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 미더 머니>시리즈가 힙합신에 가져온 가장 큰 성과는 힙합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이 지난해를 기점으로 크게 변했다는 데 있다. 이를 통해 힙합은 적어도 하고 싶은 말은 대놓고 할 수 있는 장르가 됐다.

<쇼 미더 머니>시리즈가 힙합신에 가져온 가장 큰 성과는 힙합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이 지난해를 기점으로 크게 변했다는 데 있다. 이를 통해 힙합은 적어도 하고 싶은 말은 대놓고 할 수 있는 장르가 됐다. ⓒ CJ E&M


Mnet 힙합 서바이벌 <쇼미더머니3>에서 양동근이 말한다. "이거 이상하게 악마 편집하면 다 죽여 버릴거야." 스윙스는 "시청률 높이려는 심보가 보였다"며 제작진을 앞에서 '깐'다. 더 콰이엇이 오디션에서 병아리 감별하듯이 탈락을 쉽게 결정하는 이유는 빨리 집에 가고 싶어서다.

다른 이들이라면 태도 하나하나가 논란이 됐을지 모른다. 순전히 이들이 래퍼로 인정받기에 가능한 일이다. 출근하자마자 부지런히 TV와 인터넷 창을 켜고 검색어 장사를 하는 기자들도 <쇼미더머니3> 속 프로듀서들의 행동에 대해서는 유독 논란이라는 표현을 덜 쓴다.

작년 '컨트롤 비트' 사건(미국 래퍼 켄드릭 라마가 '컨트롤(Control)'이라는 노래로 다른 힙합 뮤지션들을 디스(비난)한 것을 시작으로 국내 힙합 뮤지션들끼리 디스전을 벌인 일련의 사태)이 명확하게 보여주듯, 이제는 장외에서 벌어지는 MC들 간의 디스까지도 대중들의 눈길을 끌어 모으는 흥행요소가 됐다. 대중들은 경쟁과 디스와 랩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랩을 잘 한다는 전제 안에서 그 어떤 허세와 싸가지도 용서한다. 대신 대중들은 이들을 도덕적 심사의 대상에서 잠시 제외시켜주는 대가로 진한 언어적 유희와 말싸움의 쾌감을 선사하길 요구한다.

Mnet은 이 흐름을 놓치지 않고 래퍼들이 야성을 오롯이 끌어낼 수 있게 <쇼미더머니3>라는 케이지를 만들었다. 케이지에선 피가 낭자한 말들이 오가고 그때마다 마니아들은 누군가의 입 기술에 대해 저마다 한 마디씩을 던질 것이다.

물론 이게 (컨트롤 비트 사건의 시발점이 된) 래퍼 켄드릭 라마의 "음악 경쟁으로 실력의 우위를 가리고 그 과정을 통해 힙합 전체의 예술 수준을 끌어올리자"는 주장을 제작진이 온전히 받아들인 결과인지는 더 지켜봐야 할 일이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싶은 건, 힙합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이 지난해를 기점으로 크게 변했다는 데 있다. 컨트롤 비트 사건과 2년간의 <쇼미더머니> 시리즈를 통해 힙합은 적어도 하고 싶은 말은 대놓고 할 수 있는 장르가 됐다.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호감과 비호감을 가르며 모든 것에서 예의를 갖추길 요구하는 대중독재의 시대에서 이정도면? 이건 더 볼 것도 없이 수지맞는 장사다.

할 말은 다 한 힙합, 선입견 타파에 주력한 록

 지금 록 신에 대한 대중의 무관심은 어쩌면 진입 장벽과 방송 노출의 빈약함이 아니라 심리적 포지션의 부재에 있는지 모른다.

지금 록 신에 대한 대중의 무관심은 어쩌면 진입 장벽과 방송 노출의 빈약함이 아니라 심리적 포지션의 부재에 있는지 모른다. ⓒ CJ E&M


사실 힙합처럼 상대방의 대한 비난이 기술로 승화된 경지까지는 아니지만, 록 음악에도 디스는 있다.

스웨이드의 기타리스트 버나드 버틀러가 보컬 브렛 앤더슨에게 "그는 분위기와 순간적인 반짝임에 의해 곡을 썼지만 결코 뮤지션은 아니다"라고 직격탄을 날리거나, 트렌트 레즈너가 뮤직비디오에서 빌리 코건과 마릴린 맨슨의 앨범을 변기에 넣고 버리는 장면은 마니아들끼리 두고두고 회자되는 사건이다. 단순한 비방이 아니라 데이먼 알반이 "브릿팝은 죽었다"고 선언한 것처럼, 록 신의 발전을 위해 논쟁의 화두를 던지는 경우도 있다. 물론 다 외국 이야기다.

