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남한산성 남문쪽의 성벽, 보수공사로 성벽이 말끔하게 정리되었으나 성벽에 사용한 석조나 현대식 보수공사방식으로 옛 모습이 손상된듯하다.
▲ 남한산성 남한산성 남문쪽의 성벽, 보수공사로 성벽이 말끔하게 정리되었으나 성벽에 사용한 석조나 현대식 보수공사방식으로 옛 모습이 손상된듯하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지난 6월 22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제38차 유네스코유산위원회에서 남한산성이 우리나라에서는 11번째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어릴적부터 종종 찾았던 곳이지만, 이번 방문은 세계유산 남한산성의 위용에 대해 생각하며 길을 걸었다.

무너진 성벽들을 재보수한 흔적들이 많이 보인다. 깔끔해 진것은 분명한데, 그 많던 돌들은 어디로 갔는지 근래에 채굴한 듯한 돌들로 성벽은 재건됐고, 심지어 드문드문 이전에 있던 돌들은 박아놓은 곳도 있다.

그래도 방치 속에 사라지는 것보다는 나은 결정이겠지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옛것을 복원하고 수리할 때에는 철저한 고증 속에서, 최대한 옛 모습을 살려가며 개보수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간간히 남아있는 옛모습

이곳도 재정비되었고, 제2남옹성치 아래쪽의 작은 성터도 재정비 중이지만, 이전의 모습은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 제2남옹성치 이곳도 재정비되었고, 제2남옹성치 아래쪽의 작은 성터도 재정비 중이지만, 이전의 모습은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이전에 바라보던 제2남옹치성의 모습은 저 모습은 아니었다. 물론 고증을 거쳐 이전의 모습을 복원했겠지만, 굉장히 낯설고 이질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제2남옹치성 아래에도 작은 성곽이 있었는데, 개보수를 하면서 이전의 정감있는 모습은 다 사라져 버렸다.

이맘때면 그곳엔 나리꽃이 무성했었는데, 나리꽃은 하나도 없고 개망초와 심지어는 원예종 금계국까지 드문드문 자라고 있다. 성곽 안에 있었던 제법 큰 상수리 나무도 없어졌고, 뽕나무도 없어졌다.

내 추억에 남아있는 모습이 원형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꽤나 낯선 곳에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주 간간히 옛 모습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노란 짚신나물 꽃이 성곽의 산책로를 따라 피어났다.
▲ 짚신나물 노란 짚신나물 꽃이 성곽의 산책로를 따라 피어났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그래도 그마나 흔적이라도 남아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증재가 됐으니 더 알뜰살뜰 가꿔가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성곽은 현대식으로 보수되었거나, 아직도 손봐야 할 곳은 많지만 등산로를 따라 피어나는 꽃들과 나무는 여전히 피어나고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남문에서 동문 쪽으로 1km 거리에 있는 산책로 곁에 개망초와 짚신나물 꽃이 피어나 길손을 반긴다.
▲ 짚신나물과 개망초 남문에서 동문 쪽으로 1km 거리에 있는 산책로 곁에 개망초와 짚신나물 꽃이 피어나 길손을 반긴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감사'라는 꽃말을 가진 짚신나물은 저렇게 길가에 피어있다가 길손의 짚신에 갈고리 모양의 씨앗을 붙여 긴 여행길을 떠나곤 했단다. 그래서 그 길손에게 '감사'하다는 의미를 담아 꽃말이 생긴 것인지도 모르겠다.

개망초와 짚신나물뿐 아니라 딱지꽃·싸리꽃 등도 한창이다. 물레나물꽃은 한창때는 지났지만 여전히 꽃을 피우고 있으니 남한산성을 지켜온 이들은 어쩌면 이런 풀꽃들이 아닐까.

초석의 흔적만 남은 남장대터에 뱀무가 피어있다.
▲ 남장대 초석과 뱀무 초석의 흔적만 남은 남장대터에 뱀무가 피어있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지금은 초석만 남아있는 남장대터, 초석에 기대어 뱀무가 피어나고 있다. 남장대터 주변을 돌아보니 깨진 기왓장 같은 것들이 제법 있다. 거의 손바닥 크기도 되지 않는 것이지만, 정조 12년(1788년) 세워졌고, 순조 12년(1802년) 고쳐졌다고 하니, 그 작은 기와의 흔적은 200년 이상의 세월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런데 그것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닌가 보다.

