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경마장에) 찬성하는 주민들도 많다.""그럼 주민투표를 해보자."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현명관 한국마사회장의 허를 찔렀다. 6일 오전 용산 화상경마장(마권 장외발매소)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현 회장이 화상경마장 찬성 여론도 많다고 주장하자 박 원내대표가 역으로 주민투표를 전격 제안하고 나선 것이다. 현 회장은 "생각해볼 시간을 달라"며 얼버무렸지만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고 한다.
박영선 원내대표 '주민투표' 전격 제안... 공은 마사회로덕분에 1년 넘게 끌어온 용산 화상경마장 갈등을 풀 대안으로 '주민투표'가 급부상했다. 마사회는 용산 주민들과 학교의 반대에도 지난달 28일 화상경마장을 시범 개장했다. 이에 이날 박영선 원내대표와 우원식 을지로위원장, 김우남 국회 농림수산위원장을 비롯한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10여 명이 '용산 화상경마도박장 추방 대책위원회'(아래 주민대책위) 농성장을 찾은 데 이어 현명관 회장을 직접 만나 중재에 나선 것이다.
주민투표는 과연 화상경마장 갈등을 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일단 반대 주민들과 시민단체는 이 제안을 크게 반겼다. 이원영 주민대책위 공동대표는 "화상경마장 설치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압도적으로 많은데도 마사회에선 그동안 찬성하는 주민들이 많다고 거짓말을 해왔다"면서 "마사회가 자신 있다면 주민투표 제안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마사회는 공기업이어서 지방자치단체의 주요 결정 사안을 대상으로 한 주민투표법 대상인지는 논란 여지가 있다. 홍용현 한국마사회 홍보팀장은 이날 <오마이뉴스> 전화 통화에서 "오늘 처음 나온 제안이어서 내일쯤 모여 검토해 봐야 한다"면서도 "주민투표가 법적인 장치도 아니고 모든 일을 주민투표에 붙일 수는 없지 않느냐"면서 다소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반면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협동사무처장은 "이미 마사회쪽에 주민투표를 제안했지만 계속 거부해 왔다"면서 "마사회만 받아들이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밝혔다.
'교육과 삶을 파괴하는 경마도박장 확산 저지 범시민 공동대응 모임' 소속으로 주민대책위와 손발을 맞춰온 안진걸 사무처장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제안한 무상급식 주민투표처럼 법적인 주민투표가 어렵더라도 부안 방폐장 주민투표처럼 양쪽 당사자만 동의하면 '사회적 주민투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 모교 문제 아닌 아이들 교육 환경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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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산 화상경마장(마권 장외발매소) 시범개장에 반대하는 용산화상도박경마장추방대책위 주민들의 시위 |
| ⓒ 용산화상도박경마장추방대책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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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반대 여론이 커지며 궁지에 몰린 마사회가 정치권의 주민투표 제안을 선뜻 받아들일지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미 화상경마장 반대 서명에 주민 약 17만 명이 참여했고,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 용산구청 같은 관할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국가권익위원회까지 나서 개장 철회 권고를 한 상황이다. 실제 이날 화상경마장 앞에선 찬성쪽 주민들이 맞불 집회를 열기는 했지만 주민대책위에선 이들 상당수가 화상경마장 고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용산 화상경마장 갈등은 지난 2013년 5월 이전 사실이 일반에 알려지고 주민대책위가 결성되면서 450여 일째 이어지고 있다. 주민들은 화상경마장이 들어선 지상 18층 규모의 신축 건물 자리가 학교정화구역과 6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고, 성심여자중고등학교와는 불과 230m 거리라며 입점을 반대해왔다.
성심여자중고등학교는 공교롭게 박근혜 대통령의 모교다. 이 때문에 성심여중고 교사들과 학생, 학부모들이 지난 2일 청와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성심여고 교장이 직접 박 대통령에게 화상경마장 이전 철회를 요구하는 편지를 쓰기도 했다.
다만 이원영 공동대표는 "화상경마장 이전에 반대하는 건 아이들 교육 환경을 지키려는 것인데 자칫 대통령 모교 문제로만 비춰질까봐 그동안 박 대통령과 연관 짓는 걸 자제해 왔다"면서 "이제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청와대와 정치권에까지 도움을 호소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