국내 로커들은 아직 대중들과 동료 구성원들에게 면죄부를 받지 않았다. 김경호는 이제 예능에서 '언니'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 가수가 됐다. 신해철은 이전과 다르게 민감한 사안에서 말을 아낀다. 모두가 제도권 내에서 성과없이 친숙해져만 갔다.

그럼에도 반전의 기회는 있었다. 이를 날려버린 건 순전히 잘못된 방향 설정 때문이었다. 재작년 방영한 KBS < TOP밴드2 >에 나온 헤비메탈 밴드는 '저희 그렇게 과격한 사람 아니에요'라는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하고, Mnet <밴드의 시대>에 참가한 밴드들은 서로를 칭찬하며 훈훈하게 경연을 마무리했다.

록이 가진 이미지를 환기하려는 시도들이 적재적소에 들어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대중의 선입견을 바로잡는 해명에 집중됐다. 이해는 된다. 방송이나 참가한 밴드 모두 록이라는 장르 특성상 광범위한 정의들이 왜곡된 이미지를 낳고 그게 전파를 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임팩트도 없고 시청률도 낮게 끝났을 바에는, 차라리 <쇼미더머니3>에서 보여준 양동근이나 스윙스의 패기가 더 적절했을지 모른다. 어차피 무의미한 가정이지만. 그럴수록 입맛은 더 쓰다. 

과연 이 친절함이 맞는 옷일까? 흥행을 위한 록 신의 고민

그 때의 실패를 비난과 성토의 재료로 쓰려는 건 아니다. 지나치게 방어적인 록 신의 모습에는 지난 50년간 국가와 기성세대로부터 끊임없이 손가락질 받으며 시장을 유지해 온 이들의 역사적 상처가 작용한다. 장발을 한 로커에게 미친놈이라며 손가락질이 날아오던 시절, 생존을 위해서는 경쟁의식보다 동업자 마인드가 필요했다. 선배와 후배, 친구와 동생으로서 뭉쳐야만 생존을 도모할 수 있는 시절이었다.

그렇게 30년이 흘렀고, 문제는 그 다음이 있느냐다. 역사적 한계를 곱씹더라도 대중들이 가진 선입견에 대해 해명을 하는 듯한 방어적 노력만으로 음악 시장에서 어떤 주목을 끌어낼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한 장르의 마니아로서 다른 장르와의 비교는 가슴 아프다. 하지만 < TOP밴드 >와 <밴드의 시대>가 이전보다 더 경쟁적인 구도에 서로에 대한 감정까지 거침없이 담는 프로였다면? 그걸 본 로커들이 페이스북에서라도 각자 한 마디씩 한 마디 얹었다면? 그때도 우리가 같은 결과를 보고 있을까.

지금 록 신에 대한 대중의 무관심은 어쩌면 진입 장벽과 방송 노출의 빈약함이 아니라 심리적 위치의 부재에 있는지 모른다. 대중에게는 록 신이 까도 좋은 소재인지, 이들이 까는 것을 용서해줘야 할 정도로 매력 있는 존재인지 제대로 판단해본 경험이 없다. 대승적 차원에서 인디신의 흥행을 바라는 것도 이제는 한계다.

사실 이건 모든 걸 떠나, 로커의 본질과도 결부된다. 모두 액슬로즈처럼 무대에서 난투극을 벌이고 "우린 XX 예전에 끝났어, 돈 때문에 하는 거지, 그니까 티셔츠나 사라고 XX들아"라고 말한 오아시스처럼 되자는 게 아니다. 다만 눈치 보지 않고 당당히 자신의 생각을 말 할 수 없는 록 신의 현주소는 한 번 생각해봐야 할 주제다. 자존심 따위는 던져버린 록 신의 범 대중적 서비스 정신이 지금 한국의 록 시장에 얼마나 맞는 옷인지도 함께.

지금까지의 친절함이 록 신에 가져온 것은 뭘까. 힙합의 약진은 참고가 될 수 있을까. 꽤나 지난한 고민이 될지 모른다. 그리고 그걸 넘어야 다음이 보인다. 

쇼미더머니 밴드의 시대 힙합 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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