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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5일부터 안산과 진도를 오고 가면서 겪은 이야기입니다.)

[부디 잊지 말아주세요①] 진도로 가는 버스, 빗줄기에 모두 울어버렸다
[부디 잊지 말아주세요②] "다행히 우리 애는 빨리 찾아서 얼굴은 알아봤어"

버스에 물품을 실어주고 떠나는 모습만 지켜보다가 막상 그 버스에 오르게 되니 기분이 묘했다. 안산에서 진도체육관까지 380km길. 좀처럼 실감이 나지 않는 그 거리. 기사님들 통해서 예상 소요시간을 듣기만 했지 겪어본 것은 처음이었던 터라 첫 진도행은 멀고 더디게 느껴졌다.

'너무 늦게 가는 것은 아닐까?', '내가 도움이 될까?'

많은 걱정들이 마음 속에서 교차하며 가슴을 요동치게 했다. 그리고 그 떨림은 주말을 이용한 1박 2일의 짧은 일정인 만큼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의욕이 되어 차올랐다.

5월 17일 토요일. 아침 7시경의 합동분향소 앞의 모습.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은 분향소 앞을 한산하게 만들었다.
▲ 분향소 전경 5월 17일 토요일. 아침 7시경의 합동분향소 앞의 모습.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은 분향소 앞을 한산하게 만들었다.
ⓒ 서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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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7일. 아침 7시 차에 맞춰가기는 힘들 것 같아 8시 차에 맞춰 안산으로 향했다. 진도에 가기 전에 헌화를 하고 싶은 마음에 좀 일찍 안산으로 넘어왔다. 고잔역에 내려 분향소로 향했다. 아침 7시의 분향소 앞은 너무도 한산했다. 분향소 안에도 마찬가지였다. 몇몇 분들이 헌화하는 모습만 보였다. 꽃을 올리고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올렸다.

'남은 실종자분들이 하루빨리 돌아올 수 있도록 살펴주세요.'

분향소를 나오면 가족분들의 목소리를 담은 현수막이 보인다.
▲ 제발 마지막 한명까지 찾아주세요. 분향소를 나오면 가족분들의 목소리를 담은 현수막이 보인다.
ⓒ 서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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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애매해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단원고를 지나 건너편을 보니 버스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달려가 버스에 오르니 어머니 자원봉사자분께서 인원체크 중이셨다. 계속 진도행 버스를 맡아주고 계신 거였다. 자원봉사자 분은 반가워하시며 간식을 챙겨주시고 조심히 다녀오라며 걱정해 주셨다. 실종자 분들 모두 나오면 안산 놀러오라는 말씀도 덧붙여 주셨다.

버스는 서천과 함평 2곳의 휴게소를 거쳤음에도 낮 12시 20분쯤 진도 실내체육관에 닿았다. 오전 8시 출발이니까 생각보다는 빨리 도착한 셈이다. 실내체육관 앞에는 천막들이 많았다. 안산시 자원봉사센터와 진도군 자원봉사센터 천막이 좌, 우 첫 번째 자리에 있어서 눈에 바로 들어왔다. 안산시 자원봉사 센터로 가서 문의하니 담당자 선생님이 자리를 비우셨다고 진도군 자원봉사센터에 일단 등록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얼른 반대쪽으로 보이는 진도센터 부스를 찾아 등록을 마쳤다. 어떤 일이든 시켜만 달라고 하자 바로 팽목항으로 이동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마침 실내체육관과 팽목항을 오가는 셔틀버스의 출발시간이 임박해 짐을 던지듯 풀고 버스에 올랐다.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팽목항까지의 거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멀었다. 편도 1차선의 시골 길을 따라 30분이나 걸리는 거리였다. 구불구불 멀게 느껴지는 이 길을 가족 분들은 매일 수차례 오고가셨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파온다.

적막했던 팽목항, 그곳에서 만난 운동화

팽목항에 도착해 내려서 주변을 둘러보니 정말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분명 항구라 했는데 파도가 뭍을 때리는 소리도 바다의 냄새도 그리고 시야에 들어온 많은 사람들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적막과 고요. 그것이 팽목항의 첫 인상이었다.

경찰 아저씨한테 길을 물어 진도군 봉사센터를 찾아가는 길. 기사에 첨부된 사진으로 접했던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지런히 놓인 한 켤레의 운동화는 아이가 어서 돌아와 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적막을 깨는 목탁소리가 울렸다. 아이들이 좋아했던 음식을 올려놓고 기도를 하는 스님의 모습이 보였다. 매일 기사를 통해 접했던 그 모습이었다.

팽목항 좁은 길 양쪽으로 천막이 즐비했다. 여러 종교단체의 천막부터 기업 봉사단, 경기도를 비롯한 지자체의 천막 그리고 진도군과 안산시 자원봉사센터의 천막이 보였다. 진도군 센터를 찾아 일을 배정받고 연두색 빛이 선명한 조끼도 받아 입었다.

내가 배정 받은 일은 화장실 청소였다. 팽목항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이동식 화장실부터 샤워실이 여기저기 상당히 많이 준비돼 있었다. 돌아다니면서 휴지통을 비우며 살펴본 바로는 화장실이 생각보다 깨끗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많은 자원봉사자 선생님들이 애써주신 덕분인 것 같다. 휴지통 비우고 좀 냄새나거나 얼룩이 있는 곳은 락스를 뿌려 닦아냈다.

