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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07년 기타 제조업체 콜트-콜텍의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를 당했습니다. 그 뒤로 계속된 투쟁과 농성. 지금도 그들은 인천에 있는 옛 콜트악기 부평공장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해고자 임재춘씨는 오늘도 그곳을 지키며 굵고 거친 손으로 펜을 꾹꾹 눌러 글을 씁니다. 임재춘씨가 농성장 촛불문화제에서 낭독한 '농성일기'를 연출자 최문선씨의 해설과 함께 독자 여러분들께 전합니다. [편집자말]



토요일(6월 21일) 아침 일찍 인천터미널에 도착했다. 승차권을 끊어보니 대전행 출발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옆에 있는 농산물도매센터를 구경하러 갔다. 배달 노동자들은 수레에 채소나 과일을 싣고 부지런히 도매상인들에게 운반하고 있었다.

대전행 버스는 만차가 되어 출발을 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보니 관광차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놀러가는 사람이 많다. 방송에서는 불경기라고 하지만 해고노동자만 불쌍한 생활을 할 뿐이다.

오늘은 초등학교 동창회가 있는 날이다. 대전에 도착해 부산에서 오는 친구들을 기다렸다. 동창회 전에 만나기로 한 친구들이다. 친구들은 나의 해고와 농성에 대해 다 알고 질문을 하였다. 한진중공업, 밀양 사건 등을 겪고 있는 경상도에 살고 있어 어떤 경우는 나보다 사회문제를 더 많이 알고 있었다.

고향인 공주에 도착하여 마트에 들렀더니 동네 어르신이 계셨다. "왜 요즘에 전화도 없고 연락을 안 하냐?" 하고 꾸중을 하셨다. "요즘 바빠서요"라고 대답을 했지만 해고 노동자 생활한다는 이야기는 못했다. 인사 후 돌아서는 순간에 무엇이라도 사드리려고 했지만 지갑에 돈이 없어 그냥 돌아섰다. 마음은 아프지만 '어쩔 수 없잖아' 하고 생각하였다. 눈물이 났다.

학교에 도착하니 초등학교 친구들이 있었다. "몇 년 만이야?" 하고 인사말을 전한다. 사실 해고 첫 해 참석하고 7년 만에 참석하는 동창회였다. 세월이 유수 같다는 생각이 든다. 벌써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가 40년이 되었다.

학교에서 기념 촬영도 하고 운동도 하였다. 학교는 새 건물로 바뀌어 있었다. 옛날 연못은 남아 있어 정겹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저녁이 되어 시내 한옥 마을에서 총회도 하고 저녁도 먹고 술 한 잔씩 하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한국은 어떻게 될까 하는 이야기를 나눴다.

하역 작업하는 친구는 세월호 사건 이후 안전 관리가 철저해지면서 힘들다고 하소연 한다. 세월호 비정규직 노동자들 때문에 잘 나가는 회사까지 힘들게 한다고…. 다른 친구는 부장 승진 하였다고 수건을 돌리면서 자랑질을 한다.

나는 친구들의 이야기나 행동에 마음이 참 불편하였다. 그러나 듣고만 있었다. 친구들의 이야기에 따지고 싶었지만 싸움이 날까봐, 나를 싫어할까봐서 그럴 수 없었다. 소위 잘 나간다는 친구들에 비해 나는 해고자이고, 이야기를 듣다보니 점점 밑으로 주저앉는 기분이 들었다.

건설업 하는 친구는 한국 노동자가 없어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했다가 사고가 나서 돈을 많이 잃었다고 하소연한다. 왜 한국 사람들은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냐며 짜증을 냈다. 우리 젊을 때만 해도 닥치는 대로 했는데, 요즘에는 싫어한다며….

이야기 자리가 끝나고 집에 갈 사람은 가고, 노래방 갈 사람은 노래방 가고, 몇몇은 고스톱을 치기도 했다. 새벽까지 뿔뿔이 흩어지고 끼리끼리 모여 놀다 헤어졌다. 나도 마음 맞는 친구들과 따로 시골에 사는 친구 집으로 가 점심 때까지 술을 마시며 보내다 헤어졌다. 친구들을 만나도 정겹기보다는 이젠 할 말도 못하고 약해진 나만 느껴진다. 나의 모습이 싫어진다.

