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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저는 유부녀입니다. 저는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저는 현재 솔로입니다…' 등등 여성분들의 신분(?)을 구분할 수 있는 명찰 같은 것이 있으면 어떨까 싶을 때가 있다. 정말 괜찮은 아가씨다 싶어서 도전 좀 해볼까 하다가 몇 차례 물을 먹었기 때문이다.

막 시작하려는 시점에서 이런 일이 생기면 주먹을 불끈 쥐고 공격을 가하다 카운터 펀치를 맞은 듯 데미지가 상당히 크다. 물론 별다른 것은 안 해봤기에 마음이 심하게 아프고 열병을 앓는 수준은 아니지만 뭐랄까, 알 수 없는 허탈감에 힘이 쭈욱 빠지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하기야, 저런 분이 임자가 없을리 있겠어…"라고 생각하다가도 막상 실제로 확인하게 되면 한숨만 푹푹 나온다. 마음 급한 우리 아버지께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아무나 치맛자락 붙잡고 늘어져. 이놈아!"라고 말씀하지만 나도 대상이 있어야 늘어지든지 말든지 할 것이 아닌가.

결혼하면 행복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아직 결혼을 안(못)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혼하면 행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좀처럼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아직 결혼을 안(못)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혼하면 행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좀처럼 들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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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애인과 헤어진 지 한참이 됐지만 아직도 간간이 마음 한쪽 구석이 시큰한 게 사실이다. 뭐 영화처럼 사랑의 감정이 남았다 그런 것은 아닌 것 같고 그저 당시에 못해줬던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은 것 같다. 좀더 잘해줄 걸, 좀더 잘해줄 걸….

하지만 난 자랑스런(응?) 대한민국의 노총각이다. 때문에 가끔 옛날 생각이 날 때면 스스로 머리를 툭툭 치면서 "종수야, 이제는 좀 현실을 보자"라며 스스로를 쉼없이 다그친다.

난 상당히 낯을 가리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이것이다 싶으면 가끔은 그런 성향을 어렵지 않게 탈피하기도 한다. 실제로 잠깐이지만 학교 다니던 시절 연극부 활동도 하면서 수차례 무대에도 서봤고, 정말 맘에 드는 여자분을 죽자고 따라다녀서 애인이 되기도 했다. 아무튼 지금 중요한 것은 현재는 따라다니고 싶어도 따라다닐 대상이 없다는 사실이다. 노총각의 슬픔이 아닐수 없다.

노총각은 힘들다. 외로운 건 둘째치고 어딜가든 "장가 언제가?"라는 식상하지만 언제 들어도 거슬리는 질문부터 미혼이라는 이유로 각종 혜택에서 배제되는 상황까지, 노총각이 받게 되는 불이익은 제법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아직 결혼을 안(못) 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혼하면 행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좀처럼 들지 않기 때문이다. 주변을 보면 하나같이 결혼한 지 얼마나 됐다고 티격태격하는 부부들이 태반이고, 친구들 역시 밤 시간을 아내와 함께 보내기보다는 어떻게든 늦게 들어가려고 시간을 밖에서 보내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유를 슬쩍 들어보면 "아휴… 얼굴만 마주치면 싸움부터 일어나는데, 차라리 서로 최대한 안 보는게 상수다"라고들 대답한다.

뭐 다들 비슷하게 산다고는 하지만 노총각 입장에서는 그러한 모습들이 왠지 씁쓸하게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런 나에게 결혼이 하고 싶다는 간절한 계기를 만들어준 사건이 얼마전 발생했다.

혼자 고기 굽던 남자...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그날의 고깃집을 잊을 수가 없다.
 그날의 고깃집을 잊을 수가 없다.
ⓒ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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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도 고프고 우울한 마음에 언젠가 친구와 삼겹살 집을 갔다. 늦은 밤이었지만 손님들은 상당히 많은 편이었다. 그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한 손님이 있었다. 체크무늬 남방 하나를 걸친 채 혼자 테이블에 앉아 고기를 굽는 중년 남성이었다. 머리가 희끗한 게 사십대 후반에서 오십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신기한 것은 혼자 앉아있으면서도 무척이나 정성스럽게 고기를 굽는다는 사실이었다. 진지한 표정으로 하나하나 잘 구워서 줄까지 맞춰서 불판 구석에 고기를 세워놓는 모습과 옆으로 덩그러니 놓여 있는 소주병을 번갈아 보고 있노라니 왠지 모르게 씁쓸해 보였다.

'그냥 대충 먹지, 혼자 먹으면서…'

친구랑 고기를 먹으면서도 자꾸 그의 뒷모습을 보게됐다. 뭐랄까 외로워 보였다. '저 분은 뭐 때문에 이런 시간에 혼자 저렇게 고기를 먹고 있을까? 얼마나 심심하면 고기를 구우면서도 먹지도 않고 줄맞추기를 하고 있을까?'등등 별의별 생각이 다 났다.

그 순간 반전이 일어났다. 고기를 굽던 중년 남성은 전화 한 통을 받더니 급하게 후다닥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는 어떤 중년 여성을 조심스레 모시듯 데리고 오는 게 아닌가, 여성의 배가 불룩 튀어나온 것이 임신한 것 같았다.

'아, 그랬었구나' 그제서야 나는 알았다. 중년 남성은 자신이 먹으려고 그렇게 정성스레 고기를 굽던 게 아니었다. 임신한 아내에게 고기를 먹이기 위해서 열과 성을 다해 고기를 예쁘게 굽고 있던 것이었다.

"어머! 고기를 미리 구워 놓은 거야?"

여성은 감동한 표정으로 테이블을 보더니 이내 앉아서 고기를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남성은 그런 여성을 사랑스러운 듯 지그시 바라보면서 옆에 놓인 소주를 한 잔씩 따라서 마실 뿐이었다. 고기와 밑반찬이 떨어질세라 틈틈이 챙기는 것은 기본이었다. 난 그런 남성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그런 나를 보며 친구가 "왜 미친 놈처럼 혼자 실실 웃냐?"고 면박을 줬지만 이미 내 기분은 한껏 좋아지고 있었다. 이상했다. 남의 사랑 놀음을 보면서 그렇게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는 사실이.

난 고기가 입에 들어가는지 코에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그들의 아름다운 뒷모습만 보고 있었다. 여성은 고기를 먹으면서도 무슨 얘기인가를 끊임없이 남성에게 하고 있었고, 남성은 미소진 얼굴로 여성의 말을 들어주는 모습이었다.

고기를 다 먹은 후 여성은 남성의 팔짱을 끼고 꼭 붙어서 밖으로 나갔다. 난 잠시 동안 그들이 사라진 문밖을 쳐다보았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서야 친구와 정상적(?)으로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었다.

친구나 선배들로부터 결혼하면 다 똑같다는 말을 내내 듣던 나로서는 그들 중년 부부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이내 나도 모르게 "맞아. 뭐든지 내가 하기 나름이지"라는 말을 중얼거렸다. 덕분에 이제는 결혼이 정말 하고 싶어 졌다. 세상의 여인들아 기다려라. 내가 간다!


태그:#노총각, #고깃집의 감동, #중년아저씨, #아껴준다는 것,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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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디지털김제시대 취재기자 / 전) 데일리안 객원기자 / 전) 홀로스 객원기자 / 전) 올레 객원기자 / 전) 이코노비 객원기자 / 농구카툰 크블매니아, 야구카툰 야매카툰 스토리 / 점프볼 '김종수의 농구人터뷰' 연재중 / 점프볼 객원기자 / 시사저널 스포츠칼럼니스트 / 직업: 인쇄디자인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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