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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5월 서울지검 공안1부가 '북풍 사건' 수사결과에 첨부한 북풍 공작 관련 안기부 조직 체계도. 오른쪽 하단에 이병기 차장의 이름이 언급돼 있다.
 98년 5월 서울지검 공안1부가 '북풍 사건' 수사결과에 첨부한 북풍 공작 관련 안기부 조직 체계도. 오른쪽 하단에 이병기 차장의 이름이 언급돼 있다.
ⓒ 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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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8년 5월 22일 당시 서울지검 공안1부(홍경식 부장)는 국가안전기획부(권영해 부장)가 개입된 이른바 '북풍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여기서 '북풍 사건'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 윤홍준의 김대중 비방 기자회견(12월) ▲ 오익제 편지 및 평양방송 녹화테이프(11~12월) ▲ 김병식 편지(11~12월) ▲ 이석현 의원 남조선 명함(8월) ▲ '이대성 파일'(안기부 203실 비밀공작 문건) 유출(98년 3월) 사건 등 선거에 영향을 미친 일련의 '북한 변수'를 가리킨다.

안기부 협조자였던 재미교포 윤홍준씨의 체포를 계기로 전개된 검찰 수사의 개가였다. 검찰이 윤씨의 자백을 계기로 '배후'를 수사하자, 안기부 직원(6급)→과장(4급)→처장(3급)→단장(2급)→실장(1급)→부장(부총리급)으로 이어진 '상부선'이 고구마 줄기처럼 쏟아졌다. 그동안 가설로만 존재해온 남북한 정보기관의 '적대적 의존·공생 관계'를 실체적 진실로 입증해낸 수사의 개가였다.

검찰은 '북풍 사건' 수사결과 발표문(118쪽) 맨 끝에 요점만 간추린 '북풍사건 수사 체계도'를 첨부했다. 일목요연하게 '조직 체계도'를 보여주는 것은 국정원(안기부)과 검찰 공안부가 간첩 및 조직사건을 발표할 때 흔히 쓰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번은 안기부장을 포함해 직원 11명이 '범죄 조직 체계도'의 대상이었다.

이병기 차장은 '아말렉 공작'에서만 배제되었을 뿐

이른바 '아말렉 공작(윤홍준 용공음해 기자회견)'의 직계계선 상에 있는 5명을 제외하고도, 권영해 부장을 포함해 박일용 1차장과 그 휘하의 임광수 101실장(기획판단), 임경묵 102실장(국내정보), 고성진 103실장(대공수사) 등이 모두 국가안전기획부법(정치관여 금지)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후보자 비방 등) 통신비밀보호법(통신비밀 공개금지)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되었다.

97년 북풍 사건 수사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수뇌부. 권영해 부장과 박일용 국내담당 차장은 구속기소되었지만 이병기 해외담당 차장은 기소되지 않았다.
 97년 북풍 사건 수사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수뇌부. 권영해 부장과 박일용 국내담당 차장은 구속기소되었지만 이병기 해외담당 차장은 기소되지 않았다.
ⓒ MBC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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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수뇌부는 군 출신 권영해 부장을 정점으로, 경찰청장 출신 박일용 1차장(국내), 외교관 출신 이병기 2차장(해외), 내부 출신 엄익준 3차장(북한) 체제였다. 이 가운데 권 부장과 박 차장이 구속기소되고, 이 차장과 엄 차장은 기소되지 않았다. 엄 차장은 북한정보 수집 및 대북전략 업무를 관장했기에 수사선 상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아말렉 공작을 실행했고, 윤씨가 체포되자 범죄를 은폐-차단하기 위해 비밀공작 문건을 짜깁기해 유출한 203실(해외공작, 이대성 실장)을 관장하는 이병기 차장이 제외된 것은 의외였다.

검찰도 이 점을 의식해 당시 수사발표문에 "이병기 2차장을 소환해 조사한 결과, 이 차장은 '이대성 실장으로부터 윤홍준의 단독범행으로 보고받았을 뿐, 본건 기자회견에 관여한 사실이 없다'고 변소하고, 권영해도 '이병기 차장을 배제한 채 이대성 실장에게 직접 지시했다'고 진술하고 있다"고 밝혔다. 요컨대, 부장이 담당 차장을 보고라인에서 배제하고 담당 국장(203실장)과 '직거래'했다는 것이다. 이 차장은 검찰 조사에서 권 부장이 이대성 실장에게 아말렉 공작 추진을 지시할 당시(12월 7일) '타이완 출장중'이었다는 알리바이를 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시 수사발표문을 면밀히 살펴보면, 검찰이 사실상 '봐주기 수사'를 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차장이 아말렉 공작의 보고라인에서 배제된 것은 맞지만, 여타의 북풍 공작 보고라인에서도 배제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검찰이 밝히듯 "97년 북풍사건의 본질은 지난 대선 기간중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 당선을 저지하기 위한 북한의 대남 정치공작과 이를 역이용한 안기부의 정치공작이 결합된 사건"이다. 당시 검찰은 북한의 대선공작과 안기부 수뇌부의 북풍 조장 행위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황풍, 오풍, 총풍 등...97년 대선은 '온갖 북풍'이 창궐한 해

