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비게이션> 영화 포스터

▲ <내비게이션> 영화 포스터 ⓒ (주)리코필름,필름K,골든타이드픽처스


<홀로코스트>나 <목두기 비디오>로 대표되는 '페이크 다큐멘터리(fake documentary)' 장르는 카메라의 시점과 사건의 기록 등 엄격한 공정으로 생산된 모조품으로 관객을 속이길 원한다. 근래엔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하위 개념으로 새로이 파생된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장르가 유행을 끌고 있다.

문자 그대로 '발견된 영상'이란 의미를 지닌 파운드 푸티지는 실재 기록이 담긴 영상을 누군가가 발견해서 본다는 설정이다. 이 장르의 간판 스타는 <파라노말 액티비티> 시리즈다. 단순히 공포 영화에 머물지 않고 장르의 폭이 넓어지면서 <클로버필드> <크로니클> 같은 영화가 나오기도 했다. <폐가>는 국내에서 드물게 파운드 푸티지 형식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내비게이션> 영화의 한 장면

▲ <내비게이션> 영화의 한 장면 ⓒ (주)리코필름,필름K,골든타이드픽처스


장권호 감독의 <내비게이션>은 전진우 작가가 쓴 단편 소설 <안전운전 하십시오>를 원작으로 삼았다. 선배의 차를 빌려 즉흥적으로 여행길에 오른 세 친구가 길에서 우연히 주운 내비게이션 안내에 따라 목적지를 가던 중 예기치 않은 상황과 직면한다는 내용인 <안전운전 하십시오>는 과거 TV에서 방영된 <트와일라잇>의 에피소드로 어울릴 법한 소재를 다루었다.

<안전운전 하십시오>엔 끝을 알 수 없는 길, 삶과 죽음의 미로에 빠진 인물이 등장한다. 끝없이 이어진 길에서 출구를 찾지 못한 채로 빠져나가지 못하는 소설의 구조는 영화 <더 로드>와 흡사한 구석이 많다. 아마도 <안전운전 하십시오>는 <더 로드>가 보여준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 반복되는 전개에서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안전운전 하십시오>는 장편 영화의 분량을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한 단편 소설이다. <내비게이션>은 소설을 각색하면서 장편 영화의 분량에 맞게 이야기의 살을 새로이 덧붙였다. 남자 3명이 여행을 떠나는 설정은 철규(김준호 분)와 민우(탁트인 분), 수나(황보라 분)로 바꾸었다. 그들이 여행을 떠나기 전에 선배를 만나는 등 대학 생활의 일상이 등장한다. 또한,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 마주치는 여학생, 정체불명의 집, 그리고 거기에 사는 할머니를 추가시켰다.

다양한 카메라 시점, 어떻게 그렇게 찍을 수 있지?

<내비게이션> 영화의 한 장면

▲ <내비게이션> 영화의 한 장면 ⓒ (주)리코필름,필름K,골든타이드픽처스


<내비게이션>은 <더 로드>처럼 보통의 극영화의 형식으로 만들어도 무방한 내용이지만, 굳이 파운드 푸티지 장르를 선택한 점이 특이하다. 장권호 감독의 설명으로는 새로운 방식의 스토리텔링이 가능할지 실험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단지 1인치 시점의 카메라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각화된 카메라를 통해 극 영화적인 촬영과 편집기법을 파운드 푸티지 형식에 녹였다고 한다.

<내비게이션>은 주인공들이 가지고 다니는 카메라, 블랙박스에 장착된 카메라, 내비게이션이 쓰는 전후방 카메라, 고속도로와 현금지급기, 편의점에 설치된 CCTV 시점을 다양하게 활용한다. 분명 <내비게이션>이 몇 년 전에 나왔다면 이런 시도를 새롭다고 평가했을 것이다. 그러나 <크로니클>이 이미 거쳐 간 길이고, <파라노말 액티비티> 시리즈가 다양한 카메라 시점을 실험하는 현실에서 <내비게이션>의 시도는 신선함과는 거리가 멀다.

파운드 푸티지 장르에서 일상(또는 사건)을 기록하는 카메라 시점은 자연스러워야 한다. 극한 상황에 몰린 인물이 촬영을 계속하는 이유를 이해시켜야 한다. 하지만 피운드 푸티지 장르에 약속된 규칙을 <내비게이션>은 스스럼없이 깬다.

CCTV로 볼 수 없는 인물 시점이 등장하는 정도는 약과에 불과하다. 위급한 상황에서도 카메라는 피사체를 완벽하게 잡고, 자신이 대변을 보는 상황을 찍는 멍청한 장면까지 등장한다. 파운드 푸티지의 시점을 선택하고 편리하게 사용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가차 없이 버리는 것은 실험을 가장한 장르의 오남용이다.

<내비게이션> 영화의 한 장면

▲ <내비게이션> 영화의 한 장면 ⓒ (주)리코필름,필름K,골든타이드픽처스


<내비게이션>을 보면서 <무서운 이야기 2>의 에피소드 '사고'와 <데드 엔드>를 떠올렸다. <내비게이션>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사고'는 욕심을 내지 않고, 아이디어가 보여줄 수 있는 한계를 정확히 인식했다. 또한, 백 년 산삼을 찾는 촬영팀을 담은 <데드 엔드>는 완성도는 떨어져도 극 영화의 시점과 극 중에서 제작하는 다큐멘터리 시점을 오가며 적절하게 혼합하는 유연함을 보여주었다.

파운드 푸티지 장르는 이미 나온 작품도 많고, 더불어 제약도 적지 않기에 더욱 많은 고민을 통해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내비게이션>은 여러 영화가 보여준 요소를 가져와 시점의 설득력 없이 파운드 푸티지라는 용기에 이것들을 욱여넣었다. <폐가>가 걸었던 전철을 답습하는 <내비게이션>의 유일한 미덕은 형식 자체가 길을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은 될지언정 경로를 이탈했을 경우에 재탐색은 하지 않는다는 교훈이 아닐까 싶다.

내비게이션 장권호 황보라 탁트인 김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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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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