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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이다. 지난 반만년 역사를 돌이켜 보면 우리 민족, 나아가 한국과 동북아 국가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평화다. 한반도와 그를 둘러싼 주변국들의 역사로부터 우리가 배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전쟁은 가치있는 모두를 파괴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전쟁은 물리쳐야 할 것이며 평화는 이룩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2014년 한반도를 둘러싼 여러 나라들은 역사의 교훈을 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가 동북아시아 전체를 긴장상태에 몰아넣고 있으며 북한과 러시아, 일본 등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이러한 모습은 동북아가 마치 백여년 전 제국주의 국가들의 각축장이 되어 끊이지 않는 전란으로 고통받았던 그 시절로 되돌아간 듯 보이기까지 한다.

동북아 여러나라 가운데서도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복잡하고 미묘하다. 기본적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긴밀한 군사적, 경제적 협조관계를 맺고 있는 양국이지만 끊임없는 과거사 분쟁과 영토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의 집권 이래 야스쿠니 신사참배, 독도 영유권 도발, 일본군 위안부 문제 왜곡, 거짓된 역사교과서 출판 등 역사인식이 퇴행하고 사회 전반이 우경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은 마침내 지난 1일 '평화 헌법'이라 불리던 헌법 9조의 해석을 각의에서 수정하고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 갈수록 한일관계가 경색되고 있는 현재의 흐름은 동북아 전체의 군사적, 정치적 긴장을 높이고 세력 균형을 불안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는 동북아가 나아가야 할 유일한 목적, 즉 평화의 달성을 어렵게 만들며 전쟁의 위험을 가중시킨다. 따라서 동북아의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 개선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역사문제가 전면에 등장한다. 양국이 가진 역사인식의 차이가 양국관계의 개선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역사는 타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일본이 지금과 같이 왜곡된 역사인식을 관철하려 한다면 양국의 관계개선은 요원한 일이다. 그러나 두 나라의 관계개선이 한반도, 나아가 동북아의 평화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에 우리는 이 문제의 돌파구를 마련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민간의 영역에서 나설 필요가 있다. 민간의 적극적인 교류와 그를 통한 이해는 두 나라 사이의 긴장을 완화시킴은 물론 난관에 봉착해있는 역사와 영토의 문제에서까지 의외의 해결책을 찾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평화헌법 9조를 지키려는 시민단체 '9조의 모임'이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오에 겐자부로와 지금은 세상을 떠난 문학평론가 가토 슈이치에 의해 만들어진 이 단체는 고이즈미 정권이 이라크 파병을 하던 2004년 무렵 발족해 일본의 전후체제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대표적인 풀뿌리 시민단체로 성장한 모임이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각의 결정이 이뤄지기 직전인 지난달 10일에는 9조의 모임과 한국의 10여 개 시민단체가 연대하여 일본 정부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평화에 대한 의식을 교류한 바도 있다. 이처럼 양국의 좁혀지지 않는 입장차를 민간의 영역에서부터 좁혀간다면 민주주의 체제하의 두 나라가 같은 길을 걷게 될 날도 오고야 말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 평화와 번영이라는 공존의 땅이 있을 것임을 나는 확신하고 또 확신한다.


태그:#오에 겐자부로, #가토 슈이치, #9조의 모임, #단재 신채호, #아베 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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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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