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강지환

배우 강지환 ⓒ 조은회사


|오마이스타 ■취재/이미나 기자| 뛰고 구르고 얻어맞으며 촬영장을 누볐다. 촉박한 제작 시간에 자칫 극의 흐름이 이상해질까 늘 두세 가지 버전의 연기를 준비해 가는 것은 기본이었다. 결국 시청률 6.0%가 12.6%가 됐다. 동시간대 시청률 2위를 맴돌던 <빅맨>은 결국 마지막 회에 가서 1위를 차지했다.

KBS 2TV 월화드라마 <빅맨>을 마치고 만난 강지환은 "웃긴 게 욕심이 생기더라. 누구도 (1위를) 예상하지 않았잖나"라며 "'요거 봐라, 한 번 해 드려?'라는 생각에 더 열심히 했다"고 털어놨다.

"모든 작품들이 그렇지만 이번 작품에 임할 때 독기가 있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꼴찌 드라마'라 생각하니 정말 잘하고 싶었죠. 타이틀 롤이니까 제가 먼저 치고 나가지 않으면 작품에 승산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래도 사실 엔딩이 다소 뻔해서 시청률 1위를 기대하진 않았어요. '선방했다,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진짜 1위를 했잖아요. 마치 역전골을 넣은 기분이더라고요."

"드라마는 스포츠가 아닌데, 금은동을 가리는 현실이 싫다"면서도 강지환은 "어쩔 수 없다"며 "도망가고 싶고 지쳐도 결론적으로 평가가 좋으면 (피로가) 눈 녹듯이 삭 녹는다"고는 웃었다. 그의 말처럼, <빅맨>은 복합장르 드라마가 득세한 상황에서 단순하지만 선 굵은 메시지로 공감을 얻었다. 강지환의 말처럼 때로는 뻔했고, 때로는 공익광고 같기도 했지만 거대 자본 권력에 맞서 '시장의 아들'이 결국 승리하는 <빅맨>은 잠시나마 시청자에게 위안을 줬다.

"뻔해도 보게 되는 게, 사실 이게 정말 사람들이 꿈꾸는 세상이긴 했잖아요. 손발이 오그라들긴 했지만…. (웃음) 또 정말 이런 세상이 와야 하기도 하고요. 여러 가지 사회적 이슈에 맞춰 '진실한 리더가 무엇인가'라는 생각들이 일어나는 시점이기도 했죠. 유치하지만 사람들이 꿈꾸고 있는 세상을 그렸기 때문에 드라마가 박수를 받지 않았나 싶어요."

"'주인공에 연연하지 않게 됐다' 말하기까지 10년 걸렸다"

 배우 강지환

강지환은 <빅맨>에서 자신과 맞붙었던 배우 최다니엘(강동석 역)에게도 고마움을 전했다. "처음으로 후배에게 '연기 잘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한 것 같아요. 아직 제가 그럴 '짬밥'은 아니지만…. (웃음) 뻔할 수 있는 캐릭터를 긴장감있게 연기해 줘서 드라마에 큰 힘이 됐잖아요. 다만 술자리에서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너무 맨정신에 해서 그런지, 서로 어색하더라고요. 저는 진심을 말한 건데! (웃음)" ⓒ 조은회사


강지환이 <빅맨>을 통해 잃은 게 있다. 바로 '주연 배우 욕심'이다. "예전에는 늘 '주인공을 하고 싶은 사람, 주연 배우를 하고 싶은 사람이었다"는 그는 "하지만 이번처럼 혼자 총대를 메다 보니 그 스트레스나 압박감에 너무나 힘들었다"며 "좀 더 즐기면서 재미있게 연기해야 하는데 주인공 스트레스와 시청률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며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제가 할 수 있는 게 꼭 주연이 아니고 조연이더라도, 작품을 살릴 수 있는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고 뮤지컬과 연극까지 자유자재로 하는 게 연기자로 롱런하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래도 처음 주연을 맡게 된 배우들은 뜬금없이 조연을 하라고 하면 힘들 거예요. 사실 얼마나 힘들어요. 선택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건데….

그래서 다들 앞만 보지, 뒤로 후퇴하는 건 현실적으로 드문 경우거든요. 저도 그랬고요. 하지만 이젠 팀이나 작품에 도움이 되는 방향을 좀 더 고민하게 됐어요. 뭔가, 따뜻한 드라마를 해서 그런가?(웃음) 그러다 보니 선택의 폭도 넓어지는 것 같아요."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게 되기까지, 강지환에게는 그토록 소중히 생각하는 연기를 뜻대로 할 수 없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일까. 최근 그의 필모그래피는 강렬한 기운을 뿜어내는 캐릭터가 주로 자리하고 있다. 그가 연기했던 작품 속 캐릭터들은 처절하게 좌절했고, 분노에 몸을 떨었고, 끝내 통쾌한 복수에 성공했다.

