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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 진상을 처음으로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기록한 책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증보판이 내년 5월 간행된다. 지난 1985년 5월 초판 간행 당시 책의 표지와 수첩의 모습 (팜플릿 캡쳐 사진)
 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 진상을 처음으로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기록한 책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증보판이 내년 5월 간행된다. 지난 1985년 5월 초판 간행 당시 책의 표지와 수첩의 모습 (팜플릿 캡쳐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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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10월초 어느 날 트럭 한 대가 전남 광주 천변을 유유히 달리고 있었다. 운전을 하던 정상용씨(64·전 국회의원)가 옆 조수석에 앉아있던 이재의(58·전남나노바이오연구원 원장)씨를 향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이 일은 자네가 좀 맡아줘야겠네."

정상용씨는 1980년 5·18 민중항쟁 당시 시민군 지도부로 활동하다 붙잡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년 반가량 옥고를 치렀다. 출소 후 그는 80년 5월 광주에서 10일간 진행된 항쟁의 기록을 책으로 출간하자는 동지들의 제안에 따라 집필자를 찾고 있었다. 전남대 복적생인 이재의씨가 적격자로 선택된 것이다. 이씨 역시 5·18 항쟁 당시 시민군 본부이자 마지막 항쟁 거점이던 옛 전남도청에서 활동하다 9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5·18 진상규명을 위해서는 항쟁 자료를 모아 국민들에게 알리는 작업이 필요했지만, 전두환 신군부의 서슬 퍼런 칼날이 살아있는 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집필 작업을 제안하는 것조차 감시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 달리는 트럭을 이용하는 등 비밀리에 진행해야 했다. 집필 제안을 받은 이재의씨는 고민에 빠졌다.

"그 제안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잘 알고 있었다. (전두환 신군부에) 들통이 나면 100% 감옥행이었다. 잔인한 고문은 물론 (형량이) 적게 나와도 3년, 많이 나오면 5년 정도는 다시 감옥에서 썩는 것을 각오해야 했다. 과연 신분이 노출되지 않고 작업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두환정권이 설마 죽이기야 하겠느냐는 마음으로 결심"

게다가 이씨는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이었다. 자칫하면 신혼 생활은커녕 전두환 정권 내내 감옥에 있어야 할 판이었다. 이씨는 확답을 하지 못하고 트럭에서 내렸다. 그러나 80년 5월 항쟁 기간 현장에서 목격한 장면들이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틀 만에 정씨를 찾아간 그는 집필 작업을 맡겠다고 답했다. 그는 "전두환 정권이 설마 그것 가지고 사람을 죽이기야 하겠느냐, 하는 마음에 일을 맡기로 결심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씨는 85년 1월 초부터 광주고 동창인 조양훈씨와 함께 집필을 시작해 3개월 만에 원고를 완성했다. 정상용씨는 이재의씨 등을 보호하기 위해 소설가 황석영씨에게 집필자로 나서줄 것을 부탁했다. 출판은 광주 출신인 나병식 풀빛출판사 대표가 감당하기로 했다.

황석영씨는 풀빛출판사 인근 여관에서 한 달 남짓 두문불출하며 원고를 가다듬었고, 문병란 시인의 시 '부활의 노래'에서 따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아래 <넘어넘어>)란 책 제목도 붙였다. 황씨는 머리말과 서문에 해당되는 '역량의 성숙' 부분을 직접 쓰기도 했다. 정상용씨는 "당시 황 작가가 자료 수집과 집필 등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방패막이 역할을 한 것은 대단한 용기였고, 항상 감사하다"고 회상했다.

우여곡절 끝에 5·18 광주민중항쟁의 진상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기록한 최초의 공식 출판물 <넘어넘어>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책이 나오자마자 1~2만여 권이 압수당했다. 황석영씨는 수사기관에 연행되고 나병식 대표는 구속되는 등 고난이 이어졌다. 그러나 표지 디자인 없는 백지로 다시 찍은 초판은 전국의 서점에서 비밀리에 팔리며 '지하 베스트셀러'가 됐다.

