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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한국 정부는 쌀 재협상을 통해 쌀관세화 10년 유예를 합의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2014년 현재, 다시 한 번 이 문제에 대해 WTO(세계무역기구) 상대국들과 논의할 시점에 서 있다. 정부는 9월 말까지 WTO에 쌀개방 문제에 대한 양허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정부는 당초 지난 6월 쌀 시장 개방의 필요성을 알리는 입장을 발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국회 치원의 논의가 필요하다는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요청에 따라 오늘(11일) 열리는 '쌀 관세화 유예 종료 대응 공청회' 이후로 발표를 연기한 바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날 공청회에선 쌀 관세화시 적정 관세율과 정부의 쌀산업 발전대책 등을 비롯해 쌀 시장 현상유지 가능성, 관세화 유예시 이해득실, 양곡관리법 개정 필요성, 외국의 쌀시장 개방 사례 등이 집중 논의될 전망이다.

최종적인 입장을 밝히기에 앞서 정부는 그동안 이어져온 쌀문제에 대한 이견과 논란을 정리하고 매듭지어야 한다. 문제는 논의를 마무리해야 할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쌀개방 당사자인 농민들과 합의된 게 아무것도 없으며, 오히려 관련 문제에 대한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쌀 시장개방에 대한 여러 가지 입장과 의견이 거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핵심 쟁점들은 계속 남아 있다. 게다가 농민들을 비롯한 국민들은 이 문제에 대한 사실 관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이러한 왜곡과 혼란의 1차적인 책임은 다름 아닌 정부에 있다.

쌀 관세화 해도 의무수입물량은 변함 없는데 왜?

'식량주권과 먹거리안전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20일 오후 경기도 의왕 한국농어촌공사 인재개발원에서 열릴 'WTO 쌀 관세화 유예 종료 관련 공청회'에 참석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어 "제대로 된 대책이나 의견수렴도 없이 일방적으로 쌀 전면개방을 선언하는 것은 정부의 역할을 포기하는 행위이다"며 정부를 규탄하고 있다.
▲ 농민단체 회원 "쌀 전면개방 반대" '식량주권과 먹거리안전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20일 오후 경기도 의왕 한국농어촌공사 인재개발원에서 열릴 'WTO 쌀 관세화 유예 종료 관련 공청회'에 참석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어 "제대로 된 대책이나 의견수렴도 없이 일방적으로 쌀 전면개방을 선언하는 것은 정부의 역할을 포기하는 행위이다"며 정부를 규탄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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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의무수입물량은 매년 증가했고 2014년에는 40만8000톤이 수입됐다. 이에 대해 정부는 관세화로 전환하여 높은 비율의 관세를 부과하면 쌀 수입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선전한다. 현행 방식보다 관세화 개방이 더 유리할 수 있다는 식의 논리로 이해된다. 정부는 관세화 전환에 대해 '의무수입물량의 추가 증량 부담이 없다'는 식의 모호한 표현으로 홍보한다.

하지만 정확한 사실은 2015년부터 쌀 시장을 관세화로 전환하더라도 2014년 의무수입물량에 해당하는 40만8000톤의 쌀은 매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전달하기보다 관세화 개방 입장을 관철 시키기 위해 관점을 흐리는 문구로 홍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농민들로 하여금 '의무수입물량이 없어지기 때문에 관세화로 전환하는 것이 국내 쌀 농업에 더 유리하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관세화를 통한 전면개방을 말하는 정부 주장의 핵심은, 쌀 시장을 관세화로 전면개방 하지 않으려면 현재 쌀 의무수입물량을 크게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 최근 쌀 개방 협상에서 웨이버(관세화 의무 면제)를 관철 시킨 필리핀의 사례를 예로 든다. 정부는 필리핀의 경우, 관세화를 유예하는 조건으로 현행 의무수입물량을 3배로 늘리는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다며 관세화 전환이 국내 쌀 농업에 더 유리하다는 논리를 편다.

