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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 차례 북한 여행을 다녀온 뒤 내게는 북한에 두고 온 수양딸과 수양조카가 생겼다.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정을 나눈 그들이 다시 보고 싶어서, 더 많은 북한동포들과 소통하고 싶어서 올해도 다시 북한에 다녀왔다. 2013년 8월 15일부터 8월 26일까지 한 차례 그리고 9월 4일부터 13일까지 또 한 차례 북한을 여행했다. 새 연재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를 통해 북한동포들의 지금과 북한의 여러 명소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 기자말

맛있게 먹은 고기가 사슴고기가 아니라 개고기(단고기)였다니…. 지난밤에는 불편한 속과 마음 때문에 한참동안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니 속은 그리 나쁘지가 않다. 잠도 잘 잤고 기운도 난다. 모르고 먹으면 못 먹을 게 없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개고기를 먹지 않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어려서부터 집에서 개를 기르다 보니 개와 감정 교환을 하게 돼 개고기를 먹는 상상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개고기를 먹는 문화 자체에 대해 반대할 생각은 없다. 그럴 권리가 내게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다만 도살시 개에 가하는 고통을 줄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들은 더 이상 '이산가족'이 아니다

강서약수(왼쪽, 파란병)과 대동강 맥주
 강서약수(왼쪽, 파란병)과 대동강 맥주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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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돼지고기인지 소고기인지…, 고기 요리를 보는 순간, 전날 먹은 개고기가 떠올랐다. 또다시 속이 거북해졌다. 나는 천연탄산수인 '강서약수'부터 주문했다. 체했거나 속이 불편할 때 한 모금 마시면 트림이 나오고 속이 시원해진다.

강서약수는 지하에서 퍼올리는 자연수인데 일본 후쿠시마 지진 때 지층이 영향을 받아 수원이 막혔단다. 이후 북한은 꾸준히 수원 탐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 전보다 매장량이 훨씬 더 많은 수원을 찾아내 강서약수 생산량을 크게 늘렸다고 한다. 강서약수는 대동강 맥주와 함께 남한의 기업인들이 꼭 수입하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북한 음료 중 하나다.

식사를 마치고 로비로 내려갔다. 이날 오전에는 별 다른 일정이 없다. 자유시간이다. 로비에는 한 무리의 해외동포 이산가족들이 북의 친척들과 시내관광을 위해 대절한 차를 기다리고 있다. 또 다른 해외동포 이산가족은 남포에 있는 친척집에 가서 하루 자고 올 예정이란다. 이 정도면 이분들은 더 이상 '이산가족'이 아니다.

밖으로 나가기 위해 로비에 모여있는 이산가족들
 밖으로 나가기 위해 로비에 모여있는 이산가족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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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날 내게 개고기를 먹인 안내원 김 선생을 찾아 나섰다. 아무리 찾아봐도 눈에 띄지 않는다. 프론트 데스크에 가서 "혹시 김 선생이 오면 내가 커피숍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해 달라"라고 부탁해놨다.

남편은 아침부터 대동강 맥주를 마신다. 내게도 한 잔 권했지만, 거절했다. 전날 저녁 먹은 고기가 개고기였다는 사실을 알고 대동강 맥주를 연거푸 마셨는데, 맥주에서마저 강아지 냄새가 나는 것 같았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복수심을 품고 김 선생을 기다렸지만, 그는 감감무소식이다. 참을성 없는 남편이 밖에 산책이라도 다녀오자고 한다. 나는 "나가서 길이라도 잃으면 어떻게 하느냐"라며 말렸지만, 남편은 막무가내다. 우리는 호텔을 나와 길을 건너가서 여기저기 구경했다. 나는 길을 잃어버릴 것을 대비해 좌우로 몇 번 방향을 바꿨는지 머릿속으로 기억해 두며 걸었다.

남편의 무단횡단... 올 것이 왔다

남편을 단속한 여성 교통보안원
 남편을 단속한 여성 교통보안원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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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하던 중 건널목을 마주했다. 남편은 차가 뜸하다 싶으면 차도를 무단횡단을 하곤 한다. 그런데,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내가 건널목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데 남편이 차도를 무단횡단했다. 그 순간, 어디선가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붉은 완장을 찬 교통순경이었다. 완장에는 '교통보안원'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평양의 명물이라는 여성 교통순경이다.

순간 조선국제려행사의 운전기사 철남 아우의 말이 생각났다. 철남 아우는 "남성 교통보안원에게 잡히면 사정이 통할 때도 있지만, 여성 교통보안원에게 잡히면 순순히 면허증을 내주는 게 낫다"라는 설명이었다.