"북한은 남북관계 주도권 장악을 위해 노련한 정치인(DJ)의 당선을 저지하고, 상대하기 쉬운 후보(이인제 혹은 이회창)가 당선되도록 유도한다는 소위 'DJ 불가론'에 입각해 97년 7월경부터 북경에 '통일전선부'와 '국가안전보위부' 합동으로 구성된 '대선 공작반'을 파견해 직접적인 방법으로 오익제·김병식 명의의 김대중 후보 용공모략 편지를 국내에 우송하거나, 오익제를 평양방송에 출연시켜 음해성 연설을 하도록 해 국내에서 '색깔논쟁'을 유발케 하는 한편, 간접적인 방법으로 안기부 대북 공작원·방북 사업가 등을 이용해 김대중 후보가 북한과 모종의 밀약이 있는 양 흘리는 식으로 흑색선전공작을 전개하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권영해 부장 등 구(舊)안기부 수뇌부에서는 이러한 북한의 계략을 간파하고 이를 악용, 특정후보에게 불리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오익제의 편지를 공개하고 평양방송 인터뷰 내용을 유포시키는 한편, 윤홍준으로 하여금 김대중 후보 비방기자회견을 사주하고, 이석현 의원의 한국 국호 다음에 (南朝鮮)이라고 덧붙였다가 삭제한 해외용 명함을 입수후 정치권 및 언론에 흘리는 등 소위 북풍을 조장함으로써 다각적·조직적으로 대통령선거에 개입, 정치에 관여한 것으로 밝혀졌다."

참여연대 회원들이 지난 6월 24일 이병기 국정원장 후보자는 '정치공작 전과'가 있다며 지명철회를 요구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
 참여연대 회원들이 지난 6월 24일 이병기 국정원장 후보자는 '정치공작 전과'가 있다며 지명철회를 요구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
ⓒ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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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1997년 대선은 어느 해보다도 북한 변수, 즉 북풍이 창궐한 해였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망명(1997.2)이 불어온 황풍(黃風), 국민회의 고문이었던 오익제 전 천도교 교령의 월북(1997.8)에서 비롯된 오풍(吳風), 마침내는 김대중 후보에 열세였던 이회창 후보의 막판 뒤집기를 위해 북측에 판문점 총격을 요청한 총풍(銃風)까지 등장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해엔 북한이 남한 대선에 개입하기 위해 전례없는 '대선공작반'을 운용했고, 안기부는 그것을 활용해 편승-역용공작을 펼쳤다. 그 결과 1997년 베이징은 북한 통일전선부와 남한 국가안전기획부의 치열한 정보전이 전개된 '거대한 공작 백화점'이었다.

황장엽 비서의 망명공작처럼 베이징에서 벌어진 대북 해외공작은 이병기 2차장 관할이었다. 설령 국내 파트에서 주도한 공작이더라도 관할권을 침해하면 사전에 양해를 구해야 한다. 실제로 오익제 편지 대선활용 공작은 권영해 부장과 박일용 1차장의 지시 아래 101, 102, 103실이 모두 관여했다. 그러나 오익제 편지 활용공작이 국민회의 북풍대책팀의 '선공'으로 무력화되자, 파급 효과가 더 큰 오익제의 평양방송 연설내용을 활용한 '오대산 공작'을 추진했다.

이병기 차장, '오대산공작' 지시하고 '이대성 파일' 보고받았다

당시 국내 언론은 북한 방송을 직접 청취해 방송할 수가 없었다. KBS '남북의 창'이나 MBC '통일전망대'는 안기부 '심리정보실 개발과'에서 공급한 프로그램만 방송할 수 있었다. 그래서 외신에서 보도한 뒤에 이를 국내 언론이 인용 보도토록 하는 '국내 역유입 공작'을 추진한 것이다. 실제로 검찰 수사결과에 따르면, 박일용 차장의 요청을 받은 이병기 2차장은 202실장(해외정보실)에게 "오익제의 평양방송 내용을 입수, 해외언론에 보도되도록 해 국내언론이 인용보도할 수 있게 하라"고 지시했다.

