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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서초동 삼성 본관 앞에서 삼성전자서비스센터 협력사 수리기사인 고 염호석씨의 영결식이 열렸다.
 30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서초동 삼성 본관 앞에서 삼성전자서비스센터 협력사 수리기사인 고 염호석씨의 영결식이 열렸다.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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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십니까. 돌도 안 지난 우리가 삼성의 76년 '무노조 경영' 방침에 균열을 냈습니다."

30일 오전 서울 강남구 서초동 삼성 본관 앞. 마이크를 쥔 권영국 변호사가 허공을 향해 외쳤다. 그가 서 있는 곳에선 삼성전자서비스센터 협력사 수리기사였던 고 염호석씨의 영결식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염호석씨 장례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은 권 변호사는 "당신을 먼저 떠나보낸 미안함과 죄책감 때문에, 동료들은 40일 넘게 강남 한복판에서 죽는 힘을 다해 싸웠다"며 "그 결과 삼성이 사실상 노동조합을 인정한다는 내용의 단체협약을 쟁취해냈다"고 전했다. 그는 "이제 먼 길을 가벼이, 편히 가셔도 된다"고 말하며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추모했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양산분회장인 염씨는 ▲ 노조인정 ▲ 임금개선 문제 등으로 회사 쪽과 갈등을 겪어오다가 지난 5월 17일 강원도 강릉시의 한 길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조합원들의 힘든 모습을 보지 못하겠기에 저를 바친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노조는 기본급 도입과 염씨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삼성 본관 앞에서 전국적인 파업을 벌여오다가, 지난 29일 협력사 노사의 단체협약이 가결되면서 농성을 마무리 짓고 염씨의 장례를 치르게 됐다. 원청인 삼성전자서비스도 애도의 뜻을 밝혔다. 그가 생을 마감한 지 44일 만이다.

염씨의 어머니 김아무개씨는 조합원들에게 "우리 석이가 마지막 길을 훨훨 날아 갈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삼성, 이제는 무노조 아닌 '유'노조"

30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서초동 삼성 본관 앞에서 삼성전자서비스센터 협력사 수리기사인 고 염호석씨의 영결식이 열렸다.
 30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서초동 삼성 본관 앞에서 삼성전자서비스센터 협력사 수리기사인 고 염호석씨의 영결식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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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여 명의 노조 조합원들은 왼쪽 가슴 부분에 삼성 로고가 박힌 남색 반팔 티셔츠를 입고 영결식에 참석했다. 장기간의 농성 때문인지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다들 염씨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기 위해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었다. 몇몇 조합원들은 "우리가 해냈다", "이제는 무노조가 아니라 '유노조'"라 적힌 검은색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이날 영결식은 고층 건물인 삼성 본관을 향해 함성을 지르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동안의 억울함을 담아서 5초 동안 소리를 지르자"는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조합원들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삼성을 향해 함성을 질렀다. 5초 후에도 함성 소리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영결식에 참석한 인사들은 염씨를 비롯한 조합원들의 단결과 희생 덕분에 이같은 성과를 이루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전규석 금속노조위원장은 "염호석 열사를 비롯한 조합원들은 이번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며 "덕분에 우리는 '삼성 재벌'의 땅에 금속노조의 푸른 깃발을 꽂았다"고 말했다. 곽형수 삼성전자서비스지회장 직무대행도 "흔들리지 말라고 명령한 호석이의 말대로 싸운 결과, 오늘과 같은 역사적인 날을 맞게 됐다"며 "장시간 노동과 인격 모독을 견디지 못해 설립된 우리 노조 앞에 드디어 삼성이 무릎을 꿇게 됐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삼성전자서비스를 둘러싼 문제가 전부 해결된 건 아니다. 앞으로 각 지역센터 사장들과 단체협약을 체결해야 하는 난관이 남아있다. 불법파견 논란과 임금 문제도 아직까지는 미해결 상태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뜻이 있는 사람은 쓰러지고 짓밟힐수록 오히려 일어선다"며 "가슴 밑에서 살아 타오르는 불씨를 모두 모아서 앞으로 현장에서 그 열정을 활활 태워야 한다"고 말했다. 신승철 민주노총위원장도 "재벌의 탐욕을 끝장내는 날까지, 모든 생명이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 때가지 투쟁해 나가자"는 다짐으로 조합원들을 격려했다.

조합원들은 염씨의 영정사진이 마련된 연단에 헌화한 뒤, 삼성 본관 앞 도로를 한 바퀴 돌며 추모행진을 벌였다. 노조는 이날 오후 강원도 강릉 정동진에서 노제를 지낸 뒤 7월 1일 경남 양산 솔밭산 열사묘역에서 하관식을 열 예정이다.

30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서초동 삼성 본관 앞에서 삼성전자서비스센터 협력사 수리기사인 고 염호석씨의 영결식이 열렸다.
 30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서초동 삼성 본관 앞에서 삼성전자서비스센터 협력사 수리기사인 고 염호석씨의 영결식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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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삼성전자서비스, #삼성전자, #염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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