지난 8월, 평양 방문 당시 시내에서 한 운전기사와 남성 교통보안원간의 승강이를 목격한 적이 있었다. 운전기사는 교통법규를 위반하지 않았다며 면허증 제시를 거부하면서 대들었다. 이후 결말이 어떻게 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승강이를 벌인다는 것은 아마 '사정이 통한다'는 뜻일 게다. 그러고 보니 여성 교통보안원과 승강이를 벌이는 광경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여성 교통보안원이 남편에게 다가와 신분증을 요구한다.

"증명서 좀 제시해 주십시오."
"증명서요? 없는데요. 근데 왜요?"
"정말 몰라서 묻습니까?"
"아니…, 저…, 그냥 차들이 뜸하길래…. 저는 이산가족 방문단입니다만…."

"차가 없다고 법규를 위반하시다 사고라도 나면 오떻게 하시려고…. 외국서 오셨으면 여권을 제시해 주십시오."
"여권이요? 없는데요. 저희들의 여권은 담당 안내원이 보관하고 있다가 출국 전에나 돌려 준답니다."
"그러시면 초소까지 동행해 주십시오."
"아니…, 아이…, 뭐 이걸 갖고 초소까지. 있지요? 한 번만! 다음부터는 꼭 법규를 지킬게요. 우리 그러지 말고 기념으로 함께 사진이나 한 장…."

얼음장처럼 얼어붙은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철없는 남편과 엄숙함이 넘치는 여성 교통보안원을 번갈아 바라봤다. "사진이라도 함께 찍자"라는 말에 어이가 없는지 여성 교통보안원은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위엄을 유지하느라 무척 애를 쓴다. 이런 교통보안원의 표정을 보니 조금은 안심이 된다.

"법규를 위반하시고 사진까지 함께 찍자 말입니까? 그건 제가 법규를 위반하는 겁니다. 어서 초소까지 동행하시자요."
"아이 참 내…, 있지요? 호텔이 바로 조기니까니 기냥 가면 안되갔시요?"

남편의 어설픈 평양말씨 흉내에 그만 여자 교통보안원이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선생님, 선생님을 호텔까지 안전하게 보내 드리려고 동행하자는 거니 안심하고 따라 오십시오."

솔직히 평양에서 교통경찰 초소까지 끌려가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초소에 도착한 교통보안원은 여기저기 전화를 걸더니 남편을 보며 말한다.

"인차 모시러 올 테니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아니, 여기서 또 다른 곳으로 호송이 됩니까?"
"아닙니다. 안내원 선생이 오니 그때까지만 기다리십시오. 그리고 길을 건널 때는 꼭 법규를 지키십시오. 가족 상봉하러 오셨다 사고라도 당하시면 안 되잖습니까."

안내원 김 선생이 초소에 도착했다. 여성 교통 보안원은 김 선생에게 우리를 인계하며 인사를 건넨다.

"가족들과 관광도 많이 하시고 돌아가십시오. 그리고 조국에 자주 오십시오."
"저, 사진은…?"

남편은 초소를 떠나면서까지도 여성 교통보안원에게 사진을 함께 찍자고 졸라댄다.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다. 교통보안원은 근무 중 사진을 함께 찍는 것은 규정위반이라며 정중히 거절을 한다.

개고기 먹인 김 선생에게 복수하려 했지만...

화들짝 놀라 나타난 김 선생과 호텔로 돌아온 우리는 커피숍으로 향했다. 김 선생은 화가 좀 나 있는 것 같다.

"아니, 안내도 없이 나가셨다 길을 잃으시거나 사고라도 나면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 다른 나라에서 방문객이 사고가 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우리 조국에서 방문객이 사고로 다치기라도 하면 밖에서 또 얼마나 험담을 늘어놓겠습니까. 그래도 교통보안원이 잘 인도해서리 다행이지…."

나는 놀란 김 선생을 좀 달래야겠다고 생각해 화제를 돌리려고 입을 뗀다.

"참, 그리고 김 선생님. 어제 단고기(개고기) 정말 고마웠어요."
"네? 단고기라니요?"
"어제 먹은 그 사슴고기 말예요."
"아니, 기게…. 기게 단고기인 줄은 어케 아셨습니까?

화난 듯했던 낯빛이 금새 난처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작전 성공이다.

"속은 괜찮으십니까?"
"네, 어젯밤에 고생 좀 했어요, 뭐…. 모르고 먹으면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은 들어요."

