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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왜 너구리가 안 왔을까?"
"응, 방향을 바꿔서."
"아니, 아이들이 무서워할까봐 안온 건데."
"아, 그래."
"나는 엄마가 있어서 하나도 안 무서운데."

지난 10일, 콩이의 다섯 번째 생일이다. 콩이는 한 달 전부터 생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달력에 색연필로 동그라미를 쳐서 날짜를 세면서. 큰 피해를 줄 것 같은 태풍 '너구리'가 한반도를 비켜 지나갔다. 유치원에 다녀온 콩이가 대뜸 하는 말이다. 엄마가 있어서 '너구리'가 와도 안 무서운데, 왜 오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무서워할까 봐 태풍 너구리가 다른 곳으로 갔다'라고 선생님에게 들은 모양이다.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순수해진다. 하루를 즐겁게 하는 방법 중의 하나, "어린아이처럼 하루를 시작하라". 잠자리가 나는 것을 보고 부끄러워서 도망간다고 생각하는 콩이와의 즐거운 하루가 시작이다.

콩이의 다섯 번째 생일이다.
▲ 장난꾸러기 콩이의 다섯 번째 생일이다.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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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이는 아침 일찍 일어나 친구들에게 줄 선물 준비에 바쁘다. 비닐팩에 쿠키를 넣고 이름을 써넣는다. 하나하나 정성을 다한다. 공주처럼 드레스도 입었다. 머리에는 공주님 왕관도 쓰고 반짝반짝 빛이 나는 새 구두를 신고 방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덩달아 나 역시 흥분된다.

한바탕 난리를 치고 유치원에 갔다. 유치원 선생님도 아이들에게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고 싶은 생각이 있는 모양이다. 원장의 불가 방침에도 생일 파티를 간단하게 열어준다. 케이크는 엄마가 준비하고 사진도 찍고 선물은 친구들이 주도록 한다.

콩이가 친구들이 쓴 생일 축하편지를 읽고 있다. '하은아 사랑해 친하게 지내자'
▲ 생일 축하편지 콩이가 친구들이 쓴 생일 축하편지를 읽고 있다. '하은아 사랑해 친하게 지내자'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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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이의 생일은  집에서도 유치원에서도 최고의 날이다. 집에 돌아와서도 파티 열기가 식지 않은 모양이다. 가져온 선물을 손도 되지 못하게 한다. 하나씩 포장을 뜯으며 좋아한다.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정민이가 이렇게 좋은 선물을 주다니. 어, 할아버지 팬티야, 팬티..."

콩이의 유치원 친구들이 편지를 쓰고 선물을 했다. 지금은 유치원 다닐 때부터 편지를 쓴다.
▲ 생일 축하 편지와 선물 콩이의 유치원 친구들이 편지를 쓰고 선물을 했다. 지금은 유치원 다닐 때부터 편지를 쓴다.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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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추억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백설공주나 신데렐라 앞에 나타난 왕자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이성 친구에게 보여주고 싶은 당당한 모습일 것이다. 도시에서 이사 온 소녀와 시골 소년의 못다 한 사랑 이야기 같은 것도 가슴 속에 묻어두고 있는 애틋한 추억거리다.

여름철이면 신과 들에서 뛰어놀거나 실개천에서 멱감던 일, 매미며 잠자리 잡던 일도 지워지지 않는 추억 중의 하나다. 당시에는 느끼지 못 했던 즐거움이다. 인생의 가장 절정은 이런 청소년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생일을 무척 기다렸다. 마땅한 먹거리도 없고 파티라는 것은 생각도 못할 때다. 배고픔을 면하는 것이 우선인 시대다. 어머니는 시루떡을 만들어 자신이 믿는 신(천신, 지신, 조왕신)에게 아들이 잘 되기를 빌어 주셨다. 그러고 나서 가족과 이웃, 친구들과 나누어 먹곤 했다.

어른이 된 지금에야 그 추억이 소중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다. 콩이와 콩콩이의 추억을 꾸밈없이 기록해 간다. 지금은 달라진 아이들의 교육제도, 놀이문화, 가족관계 등을 50~60 년 전과 비교한다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 어머니의 자녀에 대한 사랑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태그:#콩이, #하부지의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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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며 삶의 의욕을 찾습니다. 산과 환경에 대하여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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