<넘어넘어>는 1985년 10월 일본에서 '광주 5월 민중항쟁의 기록'이라는 제목으로 일본어본이 출판됐다. 영문본은 1999년 '광주일지: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Kwangju Diary: Beyond Death, Beyond the Darkness of the Age)라는 제목(번역자: 설갑수, 닉 마마타스)으로 미국 UCLA대학(캘리포니아) 출판부에서 출간, 세계인들에게 광주 민중항쟁의 진실을 알렸다.

정상용씨는 <넘어넘어> 증보판을 내기 위해 사람들을 모아 지난 8일 간행위원회를 발족하고 위원장을 맡았다. 간행위원회는 <넘어넘어> 출간 30주년을 맞는 2015년 5월까지 증보판을 발간하고, 출판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2쇄 출간이 정지된 영문본도 재출간을 추진할 계획이다. ( 관련 기사) 증보판 제작을 위한 비용은 시민 후원금으로 마련할 예정이다. ( 간행위원회 바로가기)

광주항쟁 당시 미 국무부와 주한 미 대사관 사이의 통신문건을 입수해 단독 보도했던 미국 탐사보도 저널리스트 팀 샤록, 미국의 정치경제 평론가 더그 헨우드, 미국 월간지 더 프로그레시브(The Progressive)의 편집장 매트 로츠차일드 등 10여명의 해외 저널리스트와 학자 등도 증보판 지지 메시지를 보냈다.

다음은 <넘어넘어> 출간의 산 증인인 정상용씨와 지난 10일 진행한 일문일답 요지.

"5.18 항쟁 폄하 예상은 했지만... 박근혜정부 들어 극심해져"

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 진상을 처음으로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기록한 책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증보판이 내년 5월 간행된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증보판 간행위원회(위원장 정상용)는 8일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우리 사회 보수화의 흐름을 등에 업고 일부에서 5월 항쟁의 북한 사주설을 제기하고 항쟁 참여자를 비하하는 등 5·18 정신을 훼손하고 있다"며 "5월 항쟁의 순수성을 국민 앞에 다시 한번 알리고자 증보판을 발행키로 했다"고 말했다.
 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 진상을 처음으로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기록한 책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증보판이 내년 5월 간행된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증보판 간행위원회(위원장 정상용)는 8일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우리 사회 보수화의 흐름을 등에 업고 일부에서 5월 항쟁의 북한 사주설을 제기하고 항쟁 참여자를 비하하는 등 5·18 정신을 훼손하고 있다"며 "5월 항쟁의 순수성을 국민 앞에 다시 한번 알리고자 증보판을 발행키로 했다"고 말했다.
ⓒ 증보판간행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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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4년 10월 이재의씨를 만나 처음으로 집필을 제의했는데. 
"<넘어넘어>는 여러 사람이 비밀리에 확보하고 있던 자료와 기록을 모아 만든 책이다. (80년 5월 항쟁으로) 구속됐다가 석방된 정용화(61·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상임대표)씨, 조봉훈(62·전 광주시의원)씨 등이 자료를 모아 몰래 소장하고 있었고, 자료 정리는 소준섭(55·국회도서관 조사관) 박사가 맡았다. 80년 11월부터 81년 7월 초까지 5·18 관련자들과 가족 등의 목격담·일기·성명서·병원 진료기록·판결문·공소장·사진 등을 모은 것이다.

정용화씨가 5·18 민중항쟁의 진상을 알리기 위해 책을 내자고 처음 제안했다. 자료는 모았는데 집필 작업을 할 사람을 물색하던 차에 이재의씨를 알게 됐다. 당시에는 서로 만나는 것도 조심해야 했기 때문에 제가 가지고 있던 트럭에 이재의씨를 태우고 운전해가면서 제안을 했다. '비밀리에 집필을 해야 한다. 들통이 나면 구속까지 될 수 있는데, 할 수 있겠느냐'고. 결혼을 앞두고 있던 이재의씨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흔쾌히 수락을 하더라."

