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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지방선거를 며칠 앞둔 시점이었다. 그동안 뉴스를 봐도 세월호 소식에만 집중하며, 어떻게 하면 이 분노를 좀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아내가 갑자기 지방선거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 없을까?"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다. 많은 이들이 지방선거가 정권 심판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했고, 이는 충분히 설득력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내 역시 세월호 심판을 위해 투표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아내는 자신의 선거 참여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 이상을 이야기했다. 단순히 개인적인 투표만으로는 부족하고, 세월호 참사를 망각하지 않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투표하도록 열심히 독려해야 한다고 했다. 아이 셋 키우느라 정신 없으면서, 그 와중에도 선거운동을 하겠다고 하니 이걸 말려야 하는지, 아님 지켜봐야 하는지 원.

까꿍이의 굳은 의지
▲ 잊지 말자 세월호 까꿍이의 굳은 의지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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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으로 선거운동을 하겠다는 아내. 문제는 누구를 위해, 어떻게,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결국 선거는 인물을 뽑는 일이다. 적극적으로 무엇을 한다는 것은 특정 인물에 대한 지지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에 심판이라는 아내의 생각을 투영시키려면 과연 누구를 지지해야 하는지 애매했다. 현 정권을 심판하기 위해서는 결국 야권을 지지해야 하는데, 그들 역시 지리멸렬하지 않은가.

다행히 아내의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다. 열심히 선거 홍보지를 읽고, 인터넷을 뒤지더니 아내는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이 지지하고 또 주위사람들에게 권유해야 할 후보를 결정했다. 바로 서울시교육감 후보 조희연이었다.

아내는 여느 자치단체장 선거보다 교육감 선거에 주목했다. 세월호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서, 다시는 세월호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참사를 막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 자식들을 조금 더 나은 교육환경에서 키우기 위해서는 교육감 선거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현재 자신이 지지하는 조희연 후보가 고승덕 후보나, 전임 교육감 프리미엄를 가지고 있는 문용린 후보에 비해 인지도에서 한참 떨어지고 있으니, 자신이 직접 교육감 선거운동을 할 수밖에.

막상 아내가 적극적으로 조희연 후보 지지운동을 하겠다고 하자 은근히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나야 사회과학을 전공했으니 그만큼 조희연 교수가 낯설지 않았지만, 다른 이들에게 조희연 후보는 그야말로 '듣보잡'인 터. 과연 아내의 조희연 후보 지지가 주위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의문이었다. 괜히 어설프게 조희연 후보 지지선언을 해서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것은 아닐까?

동네 엄마들의 힘

차에서 얼른 떼어버린 아내의 첫번째 피켓
▲ 무식한 자 용감하다 차에서 얼른 떼어버린 아내의 첫번째 피켓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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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매의 외침
▲ 조희연 후보를 지지합니다 삼남매의 외침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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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운동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아내는 우선 피켓을 만들고자 했다. 아내는 A4 크기의 두꺼운 용지를 가지고 오더니 거기에다 색색깔로 조희연 후보 지지 내용을 적었다. 아이들이 자신들도 해보겠다고 달려들자, 오히려 아이들에게 피켓을 들린 뒤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다. 마지막으로는 내게 지하주차장에 서 있는 자동차 뒤에 피켓을 부착해 달라고 부탁했다.

다음 날 저녁, 아내는 자신의 피켓이 결코 무용지물은 아니었다며 내게 자랑스레 이야기했다. 그날 아침 까꿍이를 유치원에 자동차로 데려다 주었는데, 초등학교 교문 앞에 서 계시던 학교 보안관 아저씨가 은근히 자기에게 다가와 선거운동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아내에게 지인들로부터 들은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주어야만 했다. SNS는 상관없지만, 공식적인 선거운동원이 아닌 사람이 자동차와 같은 오프라인 공간에서 피켓을 들고 다니면 선거법 위반이라는 것이었다. 별 수 있는가. 당장 자동차 뒤에 부착했던 피켓을 뗄 수밖에.

모두모두 투표하세요
▲ 지하철 역 선거운동 모두모두 투표하세요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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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포기할 아내가 아니었다. 아내는 이번에는 카톡을 돌리기 시작했다. 선거 막판 되면 새누리당에서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카톡을 돌리듯, 아내는 자신이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조희연 후보 지지 카톡을 보냈다. 그 명단에는 1년 전 강동구로 이사 오기 전에 잠시 얼굴을 텄던 구로구 오류동 놀이터 엄마들도, 부동산 아줌마도, 심지어는 아이들을 잠깐 가르쳤던 '곰돌이 선생님'과 정수기 청소하러 오시던 아줌마도 포함됐다. 평소 같았으면 그 어색함에 절대 연락하지 않았을 사람들에게까지 아내는 카톡을 날렸다.

