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14 브라질 월드컵이 대장정의 막을 내리려 한다. 4년 만에 다시 찾아온 월드컵 경기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은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세월호 참사를 잠시나마 잊고 꼭두새벽부터 응원하던 축구팬들은 대표팀이 허망하게 지는 모습에 실망하며 TV를 껐다.

축구팬들은 벨기에와의 마지막 경기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다. 하지만 우리 대표팀은 선수 한 명이 퇴장까지 당한 벨기에를 상대로 경기를 유리하게 끌고 가지 못했다. 결국 단 한 골도 넣지 못한 채, 우리 선수들은 울음을 터뜨리며 경기장을 빠져 나왔다. 경기 참패에 대한 충격이 컸던지 아침 출근 후 어느 누구를 만나도 먼저 축구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기대가 컸던 만큼, 국민들의 한국 축구에 대한 실망감은 어느 때보다 컸다.

축구전문가들과 축구팬들은 날카로운 지적과 비판을 연이어 쏟아냈다. 선수기용에 있어서 실력보다는 특정 선수를 너무 편애하는 바람에 팀워크가 깨졌다는 비판이 있었다. 준비 기간이 너무 짧았다는 지적도 있다. 경험이 부족한 감독에게 1년이란 준비 기간은 새로운 전술을 익혀 실전에 적용하기에는 너무 짧았다. 일각에서는 홍 감독의 지도자 능력과 자질을 탓했고, 경기의 흐름을 읽는 전술전략이 부족했다는 얘기도 뒤따랐다.

무엇보다 창의성이 부족했다. 늘 비슷한 전략과 전술을 여러 차례 경기에서 반복함으로서 전술이 거의 노출됐다. 본 무대에서마저 예측 가능한 전략을 쓰는 바람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이다. 

16강 진출 실패한 월드컵 대표팀, 박근혜 정부와 비슷

박근혜 정부가 출범 당시 주창한 창조경제도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한국축구가 받은 성적표만큼이나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상황이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는 한국축구의 현실과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다. 경제를 살릴 전략과 전술은 이미 밑천이 다 드러났다. 별다른 경기부양책도 없이 허울 좋은 간판만 단 채 1년 반이란 시간을 허송세월했다. 국가경제가 흔들리는데 여전히 '경제 살리기'라는 골대 앞에서 헛발질만하는 셈이다.

'창조경제'를 한다는 의미는, 창의성을 바탕으로 국가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뜻이다. 이 용어는 박근혜 정부가 처음 만든 말이 아니다. 원래 이 말은 영국의 경영전략가인 존 호킨스(John Howkins)가 지난 2001년 출판한 <존 호킨스 창조경제>(The Creative Economy)에서 처음 사용했다. 그는 "창조경제란 새로운 아이디어, 즉 창의력으로 제조업과 서비스업, 유통업, 엔터테인먼트산업 등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최우선 국정운영 전략으로 창조경제를 강조했다. 그 이후로 이 용어가 큰 주목을 받았다.

우리나라 경제의 미래를 걱정하던 대다수 국민들은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를 무척 반겼다. 선거 당시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던 유권자들 중에서도 내심 기대감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다. 과거 "경제를 살리겠다"는 말을 믿고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 중에서도 뒤늦게 후회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번 선택만은 맞을 것이라고 순진하게 믿은 유권자도 있다. 자원도 부족하고, 국토도 좁은 우리나라가 살 길은 오직 경제 발전이라는 강한 집착, 잘 살지 못했던 과거에 대한 트라우마가 새 정권이 내세운 기치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박근혜 정권이 출범한 지 1년 6개월이 지났지만 창조경제의 성적은 초라하다. 가시적인 성과도 거의 없을뿐더러 정부 관료들은 창조경제에 대한 개념 정리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다. 정부는 여전히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창조경제를 만들어 나아가야 할지 우왕좌왕하고 있다.

국민들의 기대와 다르게 흘러가자 창조경제에 대한 비판여론이 고개를 들었다. "역시나!" 하는 푸념의 소리도 들린다. 일각에서는 "실패한 국가전략이 아니냐?"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기업들은 정부의 구호에 맞장구는 치고 있지만, 이렇다 할 구체적 성과나 실천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창조경제를 통한 고용 효과 증진과 일자리 창출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정부 관료도 이해 못하는 '창조경제'

창조경제가 이토록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우선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출범과 동시에 창조경제의 기치를 올리자, 평소 복지부동하던 관료들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창조경제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소비했다. 위에서 끊임없이 실적을 올리라고 압박하니, 이름만 그럴듯한 정책들을 마구잡이식으로 쏟아냈다. 정작 지금 시점에서 국민들의 기억에 남는 정책은 하나도 없다.