2014년 7월 1일 콜텍 해고자 임재춘 

뱀사골에 쌓은 작은 소원탑... 살가운 우정도 쌓이기를

소원탑을 쌓고 있는 임재춘 조합원
 소원탑을 쌓고 있는 임재춘 조합원
ⓒ 임재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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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농성하지 않을 때, 임재춘 조합원은 초등학교 동창회 자리가 마냥 좋았다고 한다. 어릴 적 동무들을 만나는 자리는 유년의 기억과 일상의 소소함을 나눌 수 있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일은 힘들었지만 먹고 살 수 있었다. 그래서 노조 이야기도 없었고, 자신은 불편한 존재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해고는 많은 것들을 앗아갔고, 임재춘 조합원은 7년만의 동창회에서 또 다른 것을 잃고 왔다. 자존심을 잃고, 대신 자격지심을 얻었다.

평소에도 임재춘 조합원은 남들 앞에서 먼저 말하거나 뜻이 다른 사람에게 반박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게다가 세월이 지난 어느 날 과거의 자신과는 너무나 달라져 있는 오늘의 자신은 그렇게 많이 누추했던 모양이다. 안 봐도 비디오인 그 형국, 꿀 먹은 벙어리로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그의 얼굴을 떠올리니 마음이 영 그렇고 그렇다.

다른 농성자에게도 물어보았다. 옛 친구들과는 어떻게 지내냐고. 정리해고 이후 다들 친구들과의 만남은 줄었다고 한다. 일정도 바쁘고, 만나면 고생한다고 말하면서도 나이를 생각해서라도 그만둬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듣는다고 한다. 친구들의 권유는 해고자이자 농성자들에게 위로가 되기보다는 설전의 소재가 되거나 그냥 피하고 싶은 것들이다.

원리원칙 지키고 노동법 지키면서 회사 운영하는 사장이 어디 있냐, 원래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냐는 이야기. 듣는 해고자의 입장에선 어디서부터 설명하고, 어디까지 따져 물어야 하는지조차 막막한 높은 벽이다. 그래서 지금은 아예 가지 않는 친구 모임.

지갑이 텅 빈 채 친구 모임에 가는 건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임재춘 조합원은 그렇게 우울하기 짝이 없는 동창회 모임 이후 그때 오고갔던 친구들과의 대화를 떠올리다 또 우울해지곤 했다. '동창회 울렁증'을 경험한 임재춘 조합원에게 콜텍지회의 다른 두 사람은 이런 말을 전해달라고 한다.

김경봉 조합원 : "야, 원래 동창회는 있는 놈들이 좋아하는 자리야. 가지 마. 차라리 마음 맞고 너 알아주는 사람들이랑 따로 놀아. 뭐 하러 거까지 가서 맘고생 하냐."
이인근 지회장 : "친구는 친구야. 너는 너고. 너의 자격지심이 문제 아니겠냐. 갈라면 당당하게 가고, 갔으면 재미있게 놀다와."

임재춘 조합원은 술자리며, 친구들과의 긴긴 수다를 좋아하는 사람이니, 이왕 하는 위로, "우리가 놀아줄게"라는 약속도 얹어주면 좋을 텐데.

콜텍 해고자들이 대법원 판결에서 패소하자 많은 사람들은 염려했고, 농성자들에게 여행이라도 다녀오라는 충고를 해주었다. 그 덕분에 세 명의 콜텍지회 농성자들은 지난 주 3박 4일 동안 지리산 부근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그 3박 4일은 세 명의 농성자가 한 번의 말다툼 없이 지낸, 기이하고 즐거운 사건이었다. 앞으로도 이어질 이 긴긴 농성에서 가끔은 그렇게 여유도 부려 서로가 잃어버린 친구 몫을 대신해주면 좋겠다. 이번 여행에서 임재춘 조합원은 뱀사골에 작은 소원탑을 쌓고 왔다. "재춘아, 무엇을 빌었냐?" 이렇게 물어준다면 그 소원탑보다 높게 살가운 우정이 쌓일지도 모를 일이다.

여행 끝나고 들른 옛 콜텍공장. 후문 쪽.
 여행 끝나고 들른 옛 콜텍공장. 후문 쪽.
ⓒ 임재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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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콜트콜텍, #정리해고, #위장폐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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