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메인 포스터

▲ 피아니스트 메인 포스터 ⓒ 씨네월드

예술의 소재로 전쟁만큼 매력적인 주제는 찾기 힘들다. 생과 사를 넘나들며 인간의 극단적인 모습을 들추어내는 것이 바로 전쟁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인류역사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홀로코스트 역시 영화나 소설 등에 있어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되어왔다. 이 영화 <피아니스트>도 홀로코스트 속에서 살아남은 유태인 피아니스트 스필만의 자전적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흥미로운 주제에 로만 폴란스키의 노련한 연출과 에드리언 브로디의 열연까지 더해지며 유태인 감독이 만들어낸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로 명성을 얻은 이 영화는 에드리언 브로디에겐 세계적인 배우로 도약하는 발판이 되었고 홀로코스트를 경험했던 유태인 감독 로만 폴란스키에겐 자신의 경험에 대한 분출의 통로가 되었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다른 많은 영화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 역시 평단으로부터 찬사는 물론 여러 영화제로부터 수많은 트로피를 거머쥘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가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한 피아니스트의 자전적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대체 한 피아니스트의 비극적인 시간 이외에 이 영화가 주목할 만한 무엇을 담고 있는가? 건조함을 가장한 시선은 나치의 잔악한 행위를 통해 관객에게 쇼크를 강요하고 영화는 보여주기에 치중한 연출 속에서 그 너머의 주제를 살려내지 못한다.

혹자는 비극의 보여짐,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느냐고 물을지 모른다. 분명히 영화는 유태계 원작자와 감독 사이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된 영화이고 그들이 그려낸 이야기는 그들이 목적하였을 나치의 만행과 유태인의 고난을 스필만의 자전적 이야기를 통해 얼마간 효과적으로 영상화 한 듯싶다.

그러나 나는 찬사일색인 평단의 평가와 영화가 거둔 엄청난 성과에 대해 약간의 의문을 갖는다. 이 영화의 긴 런닝타임은 단지 비극을 보여주기 위해서만 존재하는데, 주제와 관련된 명확한 의도 없이 반복적으로 보여지기만 하는 비극은 관객의 동정표를 얻어내는데 그치지 않고 지루함까지 양산하고 있을 정도다.

피아니스트 스필만과 호첸펠트

▲ 피아니스트 스필만과 호첸펠트 ⓒ 씨네월드


물론 영화에서 보여지는 비극이 거짓은 아니다. 하지만 특별한 주제를 드러낼 생각도 없이 나치의 잔혹함만을 반복하여 보여주고 주인공의 고난과 그에 대한 동정을 자아낼 뿐인 이 영화는 스필만의 자서전 이상의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이 영화의 불완전함은 독일인 장교 호첸펠트에게서도 보여진다. 그는 독일인 장교임에도 스필만이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연주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살려준다. 이어서 영화는 호첸펠트를 미화한다. 그의 등장 때마다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삽입하여 그가 음악의 애호가임을 암시하고 그가 스필만에게 베푸는 호의를 통해 친절함을 부각시킨다.

그러나 사실 그는 유태인에게 만행을 행한 독일군의 장교이고 유태인을 학살하는 하급 장교의 행위를 묵인하는 인물이며 포로로 붙잡혀서는 스필만에게 연락을 취해 살길을 찾으려는 전범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는 영화의 침묵 속에서 적잖이 미화되고 있다.

나는 관객들이 고찰 없이 재생산되는 수많은 홀로코스트 영화들에 더 이상 감동받을 수 없고 감동 받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홀로코스트는 더 이상 작품성에 대한 '묻지마티켓'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건 아무리 보아도 그리 대단한 영화가 아니다.

피아니스트 홀로코스트 로만 폴란스키 애드리언 브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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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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