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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준 작. 이소선 여사 추모 그림
▲ 위대한 어머니 김봉준 작. 이소선 여사 추모 그림
ⓒ 김봉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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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성치 않았지만 마냥 놀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 동안의 경험으로 시장에 나가보면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들로 들끓는 서울역 뒤 중앙시장으로 나가보았다. 시장은 이소선으로서는 남다른 감회를 불러일으키는 장소였다. 살아보려는 사람들이 모여든 치열한 생존경쟁의 현장이기도 하지만 막다른 골목에서 생명을 유지시켜줄 수 있는 구원의 장소이기도 하였다.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이소선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았다. 자신처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여자들이 장바닥을 돌아다니면서 무엇인가를 한창 줍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배추 잎을 줍는 것이다. 그 아낙네들은 한결같이 초라한 행색이었다.

이소선도 그들과 어울려 배추 잎을 주워 모아 시장에 있는 해장국집에 팔았다. 그 일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시장바닥에서 허리를 굽혀 배추 잎을 줍고 있노라면 뭇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등에 박혔다. 이 눈치 저 눈치를 보면서 배추 잎을 주워야 했다. 그 중에서도 경비원들의 눈길은 유난히 험악했다.

장바닥에서 배춧잎을 주워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아낙네들 중에서는 경비원들의 눈을 속이는 여자들이 많이 있었다. 떨어진 배추 잎을 줍는 척하면서 무우,배추 등 다른 채소를 훔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경비원들이 배추 잎을 줍는 여자들을 보기만 하면 도둑놈 다루듯이 쫓아내려고 눈에 불을 켜고 거칠게 행동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시장바닥에서 배추 잎을 줍는 신세지만 경비원들의 쏘는 듯한 눈길을 대할 때면 울컥울컥 서러움이 솟았다.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남들이 흘린 것을 주워 먹고 살아야 하는데 도둑놈 취급까지 받아야 하다니…. 참으로 모진 목숨이었다.

아무리 먹고 사는 게 중요하다지만 이유 없는 수모를 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소선은 어지간하면 경비원들의 오해를 덜 받으려고 트럭에서 배추를 쏟아내고 있는 창고 근처에는 가지 않았다. 창고 근처에 가까이 가야지만 배추 잎을 많이 주울 수 있는데 멀리 떨어져 있으니 수입이 뚝 떨어졌다. 하루 종일 주워서 팔아야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겨우 백 원 남짓했다. 하루 일을 마치고 그 돈을 만지면서 굶주림에 울기도 많이 했다.

그렇게 장터에서 배추 잎을 주위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데 어느 날 상률이네 집에 남편이 다녀갔다. 이소선은 남편이 다녀갔다는 말을 듣고 상률이네 집에서 나와 버렸다. 이때 마침 하차작업을 하는 창고에 일자리를 얻은 뒤여서 방을 구해야 할 때였다. 하차작업은 주로 새벽에 들어오는 짐을 내리는 일이었기 때문에 중앙시장 근방에 잠자리가 필요하던 참이었다.

모아둔 돈이 없으니 제대로 된 방을 구할 수가 없었다. 중앙시장 근방에서 집 없는 사람들이 떼를 지어 자는 곳을 알아냈다. 양아치들이 모여서 잠자는 곳이었다. 밤에는 혼자 있기가 힘들었다. 장바닥에 혼자 있으면 야경꾼들이 도둑으로 취급하면서 귀찮게 굴었다. 이소선은 잠자리를 찾다 찾다 밤이 늦어서야 양아치들이 자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양아치들은 낯선 여자를 쉽게 받아들여 주지 않았다.

"아줌마 사정은 이해하지만 우리도 다 이유가 있다구요. 사람 수가 늘어나면 경비들이 못살게 군단 말이에요. 그리고 우리들은 물건을 훔쳐서 먹고 살다 보니 주로 밤일을 많이 하거든요. 그러니 남들이 보면 안 좋잖아요. 가만 보니 아줌마는 집이 있을 것 같은데 공연히 우리같이 불쌍한 사람들 괴롭히지 말고 집에 가서 편안하게 주무시라구요."

"내 팔자가 그렇게 좋아 보입니까. 말이라도 고맙시다. 그러지 말고 나도 댁네들과 똑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니 사정 좀 봐줘요. 정말로 갈 데가 없다니까요."

이소선은 물러서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한밤중에 어디 가서 잔단 말인가.

"정 그러시다면 아줌마,돈 가진 거 있으면 다 내놔 봐요."

'너희들의 속셈이 그거였구나. 어쩐지 말을 한참이나 돌리더라니......'

이소선은 주머니에 있는 돈 전부인 150원을 털어주었다. 이제 잠자리는 해결된 셈이었다.


태그:#이소선, #전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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