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짐승의 시간>을 읽었다. 청탁을 받은, 조금 특별한 책이다. 일단은 써야 했다. 하지만 자리에 앉기 힘들었다. <짐승의 시간>은 거대한 국가 폭력 앞에서 '짐승'이 되어야 했던 한 인간의 이야기다. 누구든 그 '짐승'이 될 수도 있었다. 분노와 수치가 뒤범벅된 감정의 일렁임을 진정시키기 어려웠다. 그 떨림을, 혼란스러운 머리가 거들었다. 인간은 과연 어디까지 극악해질 수 있을까. 첫 문장을 내놓는 일이 어려웠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냉정을 잃어서는 책을 온전히 소개하기 힘들 것 같았다. 작가가 전하려던 메시지도 온전히 그려내기 어려울 것 같았다. 차분해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 보조사와 부사어를 자제하자. 뜨끈한 관형어는 모른 체하자. 극악한 고문을 이야기하는 책에 감정 따위는 사치다. 잘 될지 모르겠지만 되도록 사실 전달에 충실하자. 나는 결국 서평을 건조한 목소리에 담기로 했다. 아래는 짧지 않았던 그 고민의 흔적이다.

만화가가 그린 '김근태의 남영동 22일'

책 표지.
 책 표지.
ⓒ 보리

관련사진보기

<짐승의 시간>은 만화가 박건웅이 그렸다. 한국 근현대사의 숨겨진 이야기를 즐겨 그린 작가다. 이것은 일종의 그래픽 노블(만화소설)이다.

그래픽 노블은 길고 복잡한 스토리라인, 튼튼한 제본 등을 특징으로 한다. 500쪽을 훌쩍 넘는 책 두께와 두툼한 표지, 숨 막히듯 촘촘히 쌓아올린 벽돌 벽과 한 뼘 쪽창으로 고문실을 그린 듯한 이미지 배경의 책표지가 인상적이다.

<짐승의 시간>에 실린 그림들은 흑백의 목판화풍을 자아낸다. 대비감이 선명하다. 여기에는 뜻이 있는 듯하다. '개인'과 '국가'를 떼어놓지 말라. 제도적으로 이루어지는 국가폭력 아래서 개인은 '짐승'이 될 수밖에 없다. 흑백의 이미지 속에서 처절한 외침을 토해내는 한 인간의 모습이 담겨 있다. 김근태. 그가 주인공이다.

책 부제에는 '남영동 22일간의 기록'이 들어 있다. 고 김근태 전 국회의원은 1985년 9월 4일 새벽 5시 30분 서울 남영동에 있는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끌려갔다. 그는 그곳에서 갖가지 고문을 당했다. 물고문, 전기고문, 전기봉고문 들이 차례로 이어졌다. 그가 대공분실에서 나온 것은 1985년 9월 26일 오후 3시경이었다. 야만적인 고문은 22일간 이어졌다.

김 전 의원을 고문한 이들은 전문적인 고문 기술자들이었다. 그들은 마치 고문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들 같았다. 그들의 고문은 조직적이고 체계적이었다. 남영동에 끌려간 첫 날부터 김 전 의원은 '항복'했다. 이미 그는 어떤 저항권도 행사할 수 없는 상태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그를 심리적으로 굴복시키려는 고문 기술자들의 고문 전술은 집요했다. 완벽한 '항복'을 받아내기 위한 첫 번째 물고문은 5시간 동안 이어졌다.

9월 5일 저녁 8시, 전기고문이 시작되었다. 5시간 동안 이어진 두 번째 물고문이 끝난 시점으로부터 19시간이 지난 뒤였다. 전기고문은 '장의사'로 불리던 고문 기술자가 주도했다. 온몸에 전기가 잘 통하도록 물고문이 병행되었다. 김 전 의원은 전기고문을 '불고문'으로 표현했다. 그에 따르면 전기고문은 외상을 남기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치명적으로 내상을 입히고 극심한 고통과 공포를 가져왔다.

