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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어머니 김봉준 작. 이소선 여사 추모 그림
▲ 위대한 어머니 김봉준 작. 이소선 여사 추모 그림
ⓒ 김봉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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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은 비록 노점이기는 했지만 점포를 하나 마련했으니 살 것만 같았다.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 듯한 기쁨을 누렸다. 그는 열심히 일을 해서 차곡차곡 돈을 모았다. 이 무렵 태일이는 평화시장에 다녔다.

태일이가 어느 날 엄마를 찾아와서 제법 큰돈을 내놓는 것이었다. 이소선은 돈을 보자 그 돈이 어디서 났는지 의심부터 했다.

"태일아, 이게 웬 돈이냐? 혹여 이상한 돈이라면 이런 돈 필요 없다."
"어머니, 무슨 의심을 하는 거예요? 이 돈은 평화시장 제품집에 취직해 월급을 받은 거예요."

태일이는 평화시장에 미싱보조로 취직해서 보름간 일을 하고 600원을 받았는데 600원 중에서 40원은 빵을 사 먹고 남은 560원을 가져왔다는 것이었다.

"태일아, 넌 어미 말을 잘 듣는 정직한 사람이구나. 힘들더라도 조금만 참고 지내기라. 머지않아 우리 방을 하나 구할 수 있을 테니 그때까지만 고생되더라도 꾹 참고 견뎌 보거라."

이소선은 태일이하고 굳게 약속을 하고 아들을 돌려보냈다. 이소선은 허튼 곳에 돈을 쓰지 않고 한 푼 두 푼 돈을 모았다. 하루 세 끼 먹이야 하는 것을 두 끼로 줄이고 허리띠를 졸라맸다. 하루라도 빨리 돈을 모아 온 가족이 다 함께 살고 싶었다.

이소선의 계획은 5년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대로 지내다가는 가족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좌절에 빠질 것만 같았다. 험한 세상에 아이들이 떨어져서 살아야 하니 혹시나 나쁜 길에 들어서지나 않을까 하는 조바심에 맘 편할 날이 없었다. 하루하루가 천년 같았다.

그렇게 고생해서 이소선은 6만 원 정도의 돈을 모았다. 제법 큰 돈이었다. 방을 알아보기 위해서 그 돈을 가지고 남산 케이블카 밑에 자리하고 있는 남산동 50번지 일대를 샅샅이 뒤졌다.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걸어 다녀도 6만 원으로 이들이 살 만한 집은 없었다. 맥이 풀렸다.

판자촌으로 발길을 돌렸다. 판자촌에서도 방을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있으면 집주인이 세를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소선은 그래서 아이들이 없다고 주인에게 말했다.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면 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겨우 남산동 50번지에 방을 얻을 수가 있었다. 태일이와 태삼이를 데리고 왔다. 아이들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태일이는 평회시장에서 시다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태일이가 점심을 먹으러 시장에 있는 수제비 집에 갔다가 거기에서 순옥이를 우연히 만났다. 순옥이는 수제비집에서 헤어졌던 오빠를 기적처럼 만났으니 얼마나 기뻤겠는가. 두 아이는 수제비집에서 부둥켜안고 울어버리고 말았다.

태일이가 순옥이에게 물었다.

"순옥아, 네가 어떻게 서울에 올라왔냐?"
"얼마 전에 아버지께서 서울에 올라오셨어. 평회시장에 취직을 하셔서 일을 나가고 있어."

순옥이의 대답을 들은 태일이는 마음이 괴로웠다. 아버지의 소식을 들어서 반갑기는 했으나 엄마가 당부한 말이 있어서 선뜻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이소선은 태일이한테 한동안은 가족이 떨어져서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돈을 벌어서 집을 마련할 때까지는 괴롭더라도 헤어져서 살아야 한다. 그러니 아버지를 보더라도 만나지 말고 피하라고 일러두었다.

"순옥아,오빠가 내일 꼭 너를 찾아 올 테니, 아버지께는 나를 만났다는 말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이 집에서 내일 점심 때 만나자."

태일이는 괴로운 마음을 달래며 순옥이를 돌려보냈다. 그날 이소선은 집에 들어와서 태일이한테 순옥이를 만난 일을 자세히 들었다.

"태일아, 괴롭더라도 며칠 동안은 그 집에 가지 말아라. 혹시, 아버지를 만날지 모르니까. 그리고 한 일 주일 정도 지난 다음에 찾아가 보도록 해. 그 때쯤 해서 순옥이를 만나 우리는 잘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집을 한 채 살 때까지 기다리라고 잘 타이르거라."

이소선은 태일이가 알아듣도록 말했다. 태일이는 며칠 뒤 순옥이를 만났던 그 수제비집을 찾아갔다. 순옥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빠를 일 주일이나 이곳에서 기다렸어."

순옥이를 만나 안부를 묻는 참인데 그 사이에 아버지가 들어왔다.

"네가 언젠가는 나타날 줄 알았다. 너를 못 만나면 어떻게 하나 하고 일도 제대로 못하고 널 기다렸다."

아버지는 아들의 손을 잡고 말했다.

"아버지, 나는 평화시장에서 시다로 일하고 있어요. 어머니가 중앙시장에서 일을 해서 겨우 방을 하나 구했어요."

태일이는 집을 한 채 살 때까지 가족이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태일아, 이 애비가 잘못했다. 너희들이 무슨 죄가 있어서 이 고생을 한단 말이냐. 내 이제부터는 술을 끊고 착실하게 살 테다. 우리 기족이 이렇게 떨어져서 살아서야 되겠냐. 내 약속하마. 이제 잘 살아 볼 테다."

태일이는 엄마 말이 머리 속에서 맴돌았지만 간곡하게 말씀하시는 아버지를 외면할 수가 없었다.

이소선의 가족은 이렇게 해서 다시 함께 살게 되었다. 얼마 뒤에는 태일이가 천호동에 있는 아동보호소에서 순덕이도 데리고 왔다. 어린 순덕이는 아이가 이상하게 변해 있었다. 얼굴에 표정이 별로 없었다. 가족들을 다시 만났는데도 기쁘지도 않은지 멍청하게 앉아만 있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새벽이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참 잠 잘 시간인데 어린애가 새벽에 일어나니 어미로서 가슴이 아프기 그지없다. 순덕이는 새벽녘에 일어나서 머리를 곱게 빗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순덕아, 왜 자지 않고 일어나서 앉아 있는거지?"
"엄마, 선생님한테 혼나지 않으려면 머리 빗고 가만히 앉아 있어야 돼요."

아동보호소에서 아이를 얼마나 호되게 다루었으면 애가 저 지경이 되었을까. 어린애다운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다행히 순덕이는 가족들과 함께 살면서 차츰차츰 나아졌다. 남편은 어디 가서 돈을 구하더니 미싱을 한 대 사서 집에서 옷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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