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두문자에 폭행 위협, 박치기까지. 백주대낮에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공공장소에서 차마 눈뜨고 보기힘든 불상사가 벌어졌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러한 꼴불견의 주인공이 동네건달이나 조폭이 아니라 바로 현역 대학농구 감독이라는 사실이다.

정재근 연세대 농구부 감독은 10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14 아시아-퍼시픽 대학농구 챌린지' 결승 고려대전에서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난동에 가까운 추태를 보여 지켜보던 팬들을 경악시켰다.

연장전 종료 2분을 남기고 연세대 최준용의 골밑슛이 빗나간 것을 고려대가 리바운드를 따내 공격권을 확보했으나, 정재근 감독이 갑자기 코트로 뛰어들어 심판을 붙잡고 거세게 항의하며 경기가 중단됐다. 정 감독은  고려대 이승현이 수비하는 과정에서 파울이라고 주장했으나 심판은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판정하고 파울을 불지 않았다.

테크니컬 파울을 선언받고 더욱 흥분한 정재근 감독은 심판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오른주먹으로 때리려는 제스처를 취했다. 옆에서 정 감독을 말리던 또다른 심판에게는 박치기를 날리기도 했다. 정 감독의 기세가 워낙 흉흉했던 탓에 연세대 벤치와 주변 관계자들도 적극적으로 말리지 못하고 한동안 바라보기만 했다.

결국 정 감독은 즉각 퇴장명령을 받았지만 이후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심판에게 고성으로 반말과 욕설을 퍼부었다. "일루 와봐, 이 XX야," "니가 나가" 같은 거친 폭언과 육두문자는 경기장 전체를 쩌렁쩌렁 울리며 생중계를 타고 그대로 방송됐다. 항의의 정도를 넘어선 정 감독의 행패는 지켜보던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중계화면에서 리플레이 결과 이승현이 최준용의 슛을 저지하려는 과정에서 손을 뻗기는 했지만 이렇다할 신체 접촉은 없었다. 만일 파울성 동작이 있었다면 코트에서 뛰는 선수 본인이 가장 먼저 항의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노마크 찬스를 놓친 최준용은 어떤 어필도 하지 않고 바로 백코트하기 바빴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 정재근의 위치에서는 파울로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심판의 판정은 정확했다.

설령 심판이 오심을 했다고 할지라도 정재근 감독의 막무가내식 추태는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되기 어렵다. 이성을 잃은 그 순간부터 정 감독의 모습은 더 이상 감독도 농구인도 아니었다.

이날 경기는 국제대회였고 해외 참가국 선수와 관계자들도 모두 지켜보는 무대였다. 대학 경기로는 드물게 모처럼 공중파에서 생중계까지 했다. 무엇보다 대학팀들의 경기력을 높이고 국내 농구붐을 조금이나마 중흥시켜보자는 좋은 취지에서 주최한 대회에 큰 흠집이 생겼다.

선수 시절에도 '비매너' 구설수 

프로농구에서 2013-14시즌 4강 플레이오프 KT와 창원 LG의 1차전 당시 전창진 KT 감독이  판정에 항의하며 코트에 난입해 심판을 밀쳤다가 퇴장당한 바 있다. 당시 전창진 감독은 1경기 출전 정지와 제재금 500만 원의 징계를 받았다. 당시 전창친 감독은 심판을 밀치고 고성을 내지르기는 했지만 정재근보다는 수위가 낮은 편이었다. 그럼에도 상습적인 항의 전력이 있는 전 감독에 대한 징계가 너무 가볍다는 비판은 당시에도 있었다.

정재근의 사례는 오히려 2007년 LG에서 활약하다가 심판을 폭행하여 물의를 빚은 외국인 선수 퍼비스 파스코의 사례에 더 가깝다. 당시 파스코는 KBL에서 영구퇴출당했다. 하지만 비슷한 다른 국내 선수의 사례를 봐도, 파스코가 외국인이어서 더 엄격한 처벌이 내려진 면도 있었다.

한 가지 더 생각해봐야 할 것은 농구인 정재근의 '비매너' 구설수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현역 프로선수 시절이던 2002-03시즌 당시 KCC 소속이던 정재근은 경기중 고의적으로 삼성 박성훈의 턱을 가격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박성훈은 당시 이가 아랫입술을 파고들 정도로 중상을 당했다. 명백히 고의적인 행동이었음에도 당시 정재근은 고작 2경기 출장정지와 제재금 300만 원의 솜방망이 징계에 그쳤다. 어떤 의미에서는 지난 2013-14시즌 경기중 KCC 김민구의 명치를 고의로 가격하여 엄청난 비난을 받은 외국인 선수 애런 헤인즈의 '원조' 격이다.

또한 연세대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2012년에는 '고의 패배' 논란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2012 MBC배 대학농구연맹전에서 한수아래로 꼽히던 조선대를 상대로 노골적인 태업에 가까운 플레이를 펼쳐 빈축을 샀다. 당초 부상선수가 많아서 정상적인 경기가 어려웠던 연세대가 대회 불참이 불발되자 빨리 대회를 마감하기 위하여 고의로 진게 아니냐는 소문이 파다했다.

정재근은 이를 부정했지만 당시 연세대 벤치는 경기내내 작전타임 한 번 부르지 않았고, 외곽슛만 던지는 등 성의없는 플레이로 일관했다. 심지어 종료 직전 3점차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오히려 3점을 던지지 않고 시간을 끌다 2점슛을 던지는 기행을 펼치기도 했다.

선수 개인의 돌출행동이라고해도 비판받아 마땅한데, 하물며 정재근은 선수들의 귀감이 되어야할 지도자 신분이다. 그것도 미래의 한국농구를 이끌어갈 미래의 유망주들을 가르치는 대학 감독이다. 정재근의 모교이기도 한 연세대는 자타공인 한국농구의 명문이다. 아무리 성적지상주의가 팽배한 한국스포츠라고해도 학원체육이라면 최소한의 스포츠맨십과 인성을 가르치는게 우선이다.

무엇보다 과연 감독 정재근의 기행을 보면서 후배이자 제자들이 도대체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우려된다. 심판의 멱살을 잡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위협, 박치기를 하는 것을 과연 승부욕이라고 변명해야 할까. 아니면 한국농구의 고질병인 심판에 대한 불신으로 인하여 감독의 그 정도 항의는 한국농구에서 일상적인 일이라고 해야 할까.

정재근 감독의 충격적인 기행은 단순히 일회적인 징계 차원으로만 끝날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지도자 자격'까지도 다시 검토해야 할 중대한 사안이다. 우발적인 해프닝으로 넘어가기에 앞서 농구계의 명예를 실추시킨 책임이 너무 크다. 욱한 마음에 실수했다고 하겠지만, 그 정도의 감정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지도자라면 어린 선수들을 가르치기에는 교육적으로 이미 자격 미달이다. 대한농구협회와 연세대 측이 책임있는 대처를 내릴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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