- <넘어넘어> 증보판을 출간하기로 한 배경은?
"1980년 5월 항쟁 당시는 '내란'으로 규정되었지만, 6월 항쟁 이후 1988년 노태우 정부 때 국회 광주청문회를 거치면서 '민주화운동'으로 수정됐다. 그 과정에서 항쟁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들이 추가로 드러났다. 그러나 초판의 내용을 보완하는 증보판이 아직 나오지 못했다.

특히 몇 해 전부터 5월 항쟁의 북한사주설, 항쟁 참여자 비하 등 5·18정신을 훼손하고 지역감정을 조장하려는 반민주적인 행위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5월 항쟁으로 표출된 광주시민의 민주화 의지와 폭력적인 군부 쿠데타 세력에 맞선 헌신적인 항쟁을 폄하하려는 술책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증보판 발간이 필요했다."

- 최근 5·18 정신을 훼손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나?
"그 전에도 5·18 항쟁을 폄하하려는 사람들, 극우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왜 없었겠나. 그러나 민주화 운동으로 평가 받으면서 입을 열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정부 들어서면서 입을 열기 시작했고, 박근혜정부 들어서 극심해졌다.

예상은 했지만 이젠 그냥 두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해졌다. 현 정권의 경향이나 속성에 편승하는 것 아니겠나. 앞으로도 계속되리라 본다. 간행위원회 이름으로 그런 행위에 적극로 대응할 것이다. 절대 간과하지 않겠다."

- <넘어넘어>가 출간된 지 29년이 흘렀다. 증보판 발간 작업을 하면서 감회가 새로울 것 같은데.
"5·18 민중항쟁은 몇몇 사람이 주도하거나 관여한 항쟁이 아니다. 군부독재에 항거하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항쟁이었다. 70만 광주시민 중 성인들은 거의 다 참여했다. 10일의 항쟁 기간 동안 모두 사심을 버리고 함께 하나가 된 대동의 시간이었다. 직접 투쟁에 참여했던 사람이나 그것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렸던 사람이나 모두 함께 했던 운동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마치 일부 사람들만 참여한 것으로 왜곡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민주의식을 보여준 항쟁인데, 시민들과 자꾸 거리감이 생기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증보판을 만들기 위해 증언도 받고 자료도 확보하는데, 당시 총을 들고 싸웠던 시민, 헌혈을 하고 주먹밥을 날랐던 시민, 함께 눈물을 흘렸던 많은 시민이 모두 함께 해주기를 바란다."

- 증보판을 발간하는 것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많은 시민이 참여하는 과정을 통해서 5월 정신을 되찾는 것이 목표라는 의미인가?
"그렇다. 다시 5월 항쟁 당시로 돌아가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관심을 갖는, 시민운동의 차원으로 참여했으면 좋겠다."

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 진상을 처음으로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기록한 책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증보판이 내년 5월 간행된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증보판 간행위원회 정상용 위원장이 8일 광주시의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 진상을 처음으로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기록한 책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증보판이 내년 5월 간행된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증보판 간행위원회 정상용 위원장이 8일 광주시의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증보판 간행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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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판 발간 등에 상당한 비용... 시민들의 참여와 모금이 절실"

- 증보판에 새롭게 추가되는 내용은?
"80년 5월 27일 새벽 도청에 모여 있던 시민군의 가슴을 울린 가두방송을 누가 했는지 등을 엄정하게 조사해서 기록으로 남기려고 한다. 또 그 때 투입됐던 군인들의 증언도…. 사실 그 군인들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다. 진짜 가해자는 신군부 실세들이다. 그래서 그 군인들의 당시 증언도 받아보고 싶다."

