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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잘 나와서 탈이었던
▲ 공연 포스터 너무 잘 나와서 탈이었던
ⓒ 마을극단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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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금요일은 아내의 마을극단 '밥상'이 처음으로 공연을 하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아내는 아침부터 들떠 있었는데 처음 연출을 맡았거나 오랜만에 자신의 일을 하기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그보다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극단이 그 많은 장애물을 극복하고 기어이 극을 올린다는 감격에서부터 오는 흥분인 듯 보였다.

사실 처음에는 극단이 이렇게까지 빠른 시일 내에 극을 올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앞선 기사에도 썼다시피 아내는 강동구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주최하는 교육을 통해 협동조합을 접하고 극단을 기획했는데, 이를 직접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관련 기사 : 남편 연봉 반토막 났는데... '예술'하겠다는 이 여자)

말이 쉬워 5명 이상의 사람들을 모아 마음을 맞추지,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세 명만 모여도 배가 산으로 가는데 무려 협동조합이라니. 게다가 대부분의 단원들이 아이 한 명 이상 달고 있는 주부 아니던가.

아내는 극단을 만들기로 결심한 뒤 강동구 지역특화사업단의 학습동아리 사업에 참여하겠다며 온라인으로 사람들을 모았다. 학습동아리는 사회적경제에 관심이 있는 지역주민들이 모여 사회적경제나 마을공동체 등을 공부하는 데 지원을 받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말만 사회적경제일 뿐 그렇게 모인 사람들의 관심은 오직 극단에 가 있었다. 그 열정을 사회적경제와 연결하는 것은 추후의 문제였다.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함께 시작한 극단 모임

여기는 고덕동 함께크는북카페
▲ 공연준비 중 여기는 고덕동 함께크는북카페
ⓒ 마을극단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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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첫 번째 모임. 회의실은 유아들의 울음소리, 뛰어노는 소리로 시끌벅적했으며, 엄마들은 여기저기서 그런 아이들을 달래느라고 정신없었다. 그 와중에도 꿋꿋하게 모임의 취지를 이야기하고 자기소개를 시작하는 아내. 그녀는 스스로를 강일동 삼남매 엄마라며 뮤지컬 작가지만 지금은 육아 때문에 쉬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지는 엄마들의 자기소개들. 내용인즉 다들 비슷했다. 비록 지금은 아이를 낳고 집에 있지만, 나도 한때 잘 나갔다는, 그리고 공연과 어떤 인연을 맺고 있으며, 꼭 함께 하고 싶다는 내용들이었다. 자기소개가 모두 끝나자 아내는 뜬금없이 빙고게임을 제안했다. 25개의 빈 칸에 숫자 대신, 이 모임을 통해 이루고 싶은 것을 적어 넣자는 것이었는데, 모두들 열심이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첫 번째 단어를 부르는 순간.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엄마들이 '와'하고 탄성을 질렀다. 바로 '자유'라는 단어에 대한 반응이었다. 모든 엄마들이 격하게 공감했으며, 또한 위로를 받았다. 그래, 나만 힘들고 지친 것이 아니었구나. 우리 모두는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고, 잘 하면 이 극단 활동을 통해서 해결할 수도 있겠구나.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단 모임은 힘들어 보였다. 우선 어린 아이들이 있는 관계로 모임 갖는 것 자체가 만만치 않았으며, 또 모인다 한들 오랜 시간을 함께 할 수 없었다. 당연히 모임은 지지부진 할 수밖에 없었고, 덕분에 사람들은 계속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비록 학습동아리를 통해 시작은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계속 어떻게 이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자신할 수 없었다. 과연 극단은 무사히 공연을 올릴 수 있을까?

'주사위는 던져졌다' 프로젝트 선정후 활발해진 모임

비록 극단에 대한 열망 때문에 모이긴 했지만 결코 녹록지 않은 현실. 그래도 아내를 위시한 몇몇은 꾸준히 모였고, 비록 더디지만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아갔다. 어쨌든 그들은 답답한 현실을 타결하고자 했으며, 그만큼 뜨거운 서로의 열정을 확인했다. 다만, 그 출구를 찾지 못해 고민하고 있을 뿐.

