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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흥 시가지, 한 집 건너 찐빵집이다.
 안흥 시가지, 한 집 건너 찐빵집이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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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바람을 일으키십시오

지난 8일 안흥찐빵업자들에게 드리는 쓴 소리 기사를 보내고 참 많이 괴로웠습니다. 혹이나 제가 쓴 기사가 여러분에게는 비수로, 또는 안흥찐빵업을 더욱 위축시키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입니다(관련기사: 안흥찐빵, 손으로만 빚는 게 아니었습니까?).

솔직히 저는 이제 이 세상에 살게 될 날도 그렇게 많지 않을 테고, 이전에도 앞으로도 안흥찐빵업과는 전혀 관계없이 살아왔고, 또 살아갈 텐데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여러분 마음을 아프게 하겠습니까?

저는 한때 그 마을에 살았던 사람으로, 이 나라 한 교육자로, 한 지식인으로 여러분에게 간곡하게 호소하오니 제 말을 잘 들으시고 안흥찐빵마을에 새 바람을 일으키십시오. 그것만이 여러분이 사는 길이요, 그 바람이 대한민국 고을 곳곳으로 전파될 때 지방 경제도 살아나고 대한민국 경제도 살아날 뿐 아니라 우리의 상품이 세계적일 수 있습니다.

저의 제자가 미국 메릴랜드 주 락빌에 살고 있는데 지금도 제가 안흥찐빵마을에 사는 줄 알고 이즈음도 메일이 오면 자기는 슈퍼에 가면 선생님 생각이 나서 안흥찐빵을 한 상자 사다가 식구들이 맛있게 먹었다고 보냅니다. 이처럼 안흥찐빵은 미국 캐나다 등지 슈퍼에도 인기상품으로 팔리는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안흥찐빵마을을 되살리는 몇 가지 방안을 두서없이 말씀드립니다.

지난날 안흥찐빵 축제 때 몰려든 인파.
 지난날 안흥찐빵 축제 때 몰려든 인파.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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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순녀 여사를 받들어 모셔라

첫째, 안흥찐빵마을은 누구 때문에 이름이 났습니까? 제가 굳이 말씀 드리지 않아도 다들 잘 아시지요. 지금도 안흥에 사시는 심순녀 여사 때문이 아닙니까? 오래 전 그분 가족이 먹고살기 위해 밤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무릎이 아프도록 빚어 만든 찐빵이 맛있다고 소문이 나서 그곳이 '안흥찐빵마을'로 유명해 진 것 아닙니까?

제가 6년 가까이 그 마을에 살면서, 안흥찐빵마을협의회나 안흥찐빵축제 때 그분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분을 인터뷰한 적도 있고, 안흥찐빵마을협의회 측 얘기도 다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까닭은 다 알지만, 이 기사에 구구히 얘기하고 싶지 않거니와 이제 화합을 촉구하는 마당에서 피차 기분 나쁜 지난 이야기는 들추고 싶지 않습니다. 왜 남의 공로를 거저 먹으려 합니까?

둘째, 안흥찐빵기계업자들을 안흥찐빵마을에서 추방하고, 그들이 만드는 찐빵에는 '안흥찐빵'아라는 상표를 못 쓰게 하세요. 정히 그들이 떠날 수 없다면 그들이 만든 포장지에는 '안흥기계찐빵'이라는 문구를 크게 넣도록 하세요. 그래야 소비자가 속지 않을 것 아닙니까?

제가 안흥찐빵마을에서 사서 보낸 지인들 가운데는 "당신이 사 보낸 안흥찐빵과 우리 동네에서 산 안흥찐빵은 왜 맛이 다르며,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판 안흥찐빵은 왜 맛이 다른가?"하는 전화를 여러 번 받았습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다는 것은 제가 굳이 말씀 드리지 않아도 여러분은 잘 아시겠지요.

솥에서 갓 나온 안흥 손찐빵
 솥에서 갓 나온 안흥 손찐빵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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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지를 심어주라

셋째, 안흥찐빵 품질 유지와 안흥찐빵을 만드는 분들의 직업에 대한 긍지입니다. 제가 앞 기사에서 잠깐 말씀드린 바 있지만, 이웃 일본은 정말 징그럽도록 싫은 나라지만, 그네들의 직업윤리와 전통 고수, 그리고 상품을 만드는 정성은 우리가 정말 배워야 그들을 이길 수 있습니다.

제가 아키타 한 우동집에 갔더니 자기네 집은 우동가게를 연지 350년이 된다면서 아직도 손으로 우동을 뽑을 뿐 아니라, 불량품을 가리고 포장하는 일도 모두 일본의 젊은이들이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흰 가운을 입고 불량품을 가리는 한 젊은 여성에게 힘들지 않느냐고 질문을 하자, 그는 "자신의 일에 만족한다","우동은 손맛이다","우동 만드는 일이 좋아서 한다"고 답하더군요.

일본 한 우동가게의 자료실, 우동을 만든 자기네 조상을 자랑스럽게 기리고 있었다.
 일본 한 우동가게의 자료실, 우동을 만든 자기네 조상을 자랑스럽게 기리고 있었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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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규수지방 다자이후 텐만구 앞 매화무늬찹쌀떡 굽는 집에서 하나에 사서 맛보며 그것을 굽은 이를 보니까 머리가 완전히 센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70대 후반으로 보였습니다. 그는 자기 직업에 만족하며 손님을 대단히 친절히 맞았습니다.

그네들은 주인이 직접 찹쌀떡을 빚으며 전통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안흥찐빵업자 사장님 가운데 모든 일은 종업원에게 시키고 고급 승용차 타고 폼 잡을 분은 안흥찐빵업계에서 떠나십시오. 다른 지역의 업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도 그런 분은 틀림없이 종업원 임금을 박하게 주거나, 종업원 위에 군림할 것입니다.

일본의 우동공장, 손으로 만들고 있다. 그래서 유명하고 비싸다.
 일본의 우동공장, 손으로 만들고 있다. 그래서 유명하고 비싸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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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후 텐만구 앞 찹쌀떡 구이집의 주인
 다자이후 텐만구 앞 찹쌀떡 구이집의 주인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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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성을 잃지 말라

넷째, 안흥찐빵마을협의회에서 자체적으로 안흥찐빵 맛 유지에 힘쓸 것이며 회원들끼리 불량제품을 만들거나 정직한 재료를 쓰지 않는 집은 징계하여 대외적인 신뢰성을 잃지 않게 하십시오. 정히 수지가 맞지 않으면 값을 올리더라도 맛을 떨어뜨리거나 중국산 팥을 쓰면 언젠가는 고발되어 한 업소의 잘못이 전 안흥찐빵업소의 잘못으로 신뢰성을 잃게 될 것입니다.

안흥찐빵업소 여러분! 제발 모두 다 죽는 길을 택하지 마시고 더불어 다 잘 살 수 있는 길을 택하십시오. 한번 떠난 소비자의 마음을 잡기는 힘듭니다. 지금이라도 때를 놓치지 마십시오.

지난날 안흥찐빵 축제 홍보깃발, 그때처럼 융성하기를 빈다.
 지난날 안흥찐빵 축제 홍보깃발, 그때처럼 융성하기를 빈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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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안흥찐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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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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