이러한 정부 주장은 농민단체의 주장을 악의적으로 왜곡하고 쌀 개방에 대한 핵심 쟁점을 희석시키는 기만적인 행태다.

첫째, 정부의 이러한 선전은 관세화 개방에 반대하는 진영의 사람들이 마치 의무수입물량을 대폭 늘려서라도 관세화 유예를 연장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비춰진다. 이는 상대편에 대한 악의적인 왜곡을 낳는다. 관세화 개방을 반대하는 농민단체나 전문가 가운데 누구도 필리핀과 같이 웨이버를 요구하자고 주장하지 않는다.

농민단체와 전문가들은 대안으로 현상유지(standing still)를 말한다. 현상유지는 현재 2014년의 쌀 개방 수준을 도하개발아젠다(DDA) 농업협상이 타결될 때까지 동결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의무수입물량을 추가로 더 늘리지 않고, 의무수입 이외의 쌀 수입은 금지하는, 현재와 같은 부분 개방 상태'를 유지하자는 것이다.

둘째, 정부 주장은 쌀 개방에 대한 핵심쟁점을 흐려 쌀 개방문제에 대한 농민과 국민의 정확한 판단을 가로막는다. 쌀개방 핵심쟁점은 정부 측의 관세화 전환 입장과 농민단체의 현상유지 주장 사이에 형성돼 있다. 그런데 정부는 필리핀 사례를 제시해 의무수입물량 대폭 증가와 관세화를 통한 개방 사이에 쟁점이 형성돼 있는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

존재하지 않는 주장을 가공해 자신들의 주장과 대비시킴으로써 이를 정당화하려는 모습은 기만적인 행태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이는 농민과 국민의 바른 판단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정부는 국민이 쌀 개방 문제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내리고, 농민과 제대로 된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라도 핵심 쟁점에 대해 분명하게 인정하고 토론에 임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의 핵심 쟁점은 관세화로 전환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현상유지를 선택할 것인지의 문제다.

쌀 개방 해법의 키워드는 '협상', 정부 의지 필요

이번 쌀 시장개방 문제를 풀어가는 해법의 키워드는 '협상'이다. 정부는 높은 관세율을 적용하면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주장하지만 관세율을 우리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농민과 국민을 위해 더 나은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쌀 시장 전면개방을 의미하는 관세화 개방의 길을 무기력하게 걸을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협상자리에 나서야 한다.

협상할 의지를 가지는 순간 협상은 이뤄진다. 더욱이 쌀 개방에 대한 협상 및 WTO에 따른 관세율 협상이 이뤄지고 나면, 이후에 있을 자유무역협정(FTA) 및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미국, 중국 등의 상대국은 이를 적극 활용하려할 것이다. 현재 쌀 개방 논의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상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이다.

쌀 관세화는 우리나라가 관세화보다 좋은 방안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해보고 난 후에라도 언제든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다. 따라서 관세화 전환을 우선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짓이다. 농민단체의 주장과 같이 현상유지를 선택하더라도 주요 이해당사자국과 협상해야 하는 상황이 될 것이다. 게다가 한미FTA, TPP, 한중 FTA 등과 연계하여 쌀도 협상의 대상에 포함될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결국 쌀 문제는 주요 이해 당사자국들과의 복합적인 '협상'을 통해 결정될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결과적으로 '현상유지'라는 카드를 든 정부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더라도 대외적으로는 통상협상에 대한 한국의 적극적인 의지를 인식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정부에 대해 농민의 신뢰와 국민적 지지를 제고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필요한 것은 쌀과 연관된 여러 가지 협상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이를 풀어가기 위한 고도의 치밀한 전략을 짜는 일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이며, 이 글은 녀름 홈페이지에 실린 글(이슈보고서)을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태그:#쌀개방, #관세화, #WTO, #현상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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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이 공동설립한 농업정책 연구소입니다. 생산자와 소비자, 노동자와 농민, 민중들과 함께 지속가능한 농업, 식량주권 실현을 위해 연구하고 활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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