"아, 이거 참 미안합니다, 신 선생님. 사실은 신 선생님이 아주 허약해 보인다 말입니다. 저래 약해 어케 다니나 걱정이 돼서리 단고기 한 그릇 드시면 기운이 나겠다 싶어 일부러 숨기고 그랬습니다. 우리 조선 사람들 말에 다 죽어가는 사람도 발등에 단고기 기름 한 방울만 떨어지면 금방 일어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김 선생님, 2층의 커피숍 접대원 동무가 말해줘서 알았는데, 개고기인 줄 알고는 깜짝 놀라고 많이 속상했어요. 어려서부터 집에서 개를 많이 키웠거든요. 걱정 마세요. 그리고 저희도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않을게요."
"아, 네,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고맙습니다."

복수는 고사하고 우리 잘못과 김 선생의 잘못을 맞바꾼 셈이 됐다. 그나저나 김 선생은 정말 고마운 사람이다. 내가 허약해 보여서 개고기라도 먹이려 했다니. 사실 집을 떠나 오랫동안 여행을 하다 보니 많이 지쳐 있었다. 피로가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는 모양이다.

그런데, 김 선생은 또 개고기를 먹겠느냐고 묻는다.

"신 선생님, 오늘 점심에 한 번 더 드시갔습니까?"
"아니요, 됐어요. 어제 먹은 단고기로 일 년은 충분히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시면 오늘은 호텔서 점심을 드시고 로비에 1시까지 나오십시오. 오후에 외교관 클럽에서 해외동포들이 모여 다과회가 있습니다."

김필주 박사님과 함께
 김필주 박사님과 함께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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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히 위기를 잘 넘겼다.

남편과 나는 점심식사를 하고자 식당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반가운 분을 만날 수 있었다. 북한의 식량증산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시는 김필주 박사님을 만났다. 북한 동포들 사이에서 '목화할머니'라고 불리는 김필주 박사님은 평양과기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시기도 한다. 나는 북한의 동포들을 위해 무슨 기여를 할 수 있을까(관련기사 : "남편이 여보라고? 북한서는 촌스러운 말입네다").

"총련동포들도 서울 갈 수 있었는데, 요새는..."

외교관 클럽에서 재일동포 독자와 함께
 외교관 클럽에서 재일동포 독자와 함께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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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 클럽에 미리 도착한 해외동포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서자 몇몇 동포들이 다가와 "재미동포 아줌마, 신은미가 아니냐"라고 묻는다.

이들은 <오마이뉴스>에 연재된 북한 기행문을 읽은 조총련계 재일동포들이었다. 사인을 요구하며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한다. 2012년 처음 북한 기행문 연재를 시작한 이후 재일동포 독자들로부터 이메일을 받기는 했지만, 이렇게 평양에서 나를 알아보는 동포들을 직접 만날 줄은 몰랐다. 나는 한 여학생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봤다.

"재일동포분들 사이에서도 제 기행문을 읽으신 분들이 계신 모양이지요?"
"물론입니다. 선생님께서 1년 전 련재를 시작했을 당시 저는 조선대학교에 재학 중이었습니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 련재가 화제였습니다. 모두들 다음 련재(연재)가 언제나 오를까 하며 매일 <오마이뉴스>에 들어가 보곤 했드랬습니다. 련재가 나오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무들에게 링꾸(링크)를 했습니다."

"아, 정말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저희가 오히려 고맙습니다. 처음에는 눈을 의심했답니다. '남조선에서 태어나 게다가 미국에서 살고 있는 보수 그리스도교인이 우리의 조국을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다니' 하고 말입니다. 북조선에 대해 남조선에서 나오는 많은 글들이 북을 마치 악마의 소굴처럼 묘사하지 않습니까."

"좋은 글도 많이 있어요. 북에는 자주 오시나요?"
"학교 때 수학여행을 북으로 왔답니다. 조선학교에 다니는 우리 학생들은 수학여행을 조국으로 오는데 요즘은 비용이 많이 듭니다. 전에는 만경봉호를 타고 왔기 때문에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올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일본이 조선에 제재를 가하면서부터 조선배의 입항을 금지했답니다. 그래서 지금은 비행기를 타고 중국을 경유해 와야 하기 때문에 부모님들의 부담이 상당히 커요. 게다가 일본공항에서는 학생들이 사가지고 온 기념품까지도 빼앗는답니다. 불편이 이만 저만이 아녜요."

"기념품마저 빼앗는다고요?"
"네. 북조선으로부터 물품반입을 금지하니까 웬만하면 통과 시켜 주지 않습니다."
"아, 그런 건 전혀 모르고 있었네요. 서울엔 가 보신 적이 있으세요?"
"아니요. 저희는 갈 수가 없답니다. 한때 총련동포들도 서울에 갈 수 있었는데 요즘은 다시 입국을 불허하는 것 같습니다."