상부 지시를 수행하려면 사업(공작)명과 기본계획이 있어야 예산이 집행된다. 202실장은 사업계획을 '오대산공작'으로 작명해 우리 교민들이 밀집해 있는 베이징, 도쿄, 홍콩 등 5개 해외 거점장들에게 "오익제 월북이 국민회의 후보(DJ)와 관련이 있는 것"처럼 부각 시킨 '보도 요지'를 시달하면서 주재국 언론에 보도되도록 추진하되, 안기부가 보도의 출처로 인용되는 것은 절대 금물이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해외 거점장들은 주재국 언론인을 접촉하면서 출처를 숨긴 채 오익제 평양방송 녹음테이프를 제공해 보도를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설로만 존재했던 북풍 사건의 전모가 드러난 것은 아말렉 공작의 꼬리가 밟힌 데서 비롯됐다. 안기부 협조자(윤홍준)의 자백으로, 회견을 사주한 직원들이 체포되는 등 검찰 수사망이 좁혀오자, 이대성 203실장은 아말렉 공작을 은폐하고 수사를 차단하기 위해 기존의 공작문건을 짜깁기해 별도의 파일(이대성 파일)을 작성했다. 안기부 공작원과 협조자들이 북한측 인사들을 접촉한 결과를 근거로 김대중 후보와 국민회의측의 대북연계 의혹을 제기한 '대선 전후 북한의 대남공작기도와 전망'(종합보고) 등 총 174쪽 분량의 1급비밀 문건이었다.

비밀문건은 공작원의 검증되지 않은 첩보보고(디브리핑)에 근거한 것이었다. 전체적인 기조는 김대중 후보 및 국민회의가 오래 전부터 북한측과 밀사를 주고받으며 자금을 수수하고, 연방제 통일방안에 합의하는 등 북한과 긴밀히 연계돼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요컨대, 안기부는 '김대중 낙선공작'을 한 것이 아니고, 공작원-협조자의 첩보보고를 근거로 오랜 기간 대북 연계 의혹을 추적해왔으며 윤홍준 기자회견은 안기부와 무관한 개인의 돌출행동(애국심의 발로)이었다는 것이다.

이대성 실장은 2월초 이병기 차장과 권영해 부장에게 대선 관련 공작 종합보고서(이대성 파일) 총5부를 작성해 보고했다. 이 실장은 3월초 위 종합보고서의 보고일자를 '98.3'으로 변경해 권영해 부장-이병기 차장에게 재보고하는 한편, 추가로 사본을 작성했다. 이후 3월 8일 타워호텔에서 정대철 국민회의 부총재를 접촉해 1급비밀 문건인 '이대성 파일'을 전달했다. 이 실장은 평소 알고 지낸 정 부총재에게 "윤홍준 기자회견은 위에서 시켜서 한 것인데 억울하다. 이 문건을 읽어보면 진상을 알 수 있을 것"이라며 "대통령께도 보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병기 차장, 이임하면서 비밀 총121건 400여쪽 교부받아

이병기 차장은 북풍 사건 검찰 조사에서 ‘이대성 파일’ 등 비밀문건 121건 400쪽을 교부받아 외부로 유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기자도 ‘이대성 파일’ 유출과 관련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는데, ‘권영해 부장의 측근(지인)’한테서 입수했다고 진술했다.
 이병기 차장은 북풍 사건 검찰 조사에서 ‘이대성 파일’ 등 비밀문건 121건 400쪽을 교부받아 외부로 유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기자도 ‘이대성 파일’ 유출과 관련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는데, ‘권영해 부장의 측근(지인)’한테서 입수했다고 진술했다.
ⓒ 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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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부총재는 3월 14일 이 비밀문건을 2부 복사해 청와대 문희상 정무수석과 신임 신건 안기부 1차장에게 보냈다. 문희상 수석이 대통령에게 보고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후 3월 18일 비밀문건의 일부 내용이 <한겨레> 신문에 보도됨으로써 정치권이 발칵 뒤집혔다. 안기부 대북공작 추진상황과 공작원 신분이 통째로 노출되는 세계 첩보사에서 전례 없는 보안유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기자는 당시 권영해 부장 측근(인사)으로부터 이대성 파일을 입수했었다. 그러나 안기부가 의도적으로 짜깁기한 문서인데다 오랜 취재원인 '흑금성 공작원'의 신분 노출을 우려해 보도하지 않다가 <한겨레> 보도를 계기로 이대성 파일을 공개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이대성 파일의 출처와 관련 검찰 조사를 받았다. 당시 조사에서 '권영해 부장 측근(지인)'이라고 밝힌 인사는 권 부장이 장로인 Y교회의 신도로 무기중개업을 하는 L씨였다. 권 부장이 군 시절부터 알고 지낸 L씨는 정대철 부총재와도 막역한 사이였다. 권 부장 역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검찰의 칼끝을 피하기 위해 정대철 부총재에게 비밀문건을 전달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안기부 비밀문건은 배포선이 엄격히 관리되며, 외부 유출은 안기부법 위반이다. 그러나 이병기 차장은 3월 9일 이임하면서 이대성 실장에게 "203실 직원들이 구속되는데 퇴직 후에라도 힘써주겠으니 관련 서류를 오라"고 지시했다. 이 실장은 이 차장에게 앞서의 '이대성 파일'(174쪽)과 윤홍준 기자회견 관련 공작보고서 등 총121건 400여쪽을 교부해 외부에 유출했다. 이 차장은 검찰조사에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소재 제일화재빌딩 6층 601호에 보관, 열람하였으나 다른 사람에게 유출하진 않았다"고 주장했다.