물고문이 밑바닥에 닿지 않는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질식해 가는 것이라면, 전기 고문은 불에 달구어 뜨거워진 인두로 지져서 바싹 말려 바스러뜨리고, 둘둘 말아서 불에 튀기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 전기가 발을 통해서 머리끝까지 쑤셔 댈 때마다 어두운 비명을 토해 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온몸 마디마디가 해체되어 나가는 중이었어요. 오직 연결시키고 있는 것은 비명뿐이었습니다. 온몸에 시퍼렇게 핏줄이 솟고 목은 쉬어 가는데 이것은 멱이 따진 돼지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것 같았습니다. … 고문자들의 목표는 나를 총체적인 혼란, 착란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미친 여자의 긴 머리카락이 얼굴을 온통 휘감고 그 희번덕거리는 눈동자가 내 눈 속으로 파고들어 오는 환상이 공포와 광란의 소용돌이로 닥쳐왔습니다. 이것은 슬픔이라든지, 외로움이라든지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잔인한 파괴, 그 자체였어요. (207~214쪽)

고문은 김 전 의원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그는 대공분실 복도에 울려 퍼지는 다른 이들의 비명 소리에 그 어떤 연대의식이나 동정심도 갖지 못했다고 한다. '밤새도록 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내 차례가 돌아오지 않을 거야'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자신이, 비명의 주인공이 아니라 고문자와 한 패가 된 듯한 느낌을 가졌다. 말 그대로 그것은 인간성에 대한 '잔인한 파괴, 그 자체'였다.

김 전 의원은 9월 10일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전기봉고문을 당한다. 이날 그는 매우 특별한 경험을 한다. 김 전 의원은 이날 고문자들의 우두머리격인 김수현으로부터 위로를 받는다. '이봐, 근태! 고통이 심하고 고생이 되는 줄 안다. 빨리 고문대에서 내려 와라'라는 말이었다. 그에게 '엄청나게 큰 사건'으로 다가온 한 마디 위로를 김 전 의원은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눈물이 핑 돌고 콧등이 시큰해졌습니다. 그것보다 더 많이 위로해 주었다면 김수현 가슴에 기대 엉엉 울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 버렸을 것입니다. 한 유태인 정신과 의사가 쓴 글이 생각났습니다. 나치 수용소에 감금되어 오랫동안 고생하다가 전쟁이 끝난 뒤 풀려나온 사람이었습니다. 원수이면서 악마였던 나치 친위대가 나중에는 사랑스런 대상으로, 존엄한 자로 자리잡게 되는 절망적인 자기 고백을 담은 내용이었습니다. 나는 이를 읽고 몸서리치며 믿지 않았는데 이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나는 고문자들에 대해 분노하고 저주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첫날부터 나는 분노할 수 있는 능력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삶과 죽음의 열쇠를 갖고 있던 그 고문자들에게 모든 힘을 다해 아양을 떨어야 했던 것입니다. (338~339쪽)

김 전 의원에 따르면 김수현은 나름대로 절제하고 합리적으로 행동하려고 한 가톨릭 신자였다. 하지만 그는 곧 김수현의 그런 태도가 상부의 지시와 요구, 즉 정치적 필요에 의한 명령에 따른 것일 뿐이었다고 단언한다. 이는, 정치 군부가 국가 변란을 일으키고 폭력을 휘두른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생활을 위해 그 힘을 따르기로 했다는 김수현의 말을 통해서도 드러나는 사실이다.

김근태가 본 고문자... 그들은 악마가 아니었다

다른 고문자들도 비슷했다. 고문자들에 대한 김 전 의원의 관찰을 보자. 김 전 의원의 눈에 그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 자신의 서술처럼 저주받은 표시가 얼굴에 있는 것이 아니고 증오와 분노로 일그러졌거나 눈에 살기가 감돌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결코 악마나 도깨비가 아니었다.

