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8일(현지시간) 브라질 벨루오리존치에서 열린 월드컵 4강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팀의 두 번째 골을 넣고 기뻐하고 있다. 클로제는 개인 통산 16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역대 최다 득점자에 이름을 올렸다.

독일의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8일(현지시간) 브라질 벨루오리존치에서 열린 월드컵 4강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팀의 두 번째 골을 넣고 기뻐하고 있다. 클로제는 개인 통산 16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역대 최다 득점자에 이름을 올렸다. ⓒ EPA-연합뉴스


'월드컵의 사나이'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새로운 역사를 썼다. 대망의 16번째 골을 성공 시키며 불가능해 보이던 월드컵 통산 개인 최다득점을 갈아치웠다.

독일은 9일(한국시간) 벨루 오리존치 에스타지우 미네이랑에서 열린 브라질과의 2014 FIFA 브라질 월드컵 4강전에서 7-1로 대승을 거두며 한일월드컵 이후 12년 만에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이 경기에서 클로제는 1-0으로 앞선 전반 23분 토마스 뮐러의 패스를 이어받은 첫 번째 슈팅이 상대 골키퍼 줄리우 세자르의 선방에 막혔다. 하지만 굴절된 볼을 재차 밀어넣으며 골망을 흔들었다. 이날 경기의 결승골이기도 했다.

클로제는 대회 2호골을 기록하며 자신의 월드컵 통산 골 기록을 16골로 늘렸다. 이날 경기전까지 통산 최다골은 호나우두가 갖고 있던 15골이었다. 마침 브라질의 해설진으로 이 경기를 중계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호나우두도 클로제의 대기록 달성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클로제는 월드컵을 위하여 태어난 남자다. 분데스리가 정상급 공격수로 오래 세월 활약해왔지만 클럽보다도 독일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월드컵에서 보여준 활약이 더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클로제는 2002년 한일 월드컵 5골을 시작으로 2006년 독일 월드컵 5골,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4골을 터뜨린 바 있다. 자국에서 열린 2006년 대회에서는 득점왕에도 올랐다. 브라질월드컵 개막 전까지 자국의 전설이던 게르트 뮐러(14골)와 동률을 이뤘지만 이번 대회에만 2골을 추가하며 호나우두(15골)를 제치고 마침내 통산 득점 1위의 자리에 올랐다.

클로제와 독일에게는 브라질과 맺은 오랜 한을 푼 하루이기도 했다. 12년 전 한일월드컵 결승 당시 독일은 호나우두에게만 2골을 허용하여 0-2로 패했다. 당시 멤버 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인물은 클로제와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브라질 감독뿐이다. 호나우두는 당시 클로제를 제치고 월드컵 득점왕도 차지했다.

호나우두는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3골을 추가하며 종전 게르트 뮐러가 보유하고 있던 월드컵 기록을 경신한 바 있다. 8년 전 호나우두에 의해 안방에서 대기록을 빼앗긴 독일은 8년 뒤 이번엔 브라질의 안방에서 그것도 홈팀을 상대로 대승과 최다득점 기록을 탈환해 기묘한 악연을 이어갔다.

클로제의 신화가 더욱 귀감이 되는 것은 단지 골의 숫자 때문만은 아니다. 대기록을 만들기까지 그가 축구선수로서 장수할 수 있었던 인생역정에 있다. 폴란드계 이민 2세로 독일에 정착한 클로제는 출신에 대한 편견과 의문부호를 오직 축구 하나로 극복하며 자수성가한 인물의 전형이다.

스무살이 될 때까지 독일 최하부리그를 전전하는 무명의 아마추어 유망주였다. 그의 축구 재능은 뒤늦게 빛을 발하며 카이저슬라우테른-베르더 브레멘-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어지는 독일 최고 명문클럽들을 거치는 드라마틱한 인생곡선을 그렸다. 승승장구하는 클로제에게 독일대표팀에서도 러브콜을 보내며 첫 한일월드컵에 출전했을 때가 24세였다.

올해로 자신의 4번째이자 마지막이 될 월드컵을 치르고 있는 클로제는 어느덧 36세의 노장이 되었다. 기량은 건재하지만 아직도 월드컵 무대에서 통할까 하는 의구심 또한 없지 않았다. 요아힘 뢰브 감독은 당초 주전으로 염두에 뒀던 마리오 고메즈(피오렌티나)가 부상으로 부진하자 2순위였던 클로제를 최종 엔트리로 낙점했다. 2011년 뮌헨에서 방출되며 축구 인생의 전성기가 지났다고 평가 받은 클로제였지만 이탈리아 라치오로 이적한 후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클로제는 꾸준함의 대명사다. 물론 전성기 때도 '헤딩만 잘하는 선수'라는 잘못된 선입견에 시달리기도 했고, 월드컵 골기록에 비해 동시대 최고의 공격수들과 비교하면 저평가를 받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클로제만큼 기복없이 오랜 시간을 활약하며 30대를 넘긴 이후에도 꾸준히 발전을 거듭해온 선수는 찾기 힘들다.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한 헤딩과 위치 선정 외에도 동료들과의 연계 플레이, 패싱, 공간 활용 등에서 해를 거듭할수록 원숙해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클럽에서는 다소 부침이 있었을지언정 대표팀에서는 클로제만큼 꾸준히 안정적으로 활약한 공격수도 없었다. 전력이 강한 독일의 덕을 봤다는 평가도 있지만, 올해 그 쟁쟁하다는 독일 대표팀 엔트리에 전문 스트라이커는 사실상 노장 클로제가 유일하다는 것만 봐도 클로제의 경쟁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증명한다.

더 이상 독일대표팀 부동의 주전도 아니고, 뢰브 감독도 클로제의 기록을 위한 특별대우는 없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클로제는 오직 실력으로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의문부호를 불식 시켰다. 선발이건 교체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헌신하며 팀의 승리에 이바지했다. 36세의 선수가 월드컵 우승을 노리는 팀의 주전 공격수로 선발출전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철저한 자기관리와 노력이 뒷받침되었는가를 증명한다.

클로제의 16골 대기록은 앞으로 깨지기 어렵다. 클로제를 제외하고 역대 두 자릿수 득점을 넘긴 선수들은 모두 은퇴한 과거의 인물들이다. 현대축구는 날로 타이트해지는 조직적인 전술과 압박의 영향으로 개인의 대량득점이 점점 어려워지는 추세다.

최소한 3번 이상의 월드컵 본선에 출전하여 매번 5골 이상을 꾸준히 넣어야 클로제의 기록에 근접할 수 있다. 더구나 월드컵같은 토너먼트 무대에서는 개인기량뿐 아니라 팀 전력도 받쳐 줘야 한다.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5골),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골)같은 슈퍼스타들도 월드컵 통산 득점기록에서는 아직 클로제 앞에 명함도 못내밀 수준이다.

더구나 클로제에게는 아직 결승전 1경기가 남아있다. 만일 1~2골만 더 추가할수 있다면 클로제의 기록은 현대축구에서 좀처럼 깨지기 어려운 불멸의 기록으로 남을 수도 있다. 호나우두나 호날두, 메시처럼 타고난 재능은 미치지 못할지라도 끊임없는 노력으로 동시대의 어떤 스타보다도 장수하고 있는 클로제의 신화는 축구선수들의 귀감이 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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