"다시 오실 수가 있으셔야 할 텐데요."
"언젠가는 가게 되겠지요, 그곳도 우리 조국의 일부이니까요. 게다가 저의 할아버지 고향이 경상북도 경산이고 할머니는 제주도예요. 그래도 인터넷과 테레비(텔레비전)를 통해 항상 보고 있습니다. 남쪽의 연예인들도 일본에 많이 오고…."

"경산이요? 경산은 내가 태어난 대구 바로 옆에 있어요. 아! 할아버님 고향이 경상북도 이시군요. 가보고 싶으시지요?"
"네, 가보고 싶어요. 저도 아버지도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할아버지의 고향 경산은 내 마음의 고향입니다. 인터넷에서 찾아 경산의 모습도 봤어요. 제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말씀해주시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어요. 그냥 인터넷으로 사진을 보았는데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갈 수 있는 날이 꼭 오겠지요."

뜻하지 않게 만난 재일동포 독자들로부터 일본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 특히 조총련계 동포들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 내가 살고 있는 미국과는 달리 일본의 동포들은 북한 국적을 갖고 있는 동포들과 남한 국적을 갖고 있는 동포들로 갈라져 있다. 분단의 상처가 곳곳에 서려있다. 하지만 조국이 통일되는 날, 재일동포들이 겪었던 서글픈 문제들 역시 자연스럽게 해결되리라.

'은하 9호', 무슨 일이 벌어질까

호텔 로비에서 만난 조선국제려행사의 방은미 안내원
 호텔 로비에서 만난 조선국제려행사의 방은미 안내원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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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로 돌아오니 로비 2층 난간에 걸려있는 현수막이 눈에 들어온다. '9.9 65돐 경축'이라고 적혀 있다. 현수막 양끝에는 로켓 모형이 걸려있다. 왼쪽에는 은하9호 그리고 오른쪽에는 은하3호라고 적혀 있다.

은하3호는 지난번 위성을 올린 그 로켓인데 은하9호는 또 무엇인가. 다음에 쏘아 올리려는 로켓인가? 왜 숫자를 건너 뛰어 9호일까. 은하9호라는 저 로켓이 발사되면 이번에는 어떤 제재가 가해질까. 그러나 서방의 제재는 오히려 북한의 내구성만을 키운 듯하다. 이들은 남들이 뭐라고 하든 자기들의 길을 갈 것이라는 느낌이다.

호텔 로비는 관광을 마치고 돌아온 외국인들로 북적인다. 혹시 조선국제려행사 직원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두리번거리는데 누군가 내게 다가와 인사를 한다. 2013년 8월, 백두산과 칠보산 관광 때 동행했던 방은미다.

"이모, 9월에 다시 오신다더니 정말 오셨네요."
"어머, 은미야. 잘 있었어? 다른 애들은?"
"이모 둘째딸 설향이는 호주 관광객들 하고 양각도 호텔에 있습니다. 그리고 영길 동지는 세포등판에 가 있구요."

"영길이도 세포등판에? 현수는?"
"아직 세포등판에 있습니다."
"아니 전부들 세포등판으로 가 버리면 여기는 누가 맡아?"
"누구나 한 번씩은 다 동원됩니다. 저도 이미 다녀왔습니다."

"설향이도 가서 밥해주고 왔다던데, 은미 너도 다녀왔구나. 지금 보니 호텔에 관광객들이 평소보다 훨씬 많은데 남아 있는 관광 안내원들이 많이 힘들겠네."
"일 없습니다. 이모, 저 지금 모시고 있는 관광객들 식사 안내 가야 해요. 오늘부터 며칠간은 평양에만 있을 것이니까 호텔에서 자주 뵙게 될 거예요. 저 이만 갈게요."
"그래, 다른 직원들 만나면 안부 인사 꼭 전해줘. 그리고 설향이 만나면 엄마 평양에 와있다고 얘기 좀 해줘."

외교관 클럽에서 이것저것 많이 먹어 저녁 생각이 없다. 남편은 지루하다며 또 밖에 나가자고 한다. 관광객 신분으로 북한에 가면 자유시간에도 안내원에게 부탁해 이곳저곳을 다닐 수 있다. 하지만, 일반 여권으로 입국하면 해외동포 사업부의 안내에 따라야 한다. 이들은 관광안내원이 아니라 뭔가를 부탁하기 미안하다. 남편은 막무가내로 나가자고 우긴다. 나는 남편 설득을 시작했다.

