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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더니 의료민영화에 대한 정부 의지가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세월호'에서 특히 생명을 다루는 의료분야는 가장 안전해야 할 영역인데요. 그 안전이 흔들리면 시민들의 불안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번 연재를 통해 의료민영화의 우려점을 자세히 짚어봅니다. [편집자말]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의료법 시행규칙 일부개정안 입법예고'에 대한 관심이 사뭇 뜨겁다. 의료법 '시행규칙'에 대한 일부개정안 법령 고시 게시물의 조회수가 15만 건에 육박하고 있는 데다가 놀랍게도 이에 대한 국민 의견이 1만여 건을 넘어서고 있다.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의견에 귀 기울이겠다'는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 이런 열띤 반응이 또 있었을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절대적 다수의 국민 의견은 법령을 반대한다는 외침이다.

연초부터 의사협회를 비롯해서 의료직역 단체들과 보건의료노조는 이번 개정안의 주요 내용인 병원의 영리자법인 허용과 부대사업 확대에 반대의 뜻을 밝혀왔다. 규칙개정이 의료법을 위반하는 것임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고발 의사를 표명한 이들도 여럿이다.

입법예고 이후 병원노동자들의 경고파업이 시작됐고, 각종 시민단체들에서도 정책 추진 반대를 외쳤다. 국민 여론 역시 곱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불통'을 내세우며 요지부동이다. 당황스러우면서도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왜, 어떻게, 무엇을 위해 고집을 부리는 걸까.

영리자법인→투자활성화→수익창출의 논리... 정말 그럴까?

사회공공성강화를 위한 아이쿱운동본부가 지난 4월 동대구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의료민영화에 반대하는 서명에 들어갔다. 한 회원이 환자복을 입고 의료민영화를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회공공성강화를 위한 아이쿱운동본부가 지난 4월 동대구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의료민영화에 반대하는 서명에 들어갔다. 한 회원이 환자복을 입고 의료민영화를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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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영리자법인 정책 추진의 명분은 "의료 부문에 대한 투자를 활성화함으로써 환자 진료 외에 부대사업을 활성화하여 새로운 수익기반을 창출해야 한다"는 데 있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투자활성화 정책이 '사람 고치는 일로 돈을 벌게 하자'는 게 아니라 '사람 고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아무리 '유체이탈'이 유행이라고는 하지만 이 정도면 너무하다.

영리자법인을 통한 투자와 부대사업이 활성화되었을 경우를 가정해 보자. 정말로 자법인이 벌어들이는 돈을 약간의 배당분을 제외하고 의료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사용할 수 있을까. 오히려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서 환자들을 차별하거나 비급여 진료를 강화해 의료비 폭탄을 안기지는 않을까. 이 모든 게 괜한 우려일까.

의료서비스 비용의 증가나 영리추구활동을 어디까지나 '비필수 의료서비스' 영역에 제한할 수 있도록 잘 규제하겠다는 정부의 주장이 신빙성을 잃는 것은 재화로서 보건의료가 갖는 독특한 특성 때문이다. 의료서비스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은 자신들에게 그 상품이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 얼마나 비용을 투자할 수 있을 것인지 판단을 하기 매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의료서비스 수요를 예측하고 대처하기도 힘들다.

쉽게 말해 사람들은, 병원에서 돈을 얼마나 쓰게 될지 예상하기가 어려워 미리 준비할 수도 없다. 복잡하고 긴박한 상황 속에서 합리적인 소비자로 행동하기 위한 충분한 정보를 가질 수 없다는 말이다.

웹툰 <마조 앤 새디>의 '가성비의 왕자' 편에 나온 사례가 대표적이다. 출산을 마친 산모를 앞에 두고 간호사가 "산모님께 영양제를 놔드릴까요? 일반 영양제는 5만 원이고 특별 영양제는 15만 원이세요"라고 말한다. 이때 어떤 남편도 간호사에게 "적당히 가성비 좋은 걸로 놔주세요"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외래에서 만성질환 진료를 마치고 나가는 환자들에게 제공되는 영수증 뒷면에는 자법인 건강관리회사에서 운영하는 힐링테라피, 건강운동강좌, 개인용 의료기기 홍보물이 컬러프린트 되어 있다. 여기에 혹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합리적인 소비자 선택이 불가능하다면, 사정이 나은 사람은 사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사지 않으면 된다고만 간단히 말할 수 없는 문제가 된다.

또한 부대사업이 집중하는 영역이 '비급여', '비필수의료 서비스'이기에 상황이 심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정부 측 주장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역설적으로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의학적인 근거나 검증없이 매대에 오를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곧 정부가 건강 개선 효과에 대한 근거가 없는 상품이라 하더라도 병원 재정과 수익창출을 위해 힐링-웰빙 프로그램을 운영해도 괜찮다는 허가를 내어 주는 셈이다.