이런 답보 상황에 타결의 실마리를 준 것은 서울시에서 진행하고 있는 '우리마을프로젝트'였다. 이는 서울시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에서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와 필요에 따른 주민주도형 마을공동체 형성과 활성화'를 모토로 진행하는 사업이었는데 극단 모임은 두 개의 공연을 전제로 위 프로젝트를 신청하였고, 선정되었다. 심사위원들은 극단이 마을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으리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올까?
▲ 공연 준비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올까?
ⓒ 마을극단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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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 맞아?
▲ 아이들을 대상으로 리허설 우리 엄마 맞아?
ⓒ 마을극단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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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지원금까지 받고 두 개의 공연을 필연적으로 올려야 되는 상황. 그러자 극단 모임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어쨌든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무언가는 해야 했고, 때문에 엄마들이 모여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공연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극단은 우선 아동극을 하기로 결정했다. 대개가 연기 초짜이기 때문에 성인극은 부담스러웠으며 또한 우는 아이들을 달래면서 연습을 하려다 보니 아동극이 딱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흥행 면에서도 어설픈 성인극 보다는 아동극이 낫다는 판단이었다. 누군가는 극본을 쓰고, 누군가는 작사, 작곡, 편곡을 하며, 또 누군가는 연기를 연습하는 등 각자의 재능에 따라 공연에 필요한 일들이 분담되었다.

덕분에 아내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극작가로서 극본을 써야 했으며, 또한 연출로서 전체 공연을 기획하고 조율해야만 했다. 아내는 밤새 재봉틀을 돌려가며 공연에 필요한 도구들을 제작했으며, 극단의 대표로서 지역의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이런 공연을 할테니 이런 도움을 달라고 설득하고 다녔다.

아이를 셋이나 이끌고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돌아다니는 아내의 모습은 안쓰럽기도 했지만 동시에 부럽기도 했다. 그래, 그동안 저런 열정을 어떻게 참고 살았는지. 아내는 바쁜 만큼 챙겨주지 못해 아이들에게 미안해 했지만, 연습 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자신들이 만든 공연에 흥분하고 기뻐하자 한편으로는 뿌듯해 했다.

공연 날짜가 다가올수록 극단의 연습은 더욱더 뜨거워졌고, 제법 그럴듯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한 번도 연기를 해보지 않았던 배우들은 이제 천연덕스럽게 대사를 읊기 시작했고, 반주에 맞추어 노래도 불렀다. 그 와중에 우는 아이들을 들쳐 업고, 젖도 먹여야 했지만 그래도 그들은 행복해 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나'를 찾을 수 있었으며, 지금까지 단순히 경력단절의 이유로 여겨졌던 육아 등의 일상이 나의 또다른 자산이 되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엄마의 시선으로 아이들을 위해 연기하는 그들. 그것만으로도 극단은 절반의 성공이었다.

엄마들, 무대에 서다

입추의 여지가 없는 공간
▲ 흥행성공 입추의 여지가 없는 공간
ⓒ 마을극단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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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지만 아이들이 재미있어 한다면 기꺼이 참을 수 있는 부모 마음
▲ 덥다 더워 덥지만 아이들이 재미있어 한다면 기꺼이 참을 수 있는 부모 마음
ⓒ 마을극단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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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당일. 많은 공연을 올려봤던 아내조차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오랜만에 극을 올리는 것도 올리는 것이었지만, 연출로서, 엄마로서 극을 올리는 것도 모두 처음인 탓이었다. 하물며 처음으로 연기를 해야 하는 배우들이야 오죽하겠는가.