화장실 청소를 마치고는 길에 떨어진 쓰레기들이 있을까 싶어 돌아다녔는데 여러 선생님들이 이미 청소를 하고 계셨다. 한 바퀴 더 둘러본 후 조끼를 반납하자 시간이 오후 6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실내체육관으로 넘어가 다른 일을 하겠다는 요량으로 셔틀버스 승강장으로 향했다.

승강장으로 향하는 길은 여전히 조용했다. 간간이 울리는 목탁소리만 들리는 정도였다. 그러나 얼마 후 그 적막은 한 어머니의 목소리로 깨어졌다.

"OO야, 엄마야. 빨리 나와야지. 엄마, 여기 기다리고 있으니까. 얼른 나와. OO야. 우리 딸. 엄마가 정말 많이 사랑해. 우리 빨리 만나자. OO야 사랑해."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슬픔이 묻어나오지 않았다. 밝고 쾌활한, 친구 같은 엄마가 딸을 부르는 목소리 같았다. 그래서 더 가슴이 아팠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울리는 등대를 뒤로하고 걸어가는 동안 왼쪽으로 가득한 천막들 사이로는 다른 어머니의 통곡 소리가 울렸다. 나는 그 자리에서 세상에서 가장 슬픈 울음소리를 들었다. 해가 지려 하는 하루의 끝자락. 또 하루가 지나가려 하는 그 시간 속에서, 붙잡지 못해 보내야 하는 시간은 깊은 절망이 되어 쌓이고 있었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은 절망이 되어 쌓이고 있었다.
▲ 또 하루가 저무는 팽목항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은 절망이 되어 쌓이고 있었다.
ⓒ 서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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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체육관에 돌아와서는 안산센터의 일을 도왔다. 식당에서 물건 옮기는 일을 돕고 센터 부스에 앉아 안내하는 일을 맡았다. 안산이나 팽목항으로 향하는 버스 시간이나 승강장 위치, 의약품이나 의료지원이 필요한 분들께 부스 위치를 안내하는 일이었다. 안산에서 했던 일들과 비슷해 어려운 점은 없었다.

해가 완전히 지고 어둠이 깔린 시각. 한 가족 분들이 안산센터 부스에 오셨다.

"우리 이제 올라가요. 감사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새벽에 찾은 학생의 고모님이라는 분이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셨다. 환하게 웃음지어 보이시니 그래도 다행이라는 마음과 안타까운 마음이 교차했다. 조심히 올라가시라는 인사로 답을 드렸다.

어둠이깔리자 하나둘 천막의 문이 닫혔다.
▲ 문닫은 부스들 어둠이깔리자 하나둘 천막의 문이 닫혔다.
ⓒ 서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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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10시쯤을 가리키자 여러 천막이 문을 닫았다. 코레일의 자원봉사자 교통지원 봉사 천막도, 의료봉사단 부스도 내일을 기약하고 천으로 가려 문을 닫았다. 안산시 자율방범대 분들과 몇몇 선생님들을 뒤로 한 채 잠을 청하러 체육관 2층으로 향하셨다.

진도체육관에서 누워 바라본 천장, 시리도록 아팠다

나는 새벽 2시를 넘겨서야 체육관 2층에 들어왔다. 실내체육관 1층은 가족 분들이 2층 관중석 통로에서는 자원봉사자 분들이 주무시고 계셨다. 깔개가 소진되고 없어 담요 한 장을 구해 구석자리를 찾아가 누웠다. 저녁에 추울 것을 대비해 옷을 싸오길 잘했지 싶었다.

자리를 잡고 누워 바라본 천장. 차가운 금속 건축자제들이 엇갈려 만든 격자무늬가 눈에 들어왔다. 천장을 바라보며 누군가의 얼굴을 그려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그 광경은 시리도록 차가웠다. 매일 이 모습을 보며 오지 않는 잠을 애써 청했을 가족 분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이제야 진도에 온 내 자신이 미웠다. 진도에서의 첫날은 이토록 아프고 차갑고 시렸다.

매일밤 그리운 가족을 그렸을 천장이 이토록 차가운 모습이었다는 것에 가슴이 미어진다.
▲ 진도 실내체육관의 천장 매일밤 그리운 가족을 그렸을 천장이 이토록 차가운 모습이었다는 것에 가슴이 미어진다.
ⓒ 서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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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과 점심 배식준비를 돕는 일로 첫 번째 진도행을 마쳤다. 오후 4시 차를 타고 올라오는 내내 다음 주에는 내가 진도에 내려갈 일이 없기를 기원했다. 부디 남은 실종자분들이 하루빨리 가족 분들 품에 돌아오면 좋겠다고 바랐다.

이 잔인하고 끔찍한 시간 속에서 5월 10일 외쳤던 '끝까지 함께 하겠다.', '잊지 않겠다'는 약속과 다짐을 나약한 내가 지킬 수 있게 해달라고 스스로 기도했다. 부디 이번만큼은 기도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덧붙이는 글 | 지금도 제가 이 글을 전할 자격이 있는지를 두고 고민이 됩니다. 흘러간 시간은 많은 것을 변하게 했습니다. 그 시간속에서 누군가는 이미 잊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디 잊지 말아주세요. 4월 16일 이후 뜬눈으로 구조 소식을 기다리며 지새웠을 밤들을, 그리고 그 시간속에서 눈물이 마르지 않았을 안산과 진도의 사람들을 부디 잊지 말아주세요. 아직 나오지 못한 실종자분들이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사고 이후 아무 것도 변화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부족한 제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호소합니다. 부디 잊지 말아주세요.



태그:#세월호, #안산, #진도, #팽목항, #실내체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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