다시 생각해봐도 민망한 아내의 카톡.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앞으로 절대 다시 볼 기회가 없는 이들이 아내의 카톡을 보더니 답장를 보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자신도 누구를 찍을지 몰라 한참 망설이고 있었는데 고맙다는 이, 안 그래도 주위에서 조희연 후보 이야기를 들어 긴가민가하고 있었는데 아내의 카톡으로 확신을 가졌다는 이, 아내의 용기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는 이 등등 다행히 대개 아내의 카톡에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그러자 아내는 또다시 다른 기획을 내놓았다. 이번에는 조희연 지지 카톡을 한 사람 당 10개씩 보낸 뒤 인증 샷을 찍어 공유하자는 것이었다. 아내의 아이디어에는 꽤 많은 동네 엄마들이 동조하고 나섰는데, 그들이 조희연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는 대게가 안전한 급식, 일반 고등학교의 정상화 때문이었다. 또다시 카톡을 날리는 동네 엄마들. 10명이 돌리면 100건이었고, 그 100명이 또 10건씩 돌리면 1000건이었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동네 엄마들의 힘이다.

꼭 투표하세요~~~
▲ 삼남매의 선거운동 꼭 투표하세요~~~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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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끝이 아니다. 아내는 선거 막판이 되자 아예 길거리로 나섰다. 내가 회사에서 야근을 하고 있는 동안, 아내는 아이들을 이끌고 동네 엄마들과 함께 지하철역으로 나가 투표 독려 운동을 했다. 특정 후보 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투표율이 오른다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좀 더 많은 득표를 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졌다. 

집보다 밖이 좋은 아이들은 엄마를 따라 영문도 모르는 채 투표 독려 피켓을 들었고, 길거리의 음악에 맞춰 율동을 보이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혹자는 아이들까지 데리고 나와 선거운동을 한다면 눈살을 찌푸렸지만, 또 어떤 이들은 어려서부터 직접민주주의를 배운다고 그 용기에 박수를 쳐주었다.

조희연 후보의 당선 그리고 그 후

산들이 꽃
▲ 민주주의의 꽃 산들이 꽃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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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끝난 1인(?) 선거운동. 아내는 6월 4일 저녁 나와 함께 TV 앞에 앉아 맥주를 홀짝홀짝 들이키기 시작했다. 평소 같았으면 막내에게 젖을 물릴지도 모른다며 자제했을 테지만 그날 만큼은 맥주 한 모금이 아쉬운 것 같아 보였다.

이윽고 발표된 출구조사. 놀랍게도 조희연 후보가 고승덕, 문용린 두 후보를 앞선 걸로 나왔다. 큰 차이는 아니었지만, 트위터나 페이스북 반응으로 볼 때 조희연 후보의 승리는 거의 확정적인 듯했다. 그래도 영 찜찜한지 결과를 낙관하지 못한 채 분주히 TV와 스마트폰을 찾아보는 아내.

이윽고 조희연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 되자 아내는 비로소 환한 웃음을 지으며 조잘조잘 말하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이렇게 선거운동을 한 것도 처음이며, 이렇게 간절히 누가 되기를 바란 것도 처음이라며, 맥주 한 모금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나도 옆에서 조희연 후보의 당선을 축하하며 아내에게 수고의 말을 건넸다.

혹자들은 이번 조희연 후보의 승리를 고승덕 후보의 딸이나 보수의 분열에서 찾기도 하지만 이것은 절반의 진실일 뿐이다. 조희연 교육감 탄생에는 우리 아내와 같은 일반인들이 많은 노력이 담겨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조희연을 듣도 보도 못한 우리 주위의 많은 이들이 어찌 그를 찍었겠나.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본 바, 6.4지방선거 이후 동네 엄마들의 모임은 그 성격이 조금 달라진 듯 했다. 물론 선거 때처럼 정치 이야기가 자주 오고가진 않았지만, 예전처럼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무조건 쉬쉬 거리는 분위기는 아닌 듯했다.

교육감 선거는 엄마들에게 가장 현실적인 동시에 이상적인 선거였다. 자신의 아이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면서도 비교적 색깔론이나 정당 지지로부터도 자유로웠던 만큼 엄마들은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밝히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엄마들은, 왜 자신이 세월호를 보면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지, 또 우리 아이들을 조금 더 잘 키우기 위해서는 교육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등을 논의하며 일상에서 정치를 실현해 나갔다.

앞으로 동네 엄마들이 어떤 자세로 정치를 대할지 알 수 없다. 다만, 이번 조희연 교육감의 탄생으로 미루어 볼 때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 뛸 수 있을 만큼 믿음을 주어야 하며, 공약 하나하나가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명확하게 알려 주어야 한다. 그것이 이 색깔론 등의 구태정치를 벗어날 유일한 방법이다.


태그:#64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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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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