극단의 공연이 사회적경제 주간(7월 첫째 주)의 행사 중 하나였기에, 구청이나 사회적경제지원센터 등에게는 과연 이 공연이 얼마나 흥행할지가 또 하나의 관심거리였는데 이는 마냥 자신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물론 지역에 포스터도 붙이고 전단지도 배포했지만 그것을 보고 일반 주민들이 공연을 보러 올지는 미지수였다. 혹자들은 처음에 이번 공연을 그냥 아줌마 몇몇이 모여 작은 도서관에서 대충 하는 걸로 생각했다가, 포스터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고 이야기했지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극단 반주자의 남편은 아내에게 딸랑 3명 보러 오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말라고 아내를 다독였다고 했다.

공연 30분 전. 걱정은 기우였음이 증명됐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작은 도서관의 최대 수용 인원이 80명이건만 첫날은 150명, 둘째 날은 90명 정도가 공연을 보겠다며 그 작은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사람들의 열기로 도서관은 찜통이 되었지만 다들 곧 시작될 공연에 집중하고 있었다.

엄마가 왔단다~~~
▲ 아이들아 문 열어라 엄마가 왔단다~~~
ⓒ 마을극단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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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열심히 열심히
▲ 초짜 배우들의 열연 모두가 열심히 열심히
ⓒ 마을극단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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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공연 시작. 배우들은 그동안 갈고 닦은 연기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역시나 배우 출신의 호랑이는 활발한 몸동작과 익살스러운 표정 등으로 분위기를 주도했으며, 다른 이들도 각각의 맡은 바를 훌륭히 소화해 내었다. 음악도 여느 어린이극보다 세련되었으며, 연출 또한 깔끔했다. 과연 이들이 몇 달 전만 해도 공연을 올릴 수 있을지 걱정되던 이들이던가.

무대 앞의 어린이 관객들은 열광했다. 배우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반응했으며, 배우들을 따라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그런 자식들을 바라보는 부모들은 뒤에서 땀을 흘리며 무더위를 꾹 참아 주었다. 성공적인 공연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난 뒤, 이번 공연에 객원으로 참가한 막내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무대가 끝나고 엄마를 향해 달려오는 아이를 보며 울컥하시는 모습이나, 연습 때문에 자꾸 떨어져 있으니 엄마 목소리만 들어도 우는 아이를 보며 눈물 맺혀하셨던 모습이나, 연극 연습 때문에 집안일도 잘 못 돌보고 몸이 여러 개라도 모자랐던 지난 시간을 힘들어하셨던 모습이나, 참 옆에서 보기에 아렸지만 따뜻했던 모습들.

그들이 성공한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극을 세우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이 내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더 느끼게 한 시간이기 때문이었을 것이고 단조로운 일상에서 그녀들에게 새로운 동력과 가능성을 보여준 시간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공연의 마지막
▲ 모두 함께 노래 불러요 공연의 마지막
ⓒ 마을극단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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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극단의 뒤풀이는 새벽까지 지속되었다. 오랜만에 아이없이 불판에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었기에, 매운 것을 먹을 수 있었기에, 고기를 잘게 자르지 않아도 되었기에 엄마들의 수다는 계속되었다고 한다. 아내가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술 한 잔 기울이며, 꿈을 나눌 수 있는 자유. 그것을 위해서는 남편으로서 그 시각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

공연은 끝났다. 그러나 마을극단 '밥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들은 조금 더 공부하고 논의하여 협동조합이 될 것이며, 조금 더 고민하여 또 다른 극을 완성시키고 연기할 것이다. 관심 있으신 분은 연락하시라.

연극이 끝나고 난 뒤
▲ 모두들 수고했어요 연극이 끝나고 난 뒤
ⓒ 마을극단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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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신) 마을극단 '밥상'은 이번 여름에 내실을 다진다고 합니다. 좀 더 연기를 공부할 것이며, 콘텐츠를 보강한답니다. 가장 힘든 부분은 아이 돌봄의 문제인데 이 역시 어떻게든 해결할 듯 싶습니다. 찾아가는 공연은 이야기베개 시리즈2를 공연한 뒤 가을부터 하겠다고 하네요.


태그:#육아일기, #마을극단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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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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