"여보, 오늘 낮에 나갔다 길 잘못 건너 혼쭐나고도 아직까지 정신 못 차리셨어요? 더군다나 밤중에 길도 모르는데, 나갔다 길이라도 잃으면 낭패잖아요.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오네."
"여보, 내가 길 하나는 잘 알어. 호텔을 나서서 아까 단속 걸린 곳에서 왼쪽으로 쭉 가면 노동신문사 앞을 지나 대동강이야. 내가 차 타고 다니면서 다 봐놨어. 설사 길 잃으면 또 어때? 택시 타고 고려호텔로 가자고 하면 되지. 뭘 그래, 요즘 택시도 많은데."
"어머, 이 이가 아직도 혼이 덜났나봐. 난 못 나가요. 갈려면 혼자 가요."
"알았어. 그럼 나 혼자 갈게."

홀로 나가려는 남편을 붙잡고 한바탕 승강이를 벌이는 사이, 김필주 박사님을 만났다. 나는 잘 됐다고 생각해 박사님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도움을 청하려고 했다. 그런데, 박사님은 한술 더 뜨신다.

"그래요. 나도 같이 가요. 운동 겸 지금 산책나가면 정말 상쾌합니다. 우리 대동강까지 걸어 갔다 옵시다."
"어머, 선생님, 밤에 길이라도 잃으면 어쩌시려고요?"
"길을 잃긴. 내가 여기서 얼마나 살았는데."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산가족 한 분도 동행하겠단다. 이곳에서 오래 상주한 김필주 박사님과 함께 나간다니 안심이다. 평양의 밤거리를 이렇게 오래 걸어 다녀 보기는 처음이다. 호텔을 떠나 건물 사이사이로 들어가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평양의 밤거리... 여기에도 사람이 있구나

평양의 밤거리
 평양의 밤거리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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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평양의 밤거리는 무척 조용했다. 전기 사정이 좋아져 전보다는 야경이 훨씬 밝아졌다지만, 골목마다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불이 들어오지 않은 도로변에서는 적막감까지 느껴졌다. 그런데, 막상 아무도 없을 것만 같았던 길에 직접 나와 보니 사람들이 바쁜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어두운 평양의 밤거리에도 사람이 있었구나.

남편이 홀로 나갔다면 십중팔구 길을 잃고 헤멨을 것이다. 사진을 찍느라 정신없이 다니는 남편이 길을 잃을까봐 한시도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건널목을 여러 번 건너고, 한참을 걷다 보니 큰길이 나온다. 그리고 '당 창건'이라는 밝은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당 창건'이라면 조선로동당을 말한 것일 게다. 표지판에 화살표가 있는 것을 보니 그쪽에 조선로동당 창당 당시 건물이 있지 않나 추측해본다. 궁금해 그쪽을 바라본다. 어두워서 건물이 희미하게 보일 뿐이다.

로동신문사 건물
 로동신문사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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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밤거리. 주체사상탑이 보인다.
 평양의 밤거리. 주체사상탑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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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로에 다다르니 로동신문사 건물이 보인다. 그 옆이 바로 내가 예전에 머물렀던, 마음씨 고운 웨이트리스 황연희가 일하는 해방산호텔이다. 어두운 밤이지만 여기서부터는 나도 대충 길을 알겠다. 이 대로가 온갖 무기로 무장한 열병식 군인들이 지나가는 그 길이다. 로동신문사를 등지고 왼쪽으로 외무성 건물을 지나면 김일성 광장이 나온다. 그리고 맞은편으로 대동강이 흐르고 있다. 여러 번 봐왔던 익숙한 풍경이다.

강가에 이르자 불빛으로 장식한 대동강 철교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 너머에는 마치 횃불을 밝히듯 주체사상탑이 서 있다. 대동강 물결이 달빛에 반짝인다. 강가의 벤치에는 젊은 남녀들이 꼭 붙어 앉아 사랑을 속삭인다.

남편과 나는 그들 사이에 조용히 다가가 앉는다. 지나온 세월을 돌이키듯 고개를 들어 별을 센다. 아름다운 평양의 밤은 깊어만 간다.




태그:#북한, #평양, #통일,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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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음대 졸업.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음악박사. 전직 성악교수 이며 크리스찬 입니다. 국적은 미국이며 현재 켈리포니아에 살고 있습니다. 2011년 10월 첫 북한여행 이후 모두 9차례에 걸쳐 약 120여 일간 북한 전역을 여행하며 느끼고 경험한 것들 그리고 북한여행 중 찍은 수만 장의 사진들을 오마이뉴스와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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