이를 두고 "에너지 표출이 필요해서 그랬던 것 같다. 당시(소속사와의 분쟁으로 1년간 활동을 쉬었을 때)는 배우로서 너무 힘든 시기였다"는 강지환은 "또 내가 연기하고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이 (캐릭터들과) 일맥상통했던 부분도 부인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직 연기한 인생보다 연기할 인생이 더 길다"고 힘주어 말했다. 주연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게 된 것 또한, '연기할 인생'을 조금 더 길게 만들기 위한 강지환의 처방전인 셈이다.

"'주인공에 연연하지 않게 됐다'는 이 말을 하게 되는 데 10년이 걸렸어요. 과거 제가 무명이었을 때 가장 바랐던 건 대사 한 줄이었어요. 대사가 있으면 좀 더 비중이 있는 역할을 원했죠. 또 주연이 되고 싶었고, 스타가 되고 싶었어요. 세월 속에서 오는 변화가 배우에게도 있는 건데, 이제 저에게도 그게 오지 않았나 싶어요."

"'연기로 논란에 서지 말자', 그게 연기자로서의 내 원칙"

 배우 강지환

강지환이 <빅맨>에서 가장 아끼는 신은 짝사랑하던 소미라(이다희 분)이 강동석의 연인이라는 것을 알고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넘어져 우는 장면이다. "원래는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집 앞에서 동석과 미라를 보고 골목에 주저앉는 신이었다"는 강지환은 "그런데 한 번 정도는 지혁의 순수한 캐릭터가 터질 타이밍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그래서 아기들의 울음을 떠올렸다. 자전거를 탁 대고 멋있게 앉아 울기보단, 아기들이 뛰어가다 넘어지고 '우왕' 하고 우는 것처럼 해야겠다 싶었다"고 했다. ⓒ 조은회사


물론 잃지 않은 것도 있다. 강지환은 "내가 하는 연기는 나를 보러 온 사람들을 재미있게 하거나 울리기 위해서다"라며 "그들의 시간을 빼앗고 싶지 않아서, 그들의 시간을 위해서 연기한다"고 강조했다. 대중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그래서다. 그는 "'시청률에 연연하지 않고 즐기겠다'는 말에서 딜레마를 느꼈다"고 했다.

"'나는 너무 (시청률에) 목매는 거 아닌가?'라는 고민도 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연기라는 건 사람들이 보라고 하는 거잖아요. 보지 않으면 (연기할) 필요가 있을까요? 예전에 그런 이야기도 한 적이 있어요. 칸 영화제에 갈 정도로 작품성이 있지만 흥행이 안 되는 작품과 시청률 30~40%가 나오는 막장 드라마 중 무얼 하겠냐고 하면 막장 드라마를 하겠다고요. 몇 명에게만 박수를 받고 마느니, 좀 더 잘 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게 배우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강지환이 무명 시절 한 지상파 연예 정보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적이 있다. 한 CF에서 단역으로 출연했을 때였다. 그저 시간이 남아 카메라를 들이댔던 촬영 팀에게 강지환은 "도봉구에선 내가 킹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고 했다. 그 '도봉구 킹카'가 이젠 '전국구 배우'가 됐다. 배우로서 그의 목표는 단연 "좋은 작품을 만나 좋은 결과물을 내는 것"이다. 세월 속에서 배우로서의 삶에는 변화를 맞았지만, 그가 지닌 원칙만큼은 세월의 변화마저 비껴간 듯하다.


 배우 강지환

"싱글로 8~9년 있다 보니 연기하고 집에 들어왔을 때 같이 기뻐해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상형이요? 예쁘고 착한 건 당연한 거고요. (웃음) 예전엔 그러면 다 만족했는데 이젠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가 보여요. 그래서 누굴 만난다는 것 자체가 어렵네요. 나이가 들어 제가 준비만 되면 (결혼이) 쉬워질 줄 알았는데 말이죠. (웃음)" ⓒ 조은회사


"제게 원칙이 있다면 '연기로 논란에 서지 말자'는 거예요. <굳세어라 금순아>로 첫 주연을 맡았는데, 163회까지 출연하면서 겁나는 건 딱 하나였어요. 잘리는 것. 그땐 연기력 논란이 있으면 갑자기 하차를 하고 그랬던 때거든요.(웃음) 무명 배우가 뜬금없이 일일드라마 주인공이 됐던 건데, 왜 절 뽑았는지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어요.

당시 그런 불안이 있어서 그런지 항상 2안 3안을 생각하고, 의상이나 소품까지 하나하나 꼼꼼하게 계산하고 체크하는 습관이 들었어요. 지금도 타이틀 롤에 주연 배우까지 하게 됐지만, 그 연장선상에 서 있는 것 같아요. 언제나, 누가 물어봐도, 내 대본에 대해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고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강지환 빅맨 굳세어라 금순아 최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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