왜 이리도 오랜만에 왔을까

제2남옹성치 안에 피어난 개망초, 인적이 드문 길은 들풀 세상이다.
▲ 개망초 제2남옹성치 안에 피어난 개망초, 인적이 드문 길은 들풀 세상이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남장대터 앞에는 제2남옹성치의 성벽이 있고, 그 안에는 개망초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치는 성벽 일부를 밖으로 돌출시켜 성벽으로 접근하는 적을 공격할 수 있는 시설물 중의 하나이며, 제2남옹성치는 남한산성에 있는 다섯 개의 치 중에서 가장 크다.

숲을 파고든 햇살에 그림자 조차도 신록에 물이 든듯 하다.
▲ 나무 숲을 파고든 햇살에 그림자 조차도 신록에 물이 든듯 하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여름날의 이파리가 햇살을 받아 빛난다. 신록의 점점 깊어지는 계절이다.
▲ 신록 여름날의 이파리가 햇살을 받아 빛난다. 신록의 점점 깊어지는 계절이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역시 산은 산이다.

울창한 숲의 그늘에 앉으니 드문드문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오히려 반갑다. 그 뜨거운 햇살도 이곳에서는 그 위력을 잃어버린다. 나무 사이로 바람이 불어오고, 이파리들이 한껏 바람에 흔들리며 소리를 내고, 새소리가 어우러지며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참으로 가까운 곳,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올 수 있는 곳인데 왜 이리도 오랜만에 왔을까?

멀리가야만 좋은 것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은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때문인 듯하다.

소중한 것은 물론이고, 아름다운 것, 내 삶의 꼭 필요한 것은 멀리에 있지 않으며, 대부분 돈을 주지 않고도 누릴 수 있는 것들이다.

싸리나무는 싸리빗 뿐 아니라 다양한 생활도구를 만드는 귀한 나무였다.
▲ 싸리꽃 싸리나무는 싸리빗 뿐 아니라 다양한 생활도구를 만드는 귀한 나무였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싸리꽃이 한창이다.

싸리나무는 참 유용하게 사용됐다. 싸리빗은 물론이고, 담장을 엮을 때에도 싸리나무를 사용했고, 지게 발채를 만들 때에도 사용했다. 그리고 다른 화목과는 달리 연기가 나지 않기 때문에 이전에 산에서 취사가 가능했던 시기에 싸리나무는 다양도로 사용됐다.

여름에 싸리꽃이 한창 피어날 즈음에 베어놓으면 줄기만 남기고 마른다. 칡덩굴도 미리 잘라서 잘 말린 뒤에 칡덩굴을 물에 불려가며 싸리비도 만들고, 발채도 만들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그런 것들을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조금 늦게 익은 산버찌나무에 새들이 날아와 버찌를 먹느라 바쁘다.
▲ 참새와 산버찌 조금 늦게 익은 산버찌나무에 새들이 날아와 버찌를 먹느라 바쁘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한낮이라 그런지 새들이 먼 곳 혹은 숲의 깊은 곳에서만 기척을 낸다. 그런데 산벚나무가 좀 늦게 열매를 맺었는지, 잘 익은 산버찌를 따먹느라 새들이 몰려들어 시끌벅적하다.

새들도 나름 질서가 있는지 박새가 한창 몰려와 먹고가면 참새가 몰려와 먹고, 참새가 날아가면 또 박새가 오고 이런 식이다.

남한산성 성벽개보수와 관련해서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나마 남아있는 옛모습들에 감사하며 추억들을 하나둘 꺼내본다. 그러고 보니 내게 가장 가까웠던 산, 어릴적 눈만 뜨면 보이던 그 산이 바로 남한산성이었다. 지금도 옥상에 올라가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 남한산성이고. 너무 가까운 곳에 있어서 그 소중함을 잊고 살았던 것뿐이다.


태그:#남한산성, #남문, #남장대터, #짚신나물, #유네스코 세계유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