퇴임하면서 비밀문건을 교부받은 것 자체가 안기부직원법 위반임에도 검찰은 이 차장을 기소하지 않았다. 검찰은 당시 "보안을 생명으로 여기는 국가최고정보기관의 간부들이 국가기밀사항이 포함된 극비 문건을 불법유출하는 행위가 다시는 재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아직 규명되지 않은 일부 문건 유출 경위는 철저히 수사해 엄단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그뿐이었다.

권영해 부장은 12월 10일 차장단 및 부서장 회의에서 "사상을 믿을 수 없는 사람과는 같이 일할 수 없지 않은가"라며 직원들로 하여금 한나라당 후보 지원을 위한 귀향 활동을 하도록 지시한 사실도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이같은 '부장님 지시말씀'에 따라 안기부는 철저한 보안유지 하에 12월 11~17일 동안 호남을 제외한 영남, 충청 지역 출신 직원 200여 명을 선발해. 1인당 10만~100만원씩 여비를 지원해 2~3일간씩 귀향해 한나라당 후보 지원활동을 하도록 했다. 국민 세금으로 이회창 후보 당선을 위한 '구전홍보단'을 운영한 것이다.

검찰이 안기부법-직원법 위반사실 인지하고도 기소하지 않은 까닭은?

검찰의 북풍 사건 수사 기록에서 찾아낸 당시 이병기 안기부 2차장의 실정법 위반혐의.
 검찰의 북풍 사건 수사 기록에서 찾아낸 당시 이병기 안기부 2차장의 실정법 위반혐의.
ⓒ 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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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부장은 또 대선 다음날인 12월 19일 김대중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자 제1·2·3차장과 비서실장 등이 참석한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이 담긴 보고서와 첩보보고 등을 모두 파기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해당 부서에선 보관중인 정치 관련 첩보보고서, 회의자료, 예산사용 계획서 및 결과 보고서 등을 모두 소각 파기하고, 직원 개인 컴퓨터에 수록된 내용까지 모두 삭제했으며 감찰실 직원을 동원해 파기 상태를 점검토록 한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이처럼 검찰 수사기록을 보면, 이병기 국정원장 후보자는 안기부 차장 재직중에 '오대산 공작'을 지시하고 '이대성 파일' 등 불법으로 작성된 비밀문건을 보고받고 이임하면서 총121건 400여쪽의 비밀문건을 교부받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공작-예산보고서를 파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차장 재직 중에 안기부법(정치관여 금지)과 안기부직원법(비밀 엄수, 직무유기)을 위반한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이 차장의 안기부법-직원법 위반사실을 인지하고서도 기소하지 않았다.

검찰이 이 차장을 불기소한 것은 이미 안기부장을 포함해 10여 명의 간부-직원들이 직무와 관련 구속된 초유의 상황을 감안했기 때문이다. 사실 안기부가 국정원으로 개편된 이후로는 검찰은 국정원 청사를 압수수색하는 초유의 사태도 생겼지만 당시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고 할 만큼 위세가 등등했던 시절이었다. 당시 수사 검사는 기자에게 "부장까지 구속은 했지만, 수사기간 내내 안기부에 끌려가 고문받는 꿈을 꾸곤 했다"고 고백했을 정도다.

새로 출범한 김대중 정부로서는 국내담당 차장에 이어 해외담당 차장까지 기소할 경우 사실상 안기부 조직 전체가 범죄집단으로 낙인 찍힐 수밖에 없어 안기부 사기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이종찬 부장(초대 국정원장)도 이런 점을 검찰 수뇌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북풍 사건을 수사한 홍경식 부장검사는 박근혜 정부에서 민정수석을 지냈다. 결국 이병기 차장이 북풍 사건에서 기소되지 않은 것은 '죄'가 없어서가 아니라 '운'이 좋아서인 셈이다.


태그:#안기부, #북풍 사건, #이병기, #권영해, #이대성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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