고문자들은 고문실에서 한 고문자의 아들이 체력장 시험 1급을 받은 사실을 놓고 덕담을 주고받았다. 또 다른 고문자는 학생운동 전과자인 사위를 걱정했다. 데모하다가 군대에 간 아들을 염려하는 고문자도 있었다. 김 전 의원이, 고문실에 꼭 있어야 할 것 같은 사람으로 묘사한 '장의사'를 제외한 나머지는 하나같이 '명동 같은 길거리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그 끔찍하고 무서운 고문을 감행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고문자들의 태연함, 고문을 가하면서 짓는 이상야릇한 미소에 질려 버렸습니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 이러고도 견딜 수가 있을까요? 강철 같은 배짱과 강심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그러나 그것은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자기를 속이고 다른 사람도 속이도록 만들어진 제도 속에 갇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구속이나 고문의 방향을 결정짓고, 대상자를 골라 증오심을 키우고 확대시켜 나가면서, 이를 선전하고 지시하는 그룹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곳 남영동 사람들은 제시되고 결정된 방향으로 자기들의 직무를, 아니 작업을 추진해 나가면 그뿐입니다. 이들은 설정된 정치적 목표를 이루기 위해 누가 봐도 불온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얻어 내야 합니다. 그러기에 인간을 욕보이는 가혹한 고문이 '훌륭한 직업'으로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447~449쪽)

'제도'가 만들어내는 이런 부조리한 현실은, 남영동 대공분실을 설계한 천재 건축가 김수근을 통해서도 뒷받침된다. 작가는 작중화자인 만화가 이기영의 말을 빌려, 그 누구보다 공간의 정서를 섬세하게 잘 알고 있었다는 김수근이 심문과 취조, 고문의 효과, 그리고 고문하는 자와 고문당하는 자가 놓인 처지를 세심하게 처리한 건축물로 설계했다고 말한다.

사람 머리도 채 내밀 수 없을 만큼 좁은 직사각형 창은 이 건물을 마치 미술관이나 고급 호텔처럼 보이게 합니다. 그래서 바깥에서 볼 때에는 이곳이 어떤 건물인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철로 너머에 있는 회색 건물 안에서 인간이 짐승처럼 취급당하며 지옥을 넘나들고 있다는 것을 어느 누구도 눈치채지 못합니다. 건물에서 겨우 6~7미터 떨어진 남영 전철역 승강장에는 수없이 많은 시민들이 전철을 타기 위해 오고가지만 남영동 건물은 고문을 당하는 사람들과 고문 기술자들의 공간을 확연히 나누어 설계한 건물입니다. 공포와 폭력을 뿜어내는 건물이면서 동시에 일하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건물이기도 합니다. 이 건물은 대한민국 최고의 건축가로 불렸던 김수근이 분명한 목적과 의도를 담아 설계한, 살아 있는 건물입니다. (287~290쪽)

권력과 제도를 갖춘 국가는 언제든지 '괴물'이 될 수 있다. 전제조건이 있다. 맡은 일에 충실한 신앙인 김수현과,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뽐내 탁월한 고문 건물을 지어준 김수근, 그리고 세상사나 역사에는 무심한 채 가족에게만 충실한 직업 고문자들 같은 이들이 그 국가를 뒷받침해야 한다. '괴물' 국가는 한 명의 독재자가 아니라, 각자 맡은 바 직분에만 충실하고 성실한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선량한 이들의 손에서 만들어진다.

세월호 참사 이후 '괴물' 국가를 말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세월호 참사는 '괴물'인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김수현'과 '김수근', 그리고 제도를 배경으로 끔찍한 고문을 서슴 없이 저지르는 직업 고문자들이, 세월호 참사를 불러온 대한민국을 떠받들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또 다른 우리 안에 있는 '김근태'를, 민주주의의 후퇴를 아파하고 흔들리는 인권에 좌절하고 있을 민주주의자 '김근태'를 불러내야 하는 이유다. 부정선거와 민간인 사찰, 간첩 조작, 부도덕하고 뻔뻔스러운 고위 공직자들을 보라.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의 말처럼 '고문 빼놓고 다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민주주의는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언젠가 그 '고문'조차 다시 찾아오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을까. 김 전 의원이 겪은 그 야만적인 '짐승의 시간'이 우리 모두의 가슴에 뜨거운 불을 지펴주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짐승의 시간>(박건웅 그림 / 보리 / 2014. 6. 26. / 563쪽 / 28,000원)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짐승의 시간 - 김근태, 남영동 22일간의 기록

박건웅 만화, 보리(2014)


태그:#<짐승의 시간>, #고 김근태 전 국회의원, #박건웅 만화,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 #고문
댓글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