 안 되고, 마음대로 이야기를 할 수도 없었다. 그에게 '딴지'를 건 날에는 큰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8평 남짓한 공간에서 십여 명이 내게 적대적으로 대하는 것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아주 대단한 '깡다구'를 지니지 못한 나는 그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 쳤다. 조금씩 그 질서에 익숙해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거기에 적응하는 스스로가 혐오스러웠다. 그 방을 벗어나고도 예전의 내 모습을 찾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까짓 거, 난 이미 감옥도 다녀왔는데 대체복무제가 되든 말든 무슨 상관이랴? 난 사람들의 정치적 상상력이 더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까짓 거, 난 이미 감옥도 다녀왔는데 대체복무제가 되든 말든 무슨 상관이랴? 난 사람들의 정치적 상상력이 더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 청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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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와 국가를 잘근잘근 씹어대자

국민들이 여러 문제를 알면서도 군대를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안전한 나라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생명이나마 편안하게 보존하고 싶은 기본 욕구다. 그러나 이 나라 국민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미사일을 쏴대는 북한만이 아니다.

군인들은 비전투 상황에서도 한 해 100명 이상이 죽는다. 노동자들은 산업재해로 작년에만 1929명이 사망했다. 장애인과 노인은 복지 시스템의 부재 속에서 빈곤에 허덕인다. 하지만 국민의 생명을 지킨다는 군대가 할 수 있는 일은 안보 영역에 국한돼 있다. 전시 때보다 3배나 많다는 병력을 국민 생명과 밀접한 분야에서 복무하도록 조정하면 어떨까.

지난 4일 병역거부자들의 이야기를 모은 책 <우리는 군대를 거부한다> 출간기념회에서는 대체복무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병역거부자들은 '24시간 장애인활동보조인', '(군사훈련을 받지 않는) 의무소방', '지뢰제거', '병원 및 시설에서의 간병 활동' 등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제도를 확대하면 우리의 복지수준을 높일 수도 있을 거다. 매번 병역거부자의 처벌이 합헌이라는 소리만 되뇌면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

까짓 거, 난 이미 감옥도 다녀왔는데 대체복무제가 되든 말든 무슨 상관이랴? 난 사람들의 정치적 상상력이 더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요즘 사극 <정도전>이 재밌다길래 '정주행'을 시작했다.

왕의 얼굴을 똑바로 못 쳐다보는 그 시대에도 못 살겠다 싶으면 농기구를 들고 반란을 일으켰다. 척신들이 부와 권력을 휘어잡고 제 잇속을 차리면 개혁이든 혁명이든 꿈꾸는 것이 올바른 선비의 도리다. 그 때보다 500년이 지난 이 시점에 있는 우리의 상상력은  왜 이들에게 못 미치는 것일까.

평화활동가 안드레아스 스펙은 국가가 병역의무는 물론 대체복무를 국민에게 부과하는 것까지를 거부한다. 스위스에서는 '군대해산안'이 국민투표에 부쳐지기도 했다. 코스타리카는 군대가 아예 없다. 물론 이들과 우리의 상황은 다르다.

그러나 얼마나 다른지 따지기 전에 이런 문제를 제기하면 나라를 떠나라고 요구한다. 국민이기를 포기하라고. 그래서 사회가 열 발짝 변할 동안 군대는 겨우 한 발짝 변했다.

우리 좀 더 군대와 국가를 잘근잘근, 쩝쩝 씹어대자. 국가가 한 달 10만 원으로 사람을 이렇게 부려먹어도 되는 거냐고, 이따위로 대하면 나도 때려치우겠다고 얘기하자. 군대가 국민을 지키고 있는 게 아니라 권력자를 지키는 건 아닌지 의심해 보자.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주는 게 아니라 당신의 호주머니를 털고 있는 건 아닌지 따져보자.

말이 안 된다고? 오히려 말이 안 되는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이 찬성표를 던질지 모른다.


태그:#병역거부, #인권, #대체복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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