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실라 의 한 장면

▲ 프리실라 의 한 장면 ⓒ 박정환


작년과 달리 올 여름 뮤지컬계는 국내 초연작이 천연기념물이 되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혹은 작년 연말에 야심차게 기획한 <디셈버>와 <태양왕>이 혹평으로 융단폭격을 받은지라, 올 뮤지컬 라인업은 새로운 작품을 들여오기보다는 검증된 리바이벌 작품으로 라인업을 가겠다는 안전주의가 만연한 게 사실이다. 오늘 소개하는 <프리실라>는 <드라큘라>와 <싱잉인더레인>처럼 올 여름 몇 안 되는 국내 초연작 가운데 한 작품이다.

<프리실라>는 시대적 조류를 잘 탄 작품이다. 만일 이 작품이 호주에서 영화로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되어 뮤지컬로 만들어졌고, 다시 이를 1990년대에 재빨리 국내에 들여왔다면 정서적으로 뭇매를 맞았을 가능성이 큰 작품이기에 그렇다. 프레스콜 이후 조권의 코르셋 사진 기사에 달린 악플 사태만 보더라도 성소수자에 대한 시각이 아직도 불편한 게 많은 게 요즘일진대, 당시에는 보수적인 시각이 전반적인 사회적 시각을 대변했던 시기인지라 너무 빨리 뮤지컬로 만들어지지 않은 게 다행일지도 모르는 작품이다.

<프리실라>는 성소수자의 비애가 내포된 작품이다. 트랜스젠더 버나뎃은 극이 시작하자마자 남편을 잃는다. 주인공 틱은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 때문에 아들과 대면하는 걸 두려워한다. 동성애자로 알려진 록 허드슨이 1980년대에 에이즈로 목숨을 잃으면서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은 에이즈라는 공포와 연관되어 동성애자를 배척하는 데 일조한다.

프리실라 의 한 장면

▲ 프리실라 의 한 장면 ⓒ 박정환


하지만 극의 이야기는 이러한 상실의 정서, 혹은 사회적인 편견을 부각하지 않는다. 상실의 정서라는 어두움은 무대 뒤로 퇴장시킨 채 긍정의 에너지로 무대 위를 하나 가득 채운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가족공동체에서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성소수자를 다양성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관용의 정신도 극 가운데서 일어볼 수 있다.

게이라는 사실을 어린 아들에게 숨겨야 하는 틱의 비애는 영화 <무간도>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듯하다. <무간도>에서 진영인을 연기하는 양조위는 홍콩 경찰이지만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삼합회에서 신뢰받는 조직원의 삶을 산다. 경찰이라는 자신의 원래 정체성을 숨기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프리실라>의 틱은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아들이 아는 걸 바라지 않는다. 게이라는 정체성을 아들이 아는 걸 두려워하는 지점으로부터 <무간도> 속 양조위와 공유점을 갖는다.

<프리실라>는 '퀵 체인지'로 고나객의 시선을 사로잡기도 한다. 알다시피 변검은 중국 경극에서 순식간에 가면이 바뀌는 걸 뜻하는 용어다. <프리실라>의 2막은 틱의 일행이 공연하는 가운데서 순식간에 배우의 복장이 뒤바뀐다. 마치 변검처럼 말이다. 2막 후반부의 설정은 극중극이다. 틱의 일행이 틱의 전부인의 요청으로 공연을 펼치는데, 세 명의 배우는 무대를 등진 채 극중 관객에게 쇼를 펼친다. 등을 돌린 배우의 뒤로 큰 커튼이 지나가는데, 이 커튼이 지나간 다음에는 순식간에 배우의 복장이 바뀐다.

뮤지컬 무대에서 립싱크는 용인할 수 없는 관객에 대한 모독이다. <프리실라>는 대놓고 립싱크를 한다. 하지만 관객이 화를 내기는커녕 즐거워한다. 배우의 립싱크가 의외의 즐거움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립싱크가 나오지만 압권은 아담을 연기하는 조권이 버스 위에서 오페라를 부르는 립싱크다. 관객을 즐겁게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고안한 립싱크가 아닐 수 없다.

조권은 연기를 위해 교태를 무대 위에 뚝뚝 흘리고 다닌다. 흐느적거리는 듯한 손짓과 발짓은 관객이 보기에 진짜 게이가 아닌가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브래지어와 속옷만 입고 등장할 때에는 여성 관객의 탄성이 공연장의 천장을 찌르기에 충분했다. 가발을 쓰고 남자들을 유혹할 때에는 '내가 아는 조권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자보다 미모를 자랑하기도 한다.

<프리실라>로 뮤지컬 무대에 처음 데뷔하는 조성하는 의외의 연기를 자랑한다. 선 굵은 연기를 자랑하는 배우지만 이번에는 사랑에 웃고 우는 지고지순한 여인을 연기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앞에 있을 때는 두근대는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쑥스러워한다. 아담을 연기하는 조권과 티격태격하면서도 그를 정말로 미워하는 게 아니라 친언니와 동생이 다투는 것처럼 정감 있는 다툼을 보여준다. 욕을 입에 달고 살지만 욕이 거칠지 않고 욕쟁이 할머니의 욕처럼 찰지게 느껴진다.
프리실라 의 한 장면

▲ 프리실라 의 한 장면 ⓒ 박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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