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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잘 나가는 연예인이 검은 수트를 입고 화면에 나와서 강렬한 어필을 한다. "연락 주십시오. 30만 개 일자리 중에 당신 자리 하나 없겠습니까?" 최근 방영되고 있는 유명 구인구직 업체의 광고 카피다.

알바노조가 지난 6월 27일 광화문광장에서 '고작 300원 수준에서 노동자의 삶을 흥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 차라리 해체하라' 기자회견을 펼쳤다.
 알바노조가 지난 6월 27일 광화문광장에서 '고작 300원 수준에서 노동자의 삶을 흥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 차라리 해체하라' 기자회견을 펼쳤다.
ⓒ 알바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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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막상 구인 공고를 보고 알음알음 찾아간 일자리들의 실체는 알바생들에게 그리 달갑지 않다. 짜디짠 시급, 모호한 일의 구분, 결코 만만치 않은 노동 강도에 일상적으로 시달리는 해고의 불안까지…. 게다가 청년 알바의 대다수가 서비스 직종인 탓에, 육체노동과 감정노동의 병행은 기본이다. 나는 아직 겪어 보지 못했지만 일부 사업장에서는 폭언이나 폭행, 심지어 성희롱이나 성추행까지 횡행하다고 하니, 새삼스럽게 알바생 팔자는 왜 이리도 서러운가 싶다.

젊은 계층들 사이에 나도는 말 중에 '알바몬'이라는 말이 있다. 아르바이트(Arbeit)와 괴물(Monster)이라는 의미가 합쳐진 신조어인데, 노동 현장에서 아르바이트생들의 낮은 지위를 꼬집는 말이다. 나 역시 그 필드에서 허덕이고 있는 대학생 '알바몬'이다.

한 4~5년을 쉬지 않고 알바를 전전했으니, 이제 알바에 있어선 어느 정도 잔뼈가 굵다. 돌이켜 보면 별의별 알바가 다 있었다. 그중 가장 기억이 남았던 경우는 전통찻집 알바였다. 조건은 주 5일에 하루 10시간 근무, 시급 4500원이었다. 근로계약서 작성은커녕 최저임금조차 준수하지 않은 사업장이었다. (참고로 2013년 기준, 최저임금은 4860원이었다.)

흔히 찻집이라고 하면 편하다고만 생각하겠지만, 오히려 일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고 최소의 인원으로 가게가 운영되기 때문에 일의 강도는 더 고되다. 손님 주문 받고, 차 만들고, 테이블 치우고, 계산하고, 청소하고, 재료 준비하고, 발주하는 것까지. 나 역시 가게의 거의 모든 일을 전담했다.

힘겹게 일하고 첫 월급을 받는 날, 왠지 입금된 금액이 모자란 것 같기에 이상해 하며 물었던 적이 있다. 돌아온 대답은, 중도에 도망가는 알바생들을 방지하기 위해 일종의 보증금을 제하고 준 것이란다. 순간 울컥했지만, 항의조차 못했다. 그녀는 알바생인 나의 생사 여탈권을 쥔 고용주였기 때문이다.

2011년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학생 아르바이트생은 전체 54만 명에 육박한다. 그리고 그 54만 명 중 최저임금조차 못 받는 학생이 17만 명(31.9%)이나 된다. 이 17만 명이 법정 보장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그들이 멍청해서일까? 결코 아니다.

내가 그러했듯, 최저임금의 보장과 일련의 부당대우에 대해 그들은 누구보다 할 말이 많을 것이다. 단지 그럴 수 없는 이유는 고용주와 알바노동자 간 형성된 갑을 관계와 동등하지 않은 지위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 임금 문제부터 노동조건, 노동 강도, 해고 문제까지 알바생의 권리 전반에 대한 고용주의 배타적 권한은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 그리고 때때로 과한 고용주의 권한 남발은 노동문제에 여전히 둔감한 정부와 한국 사회의 시선에 의해 묵인되고 있다.

낮은 시급→학업 소홀로 이어지는 '뫼비우스의 띠'

한편, 이러한 구조적인 알바노동자의 노동인권 침해도 문제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낮은 시급이 청년들에게 미치는 영향이다. 올해 5월 대학내일 20대 연구소가 전국 4년제 대학 남녀 대학생 4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대학생들의 한 달 평균 생활비는 33만 4000원에 이른다.

그러나 최저임금 시급 5210원을 받으며, 한 달 생활비를 충당하기란 너무나 빠듯하다. 그나마 빠듯하게라도 살려면 주 3일에 하루 5시간은 일해야 하는데, 청년 알바의 대부분이 대학생 혹은 '취준생(취업준비생)'임을 감안하면 너무나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알바를 하다 보면 상대적으로 학업에 집중하기 어렵고, 그로 인해 학점 경쟁에서 조금이라도 도태되면 장학금이나 학자금 무이자 대출 등 각종 수혜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 다반사다. 막대한 학자금 대출의 압박, 그리고 생활비의 필요로 인해 청년들은 어쩔 수 없이 알바 일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이렇게 알바노동의 저임금은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청년들을 생계형 알바로 전락시키고, 궁극적으로 청년 세대 빈곤화에 일조한다.  

정부 역시, 청년 알바 노동의 심각성을 감지하고 여러 정책적인 대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를 테면 근로계약서와 최저임금 미준수 사업장에 대한 벌금제, 아르바이트 노동자 인권 선언 발표 및 홍대인근을 '알바 안심구역'으로 선포하는 것 등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책들이 사실상 법을 준수하자는 캠페인 수준에 그쳐 한계가 많다. 오히려 현실적인 대안은 노동 권리 구제에 대한 법률적 지원이나 근로기준 위반 사업장에 대한 법적 제재를 강화하는 것이다. 더불어, '알바연대 알바노조'의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권리 증진과 최저임금 만원 캠페인과 같은 시민사회의 노력이 함께 동반된다면, 청년 알바 문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송현주 씨는 현재 인권연대 청년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청년 알바, #대학생 알바, #아르바이트, #아르바이트 노동자, #최저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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