- 증보판 발간 계획은 어떻게 되나?
"증언과 자료를 모두 모아 수록하는 증보판은 종합판이기 때문에 분량이 많다. 따라서 별도로 일반 시민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보급판을 만들려고 한다. 보급판은 초중고 학교에도 무료로 제공할 계획이다. 해외판 발간을 위해서는 상당한 비용이 든다. 시민들의 모금이 절실한 이유다. 시민들은 기금을 통해 간행위원(10만 원 이상)과 후원회원(1만 원 이상)으로 참여할 수 있다. 참여하는 시민들의 이름은 모두 책에 기록하게 된다."

- 비용 문제와 관련 시민들의 힘으로 출간하는 것도 좋지만, 이런 역사적인 기록물은 지방자치단체나 정부가 나서서 출판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현 정부에 기대하기 힘든 일이다. 지자체에는 협조 요청을 하겠지만 그렇다고 거기에만 매달려 있을 수는 없다. 결국 시민들이 함께해야 한다. 언론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

- 영문본이 비용 문제로 절판됐다. 영문본 재출간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는데.
"가능하면 처음에 (설갑수씨 등에 의해) 발간된 영문본을 다시 출판하고 싶다. 번역자인 설갑수씨 등도 (증보판 발간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설갑수씨가 미국에서 영문본을 발간하느라 경제적으로 어려움 겪은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증보판은 내용이 추가되는데 판권에 문제가 있다. 판권이나 비용 문제를 지혜롭게 처리하기 위해 설갑수씨 등과 계속 논의를 이어가겠다."

- 영문본 원본에는 광주항쟁 당시 미 국무부와 주한 미 대사관 사이의 통신문건을 입수해 단독 보도했던 팀 샤록이 직접 쓴 글도 있다. 더 의미가 있지 않나?
"그런 것들이 다각적으로 검토 되어야 할 것이다. 영문본은 그 지역 실정에 맞게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그런 것이 고려되어야 한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증보판 간행위원회

위원장 정상용

[전남 광주]
황석영, 박석무, 정상용, 원혜영, 정용화, 전계량, 김상윤, 이 강, 장하성, 이부영, 유인태, 황주홍, 최 협, 이재의, 송선태, 전용호, 조봉훈, 조양훈, 김상집, 김영준, 김원욱, 김창중, 나간채, 문승훈, 안종철, 양철호, 은우근, 이종범, 강기정, 이학영, 임상택, 장휘국, 정의행, 임철규, 노영숙, 조일근, 최평지, 유양식, 이영송, 임영상, 윤만식, 정철웅, 고현석, 김희택, 박재성, 윤태원, 임  형, 박형선, 김삼용, 양강섭, 박동기, 김  성, 이철우, 이윤정, 조선호, 박영상(진도), 금호타이어노조 광주지회

[서울] 문국주, 소준섭, 안길정, 박몽구, 박형중, 한상석, 최양근, 문환구(변리사), [전북]이상호, 이상보, 박영식, [대전] 양원식, [부산]이승정, [충북]김창규

[미국] 설갑수(영문판 <넘어넘어> 공동편집/기획자, 저널리스트), Nick Mamatas(닉 마마타스, 영문판 <넘어넘어> 공동편집/기획자, VIZ Media 편집자), Tim Shorrock (팀 샤록, 저널리스트), Bruce Cumings(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역사 교수), 조지 카피아치카스(교수, 신좌파의 상상력 저자). Doug Henwood (더그 헨우드, 정치경제평론가), Matt Rothschild(매트 로스차일드, The Progressive 편집자), Jane Slaughter (제인 슬로터, Labor Notes 전 편집자), Namhee Lee(이남희, UCLA 동아시아 역사 교수), Marina Sitrin(마리나 시트린), Aaron Brenner(애론 브레너)

[호주] Dario Azzellini(다리오 아젤리니, 영화감독), [일본] 최동술




태그:#넘어넘어, #5.18광주민중항쟁, #죽음을넘어시대의어둠을넘어, #정상용위원장, #광주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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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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