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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뉴스를 봤습니다. 20년 동안 양파 농사를 지은 농부의 사연이었습니다.

예년 1만6000원 정도 하던 양파값이 올해는 2000~3000원. 그나마 사는 사람이 없어 길가에 싸놓아 '양파산성'이 돼 간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아무리 농산물이 기후의 영향을 받고 여러 지역에서 재배된다고는 하지만, 세상에 이럴 수는 없습니다. 만약 양파값이 두세 배 올랐다면 어땠을까요? 도회지 소비자를 위해 어떤 조치가 취해졌을 것입니다. 물가안정이라는 단어가 수면 위로 올랐겠지요.

누구도 아닌 우리 땅을 지키는 농부들이 겨우 할 수 있는 일이란 여의도든 광화문이든 상경해서 '양파산성'을 쌓는 게 고작입니다. 이런 일이 생길 때면 '농수산물 가격보상제'가 거론됩니다. 하지만 촌에 들어와 살다 보니 농수산물 가격보상제의 실현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농촌에서 벌어 먹고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뼛속 깊이 알 것 같습니다.

선거 표와 연결되지 않은 농촌은 죽을 일만 남았습니다. 정치인들은 이제 '나는 농민의 아들이다, 농민의 딸이다'라고 하지 않습니다. 필요하면 무엇이든 수입하면 되니까요.

피땀 흘려 일하는 농부들의 눈물을 닦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운 매실

광양에 있는 한 매실밭에서
 광양에 있는 한 매실밭에서
ⓒ 김창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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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양파뿐만의 문제일까요. 마늘, 매실, 감자…. 밭작물들은 이미 '산성'을 이뤘습니다. 나무에서 거두지 않은 매실은 천지에 널렸습니다. 이런 매실을 사가는 사람도 없으니 나무에서 스스로 떨어져 나가길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성질 급한 농부들은 자식 같은 매실을 그냥 놔둘 수 없어 효소를 담그고, 밤을 새워가며 매실고를 만듭니다.

설탕 장사만 좋습니다. 하루에 700kg을 따서 효소를 담았네, 1톤을 담아 허리가 빠지네 합니다. 1톤이면 매실나무 30그루 분량이고 설탕도 100포대가 들어가는 큰일입니다. 오죽하면 설탕값, 항아리나 용기값 들이며 이런 힘든 노동을 하겠습니까.

매실이 효소가 되는 몇 개월이든 1년, 2년 뒤든 팔 확신도 기약도 없습니다. 이 또한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에 이런 일이!' 됐습니다. 10kg 당 5만 원은 받아야 할 매실값이 5000원이 됐습니다. 

매실 체험단으로 가서 따온 매실... 10kg에 단돈 5000원, 세상에 이런 일이!
 매실 체험단으로 가서 따온 매실... 10kg에 단돈 5000원, 세상에 이런 일이!
ⓒ 김창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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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서는 자구책으로 직거래를 하거나 도시에서 매실 체험단을 모집하기도 하지만 이 또한 역부족입니다. 소비자들이 매실값이 똥값인 줄 아는데 누가 알아서 찾아와 줄까요. 매실 체험단을 모집했다는 한 농가의 매실밭에 가봤습니다. 한 사람이 더 오기로 했다는데, 아직 도착하지 못한 관계로 저 홀로 있었습니다.

이 매실밭 관계자는 가지가 찢어지게 열려 손길을 기다리는 매실들을 가리키며 "큰 것으로만 골라 따가라"라고 했습니다. 매실밭 주인은 연로하신데다가 매실을 팔 수 없다는 사실에 상심해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계신다고 했습니다. 이런 설명을 들으니 울컥해지고 부화도 치밀었습니다.

저는 따온 매실을 깨끗한 물에 씻었습니다. 농부들의 한숨 소리도 함께 씻어내고 싶었지만, 귓가에 맴도는 한숨 소리는 점점 더 커져만 갔습니다. 울긋불긋 예쁜 열매에는 농부의 땀방울과 그들의 발걸음 소리가 스며들어 있습니다.

시골은 지금 '바겐세일' 중

태풍 등 큰 바람이라도 불면 그나마 달려있던 매실도 다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농부들은 일기예보에 귀를 쫑긋 세우며 밤잠을 설칠 것입니다. 논밭에 심어진 곡물들이 상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지요. 제값을 받든 받지 못하든 슬하의 자식들 같기 때문이기에….

병원에 계신 할아버지는 안 계시고 매실만 익었다.
 병원에 계신 할아버지는 안 계시고 매실만 익었다.
ⓒ 김창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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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으로 논의 물고를 살피던 동네 아저씨가 며칠이 지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황이 궁금해 이웃집에 물어 봤더니 농기계에 발을 크게 다쳐 수술을 했다고 합니다. 아저씨댁에 찾아가봤더니 거동도 못하는 상태에서 "한창 일봐야 할 때인데…"라고 답답해 하셨습니다. "그래도 몸이 먼저다, 완쾌할 때까지 움직이지 마시라"라고 조언했지만, 아저씨는 오늘 목발을 이용해 밖에 나와 그동안 못 봤던 벼들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이게 농부입니다. 이렇게 내 몸보다 작물 걱정이 앞서는 게 농부의 마음입니다. 땅만 보고 하늘만 보고 결실에 웃음 짓는 이들의 한숨과 눈물을 거둘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소망합니다. 그들의 고마움을 알아줄 세상이 되길 소망합니다.

그들의 한숩과 눈물을 닦아줄 이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한숩과 눈물을 닦아줄 이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 김창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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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는 "내가 원하는 나라는 높은 문화의식을 가진 나라, 그런 백성이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나라의 문지기가 되길 원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높은 문화는 우리 땅을 지키고 하늘에 순응하며 제철 작물을 거두는 귀한 손길, 그 선한 마음에 있습니다. 그래서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농자를 귀하게 여기는 나라, 나 역시 그런 나라의 백성이 되면 좋겠습니다.

땅이 병들면 우리 몸도 병이 듭니다. 이 땅을 지키는 농자의 한숨과 눈물은 우리 마음에도 상처를 남길 것입니다.

조금만 배려하고, 위해주고, 그들의 노고에 감사할 줄 아는 높은 의식을 가진 백성은 바로 우리 같은 서민 아닐까요. 구호만 요란한 자가 위기에 처했을 때 더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자기 변명을 늘어놓는 것을 봐왔습니다. 힘 없고 가진 것 없는 우리가 늘 앞장을 서오지 않았습니까. 농부는 우리의 조상이었고, 우리의 하늘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그들이 포기하기 전에, 하늘을 구하는 덕성을 산성으로 쌓아야 할 우리입니다.


태그:#매실, #양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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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아래, 섬진강가 용정마을로 귀농(2014)하여 몇 통의 꿀통, 몇 고랑의 밭을 일구며 산골사람들 애기를 전하고 있는 농부 시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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