정부 관료들의 창의성 부족도 문제다. 입으로 창조경제를 외치고 있는 공무원들은 연공 서열에 따라 중요 요직에 앉은 이들이다. 창조적인 마인드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내놓는 정책은 식상하고 뻔한 내용에 제목만 다른 것들이었다.

창의성이 가미된 새로운 정책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시행착오를 감내해야 한다. 이를 감당할 정도로 배포가 있는 정부 관료는 찾아보기 힘들다. 관료제의 속성상 책임감을 갖고 과감히 도전하는 정책입안자도 드물다. 임명직인 장관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분위기가 전혀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관료들이 제대로 된 성과물을 도출하기란 불가능하다.

창조경제를 관장하는 주무부처는 미래창조과학부다. 미래부는 지난해 10월 벤처기업인들의 정책성과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100점 만점에 54점의 낙제점을 받았다. 창조경제가 잘 되고 있다는 응답도 15.5%에 불과했다.

미래부 장관이 물러난 주요 이유 중 하나는 창조경제 성과의 부진이었다. 청문회에 등장한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장관 후보의 자질 논란이 뜨겁다. 농지법 위반을 피하기 위해 잔디밭에 고추를 심은 것에 대해 "이만한 창조경제가 어디 있겠냐?" "이 정도면 창조경제 국가전략을 수립할 만한 최고의 적임자"라는 조롱 섞인 비아냥마저 들린다. 이렇듯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를 책임질 주무장관조차 제대로 적임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안일한 대처로 국민적 질타를 받은 데 이어 두 번에 걸친 총리후보자 낙마로 위기를 자초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지지도는 최근 40% 이하로 떨어졌다. 대다수 국민의 창조경제에 대한 관심과 신뢰 역시 땅에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정부 관료들은 세월만 낚고 있다. '남은 3년 반만 버티면 된다'는 생각인지 의심스럽다. 아무리 좋은 국가전략과 구상이라 할지라도 이를 수행해야 할 정책입안자가 방향도 잡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 사실상 이 정책은 폐기된 것이나 다름없다.

국민이 모르는 정책, 없는 정책과 같다

지난 3월 '규제개혁장관회의 겸 민·관 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를 주재하면서 한 기업인이 인증제도와 관련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윤상직 산업부 장관이 이를 위해 '1381' 콜센터를 운영하고 있다고 대답하자, 박 대통령은 "'1381'을 많이 알고 있느냐"라고 되물었다. 당황한 장관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당시 박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국민이) 모른다면 없는 정책과 같다."

백 번 지당하고 옳으신 말씀이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한 말은 지금 창조경제가 처한 상황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지금의 창조경제는 국민이 잘 모르는 '1381' 콜센터와 다르지 않다. 일반 국민들조차도 창조경제가 무엇인지 명쾌하게 알지 못한다. 그저 가수 싸이가 "내가 바로 창조경제"라고 한 말 정도만 흐릿하게 뇌리에 남아 있을 뿐이다.

창조경제의 틀을 어떻게 다시 재정립하고 풀어갈지 고민이 필요한 때다. 창조경제라는 국가전략 자체는 국가의 발전과 미래를 위한 기조로 손색이 없다. 창의성에 기반한 혁신과 노력으로 창의적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무한경쟁시대에서 대한민국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국가전략도 이를 실행에 옮기는 관료들이 경직된 사고를 바탕으로 움직인다면 사실상 그 전략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앞으로 3년 반가량 남았다. 박근혜 정부의 성패는 창조경제의 실현에 달려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퇴임 후 '또 속았다'는 말은 나오지 말아야 한다. 경제에 실패한 대통령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박근혜 정부는 지금이라도 반성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만 경제가 살고, 나라가 살며, 우리의 미래도 살아난다.


태그:#박근혜 대통령, #박정연, #미래창조과학부, #창조경제, #국가전략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라이프 캄보디아 뉴스 편집인 겸 재외동포신문 기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