국민 건강 시장에 맡기자는 정부, 너무하네

돈 걱정 없이 치료 받기를 원하는 환자들에게도, 떳떳하고 당당하게 의료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며 일하고픈 의사들에게도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들은, 불길하다.
 돈 걱정 없이 치료 받기를 원하는 환자들에게도, 떳떳하고 당당하게 의료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며 일하고픈 의사들에게도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들은, 불길하다.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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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역시 의료법인에 영리자법인을 허용하면 연구개발과 의료관광 등 관련사업 등을 통해 대형병원의 독점이 강화되고 의료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영리자법인의 핵심은 외부 투자자본을 유치하고 발생하는 수익을 투자자들에게 배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주들은 더 많은 수익을 내도록 병원에 압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물론 지금도 월급쟁이 의사들이 병원의 경영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비영리를 원칙으로 경영이 이루어지는 지금의 병원 압력과 그때의 것은 차원이 다를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우리나라 의료제도를 평가하기란 매우 힘들다. 그러나 그 평가가 어떻든, 지금까지 건강보험의 수가나 급여 여부, 재정 운영이나 의료기관의 운영 평가 관리와 같은 중요한 의사 결정은 '국민의 건강'이라는 공공의 이익을 중심에 두고 이뤄졌다. 하지만 정부는 영리자법인 설립과 투자활성화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국민의 건강을 최우선의 가치로 놓고 의사 결정을 하는' 원칙을 스스로 깨버렸다. 그저 '시장에 맡기자'는 것이다.

정부가 바라는 것처럼 시장에서의 이윤 추구와 의료의 질 향상이 순조롭게 조화를 이루며 개선된다면 참 좋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낙관적인 기대를 하며 지켜보기에는 위험이 너무 크다.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사람의 생명이 달린, 의료 접근성과 의료의 질에 대한 지휘봉을 어째서 투자자들에게 넘겨야 한단 말인가.

의료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은 극히 어렵고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한다. 투자를 통한 이윤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투자자들은 환자들의 건강을 위한 의료의 질보다는 환자들에게 유혹적인 병원을 만드는 데 더 관심을 가질 것이다.

영리자법인을 통해 병원이 얻어들이는 수익은 화려하게 치장된 병원의 대리석 로비나 투명 엘리베이터를 들여 놓는 데 사용될망정 대체로 적자를 면치 못하는 응급실이나 중환자실, 신생아 치료실 확장, 의료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의료 인력 충원으로 이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국민도 괴롭고 의사도 괴로운 의료민영화

예방의학 전공의인 나는 임상 현장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대신 보건의료 제도와 정책을 공부하고 있다. 내가 임상 진료과목 대신 이 길을 택했던 건 우리나라 의료제도 때문이다. 대학에서 배운,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존중하고 환자의 건강을 최선으로 하는 진료 환경이 아니었다.

의료행위가 생명을 추구해야 할 가치이자 절대적인 선이라 배우던 학교와 달리 병원에서의 의료서비스는 '상품'으로 다루어지고 있었다. 병원에서 의사는 환자의 건강을 책임지는 것과 동시에 병원의 재정적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한 명의 직원이어야 하는데, 이 둘 사이에서 나는 어떤 입장과 행동을 취해야 할지 알기가 솔직히 어려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의료인들이 병원의 경영과 재정적 유지 그리고 환자의 건강이라는 책임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대부분의 의료기관이 민간 소유이고 시장경쟁에 의해 각자 살아남아야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우리 의료제도는 이런 간극을 메울 수 있는 효과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병원 운영의 원칙과 방향을 새롭게 규정하는 영리자법인 허용은 이런 간극을 더욱 벌어지게 할 것이다. 돈 걱정 없이 치료 받기를 원하는 환자들에게도, 떳떳하고 당당하게 의료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며 일하고픈 의사들에게도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들은, 불길하다.

모두가 우려를 표하는 정책을 의회의 적법한 입법절차조차 우회하며 얼렁뚱땅 시행령 개정으로 밀어부치려는 정부의 근성 하나만은 '대단하다'고 인정해야 할까?(관련기사 : 1%도 안 되는 외국인환자 유치하자고 국민 건강 버리나) 그보다 이게 우리 모두의 책임임을 인식해야 한다. 복잡하게 헝클어진 문제들이 산적한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제도의 매듭을 풀어낼 수 있는 적절한 대안과 방법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 이 점은 정부와 의료제공자 그리고 시민사회까지 우리 모두의 책임임을 인식해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사람들의 생명이 좌우되는 이런 시련이 필요할 이유는 없다. 우울하고 불안한 나날이다. 하지만 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고 했던가? 많은 사람들이 보건의료 현안에 대한 관심과 우려를 표하게 된 이 시련을 통해 의료 공공성을 확보하고, 일차진료 강화와 의료전달체계의 확립같은 오래된 숙원을 해결하는 데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서울대병원 예방의학과 전공의입니다.



태그:#영리자회사, #의료민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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